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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77화 (477/726)

#477화

성지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들이 죽고 소수만이 살아남아 인고독이 되었다.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이자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이끄는 수장.

지젤과 인고독으로 변한 강시들이 충돌한 결과.

“흐아아압!”

-촤아아아!

피투성이가 된 지젤이 대검을 휘둘러 마지막 남은 인고독을 베어 버리고는.

“크허…… 으헉!”

-까강! 탁!

대검을 쥔 손을 놓고 바닥에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몸 여기저기에 검녹색의 가시가 박힌 모습.

날카로운 발톱에 찢긴 듯,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들까지.

강시로 변한 십여 명의 주민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이며 입은 부상이었다.

“이야, 대단한데? 전부 다 처치할 줄은 몰랐어.”

조금 전까지의 싸움을 느긋하게 구경하던 처용이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짓고는.

-탁. 스르릉.

바닥에 굴러떨어진 지젤의 대검.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수장만이 다룰 수 있는 성물을 들어 올렸다.

본래라면 외부인, 사악한 마신 따위가 절대로 손에 쥘 수 없는 신성한 성물이었다.

그러나.

“흐음, 이렇게 다루는 것이군?”

-우우웅!

처용이 대검에 신력을 불어넣자.

-우웅! 우우웅!

목에 걸린 성물, 손에 쥔 대검이 동시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각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성물이 처용의 손아귀에 지배되어 공명을 일으키자.

-스르륵.

처용에게서 옅게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네…… 놈!”

지젤이 몸을 반쯤 일으키며 분노와 경악을 읊조렸다.

사악한 존재가 신성한 우주의 법칙을 손에 넣고 농락하는 듯한 모습에 분노가 차올랐다.

“일족을 지켜야 하는 수장이 제 일족을 베어 버리다니…… 폭군이 따로 없는데? 크크크.”

처용이 분노하는 지젤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흘리며 조롱하듯 말하자.

“이! 전부 네놈이…… 네놈이 벌인……!”

지젤이 처용의 잔혹함에 완전히 질려 버린 듯, 말을 더듬었다.

이제 눈앞의 마신이 뭐라 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하고 사악한 존재로 보였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가 모여 탄생한 재앙신처럼 느껴졌다.

그런 지젤의 심정을 알고 있는 처용은.

“일족을 위해서 네가 희생했어야지.”

지젤을 향해 더 잔혹한 말을 일삼았다.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해 놓고 희생을 강요하는 처용의 말에.

“커헉……! 네놈은…… 네놈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지젤이 온갖 저주를 담은 듯, 울분과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처용이 피식 미소를 짓고는.

“나는 ‘법칙’대로 행동했을 뿐,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가소롭다는 듯, 반쯤 무릎을 꿇고 위태롭게 견디고 있는 지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거 아나? 네놈 역시 인고독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휙! 차라락!

지젤을 향해 검은 고리를 내던지며 말을 이었다.

차륜처럼 회전하며 날아가는 검은 고리가 향한 곳은 지젤의 목.

목에 닿은 검은 고리가 마치 안전고리처럼 반쯤 밀려나며 열리더니.

-차카칵! 딸깍!

죄인을 구속하는 형구처럼 목을 감싸며 잠겼다.

“무, 무슨!”

-철컥! 철크럭!

갑작스럽게 목에 형구가 감기자, 지젤이 당황하며 형구를 손으로 잡았다.

“그건, 네놈들과 손을 잡은 마인들이 만들어낸 물건이다. 대상의 정신을 파괴하여 노예로 만드는 아티팩트지.”

처용이 발버둥 치는 지젤을 향해 목에 걸린 형구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물론, 내가 조금 더 정교하게 손봐두긴 했지만.”

“이! 도대체 무슨 짓을-!”

처용은 형구를 풀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젤을 잠시 바라보고는.

“인고독의 항은 강시로 변한 이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최후의 한 명만을 남기는 금술이다.”

이번엔, 자신이 드래곤 슬레이어 일족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어떤 독을 풀었고 그 독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종국에는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를.

“그리고 네놈이 최후의 한 명이 되었군?”

“내게…… 내게 무슨 짓을?”

지젤이 처용의 말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읊조린 순간.

-스르르륵. 슈화악!

그가 죽인 주민들, 인고독들의 사체에서 녹색의 안개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치이이! 치익!

마치 생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듯, 인고독들의 시체가 미라처럼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그 시체에서 흘러나온 녹색의 안개.

-슈화아아악!

인고독들의 생기와 독기가 담긴 그 안개들이 모두 지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으드득! 스르륵!

녹색의 안개를 빨아들이는 지젤의 육체가 크게 뒤틀리더니, 검녹색으로 변해 갔다.

“무, 무슨!?”

지젤이 변해가는 자기 자신의 몸을 보며 당황을 표했다.

