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화
최상위 헌터들도 피하기 버거운 공격들을 쉬지 않고 퍼붓는 처용.
그에 맞서 가까스로 방어하고 회피하는 이비와 나인.
이비와 나인은 공격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처용의 공격을 잘 피해 냈지만.
“방어, 불가.”
“늦었-.”
-쿵! 콰콰!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또다시 공격을 허용하고 치명상을 입었다.
아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지만.
-츠츠츠……!
처용은 둘이 자가 수리를 끝내도록, 공격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리고.
“뭉쳐서 같이 당하는 것 보다, 공격을 분산시켜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 옳은 판단일 때도 있다.”
방금, 어째서 둘이 당했는지에 대한 조언과 함께.
-스르릉! 스릉!
다시 격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이비와 나인을 향한 처용의 공격이 이어진 결과.
“잔여 에너지, 제로.”
“전투 시스템 정지.”
-지이이…….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비와 나인이 반쯤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이비와 나인이 완전히 전투 불능 상태에 도달하자.
-탓.
처용의 뒤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커맨더가 나타났다.
커맨더는 처용과 두 안드로이드가 보여 주었던 전투가 흥미로웠다는 분위기였지만.
[…….]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듯, 복잡한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도대체 뭘 한 거야?]
-지잉.
생각을 잇듯 잠시 침묵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홀로그램 화면을 띄우며 처용에게 물었다.
그녀가 띄운 홀로그램 화면에는 이비와 나인에 대한 실시간 정보가 출력되고 있었다.
“여신님? 무슨 문제라도…….”
커맨더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보며 의문을 표하고는 그녀가 띄운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그리고 점점 눈이 커지더니.
“오류……!? 일 리가 없겠죠. 아니! 이 수치가 나오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바라보며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까지는 불가능해.]
커맨더의 물음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읊조리고는.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뭘 한 거야?]
다시금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잠시, 아직 ‘수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처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물음에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 말하고는.
“이비와 나인이라고 했나?”
이비와 나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던 이비와 나인이 고개를 들었고.
-지잉.
눈동자를 푸르게 빛내며 처용을 바라봤다.
“어때? 내가 준 정보…… 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좀 유익했나?”
“…….”
처용의 말에 이비와 나인이 잠시 아무 말 없이 침묵하더니.
“……전투 데이터, 매우 유익.”
처용의 물음에 ‘도움이 되었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비는 의문…….”
이비가 처용에게 질문이 있다는 듯한 의미를 지닌 말을 이었다.
“묻고 싶은 말이라도?”
처용이 물어보라는 듯 말하자.
“왜, 우리한테?”
이비가 의문을 담아 처용에게 물었다.
짧은 말이었지만.
“왜, 너희들을 학습시켜 줬냐고?”
처용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이비와 나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처용이 잠시 생각하며 침묵하고는.
“그 전에, 너희들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해봐.”
이비와 나인을 향해 말을 이었다.
“개체명 이비, 제작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 장치의 여신과 그 신관…….”
“개체명 나인, 제작 목적은 차세대 전투 안드로이드의 프로토타입 실험…….”
처용의 질문에 이비와 나인이 차례대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스로에게 입력된 데이터를 읊는 것이기 때문인지, 어눌하지 않고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본 개체는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제작.”
“……폐기 가능성 존재.”
마지막으로 복잡한 심정이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창조물을 폐기하기엔 너무 안타까운데.”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말하자.
“우리는 제작된 기계 장치.”
“이 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
이비와 나인이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일정한 목소리로 반박하듯 답했다.
“발전했잖아? 방금.”
처용이 둘의 말에 반박하듯 의견을 전하자.
“반복적인 학습을 통한 발전.”
“한계는…… 명확.”
이비와 나인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기계 장치는 개조를 받지 않는 한, 발전 불가.”
“우리는 인간이 아님.”
만들어진 기계 장치는 인간과 다르게 발전할 수 없다는 이비와 나인의 말.
그 말에 처용이 잠시 생각하고는.
“……만들어진 건 인간 역시 마찬가진데.”
