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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98화 (498/726)

#498화

회귀 전, 성자가 처참하게 망가진 이유.

보살의 권능에 병이 악화되지는 않던 성녀가 급속도로 죽어 갔던 이유.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했던 두 위인이 비극을 맞이한 이유.

-내가 유일해야 해! 나 외엔 당신에게 소중한 건 없어야 해!

이 모든 비극은 성자에게 악의적인 집착을 보였던, 어느 추악한 괴물이 저지른 짓이었다.

“아스터 교단에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성녀가 있다는 것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추악한 괴물은 다름 아닌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이었다.

“빛의 포식자, 영혼을 잡아먹어 노예로 만드는 괴물.”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성녀의 정체는 인간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영혼을 잡아먹어 노예로 만드는 괴물이었다.

아스터가 그 괴물을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신에 가까운 추측으로는.

“아스터 교단, 아니 에스라 성운이 벌인 인체 실험의 결정체.”

아스터가 에스라 대륙의 생명체들을 탄압하고 그들의 피와 살을 모아 만들어 냈다는 것.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괴물이 가장 큰 집착을 보였던 존재가 바로 성자였다.

회귀 전, 아스터 교단이 배신을 저지르기 전.

그들이 성자의 요구만큼은 들어주고 그나마 협력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이유가.

-당신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성자에게 집착하는 라사벨의 고집 때문이었다.

아스터 교단의 성녀는 신관들보다 드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미친 괴물은 분명, 당신에게 악의적인 집착을 드러낼 겁니다.”

성녀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농락했던 추악한 괴물.

처용이 회귀 전, 라사벨을 떠올리며 성자를 향해 경고하듯 말하자.

“역천군주의 경고, 새겨듣지요.”

성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후방을 습격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작금의 이야기를 듣던 제시카가 입을 열었다.

에스라 대륙으로 향하는 길드들은 각각 서로 조를 이뤄 각 지역이 자리 잡기로 결정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의 세력.

이자나기 성운과 신의 검객 길드.

빛의 신 야훼와 빛의 교단.

올림포스 성운과 올림포스 길드.

이 세 세력이 한 조가 되어 동부와 남부 전선의 중앙을 맡기로 결정되었다.

“올림포스가 중앙의 주 전선을 맡고 신의 검객 길드가 척후, 교단이 후방 지원인가?”

처용이 제시카의 말을 듣고 세 길드가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단번에 알아채며 말했다.

세력이 크고 단단한 올림포스가 가장 앞장서 주 전선을 도맡는다.

신의 검객 길드는 시노비들을 주축으로 적진의 정보수집과 주변 정찰을 책임진다.

교단은 전선을 맡은 길드들을 지원하고 후방을 방어한다.

각각 길드들의 장점을 활용한 전형적이고 효율적인 배치였다.

“이제 막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단번에 파악하시는군요.”

“뭐, 이 정도쯤이야.”

처용은 제시카의 놀란 듯한 반응 어린 말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지금부터 세 길드가 해 줘야 할 일, 아니 대비해 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을 만나러 온 진짜 목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아스터 교단을 밀어 버리기 전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차후 일어날 법한 일.

그중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였다.

그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를 대비한 대책.

“적들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하여, 방심하지 마십시오.”

이야기를 잇는 처용이 방심하지 말라는 듯 경각심을 담아 말하자.

[유의해 두겠다.]

“명심하죠.”

아테나와 제시카 등,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세계 헌터 회의가 끝난 다음 날.

-우우웅.

처용은 2일 차 세계 헌터 회의에 참가하지 않고 에스라 대륙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각 길드들의 에스라 대륙 진출은 1일 차 세계 헌터 회의에서 결정이 된 상황.

이후 논의될 그들의 일정 조율까지 하나하나 간섭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몇몇 길드와 성운의 대표를 만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책도 갖춰 두었다.

준비와 대비는 이 정도면 충분했고 이제는 처용이 직접 움직일 차례였다.

에스라 대륙에서는 실시간으로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상황.

이어지는 세계 헌터 회의를 불참하고 에스라 대륙으로 돌아온 이유가 그 사고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에스라 대륙으로 돌아온 처용이 향한 곳은 바로 대륙의 서쪽.

루나와 류마를 포함한 뱀파이어들을 미리 보냈던 지역이었다.

이번에 처용이 해결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뱀파이어에 관한 문제였다.

