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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92화 (492/726)

#492화

무거운 신력의 기류가 아테나를 한 번 휘감자, 아테나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

그러나.

-스스스.

무거운 중압감이 일렁이는 신력이 아테나를 한 번 휘감고는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 눈에 띄는 변화가 없자, 아테나가 눈을 뜨며 소리 없는 의문을 드러냈고.

[…….]

“…….”

다른 이들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모두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때.

“……조건이 부족하다?”

처용이 오른쪽 아래를 바라본 채,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지금 처용이 바라보는 시선에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다…… 다행이다.]

처용의 모습과 읊조림, 자신의 상태를 다시 확인한 아테나가 짧고 굵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를 표했다.

조금 전, 처용의 입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흘러나올 때 보였던 침착함과는 다르게 크게 당황한 모습.

아테나가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충격적인 진실을 듣고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아니, 겉으로 튀어나오려던 당황스러움을 억누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계 헌터 회의가 시작되기 하루 전, 처용과 미리 협의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자세한 이야기는 미리 듣지 못했지만, 사전에 언질을 받은 덕분에 침착함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나를?’

불과 방금 전 처용의 행동.

자신을 태초신으로 만들려던 처용의 행동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전에 이야기조차도 듣지 못했었다.

그랬기에 침착함을 보이던 아테나가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던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처용의 돌발 행동.

아테나는 처용의 돌발 행동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었다.

정말로 자신이 태초신이 되어 버린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후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태초신이 되어 버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테나는 신력의 기류가 자신을 한 번 휘감을 때,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었다.

다행히…… 강제로 태초신이 되어 버리는 황당한 상황은 도래하지 않은 듯 보였다.

[내가…… 내 자질이 부족해서 다행이군.]

아테나가 진심 어린 안도를 표하며 읊조리자.

“아테나 님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처용이 시스템 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조건이 부족한 건…… 저일 가능성이 큽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준 조건이 부족하다는 말.

그 말의 의미는 처용이 태초신으로 임명하려 한 아테나가 부족하다라는 뜻이 아니었다.

부족한 것은 태초신의 임명권을 가진 계승자, 자신이었다.

시스템이 그 부분을 콕 찝어 알려주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신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냐?’

처용이 시스템 창을 노려보며 속으로 읊조릴 때.

[나는 태초신에게서 태어난 마지막 선천적 신격, 나는 태초신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자부한다.]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올림포스 주신에게 했던 임명을, 내게도 해볼 수 있겠느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처용에게 요구하자.

“……알겠습니다.”

처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계 장치의 여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태초신으로 임명하겠다.”

태초신을 임명하겠다는 처용의 목소리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향했고.

-후우우!

무거운 신력의 기류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휘감고 지나갔다.

그리고 아테나와 다를 바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후, 역시…… 대충은 알겠구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방금 자신을 스쳐 지나간 거대한 존재감을 다시 상기하며 읊조렸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침묵하고는.

[계승자라는 존재가 태초신의 임명권을 가졌다는 것은 정녕 사실이었구나.]

처용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쿠구구!

야훼가 강렬한 빛의 신력을 터트리며 분노하듯 소리쳤다.

[감히! 우주의 법칙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것이냐!?]

[이게 고작 장난질로 보였더니, 그거참 유감이네. 빛의 신.]

분노를 표하는 야훼의 반응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들 머리 식히고 진지하게 생각부터 해 봐라. 태초신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그리 가벼운가?]

아직도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성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계승자가 태초신의 임명권을 지닌 건 사실이다. 허나, 그 임명 과정이 그리 단순할까?]

회의장을 울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진지한 목소리에.

[우주가 반응을 보인 건 사실이니…….]

[하지만, 태초신이 임명되지는 않았소.]

술렁이는 반응을 보이던 성좌들의 분위기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우리조차도 알 수 없는 복잡한 조건이 있는 것이겠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말이 끝나자.

“그렇습니다.”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제가 알고 있던 그 조건이 신명을 얻는 것이었는데…… 역시 이것만으로는 부족했군요.”

[신명의 의미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만, 태초신이라는 존재의 무게에 비할 수 없으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처용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그녀는 방금 처용의 태초신 임명을 직접 경험해 보며 어느 정도 계승자에 대해 이해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기계 장치’의 여신.

그녀가 만들어내는 기계 장치는 정밀한 법칙과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기계 장치를 관장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법칙과 규칙에 대해 잘 이해하는 성좌라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작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해하기가 힘든 건.

[계승자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알겠지만, 그 존재의 무게를 인간이 견딜 법한 게 아닐 텐데…….]

무려 차기 태초신의 자격과 태초신을 임명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존재.

그런 무거운 운명을 어떻게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지가 조금 의문이었다.

“이제 와서 제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거대로 또 납득이 되는구나.]

처용의 대답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황당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역설적으로 납득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애초에 처용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이라는 범주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껏 처용이 저질러 온 대형 사건 사고들이 있었으니까.

“의문들은 해소가 되었는지요?”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대부분 복잡한 표정을 드러내며 술렁이는 분위기를 보였다.

할 말은 많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

“의문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털고 가는 게 좋을 겁니다.”

처용이 여유로운 분위기로 말을 잇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처용을 향해 울렸다.

그 말에 처용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은 아스가르드 성운의 성좌들과 라이트닝 워리어 길드가 자리한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입니까?”

처용이 자신에게 질문을 건 성좌, 아스가르드의 주신, 오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딘이 처용의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뜨고는.

[너는 악마들이 찾고 있는 ‘예언자’와 관련이 있는 것이냐?]

한 점의 감정조차도 담겨 않은 듯, 중후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 잔잔한 목소리 속에 담긴 질문의 의미가 가볍지 않았다.

