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85화 (485/726)

#485화

-쿠구구! 쿠콰콰!

처용의 자폭과 동시에 일어난 검은 폭풍이 사방을 휩쓸며 거칠게 휘몰아쳤다.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실버 드래곤의 레어, 긴 반구형의 터널 전체가 휩쓸린 정도.

[크아아아! 이 건방진 하계종이-!]

-치이이-!

바로 코앞에서 폭발을 맞이했던 아레스가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 채 뒤로 밀려나며 소리쳤다.

-같은 수법에 세 번 당하는 머저리 새끼.

처용의 싸늘한 목소리에 이변을 느낀 즉시, 신력을 끌어 올려 가까스로 방어했다.

그나마도 온전히 방어하지 못해, 육체 곳곳에 상처가 나며 뒤로 크게 밀려났다.

아마 본신이 아닌 화신체였다면, 작금의 폭발에 휘말려 사라졌으리라.

게다가.

[이 폭발……! 이건 내 신전을 날려 버릴 때-!]

지금 휘몰아치고 있는 재앙과도 같은 검은 폭풍.

이 폭풍은 자신의 신전과 그 주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재앙과 같은 힘이었다.

이윽고.

-쿠화아아……!

터널 전체에 휘몰아치던 검은 폭풍이 멎었고.

-치이이! 치이……!

마치, 검은 석유를 쏟아 벽과 천장에 덕지덕지 발라 낸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닥과 벽, 천장, 넓은 터널 전체가 검은 대지로 변해 버린 것.

[이 간악할 하계종이 쓸데없는 짓을!]

아레스가 들어 올렸던 두 팔을 내리고는 주변을 살피며 소리쳤다.

질척거리는 바닥과 벽에서 올라오는 독기가 느껴졌다.

-치이이……!

본신 상태의 신이 두르고 있는 신력조차도 조금씩 갉아낼 정도로 독한 기운.

검은 대지에서 피어나는 온갖 부정적인 기운들 속에는 ‘신살자’의 기운까지 뒤섞여 있었다.

아레스가 몸에 두른 신력을 더 끌어 올리며 거슬린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이 쓰레기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 저 도마뱀을 잡아!]

레어를 뚫어낸 구멍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샥! 우우웅!

무형의 기운을 두른 세 명의 남자가 나타나더니, 터널 끝을 향해 쇄도해나갔다.

“법칙을 어긴 대가를-!”

“네놈과 네 자식의 육체를 바쳐 사죄해라.”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유르티나와 헤츨링을 목표로 터널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탁.

검은 대지가 딱 끊어진 터널 끝, 유르티나가 있는 공동 입구에 루비아가 나타났다.

“디멘션 필드.”

-탁! 우우웅!

루비아가 오른손에 쥔 스태프로 땅을 찍으며 마나를 흩뿌리자.

-스르르륵.

백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루비아와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뒤덮었다.

“법칙을 거스른 죄인 따위가-!”

“감히 우리의 집행을 방해하다니!”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루비아가 펼친 아공간, 디멘션 필드에 저항하지 못하고 갇히며 소리치자.

“오늘이 네놈들 제삿날이야.”

루비아가 흉흉한 눈빛을 치켜뜨며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지이잉.

루비아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디멘션 필드에 격리되며 사라졌다.

그 순간.

-위이잉! 콰아아아아!!

루비아가 사라진 터널의 끝자락에서 강렬한 은빛이 모이더니, 터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브레스다!]

[막아라!]

-우웅! 쩌저저적!

아레스와 함께 처용을 공격했었던 검은 별들과 조제군이 앞으로 나서며 검은 신력을 내뿜었다.

검은 신력이 서로 뭉쳐 반구형의 방어막을 형성했고.

-쿠구! 콰아아-!

은빛의 드래곤 브레스와 충돌하며 격렬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별들이 유르티나의 브레스를 막아낼 때.

[아르테미스! 뭐 하는 거냐!?]

검은 별들을 도와 브레스를 막아내던 아레스가 뒤를 눈짓하며 소리쳤다.

아르테미스는 온몸이 조각조각 잘려 나갔고 머리가 처용의 손에 들려 있는 상황.

처용에게 처치된 그녀를 부르는 것이 이상했지만.

[당장 저 도마뱀을 처리해!]

아레스는 아르테미스를 독촉하듯 말을 이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이 멍청한 새끼가 그걸 왜 말하는-!]

아레스의 귓가에 아르테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테미스가 처용에게 당한 장소는 아레스의 오른편 가장 뒤에 있는 기둥이었다.

하지만.

-지이이-!