점점 스며들어오는 검녹색의 기운에 저항하려 했지만.

“움직일 수가-!”

육체가 마치, 건전지가 빠져 버린 인형처럼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에 채워진 검은 형구.

그 아래로 전해지는 감각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머리에서 명령을 내려도 육체가 듣지 않았다.

“내가 마인들의 정신 살상기를 좀 특별하게 개조했지.”

처용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지젤을 향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마인들이 만들어낸 정신살상기는 말 그대로 정신을 파괴하는 아티팩트.

그러나 처용은 이 아티팩트의 능력이 반대로 작용하도록 개조했다.

바로, 정신의 파괴가 아닌, ‘보존’이었다.

육체에 무슨 일이 생겨도, 정신만큼은 변질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다.

조금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티팩트가 채워진 목의 윗부분.

머리가 외부의 기운에 감염되거나 변이되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지금부터 말하지 마라.”

처용이 지젤을 향해 명령하듯 말하자.

“……!”

지젤의 입이 딱 닫히며 아무런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입을 들썩이며 어떻게든 저항하는 듯 보였지만.

“……! ……!!”

-으드득! 으득!

안면을 한껏 일그러뜨린 지젤은 입을 열지 못했고 아득바득 이만을 갈아댈 뿐이었다.

“그 잘난 법칙의 힘이 내 신명에 선고를 받고 무너진 이상, 네놈들에게 승산은 없었어.”

처용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싹 지운 채, 차가운 목소리로 지젤을 향해 말했다.

그런 와중에.

-스르르륵!

인고독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녹색의 안개들이 지젤에게 모두 흡수되었다.

얼굴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

그러나 목에 채워진 검은 형구 아래로는 검녹색의 피부를 지닌 기괴한 모습이었다.

“일어나라.”

처용이 지젤을 향해 명령하듯 말하자.

-스윽.

반쯤 무릎을 꿇고 있던 지젤이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지젤이 처용의 명령에 몸을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인고독의 항으로 만들어진 강시는 인고독을 만들어 낸 독의 주인에게 복종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네놈은 내 명령을 받는 충직한 데스나이트가 된 것이다. 정신은 멀쩡한 상태로 말이지?”

“……!”

지젤이 처용의 말을 듣고는 머리를 세차게 부들거리며 떨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아스터 교단 쪽에 있는 것인가? 얼마 안 남았군.”

처용이 손목에 채워진 아티팩트, 마나 레이더가 가리키는 빛을 보며 말하자.

“……!”

지젤이 두 눈을 크게 뜨며 경악과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런 지젤의 반응을 본 처용은.

“명령이다. 이곳에 돌아오는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잡아먹어라.”

차갑게 굳혔던 표정을 다시 미소로 되돌리며 명령을 내렸다.

“뼈까지 꼭꼭 씹어서…….”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잔혹한 명령에.

“……!!”

-으드드득!

지젤의 입에서 뼈가 갈려 부러질 듯한 소음이 울렸다.

***

“대략 끝났군.”

처용이 조금 전까지 있었던 장소,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성지 전경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마치 습격이 있었던 듯, 아직도 군데군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소란스러워야 할 분위기와는 다르게, 성지는 비명 하나 없이 고요했다.

성지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으니까.

“……남은 숫자는 고작 열 마리 정도인가?”

성지의 전경을 잠시 바라보던 처용이 마나 레이더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지잉.

지금 마나 레이더가 가리키는 마나의 선이 매우 흐릿했다.

그만큼 탐색 대상이 적다는 의미였다.

지금 마나 레이더가 가리키는 그 소수의 대상들.

그들이 바로 드래곤 슬레이어 일족 최후의 생존자들이었다.

그마저도, 아직 살아남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오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드래곤들 만큼이나 폐쇄적인 이들.

때문에, 각 마을끼리도 서로 신속한 연락이 되지 않았었다.

게다가 처용이 발 빠르게 움직여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섬멸한 것도 영향이 컸다.

처용은 모든 마을을 섬멸한 다음, 마지막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성지로 향했었다.

모든 마을이 잔혹하게 섬멸되었음에도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덕분에,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성지 역시 마을과 같은 방법으로 독을 퍼트리고 섬멸할 수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파멸.

단 하루 만에 은밀하고 강대한 세력 중 하나가 거의 멸절했다.

남은 이들이라고 해 봐야 손에 꼽는 정도.

그들마저도 성지로 돌아오는 순간, 인고독으로 개조되어 버린 지젤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였다.

처용이 굳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젤을 개조한 이유.

지젤이 자신의 손으로 그나마 살아남은 일족을 직접 하나하나 죽이며 고통스러워하도록.

그의 손으로 자신의 남은 일족을 모조리 멸종시키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도록…….

[아주 그냥 사탄이 따로 없구나.]

처용이 벌인 일들을 하나하나 지켜본 미륵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놈들에게 자비라도 베풀어야 했습니까?’

