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부탁이라…….”
유르티나의 말에 처용이 잠시 생각하듯 눈을 감으며 읊조리고는.
“헤츨링의 보호입니까?”
눈을 뜨고 유르티나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레사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렇다.”
그 말이 맞다는 듯, 유르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데이베른 장로가 내 레어의 위치를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드래곤을 신들에게 팔아넘긴 용의자로 지목된 그린 드래곤의 장로 데이베른.
그는 유르티나에게 실버 드래곤의 헤츨링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집요함을 드러냈었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 헤츨링을 한 번 데리고 와야 한다든가, 혹은 헤츨링을 보여 달라고 하든가 하는 등.
헤츨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였었다.
물론, 유르티나는 헤츨링의 보호를 명목으로 그 누구의 의견에도 따르지 않았다.
“내 레어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자는 로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당장은 안심이지만…….”
유르티나가 불안한 감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자.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놈은 이미 당신과 헤츨링에 대한 정보를 아스터에게 넘겼을 겁니다. 추적은 이미 시작되었겠죠.”
“드래곤의 레어는 찾는다고 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려 어린 처용의 목소리에 유르티나가 답했다.
유르티나는 에인션트급 드래곤, 신들로 비교하자면 상위 신격을 가진 이들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드래곤이 은밀하게 만들어 낸 보금자리는 쉽게 찾을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신계에 은거하는 상위 신들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구를 배신한 성좌 중 추적과 탐색에 특화된 자들이 있습니다.”
처용은 방심하지 말라는 듯, 유르티나를 향해 경각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지구에서 에인션트급 드래곤이 레어에서 살해된 증거를 찾았었습니다.”
이미 처용은 드래곤이 레어 안에서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다수 찾아냈었다.
루사낙스의 경우 장로 드래곤인 데이베른이 신들에게 위치를 알려 주었다는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구에서 발견된 에인션트급 드래곤의 살해 흔적.
아직도 어떻게 드래곤의 레어가 들통났고 그 안에서 드래곤이 살해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천교가 찾아내 그를 죽였다는 것만이, 그나마 알아낸 정보였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악신들이 레어에 몸을 숨긴 에인션트급 드래곤을 살해했다는 것.
그렇다면, 적들이 충분히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었다.
“루사낙스 님을 살해했던 신들…….”
루비아가 기억났다는 듯, 읊조렸다.
“그래, 놈들이 추적과 탐색에 특화된 놈들이다. 내가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하는 놈들이고.”
처용이 살의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놈들이 지금껏 이곳을 찾았다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겠지.”
“유르티나 님, 내일 이후로 레어의 위치를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루비아가 처용의 말을 듣고는 유르티나를 향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곳 레어가 들통난다면, 아직 어린 헤츨링인 레사나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유르티나가 루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레어의 위치를 옮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레사나의 안전이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레어를 옮길 때, 이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드리죠.”
처용이 레사나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장소가 있으니까.”
태룡전.
차기 태초신의 성역이 될 장소.
헤츨링을 그곳에 보호한다면,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었다.
“내일 미륵님께 작금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다.”
유르티나가 처용에게 감사를 전하며 안도를 드러냈다.
‘이제, 내일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처용이 짧고 옅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읊조렸다.
드래곤에 관한 일은 대강 마무리된 것 같았다.
‘루비아와 유르티나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이 녀석들도…….’
처용이 어린 세 명의 드래곤들을 보며 속으로 읊조릴 때.
‘잠깐만……!’
세 명의 어린 드래곤들을 바라보고는 점점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유르티나 님,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
처용이 불길한 생각을 곱씹으며 유르티나를 향해 물었다.
“헤츨링에게 거는 ‘보호의 징표’는 헤츨링을 벗어나자마자 해제합니까?”
보호의 징표, 혹은 드래고닉 프로택트라 불리는 드래곤의 가호.
드래곤들이 어린 헤츨링들을 보호하기 위해 걸어 놓는 보험 같은 조치였다.
유르티나는 처용이 어떻게 ‘보호의 징표’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보통, 헤츨링을 벗어나 어덜트가 되면, 장로들이 해제해 준다.”
심각한 듯한 분위기를 내며 묻는 처용의 말에 대답부터 해 주었다.
“장로들이 해제해 준다라…….”
처용은 유르티나의 대답을 곱씹으며 생각하고는.
“너희들이 받았던 보호의 징표는? 해제한 건가?”
세 명의 어린 드래곤에게 물었다.
그들은 이제 헤츨링이 아니었다.
어덜트가 되어 독립했기에, 보호의 징표를 해제할 나이었다.
“나는 로드께서 해제해 주시고 독립을 축하해 주셨다.”
골드 드래곤, 비크라가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그는 어덜트 드래곤으로서 인정을 받았고 바하무트가 직접 보호의 징표를 해제해 주었다.
비크라의 대답에 처용이 작은 안도를 표했고 다른 두 드래곤을 응시했다.
두 드래곤 역시 어덜트가 되었기에 보호의 징표가 해제되었음을 기대했지만.
“나는 아직 해제를 받지 못했다.”
“어른들이 할 일이 많다며, 추후 해제해 주겠다고 하셨다.”
레드 드래곤 마티네아와 그린 드래곤 가네리아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녀들의 입에서 아직 보호의 징표를 해제하지 않았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보호의 징표는 어른들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걸어 놓는 조치다. 그게 왜-.”
비크라가 처용이 왜 보호의 징표 여부를 묻는지 궁금해하며 말했다.
그러다가 말을 잠시 끊고는.