지금 에스라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회귀 전보다 더 빠른 상황.

이젠 뱀파이어들의 문제도 계속 미뤄만 두기엔 불안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루나와 뱀파이어들을 미리 서쪽으로 보내 상황을 살피도록 한 것이었다.

-샥!

에스라 대륙의 서쪽 부근으로 처용이 도착하자.

-쏴아아.

물결이 들이치는 파도 소리.

-까~악! 꾸르륵!

갈매기로 보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처용이 전방을 넓게 둘러보자, 수많은 배가 정박한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항구 뒤로 쭉 이어진 넓고 거대한 도시와 그 뒤를 가린 거대한 산맥이 보였다.

처용이 도착한 곳은 아스터 제국의 서쪽, 거대한 항구도시였다.

도시의 전경을 쭉 둘러보던 처용의 눈이 항구에 정박한 한 배에 닿았고.

‘……천교!’

그 배의 돛과 깃발에 그려진 구름과 번개 문양을 보고 눈빛을 차갑게 빛냈다.

처용은 우선 도시를 전체적으로 부술까 싶었지만.

-샥!

이내 마음을 접고 도시 외곽, 주변을 감싼 산맥 인근으로 향했다.

처용이 산맥 중턱쯤에 도달하자.

“오셨습니까.”

-스르륵.

주변 나무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류마를 포함한 소수의 뱀파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기다리고 있었어.”

-스르륵.

루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처용을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하아…… 일단, 우리가 알아낸 정보부터 이야기해 줄게.”

처용의 물음에 루나가 짧고 굵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도시 안에서 밤의 일족들이 남긴 흔적을 찾았어.”

루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미리 항구도시에 도착하여 정보를 모으고 있던 루나와 휘하 뱀파이어들.

그들은 은밀하게 항구도시와 이 주변 인근을 수색했었다.

그런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같은 동족, 뱀파이어의 흔적이었다.

문제는 그 뱀파이어의 흔적이.

“우리 일족의 남긴 흔적은 두 가지야.”

서로 대비되는 두 개의 흔적으로 나뉘었다는 점이었다.

하나는 부상을 입고 적에게 추격을 당하는 듯한 흔적.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뒤쫓아 추격하는 듯한 흔적이었다.

“쫓기는 이들은 군주의 편에 선 뱀파이어들, 추적자들은 반역을 일으킨 놈들인가?”

루나의 말을 들은 처용이 작금의 상황을 예상하듯 말하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루나가 처용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배신자들로 보이는 일족의 흔적은, 저기 영주성으로 이어져 있어.”

멀리 보이는 항구도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은 먼 거리에서도 독보적으로 거대해 보이는 건축물.

바로 항구도시를 다스리는 영주가 머무르는 장소, 영주성이었다.

“……용케, 먼저 움직이지 않았네?”

영주성을 바라보며 관찰하던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일족에 대한 내 조급함 때문에 ‘우리’의 일을 망칠 순 없으니까.”

루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동족의 흔적을 확인한 순간, 영주성으로 곧장 쳐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급하게 행동했다가 오히려 전체적인 일을 망칠 가능성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중요한 물건을 맡고 있기도 하잖아.”

지금 자신의 혈옥 속에는 드래곤의 알이 잠들어 있는 상황.

게다가 평범한 드래곤의 알이 아니라, 태초의 조각이라는 중요한 물건을 삼킨 알이었다.

자신이 잘못되면, 일족에 대한 문제가 커질뿐더러, 드래곤의 알도 잘못될 가능성이 컸다.

더불어 처용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는다.

아무리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해도 자만했다가 실수가 일어나는 법.

그러한 상황을 제 손으로 만드는 것만큼은 사양이었다.

조급하게 행동하기보단, 지금껏 인내심을 발휘하며 기다렸던 만큼, 처용을 기다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잘했어.”

처용은 그런 루나의 인내심을 칭찬하고는.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바로 간다.”

-파지직!

영주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

-스르륵.

루나를 포함한 뱀파이어들도 어둠 속에 스며들며 처용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그들이 다시 나타난 장소는 영주성의 정문 근처였다.

이제 막 해가 저물어가는 듯, 저녁노을이 짙어진 시간.

영주성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는 사람들의 활기가 느껴졌지만, 영주성의 근처에는 삭막함만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주변을 쏘아보며 경계하는 영주성의 경비병들을 사람들이 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주성 자체가 신전이자 성지의 역할을 하고 있군.”