아레스의 왼편 기둥에서 멀쩡한 모습의 아르테미스가 기척을 숨긴 채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화살촉이 가리키는 방향은, 브레스를 내뿜고 있는 실버 드래곤.

드래곤에게 있어 브레스는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이지만, 가장 취약한 순간이기도 했다.

아르테미스는 그 순간을 노려 실버 드래곤을 저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

-피이이!

또다시 귓가에 들려오는 날카로운 쇳소리.

[이-!]

활시위에 집중하던 아르테미스가 침음을 흘렸고 시야에 무수히 많은 검은 선들이 들어왔다.

이윽고.

“암영철사궤.”

-확!

처용이 왼손을 강하게 쥐며 잡아당기자.

-피이이! 피이! 촤라라락!

아르테미스 주변에 솟구친 얇고 날카로운 검은 선들.

미세한 톱날이 세워져 있는 얇은 철사들이 아르테미스를 향해 조여들었다.

이미 검은 선들을 인지하기도 전에 포위당한 상황, 피하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싸가각! 싸각! 푸화악!

다시 한번 아르테미스의 육체가 조각조각 썰려 나가며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이번에야말로 아르테미스가 처치된 듯 보였지만.

[이 개 같은 하계종이 감히 나를 두 번이나!]

-지이잉!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린 아르테미스가 나타나며 처용에게 활을 겨누었다.

그 순간.

-피이이!

다시 한번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아르테미스가 의문과 경악을 다 드러내기도 전에.

-싸가각! 푸확!

재차 아르테미스의 육체가 조각나며 썰려 나갔다.

아르테미스의 확실한 죽음이 세 번 펼쳐졌음에도.

[이-!]

멀쩡한 상태의 아르테미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그녀가 나타난 장소는, 터널의 입구 부근, 찢어진 결계가 있는 장소였다.

무려 세 번이나 적을 확실하게 죽였음에도 다시 멀쩡한 상태로 나타난 상황.

“남매는 남매야, 둘 다 같은 수법에 세 번이나 당하고 말이야. 크크.”

직접 아르테미스를 처치했었던 처용이 예상했다는 듯한 분위기로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파사삭!

왼손에 들려 있던, 가장 처음 처치하고 잡아챘었던 아르테미스의 머리.

어느 세 지푸라기 인형의 머리로 변해 버린 것을 강하게 쥐어 터트렸다.

제니퍼의 스킬 중 하나인 사냥 ‘사냥 군주의 더미’.

그 스킬은 아르테미스가 자신의 권능을 스킬의 형태로 신관인 제니퍼에게 내려준 것이었다.

당연히 아르테미스는 제니퍼가 발휘하는 스킬의 원형인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달그림자 꼭두각시, 본체와 같은 공격력을 지닌 분신인가?”

처용이 아르테미스를 보며 그녀가 가진 권능의 정확한 명칭을 읊조리자.

“감히 내 권능을……!”

아르테미스가 확 일그러진 표정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그녀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작 인간 따위가 자신의 권능에 대해 알고 있다?

자신의 권능을 아는 신이 처용에게 떠벌렸을 가능성은 절대로 없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그 하계종이 감히! 예언으로 내 권능을 떠벌리다니!”

아르테미스가 말하는 하계종은, 바로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를 의미했다.

“신이라는 새끼들이 참으로 우습단 말이야, 예언자한테 휘둘리기나 하고.”

[닥쳐라!]

-스르릉!

처용의 비웃음에 아레스가 칼날을 세우고는.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쐐에에!

분노를 내지르며 처용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결전기 – 팔괘 태극천체진!”

-스릉! 스르릉!

처용은 즉각 결전기를 발동하고 아레스를 향해 열 개의 무구를 쏘아 보냈다.

[그때처럼 당할 것 같으냐!]

-쿠구구!

검붉은 신력을 격렬하게 내뿜는 아레스가 오른손에 쥔 검을 네 번 교차하며 휘두르자.

-까가강! 깡!

처용이 쏘아 보낸 무구들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화신체와는 확연히 다른, 본신의 무력으로 밀고 나가는 모습.

이윽고 아레스가 처용의 앞에 도달해 신력이 휘감긴 칼날을 내리쳤다.

처용은 위에서 내리쳐오는 칼날을 정면으로 막으려 하지 않고.

-스릉! 차캉!

역천의 절을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세우며 아레스의 칼날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키이이-! 콰콰!

신력이 휘감긴 아레스의 힘을 완벽하게 흘리지 못하고 뒤로 크게 밀려났다.

힘과 힘의 격차에서 아레스가 처용을 압도하고 밀어낸 것이었다.

게다가.

-피이이!

뒤로 밀려난 처용에게 은빛의 화살이 쇄도해 왔다.

