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90화 (490/726)

#490화

처용이 에스라 대륙에서의 일을 대강 마무리하고 든든한 대비책을 갖춰놓은 지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세계 헌터 회의 개최일까지 단 하루가 남은 상황.

이번에 개최되는 세계 헌터 회의 장소는 호주 시드니가 아니었다.

-이번 세계 헌터 회의는 ‘드래곤 시티(Dragon City)’로 결정되었습니다.

태룡시(Dragon City).

처용의 성지, 태룡사 내부에 구축된 도시의 이름이었다.

스미스는 이번에 새롭게 개최되는 세계 헌터 회의 장소로 태룡사를 지목했다.

이는 WHU와 한국 헌터 협회, 즉 처용과 미리 합의가 된 부분이었다.

때문에, 세계 헌터 회의 개최 날 하루 전부터 많은 인사들이 한국에 방문했다.

각 길드의 길드장들과 헌터들, 각 나라 헌터 협회의 대표들이 태룡사에 들어섰다.

그리고.

[하하, 미리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정녕, 우리가 본신으로 지상에 강림할 수 있을 줄이야.]

미리 초대를 받은 각 성운의 대표 성좌들 중 일부가, 하루 전날 태룡사에 강림했다.

소수의 성좌들이 태룡사에 강림하자.

“토르 님, 저와 함께 가시지요.”

“대지의 어머니시여, 제가 모시겠습니다.”

토르의 신관인 루이스, 데메테르의 신관인 스티븐 등, 각 신관들이 자신의 성좌들을 이끌었다.

태룡사에 강림한 성좌들의 안내를 각각 그들의 신관들이 맡은 것이었다.

에덴의 다섯 하늘 중 하나, 정의의 대천사 미카엘처럼 신관이 없는 경우에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정의의 대천사님.”

라리네처럼 각 길드의 길드장, 주신의 신관이 안내를 맡았다.

초대를 받은 성좌들은 인간들과 함께 지상을 다님에도, 특유의 오만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면, 이 성지의 주인에게 즉시 추방되어 버리니까.

게다가, 애초에 사고를 일으킬 만한 성좌는 초대조차도 받지 못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또 그들은 오랜 세월 끝에, 정말 오랜만에 다시 지상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랜 과거와는 다른, 인간들의 달라진 문명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 또한 신선하게 다가왔다.

다시 한번 지상을 밟는 신기한 기분과 더불어, 신관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썩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 역시 처용이 의도한 부분이었다.

신관과 성좌가 그저 주종관계가 아닌, 더 돈독한 관계가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가 생기고 더욱 강해질수록, 성좌와 신관 모두에게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신과 인간, 이종족이 함께 거니는 아름다운 도시라…… 이런 도시가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처용을 따라 태룡사에 도착해 도시를 둘러보던 아나샤가 감탄을 섞어 말했다.

그녀는 요 근래, 평생 해야 할 감탄을 몰아서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신, 처용이 나타나 비참한 운명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도.

에스라 대륙의 절대자들이자 절대 악(惡)이었던 이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인간으로서 신에게 맞서 싸우는 것도.

하늘을 나는 성에 초대받아 새로운 세계의 힘과 기술을 전수받았던 경험도.

이번에 새로운 세계의 문명과 도시를 둘러보는 것까지.

모든 것이 감탄의 연속이었다.

아나샤가 지금껏 있었던 일을 다시금 회상하며 도시를 둘러볼 때.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모두…… 어떤 분이 만들어낸 변화지요.”

태민이 아나샤의 말에 답하듯 말해주었다.

그는 아나샤에게 지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길드들, 성운들 등 각각 어떤 세력들이 있는지와 헌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등.

태민은 지구의 다양한 상식 정보를 간략하고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아라한 왕국이라는 곳도, 비슷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원하는 바입니다.”

아나샤가 태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녀는 오늘 하루, 태룡사라는 아름다운 성지를 구경하고 문명을 경험하며 생각한 바가 있었다.

이 성지가 아라한 왕국이 나아가야 할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

이번 세계 헌터 회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지구의 세력이 에스라 대륙에 당도할 것이다.

그들의 주 목적은 아스터 교단과의 전쟁.

더 나아가 우주를 멸망시키려는 악신들의 세력과의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진다면, 모두가 끝장이기에, 패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나샤는 전쟁에서 이길 생각과 더불어 그 이후도 생각하고 있었다.