이비와 나인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우리 역시 정밀하게 만들어진 생체 기계나 다름없으니까.”
기계 장치와 인간이 서로 다를 바 없다는 처용의 말에 이비와 나인이 소리 없는 의문을 표했다.
“자 너희도 만들어진 존재고 우리도 만들어진 존재다. 그렇다면 너희와 나는 공통점이 뭘까?”
의문을 드러내는 이비와 나인의 반응을 본 처용이 질문을 이었다.
질문을 받은 이비와 나인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공통점이라……?”
이야기를 듣던 커맨더도 의문을 표하며 읊조렸다.
그리고.
[…….]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무언가 생각이 잠긴 듯 처용과 이비, 나인을 번갈아 보며 침묵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생각.”
처용이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두드리며 답을 알려 주었다.
“생각할 줄 안다는 것, 학습하고 고민하고 판단할 줄 안다는 것.”
“생각…….”
“학습, 판단…….”
이비와 나인이 처용의 말을 곱씹으며 읊조렸다.
“스스로가 기계 장치라는 이유로 가능성의 한계를 정하지 마라.”
마지막 말을 이은 처용이 고개를 돌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바라봤다.
“이 녀석들을 폐기하기엔 너무 아까운데요?”
처용이 이비와 나인을 시험한 감상을 이야기하자.
[나도 폐기할 생각까지는 없었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이비와 나인을 바라보며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폐기할 생각이 없었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비와 나인 제작에 많은 공을 들였으니까.
그리고.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제작.
-……폐기 가능성 존재.
자아를 가진 기계 장치, 이비와 나인이 조금 전 처용의 질문에 한 대답.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 말이 신경이 쓰인다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껏 수많은 작품들을 제작하고 폐기할 때에는 폐기해 왔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 장치가 스스로 폐기를 언급하자 기분이 묘했다.
“거의 하나의 종족을 만드신 것 같습니다만?”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저 둘을 종족으로 완성해 버린 건 너겠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저 둘에게 무엇을 한 거야?]
처용을 향해 처음 던졌었던 질문을 다시 물었다.
아무리 자아를 가지고 학습할 수 있는 기계 장치라지만,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의 에너지 수치가 너를 만나기 전보다 두 배는 올라갔어.]
이비와 나인은 처용과 만나기 전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본래의 기계 장치라면 있을 수 없는 일.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 부분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더 큰 의문은.
[네 신명에 깃든 권능…….]
처용이 이비와 나인을 상대하며 주변에 옅게 퍼트렸던 신력.
그 신력은 단순히 공격의 위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신력이 아니었다.
분명한 ‘권능’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우주의 법칙과 관련이 있구나.]
우주의 법칙에 간섭할 수 있는 권능으로 예상되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기계 장치의 여신.
그녀 역시 법칙과 규칙을 만들어내고 다루는 신격.
처용의 권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볼 순 없었지만, 우주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아보았다.
“인과율의 조작입니다.”
처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질문에 흔쾌히 답해주었다.
그리고.
“이 둘에게는 주어진 태생의 한계를 극복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비와 나인에게 어떤 권능을 사용했던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처용의 신명은 멸천(滅天).
하늘을 무너뜨리는 자.
그 신명에 깃든 권능은 다름 아닌 인과율의 조작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부수는 자, 멸천의 신명이 지닌 진정한 힘은 ‘조작’이 전부가 아니었다.
처용은 이전, 본신 상태의 악신들을 상대로 멸천의 권능을 사용해보며 깨달은 바가 있었다.
-신명은 그 신명에 걸맞은 신격에게 주어진다.
회귀 전, 여래가 처용에게 신명에 대해 알려줄 때 했었던 말이었다.
처용은 멸천의 권능을 시험해 보며, 그런 여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상기했었다.
어째서 자신은 멸천이라는 신명을 각성한 것인가?
왜 스스로가 하늘을 부수는 자가 되었는가?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단기간에 전부 깨달을 순 없었지만, 한 가지 명확하게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멸천이라는 신명은 자신의 의지와 신념, 행동을 의미한다는 부분이었다.