게다가.

[예언자라면…….]

[최근에…….]

성좌들 중 몇몇은 오딘의 질문 속에 담겨 있는 말, ‘예언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처용이 오딘의 질문에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고는.

“예언자라…….”

오딘의 질문 속에 담긴 중요한 단어를 읊조렸다.

그때.

[아버지.]

오딘보다 아래쪽에 자리한 좌석.

루이스의 옆에 앉아 있던 토르가 오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오딘이 미세하게 인상을 쓰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보아하니, 예언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구나.]

토르가 처용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용은 토르의 말에 잠시 눈을 감으며 생각하고는.

“알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토르를 마주 보며 대답했다.

처용의 대답이 울리자.

[역시……!]

토르가 마치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아직은 모르네.]

몇몇 소수의 성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좌들은 이게 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예언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주변의 분위기를 잠시 살핀 처용이 토르와 오딘을 번갈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처용의 질문에 오딘이 작게 인상을 쓰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때.

[네가 새로운 세계에서 분투하는 만큼, 우리 역시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말해 주고 싶구나.]

토르가 처용의 말에 답하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전 세계 헌터 회의에서 잡아들인 순혈자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어째서 예언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전 세계 헌터 회의 때 밝혀진 순혈자라는 세력들.

게다가 아스가르드 성운의 성좌 중 하나가 순혈자로 밝혀지기까지 했었다.

그를 곧장 잡아들이고 심문을 위해 수감시켜 놓았지만.

-……살해되었다고?

이미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소멸한 이후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암살자가 아스가르드 성역의 경비를 뚫어내고 순혈자를 암살해 버린 상황.

토르는 이 사태에 경각심을 느끼고 내부 수색에 박차를 가했었다.

암살자에 대한 단서는 조금도 발견하지 못해 치욕스러웠지만.

[신계를 염탐하는 악마들과 그에 협력하는 신계인들을 잡아들였고 그들을 심문했었다.]

아스가르드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고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악마와 협력하는 이들을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토르는 단순히 악신들에게 협력하는 이들만이 아닌.

[어떻게, 판데모니움에서 빠져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상급 악마 하나를 잡아내었다.]

신계에 숨어들어 정보를 빼내 염탐꾼 역학을 하던 악마 하나를 잡아내기까지 했다.

그 결과.

[놈들이 ‘예언자’라는 존재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악마들이 필사적으로 찾아내려 하는 존재, 예언자라 불리는 이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토르의 말이 끝난 순간.

“고작, 악마들이 찾으려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에서 예언자를 언급한 겁니까?”

처용이 토르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다가 아닐 텐데요?”

마치, 숨기는 것이 더 있지 않느냐고 묻는 듯한 처용의 말에.

[…….]

[……!]

토르와 오딘 등, 몇몇 성좌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냐?]

오딘이 낮은 목소리로 처용에게 묻자.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의 비밀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말해 볼까요?”

처용이 자신을 노려보는 몇몇 성좌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처용의 말에 시선을 마주한 성좌들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렇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가?]

토르가 복잡한 감정이 실린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동시에.

[올림포스, 비밀을 누설한 것인가?]

오딘이, 아테나와 그녀의 신관 제시카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데미갓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인간들의 주축은 바로 제시카의 가문 로스차일드였으니까.

질책하는 듯한 오딘의 말이 울리자.

[따지고 싶은 건 오히려 저입니다. 아스가르드 주신.]

아테나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나는 저 아이가 내게 진실을 말해주기 전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믿기 힘드시겠지만, 한처용 헌터는 가문의 비밀을 자력으로 알아냈습니다.”

아테나의 말에 이어 제시카 역시 진실을 이야기했다.

[올림포스 주신의 신관이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아버지.]

토르가 제시카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거짓이 아님을 확인하며 오딘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도대체…….]

오딘이 인상을 찌푸리며 짧게 의문을 읊조리고는.

[……그렇군, 예언자가 스스로 네놈을 찾아갔구나.]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처용은 오딘을 포함한 몇몇 성좌들, 데미갓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던 신들의 반응을 살펴보고는.

‘순혈자 놈들이 일부러 신계에 이 정보를 퍼트렸군.’

차가운 눈빛을 띠며 속으로 읊조렸다.

회귀 전, 온갖 방법으로 모략을 일삼던 순혈자들, 그들은 절대로 허술한 자들이 아니었다.

놈들이 신계에 이 정보를 퍼트린 것은 의도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흐흐…….”

처용은 작금의 상황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작은 웃음을 흘려 보였다.

순혈자들이 왜 엘리스에 대한 정보를 신계에 퍼트렸는지 대충 예상은 되었다.

레나, 아니 엘리스는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

그리고 태초의 그릇에 집착을 보이는 이는 바알과 악의 종주만이 아니었다.

데미갓 프로젝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성좌들, 제우스 등이 태초의 그릇에 집착을 보였었다.

지금, 오딘을 포함한 몇몇 신들이 예언자, 즉 엘리스에게 집요함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처용은 작금의 상황을 관찰하며 대충 순혈자들이 어떤 그림을 원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신계에 엘리스에 대한 정보를 퍼트린다.

그로 인해 성운과 성좌들 간에 혼란을 퍼트리고 그들 역시 엘리스를 찾게 만든다.

신계에서 엘리스에 대한 정보나 흔적을 찾아낸다면, 숨어 있는 첩자들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만약, 신계의 신들이 엘리스를 찾아내고 그녀를 잡는다면, 중간에 가로챈다.

순혈자들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하지만.

‘너무 하찮은 수작질이군.’

처용은 순혈자들의 의도에 코웃음을 치고는 어두운 미소를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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