“보호의 징표는…… 어른들이 어린 헤츨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는 듯, 목소리를 떨며 말을 이었다.
보호의 징표가 가진 기능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어린 헤츨링의 위치를 어른들이 추적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마티네아와 가네리아는 보호의 징표를 해제하지 않았다.
이 말은, 둘에게 보호의 징표를 건 어른들이 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가네리아의 경우, 그녀는 그린 드래곤.
그런 그녀에게 보호의 징표를 건 드래곤은.
“네게 보호의 징표를 거신 분은…… 데이베른 장로님이다.”
다름 아닌 그린 드래곤의 장로, 데이베른이었다.
목소리를 떨며 말하는 가네리아의 말이 울리자.
“이런, 씨발.”
-탁!
처용이 벌떡 일어서며 욕을 내뱉고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듯 둘러봤다.
“아무리 보호의 징표를 추적할 수 있다 해도, 이곳은 내 레어다.”
유르티나가 심각한 모습을 보이는 처용을 보며 말했다.
아무리 보호의 징표가 추적 기능이 있다고 해도, 지금 일행들이 있는 장소는 유르티나의 레어.
에인션트급 드래곤의 성역이었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장소이니만큼, 단순히 추적한다고 하여 추적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놈들은 ‘추적’이 특기라고.”
처용이 심각한 목소리로 유르티나의 말에 답했다.
아무리 에인션트급 드래곤의 레어라 해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장소는 아니었다.
지구에서 레어 안에 있던 에인션트급 드래곤이 살해된 흔적을 찾았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적들이 보호의 징표라는 ‘추적 장치’의 도움까지 받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니, 추정이 아니라 확신이 들었다.
지금 당장, 이곳의 위치를 놈들이 알아냈을 가능성 또한 높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용이 혹시나? 하며 좋지 않은 가정을 떠올린 순간.
-쿠구구…….
그게 현실이 된 듯, 불길한 진동이 옅게 울려 퍼졌다.
그저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도의 울림이었지만.
“누군가가 내 레어를!?”
유르티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성역을 은밀하게 침범하려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 레어의 주인, 유르티나가 벌떡 일어나며 경악 어린 목소리로 소리치자.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처용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적의 전력은 얼마나 됩니까?”
유르티나를 향해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은 에인션트급 드래곤 유르티나의 레어.
이곳을 침범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녀가 침입자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열이 넘는다. 신으로 보이는 자들과…… 드래곤 슬레이어들도 있는 것 같다.”
유르티나가 눈을 감고는 적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말했다.
“아스터 교단 쪽에 있던 놈들이 온 건가?”
-탁. 탁.
유르티나의 말에 처용이 왼쪽 손목에 착용된 아티팩트를 두 번 두들겼다.
그러자.
-지이잉. 훅. 훅.
보랏빛이 빠르게 점멸하는 것이 보였다.
이곳은 드래곤의 레어 안, 특수한 공간이니만큼,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위치는 추적할 수 없었다.
다만, 놈들이 가까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보랏빛이 빠르게 점멸한다는 것은…… 목표 대상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뜻이었다.
“아주 작정하고 왔군.”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작금의 상황을 정리했다.
신법 재판에 회부된 배신자, 데이베른이 아스터에게 유르티나의 레어 위치 정보를 넘겼다.
지금까지 수색에 애를 먹었지만, 보호의 징표라는 추적 장치를 이용해 유르티나의 레어를 찾아냈다.
아마도 내일이 오기 전에, 유르티나와 헤츨링을 잡아내고 아스터에게 향할 생각인 듯 보였다.
그리고.
‘놈들은 화신체가 아니라 ‘본신’ 상태로 이곳에 침입했다.’
이곳은 신의 성역과 같은 장소.
드래곤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니만큼, 이는 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곳에 잠입하는 신들은 거의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본신’상태라는 것.
이것이 가장 성가신 문제였다.
신들의 화신체를 상대로 이제는 여유롭게 이길 수 있었다.
아니, 화신체를 상대로는 이미 200레벨을 찍기 전부터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세계 헌터 회의에서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때보다 100레벨이나 높아져 300레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보다 더욱 강해졌다 해도, 상대는 ‘본신’ 상태의 신.
처용이 그들을 상대로 얼마나 우위를 점할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상대가 하나뿐이면 몰라도, 다수가 쳐들어오는 상황.
정면 대결을 펼치면, 불리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적들은 본신 상태의 신 다수.
이쪽은 에인션트급 드래곤 하나에 꼬마 드래곤 셋과 루비아 뿐이었다.
게다가 더 곤란한 문제는.
‘스승님과의 연결이…… 단절되었다.’
적들이 이미 이곳을 완전히 고립시킨 상태라는 것이었다.
처용은 이변을 느낀 즉시 태룡전의 신들에게 전음을 보냈었다.
그러나, 아무도 응답이 없었다.
태룡전과의 연결 또한 희미해진 것이 느껴졌다.
여래가 작금의 상황을 눈치챘다면 다행이겠지만, 당장 지원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내 레어 위에 결계를 덧씌웠다. 언제 이런 준비를…….”
유르티나 역시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침음을 흘렸다.
그녀 역시 드래곤 로드에게 위험을 알리려 했었다.
하지만 적들이 펼쳐 놓은 결계로 인해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
“드래곤 사냥 준비를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처용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떻게 해야…….”
유르티나가 어두운 안색을 내비쳤다.
아무리 에인션트급 드래곤이 강하다 해도, 상대는 다수의 신들.
게다가 어린 헤츨링까지 보호해야 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르티나가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을 이을 때.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을 마친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