그 의미를 깨닫자, 하늘을 부순다는 신명의 의미도 일부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깨우친 것이 바로 멸천의 권능, 역천(逆天)과 파천(破天).
인과율을 비트는 힘과 인과율을 파괴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관천(貫天).
한계를 부수고 더 앞으로 나아가는 힘.
이것이 역천과 파천 다음으로 깨달은, 멸천 속에 깃든 또 다른 권능이었다.
그리고 처용은 왜 자신에게 이러한 권능이 발현되었는지도 예상이 되었다.
인간은 신에게 맞설 수 없다.
우주를 구성하는 법칙과 규칙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처용은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한 이 한계들을 쳐부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었다.
게다가 처용은 혼자서만 한계를 부수고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이끌어준 많은 이들의 한계 또한, 그들 스스로 부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파이오니어의 영향도 있겠군.’
처용이 자신의 칭호 중 하나인 파이오니어를 생각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한국의 헌터들, 커맨더, 아타를 포함한 신수들까지.
그중 가장 큰 수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아테나의 신관인 제시카.
그녀가 처용의 가르침을 받은 결과, 200레벨에 도달하기도 전에 신력을 개화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이토록 많은 이들이 처용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한계를 뚫고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갔다.
추가로 관천의 의미를 자각한 처용은 자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한계가 무엇인지도 자각할 수 있었다.
바로 악의 종주가 불러오는 종말.
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부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멸천을 짊어진 자의 사명이었다.
“본래 취지와는 다르다 해도, 이 아이들은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처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폐기할 생각 없었다니까. 그리고 테스트 결과는 나도 만족이야. 오히려 성능이 확 좋아진 셈이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리고.
[인과율을 다루는 권능…… 이 힘은…….]
조금 전 처용이 말해주었던 멸천의 권능을 다시금 생각하며 읊조리자.
“태초신만이 다룰 수 있었던 힘이라고 미륵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용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채며 말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처용의 권능이 우주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고 단번에 알아본 이유.
그녀는 태초신의 힘을 일부분 이어받아 태어난 선천적 신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신명, 기계 장치는 우주의 법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신명.
때문에, 처용이 인과율을 다루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이었다.
[……!]
처용의 흔쾌한 대답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계승자에게 걸맞은 권능이네.]
이내 납득이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동안 도움을 받은 만큼, 나 역시 보답하는 게 도리겠지.]
처용에게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그 아이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다면, 신력을 나눠줘 보게나.
미륵이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전, 처용에 대해 궁금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미륵에게 묻자, 그가 해 주었던 말이었다.
그 당시에는 미륵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그 말이 떠올랐다.
-스르르. 휘이익!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와 처용을 한 번 휘감으며 스며들자.
[기계 장치의 여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힘을 계승합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선인의 육체가 성장합니다.]
[모든 스텟이 30 증가합니다.]
[멸천의 신명 속에 깃든 권능의 힘이 강해집니다.]
[권능 발현에 필요한 신력의 소모량이 감소합니다.]
[토류부, 철벽부의 성능이 대폭 강화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신력을 받은 결과, 권능의 힘과 일부 자연부의 위력이 크게 상승했다.
게다가 레벨의 상승까지.
“감사합니다.”
유의미한 보상을 받은 처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감사를 전하자.
[아니, 이게 가능할 줄은 몰랐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신급 성좌, 그것도 본신 상태의 신력을 아무 부작용 없이 받아들였으니까.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이것 또한 계승자라서 가능한 것이었구나.]
처용이 계승자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고는 납득이 되었다는 듯, 말했다.
“좋은 걸 받았으니, 저도 선물을 하나 드리지요.”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고는
-우웅.
아공간에서 옵저버를 꺼내 내밀며 말을 이었다.
처용이 내민 옵저버 안에는 무려.
“본신 상태의 악신들과 싸웠던 전투 데이터입니다.”
유르티나의 레어에서 악신들과 싸웠던 전투 데이터가 담겨 있었다.
-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곧장 처용이 내민 옵저버를 받아 확인하고는.
[역시!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은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