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처용의 대답이 운신전 내부에 울려 퍼진 순간.
[……지금 뭐라고?]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인가?]
성좌들이 처용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비단 성좌들만이 아닌.
“……방금, 역천군주가 뭐라고 한 거야?”
“태초신? 그런 이름을 가진 성좌가 있었나?”
의문을 표하긴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처용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
야훼가 처용의 말에 동요하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그리고.
“태룡사는 차기 태초신의 성지가 될 장소라고 말했습니다.”
처용은 이번에야말로 잘 들으라는 듯.
“태룡전은 차기 태초신의 성역이 될 장소이고.”
다시 한번 또박또박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모든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운신전 내부에 바람 소리와 물소리만이 울리며 무거운 고요함이 흘렀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차기 태초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내, 그 잔잔한 고요함이 와장창 깨지며 경악 어린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태초신(太初神).
이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인 존재이자, 모든 신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
성좌라면, 아니 신격을 가진 이들이라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존재였다.
그런 태초신의 이름이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 자체가 놀랄 만한 일.
그런데, 지금 모두가 모여 있는 이 신비한 성지인 태룡사.
정확히 말하자면, 처용을 지지하는 성좌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고 알려진 이 성지가.
[차기 태초신의 성지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차기 태초신의 성지라는 말에 성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태초신의 ‘대리자’ 자격을 지닌 성좌.
[네 신관이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이냐!?]
야훼가 처용의 건너편을 바라보며 경악과 부정을 담아 소리쳤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한국의 헌터들이 자리한 장소.
[…….]
야훼의 시선을 받은 여래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침묵해 보였다.
비단 야훼만이 아닌, 다른 성좌들의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이 모였지만, 여래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저 아이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근처에 있던 미륵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관리자…… ‘계승자’로 무슨 작당을 벌인 것이냐?]
야훼가 미륵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렇군, ‘대리자’인 네게도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았던 건가?]
미륵이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으며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을 읊조렸다.
그 말에 야훼가 인상을 더욱 찌푸리고는.
[정녕 계승자라고? 어째서 계승자가 인간인 것이냐!?]
-탁!
자리를 박차 일어나며 미륵을 향해 소리쳤다.
-우우웅! 쿠구구!
야훼에게서 위협적인 빛의 신력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오자.
[이곳에서 적대 어린 모습을 드러내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라네.]
-스스스.
미륵이 씨익 미소를 짓고는, 잔잔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신력을 흘리며 말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두 대신이 서로의 기운을 일으키며 마찰을 일으키자.
[두 분 다 멈추십시오.]
아테나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
“…….”
눈을 돌려 처용과 일순간 시선을 마주했다.
처용과 찰나의 순간 시선을 마주한 아테나가 다시 시선을 돌리고는.
[아까부터 저희가 이곳에 모인 이유와 다른 주제가 오가는 것 같습니다.]
작금의 상황을 중재하려는 듯 말했다.
[다른 세계? 차원의 붕괴? 그것 이상의 중요한 문제다!]
야훼가 방해하지 말라는 듯, 거친 목소리로 소리치자.
[……그렇다면, 이렇게 질질 끌 바엔 확실하게 짚고 본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죠.]
아테나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침착한 목소리로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계승자가 무엇입니까? 빛의 신.]
야훼를 바라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지금 야훼가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난리를 치고 미륵과 마찰을 일으키는 이유.
그 이유가 ‘계승자’라는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계승자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상이 처용이라는 것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야, 월드 헌터 토너먼트 당시, 처용의 클래스가 공개되었을 때.
[한처용 / 계승자 / 199레벨]
처용의 클래스가 계승자라고 나타났었으니까.
게다가.
-……혹시나 했건만!
그 당시에도 야훼가, ‘태초신의 대리자’가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야훼는 왜 계승자라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드러내는 것인가?
그것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선, 계승자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아테나의 질문에 다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야훼의 답을 기다리듯 그를 바라봤다.
[……계승자는, 우주를 위해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하는 존재.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야훼가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고는, 계승자에 대해 아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중요한 선택을 하는 존재라…… 그리고 말할 수 없다라…… 그렇군요.]
아테나가 곰곰이 생각하며 읊조리고는.
[우리가 이해하기가 좀 힘들구나. 내 질문에 답해줄 수 있겠느냐?]
작금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
아니, 야훼가 이토록 난리를 치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존재.
계승자라는 존재로 확신하는 이,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테나의 말에 물었다.
마치,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해주겠다는 분위기.
[빛의 신은 너를 ‘계승자’라고 불렀다. 계승자가 무엇이냐?]
아테나는 곧장 처용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 아테나의 질문이 울리자.
[우주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 정녕 저것이 계승자가 맞다 해도, 함부로 말할 수-!]
야훼가 우주의 법칙을 언급하며, 처용 역시 말할 수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계승자는 차기 태초신이 될 자격을 지닌 자, 즉 태초신 후보입니다.”
처용은 아테나의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아테나가 처용의 대답에 두 눈이 가늘어지며 침묵했다.
방금 처용의 말을 깊이 생각하는 듯한 모습.
아테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
[…….]