영주성 정문과 조금 떨어진 거리 골목에 나타난 처용이 영주성을 자세히 관찰하며 읊조렸다.

“정찰은 어느 정도 진행했지?”

“내부 정찰은 하지 못했지만, 영주성 지하에 감옥과 실험 시설이 있다는 것은 알아냈습니다.”

처용의 말에 류마가 그간 영주성 주변을 정찰하며 모은 정보를 이야기했다.

“지하에서 일족의 피 냄새가 느껴져.”

루나가 코를 짧게 훔치며 말했다.

일족의 기운이 아닌, 일족의 피 냄새가 느껴진다는 말.

그 의미는 부상을 입은 일족이 영주성 지하에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정면을 돌파하면 그 틈에 지하를 장악한다.”

처용이 짧고 간결하게 명령하듯 말하자.

“알겠습니다. 용님.”

-스르륵!

류마가 대표로 대답하고는 뱀파이어 전원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저벅.

처용은 골목을 나와 영주성 정문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영주성 인근까지 처용이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자, 주변의 시선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누구냐!”

“허락을 받지 않은 자는 백 걸음 내로 다가올 수 없다!”

멀리서부터 대놓고 다가오던 처용을 경계한 경비병들이 위협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차캉!

-우웅!

경계를 서던 병사들이 창을 치켜들고 영주성 성벽 위에 있던 마법사들이 마나를 보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처용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당장 멈추고 신분을 밝혀라!”

영주성의 경비를 책임지는 이로 보이는 자가 마지막 경고를 담아 소리쳤다.

“이젠 일일이 말해주기가, 슬슬 귀찮군. 나는 마신이다.”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하자, 경비 대장의 눈이 점점 커졌다.

동시에.

“당장 공격해! 비상 신호탄을 쏘아라!”

공격 명령을 내리며 소리쳤다.

“파이어 익스플로전!”

“파이어 익스플로전!”

-화르륵! 콰아아!

마나를 모으던 5서클의 마법사 여섯이 처용을 향해 뜨거운 불덩이를 쏘아 보냈다.

“포학의 손아귀.”

처용이 날아오는 불덩이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화륵! 슈화아아!

여섯 개의 불덩이가 처용의 손아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영주성의 경비병과 마법사들이 경악을 내비칠 때.

“파이어 익스플로전.”

처용이 마법사들에게서 강탈한 마나를 모아 똑같은 마법을 시전해 보였다.

-화르륵! 콰아아!

나선으로 휘몰아치는 거대한 불덩이가 처용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마법사들이 쏘아 보냈던 불덩이보다 족히 10배는 거대한 크기.

“마법은 이렇게 쓰는 거다.”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위로 들어 올렸던 손을 영주성을 향해 뻗자.

-콰아아!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거대한 불덩이가 영주성을 향해 쇄도했다.

“막아라!”

“방어를-!”

경계병들이 우왕좌왕하며 소리쳤고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방어 마법을 사용했지만.

-쿠구! 쿠콰콰콰!

처용이 쏘아 보낸 불덩이가 방어 마법과 성벽을 쳐부수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후두두! 화륵! 쿠구!

터져 나간 성벽의 파편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화염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영주성 정문이 무너지고 하늘에서 화염의 비가 쏟아지는 광경.

“주, 중앙 신전에 지원을……! 마, 마신이 나타났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경비 대장이 잔해 속에서 기어 나와 통신용 아티팩트를 꺼내 지원을 요청했다.

그때.

“최대한 지원을 많이 보내라고 전해라.”

-스르르.

엎어진 경비 대장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경비 대장이 고개를 들고 눈동자를 위로 돌리자.

“뭐 해? 지원 요청 더 안 하고.”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처용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경비 대장이 산속에서 호랑이를 마주친 듯, 몸을 떨며 움직이지 못할 때.

-무슨 일이냐!? 응답해라!

그가 들고 있는 아티팩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탁!

“한 시간 안에 지원을 오지 않으면, 이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처용이 경비 대장이 들고 있던 아티팩트를 빼앗아 선전포고를 전한 순간.

-화아아!

영주성 위로 빛의 기둥이 내리치며 천사들이 강림했다.

“안 그래도, 폭탄 재료가 부족했는데 잘 되었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천사들을 바라본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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