처용에게 인정받은 아라한 왕국의 군주로서, 그가 만들어낸 성지와 도시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내일 있을 중요한 일정.

“세계 헌터 회의, 이 세계의 정상들과 신들이 모이는 회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군요.”

아나샤가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곧 개최할 세계 헌터 회의를 언급하자.

“이번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태민이 작은 우려를 표하며 말했다.

세계 헌터 회의가 열릴 때마다, 대형 사고들이 빵빵 터졌었으니까.

심지어 이번 세계 헌터 회의 개최의 주역은 바로 그 당시 파란만장한 사고를 일으켰던 당사자였다.

물론.

“아니, 문제가 있을지언정, 위험한 일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세계 헌터 회의의 주제가 무거운 내용이니만큼, 높은 확률로 여러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태민은 그렇다면 차라리, 천교의 재판 때처럼 위험한 일만큼은 없기를 바랐다.

“그런가요? 저는 오히려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나샤는 태민과는 조금 반대로 생각한다는 듯 말했다.

처용은 에스라 대륙에서도 상상 이상의 놀라움을 보여주었었다.

지구에서도 규격 외라고 평가받는 존재이니만큼, 그간 많은 놀라움을 보여 주었다는 것 역시 전해 들었다.

그랬기에, 내일도, 앞으로도, 이후 있을 미래가 기대되었다.

***

하루가 빠르게 지나고 세계 헌터 회의 당일이 다가왔다.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태룡사에 방문했던 주요 인사들이 한 장소에 모이기 시작했다.

태룡시의 위치는 태룡사의 하단부로 성지 입구와 가까운 남동쪽 인근이었다.

헌터 협회의 위치는 태룡시의 북쪽에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세계 헌터 회의가 개최되는 장소는 태룡사의 서쪽이었다.

-이쪽 길인가?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경치 하나는 정말 끝내주네.

이번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성지의 경치를 구경하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이곳입니다.”

미리 인수인계를 받고 안내를 맡은 WHU 소속 헌터가 앞서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사찰의 입구를 상징하는 건축물, 일주문 네 개가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각각 일주문의 입간판에는, 동(東), 서(西), 남(南), 북(北), 방위를 가리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저희는 서쪽 좌석이니, 서문으로 가시지요.”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 중 하나인 제시카가 네 개의 문 중 한 곳으로 향하며 말했다.

다른 이들 역시 미리 안내받은 조항에 따라 각기 다른 문 안으로 들어섰다.

제시카의 발걸음이 서문을 넘어선 순간.

-우우웅.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빛으로 뒤덮이며 다른 장소로 전이되었다.

눈 앞을 가리던 새하얀 빛이 점점 사라지고 시야가 드러나자.

-화아아!

구름이 걷어지며 새로운 환경이 드러났다.

“여기는……!”

제시카가 주변을 둘러보며 짧고 깊은 감탄을 흘렸다.

전체적인 모습은 호주에 건축된 세계 헌터 회의장과 비슷한 크기와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현대적이고 딱딱했던 세계 헌터 회의장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은은한 햇빛이 푸른 구름 사이로 옅게 비쳐 내려오는 맑은 하늘.

잔잔하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푸른 잎의 나뭇잎들이 무성한 나뭇가지들.

수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 사이로 졸졸 흐르는 수로까지.

거대하고 광활한 스포츠 경기장과 자연 농원의 모습이 적절하게 조화된 모습이었다.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거대하고 신비한 섬과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잠깐만, 여기 하늘 위가 맞지 않습니까!?”

시야와 감각을 넓히며 주변 환경을 감상하던 제시카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하늘 위 구름.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 주변에 은은하게 일렁이는 하얀 안개.

지금 있는 장소는 지상 위에 건축된, 안개에 휩싸인 장소가 아니었다.

주변에 보이는 은은한 안개는 안개가 아닌 구름이었다.

즉, 초대를 받은 이들이 발을 들인 장소는 바로 하늘 위에 떠 있는 장소였다.

“구름 위에 지어졌다고!?”

“성지 안에 지어졌으니, 여기도 성지 비슷한 건가?”

제시카와 같은 각기 다른 문을 통해 들어온 헌터들 역시 비슷한 감탄을 드러냈다.

그때.

“정확히는 세계수의 정상, 그 위에 모여든 구름에 지어진 전각이죠.”