입을 벌린 채, 소리 없는 경악을 드러내는 성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운신전 내부에 고요하고 짧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게 무슨 소리냐!]
[태초신이 될 자격을 지닌 자라니!?]
[인간이 태초신의 자격을? 그게 무슨 말이냐!]
제 귀를 의심하며 침묵하던 성좌들 경악과 부정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고요한 침묵이 와장창 깨져나가며 다시 큰 소란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우우웅.
처용이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신력을 담아 크게 말했다.
그 말에 장내의 소란이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이후 이어질 말이 무언가 중요하게 느껴졌으니까.
이윽고.
“차기 태초신을 임명할 자격을 지닌 자!”
처용의 말이 이어지자.
[…….]
[…….]
다시 한번 성좌들의 표정이 복잡미묘하게 일그러지며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습니까?”
처용이 자신에게 질문을 건넨 아테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마쳤다.
그러자 다시 한번 장내에 소란이 일어나려는 듯한 분위기가 일렁였다.
그때.
[잠시.]
처용에게 질문을 했던 성좌, 아테나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듯,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눈을 감고는.
[우선, 계승자라는 개념에 대해 정리부터 해야겠구나.]
생각을 마친 후,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계승자는 스스로 태초신이 될 자격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다른 이를 태초신으로 임명할 자격도 지니고 있다. 맞느냐?]
“맞습니다.”
처용이 아테나가 정리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가 그 계승자이고?]
아테나가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 처용에게 묻자.
“그렇습니다.”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음…… 이렇게 말하면 믿으실까요?”
진실을 들었음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아테나의 반응에, 처용이 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늘을 무너뜨리는 자, 멸천(滅天)의 신명을 걸고 방금 한 말은 사실입니다.”
처용의 입에서 자신의 신명을 언급한 진실의 맹세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쿠구구.
짙은 신력이 짧게 진동하듯, 파동을 흩뿌리며 주변에 크게 퍼져 나갔다.
처용의 입에서 신명의 맹세가 흘러나오자.
[신명……? 거짓이 아니다!]
[정녕 저것이 신명을 각성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다시 한번 성좌들에게서 격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인간이 신명을 각성해냈다는 것에 대해 불신하는 모습.
방금 언급한 충격적인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
이 모든 상황에 경악을 드러내는 모습 등, 격한 반응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어떻게…… 무슨 수로! 우주의 비밀을 누설한-!]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성좌.
빛의 신이자 태초신의 대리자, 야훼가 처용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잠시 멈칫하고는.
[……제약이 풀렸군!]
고개를 돌리고 미륵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리자!]
태초신의 대리자, 야훼의 격한 반응과.
[하하, 그걸 이제야 알아챘는가?]
그 모습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
[…….]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며 침묵하고 있는 여래.
그리고 여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처용과 함께 하는 소수의 신격들까지.
성좌들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혼란스럽다는 듯, 어수선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비단 성좌들만이 혼란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게 다 무슨 말들이야?”
“신들만의 비밀? 같은데…….”
“……모르겠다. 이해가 잘 안 된다.”
헌터들도 성좌들처럼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신님, 한처용 헌터의 말이 사실입니까?”
작금의 대화를 쭉 들은 커맨더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질문했다.
태초신은 이 우주를 창조한 최초의 신이자 절대적인 존재.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런 태초신에 의해 마지막으로 태어난 선천적 신격이었다.
커맨더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성좌에게 질문한 것이었다.
태초신에 의해 태어난 선천적 신격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면, 방금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어…… 우주를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하는 자, 나도 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역시, 방금 듣고 지켜본 상황이 충격적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를 비릇한 다른 대신급 성좌들도 모두 당황한 눈치.
성좌와 헌터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으음, 많이 놀라신 것 같군요.”
[놀랄 수 밖에 없지 않느냐?]
여유로운 목소리로 처용이 읊조리듯 말하자, 아테나가 작은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말했다.
언제나 침착하고 차분하게 생각하려는 그녀조차 당황스러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처용은.
“아테나 님.”
진지한 눈빛으로 아테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태초신이 되실 의향이 있습니까?”
처용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뭐?]
아테나가 잠시 멈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지금껏 보이던 침착한 모습이 사라지고 크게 당황한 모습.
아니, 마치 이 상황만큼은 예상하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테나가 처용의 질문에 뭐라고 답하려 하기도 전에.
“올림포스의 주신 아테나를 태초신으로 ‘임명’한다.”
-스륵. 우우웅.
처용이 아테나를 향해 손을 뻗고 신력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자.
-쿠구구.
하늘이, 아니 세계가 옅게 진동하며 무거운 울림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세계를 울리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지금 있는 장소에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우우웅!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이 점점 더 짙어지고 그 신력과 세계를 울리는 기운 역시 짙어졌다.
그리고 처용이 손으로 가리키는 대상, 아테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테나는 우주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눈을 크게 떴다.
그 거대한 존재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자, 잠깐! 멈추거라!]
자리를 박차 일어나 처용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당황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껏 보이던 침착함은 온데간데없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한 모습.
작금의 상황만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테나가 처용을 향해 소리친 순간.
-화아아!
우주에서 모여든 기운이 아테나를 향해 쏟아지며 그녀를 휘감고 지나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