기회를 노리고 쏘아낸 아르테미스의 저격.

“천마강림.”

-쿠구구! 화아아!

처용이 즉각 천마강림을 사용해 천마의 의지를 불러내자.

-샤아악! 타앙!

천마의 의지가 처용에게 쇄도해 오는 화살을 향해 칼날을 휘둘러 쳐냈다.

그 순간.

[죽어라!]

-샥! 샤샥!

두 명의 검은 별이 검은 신력으로 만들어진 칼날을 세우며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처음 성역에 발을 들였던 검은 별들과 조제군은 유르티나의 공격을 방어하는 상황.

새로 나타난 둘은 입구를 지키던 이들이었다.

“항마의 화신.”

-쿠구구!

처용은 검은 별들의 기습에 당황하지 않고 신력을 끌어 올려 항마의 화신을 불러내었다.

“명환신장!”

-화아아! 쿠구!

빛 속성 마나와 신력이 뭉쳐져 만들어진 신장 네 개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며 검은 별들을 공격했다.

두 검은 별이 밑에서 솟구치는 신장에 칼날을 휘두르며 반격했고.

-차카캉! 치이!

신장과 검은 별들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강렬한 빛 속성과 파마의 신력이 응축된 신장에 닿았음에도 다소 멀쩡한 모습.

본신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만큼, 이전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아니, 오히려 처용이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레스 하나만 해도, 힘으로 처용을 밀어낸 상황.

그와 같이 본신의 위력을 발휘하는 악신들이 다수.

게다가.

[입구를 지키고만 있다간 일을 그르치겠군!]

-화르륵!

검은빛이 일렁이는 새빨간 불꽃을 휘감은 미남자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레스, 아르테미스와 같은, 배신한 제우스의 자식 중 하나인 태양신 아폴론이었다.

[우리는 지금 본신 상태다! 빨리 저 변종을 해치우고 실버 드래곤을 잡아야 한다!]

-화르륵! 지이이!

아폴론이 레어 입구에 발을 들이고는 처용을 향해 불타오르는 화살을 겨누며 소리쳤다.

신들은 시스템의 제약 때문에, 대부분 상황에서 화신체로 강림해 행동한다.

신들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는 그들의 세계인 신계.

혹은 그들만의 영역인 성역에서만 가능했다.

지금 이 장소는 실버 드래곤이 만들어낸 성역.

비록 신들의 성역이 아니기에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순 없지만, 본신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거의 모든 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본신 상태.

이들을 상대하는 처용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화신체 상태의 신들은 손쉽게 처치했지만, 본신 상태의 신들을 상대로는 밀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맞아. 네놈들은 본신 상태지.”

아폴론의 말에 처용이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다급한 감정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중요한 기회를 잡은 듯한 미소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니, 나 역시 네놈들을 ‘소멸’시킬 수 있지.”

-쿠구구!

처용이 신력과 신살자의 힘을 거칠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신들의 화신체가 큰 피해를 입으면, 본신의 신은 조금의 타격을 받기만 할 뿐, 소멸하진 않는다.

반면에, 본신 상태의 신이 큰 피해를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신은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고 소멸한다.

온전한 힘을 발휘하는 본신 상태의 신은 위험하다.

그렇지만, 본신 상태의 신을 죽이기만 한다면, 그 신을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었다.

“오늘 여기서 네놈들 다 죽여 버리고 300레벨 찍는다.”

처용의 입에서 자신감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한 명을 죽이기만 해도 기적이겠군.’

처용이 드러낸 자신감은 진짜 계획을 위한 허세에 불과했다.

자신의 진짜 역할은 그 계획을 위한 시간벌기.

물론, 시간벌기라고 해도, 작금의 상황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다.

항마의 화신까지 사용했음에도,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

하지만.

‘멸천의 신명을 얻지 못했다면, 확실히 위험했겠지.’

작금의 상황에서 확실하게 시간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멸천(滅天).

하늘을 무너뜨리는 자.

스스로 각성해낸 자신만의 신명으로 인해 새로 깨우친 권능이 있었다.

처용은 그 권능의 힘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활용해 볼 생각이었다.

[갈갈이 찢어 주마!]

[죽어라!]

-샥! 샤샥!

아레스와 검은 별이 칼날을 세우며 처용에게 달려들었고.

-화륵! 화아! 지이이-!

아폴론과 아레스가 화살촉에 신력을 휘감아 처용에게 활시위를 겨누었다.

그때.

-쿠구구구!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온 신력과 신살자의 힘이 주변에 넘실거리며 퍼져 나갔다.

동시에.

“비틀어라. 역천(逆天).”

처용이 멸천의 신명 속에 담긴 권능 중 하나를 발동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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