회의장 중앙, 좌석에 앉은 모두가 볼 수 있는 넓은 공터 위에 서 있던 처용이 입을 열었다,

크게 외친 것이 아님에도, 처용의 목소리가 바람과 구름을 타고 전해지듯, 선명하게 울렸다.

“운신전(雲神殿)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세계 헌터 회의장에 들어선 이들은 환영했다.

운신전(雲神殿).

구름 위에 지어진 전각이라는 의미를 지닌 건축물.

태룡사의 성장으로 인해 구축할 수 있었던 새로운 전각.

이곳이 바로 새롭게 세계 회의 장소로 발탁된 장소의 정체였다.

미리 태룡사에 초대를 받은 이들이 운신전 안으로 발을 들일 때.

-화아아!

어제, 태룡사에 강림하지 않았던 다른 성좌들이 빛과 함께 나타났다.

신관과 함께 태룡사에 미리 초대를 받은 이들은 극소수.

지금 강림하는 이들은 세계 헌터 회의 참석을 위해 추가로 강림을 허락받은 이들이었다.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각각 배정받은 구역에 따라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각각 국가와 길드 등 소속에 따라 정해진 구역에 자리하는 모습은 이전과 같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1층과 2층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옆에 있어도 되겠느냐?]

아테나가 제시카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하자.

“……영광입니다. 아테나 님.”

제시카가 잠시 놀란 듯한 분위기를 보이고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성운의 주신과 신관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

비단, 아테나와 제시카만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간, 성좌와 신관의 사이에 믿음이 강해지고 서로 신뢰가 생긴 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몇몇 이들이 미묘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분위기로군.’

마찬가지로 주변의 분위기를 살핀 처용이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아테나와 제시카, 둘은 성좌와 신관 사이의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들이었다.

때문에, 둘이 보여주는 모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성좌와 신관 사이에 신뢰가 생긴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성좌와 인간들이 서로 떨어져 자리한 이들도 있었으니까.

그중 일부는 신관과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성좌들을 보며 작게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처용은, 이 정도만 해도 유의미한 변화라 생각했다.

인간은 ‘신들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회귀 전 성좌들의 인식.

그 인식을 일부나마 바꿔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각각의 자리에 자리했을 때.

“세계 헌터 회의에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WHU 총장, 스미스가 운룡전의 중앙 단상으로 올라와 입을 열었다.

“그럼, 세계 헌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스미스가 세계 헌터 회의의 시작을 선포할 때.

[그 전에.]

교단의 헌터들이 자리한 좌석의 상단.

그곳에서 밝은 빛을 내뿜으며 앉아 있는 성좌, 야훼가 목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무엇이냐? 이 성지는?]

심기가 불편한 듯, 아닌 듯, 미묘한 감정이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

[이곳은 평범한 성지가 아니다. 그 어떤 성운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성지다.]

복잡한 심기가 가득한 야훼의 목소리 속에 일렁이는 가장 강한 감정은 바로 의문이었다.

성좌를 지상에 본신으로 강림시킬 수 있는 성지.

본신으로 강림한 성좌를 즉시 신계로 추방까지 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성지.

야훼가 의문을 품는 부분은 이 외에도 많았지만, 그중 가장 의문인 부분은.

[어째서 지상에, 이 성지에 ‘태초의 힘’이 흐르는가?]

태초신의 대리자 자격을 가진 야훼이기에 느낄 수 있는 힘.

자신도 일부나마 다룰 수 있는 우주의 원초적인 힘.

태초의 힘이 이 성지에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대답해라. 계승자.]

야훼가 처용을 노려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을 요구했다.

그런 야훼의 목소리에 헌터들은 의문을 표했고 성좌들 역시 의문을 표했다.

다만.

[성지에 흐르는 이 강대한 기운은 태초의 힘이었던가?]

[성운의 모두가 힘을 합쳐도 구현할 수 없는 성지인 것이 의문이었거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몇몇 대신급 성좌들이 생각에 잠기며 읊조렸다.

그런 이들의 반응을 본 처용이 작게 미소를 짓고는.

“그야 이곳이…… 차기 태초신의 성지가 될 장소이니까요.”

모두가 잘 들으라는 듯, 또렷한 목소리로 야훼의 말에 답했다.

세계 헌터 회의가 시작도 하기 전에 처용의 입에서 폭탄 같은 말이 터지자.

[……!]

[뭐?]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성좌, 인간 할 것 없이 모두가 의문과 경악을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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