처용이 날 선 목소리로 미륵의 말에 대답하며 되물었다.

그 말에.

[저들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미륵이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용이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이토록 잔혹하게 몰살시킨 이유.

그들의 수장인 지젤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린 이유.

[네가 저들에게 무슨 꼴을 당했는지 나도 알고 있지 않느냐?]

미륵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금 상기하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용이 전해 주었던 회귀 전, 과거의 기억.

그 기억 속에는 처용의 절망과 절규가 담겨 있었다.

동시에,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향한 잔혹한 복수심과 들끓는 살의가깔려 있었다.

악에 맞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호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처용.

그 당시 굳건한 마음과 신념을 가졌던 수호신.

그런 수호신의 굳건한 마음가짐에 균열이 가고 악의가 들어차게 된 계기 중 하나.

-하하하! 법칙을 거스른 죄인에게 걸맞은 최후로다!

처용과 신수의 계약을 맺었던 드래곤이 드래곤 슬레이어들에게 살해당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드래곤이 본 드래곤이 되어 적으로 돌변했다.

그 당시 지젤은 그 본 드래곤을 종처럼 부리며 처용을 조롱했었다.

더 고통스러운 사실은…… 그것이 약과에 불과했다는 것.

“……이 정도에 그친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자비로웠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미륵의 말에 답했다.

지젤에게 선고한 잔혹한 형벌은, 그가 회귀 전 저질렀던 일을 똑같이 갚아주었던 것에 불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잔혹하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었지만.

“아직, 청소해야 할 쓰레기는 많습니다. 여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죠.”

아직, 복수해야 할 대상은 많았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에게 내린 형벌처럼 그들에게도 형벌을 내려야 했다.

그것이 ‘멸천’의 신명을 각성한 자, 하늘을 무너뜨리는 자가 해야 할 사명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정리한 처용이 마나 레이더의 작동을 껐다.

그리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팔괘축기가 포화 상태에 이릅니다.]

[선인의 육체가 팔괘축기의 두 번째 층을 생성합니다.]

육체에 차오르는 새로운 힘을 느끼며 바로 옆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레벨이 올랐다는 문구.

에스라 대륙에 도달하고 나서는 숱할 정도로 봤었던 문구였다.

지금껏 천사와 신격들을 포함한 숱한 적들과 거친 싸움을 했었으니까.

당연히 처용은 그런 적들과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를 거머쥐었고 그 결과.

[레벨 : 267]

이젠 200레벨 중반을 넘어서 300레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이 이제 갓 200레벨을 돌파할 시기에 비하면 경이로울 정도의 속도였다.

사실, 레벨은 다른 것들에 비해 중요도가 조금 떨어졌다.

앞으로 있을 숱한 싸움을 겪고 헤쳐 나갈수록, 레벨은 계속 오를 테니까.

레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선인의 육체에 저장된 팔괘축기의 크기가 더욱 넓어집니다.]

[팔괘축기의 두 번째 층이 생성됩니다.]

[팔괘축기의 중심에 환원(還元)의 심(心)이 추가됩니다.]

방금 성장한 팔괘축기와 같은 새로운 힘과 권능이었다.

팔괘축기는 포확으로 흡수한 힘을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다른 곳에 이식할 수 있는 힘이었다.

지금까지 처용이 포확으로 흡수한 힘의 종류는 많았다.

검은 별들이 다루는 검은 흉터.

에스라 성운의 천사들이 다루는 빛의 힘.

아레스의 권능, 피의 샘에서 강탈해낸 생명력.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리네의 권능인 고립의 힘.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지닌 법칙의 힘 등.

다양한 종류의 힘들을 흡수했고 이를 팔괘축기 안에 저장했었다.

다만, 저장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은 총 여덟 가지이기에 그 수용량이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런 찰나 레벨이 오르고 처용이 성장하며 팔괘축기 또한 성장했다.

본래 여덟 가지 힘을 저장할 수 있는 팔괘 하나만이 존재했던 팔괘축기.

그런 팔괘가 하나 더 생성되어 총 열여섯 가지의 힘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하게 팔괘축기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팔괘로 만들어진 탑이 점차 쌓아 올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환원(還元)의 심(心)]

[포확으로 온전히 다 흡수하지 못한 일부 잔여 에너지를 저장합니다.]

[저장된 에너지를 경험치로 환원하여 활용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경험이 부여 가능.

팔괘축기, 팔괘의 탑 중심에 생긴 기둥.

환원(還元)의 심(心)이라는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었다.

그 능력은 다름 아닌 경험치의 저장, 팔괘축기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초라한 듯 보였지만.

“……이게 보험이 될 수 있겠군.”

처용은 환원의 심이 가진 능력을 확인한 순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 능력을 어디에,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하면 좋을지 단번에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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