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74화 (474/726)

#474화

마지막으로 남았었던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장로가 최후를 맞이하자.

[절대적인 법칙이…… 무너졌다고?]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비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드래곤 로드조차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이 우주의 법칙이었다.

아니, 이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인 존재.

태초신이 만든 법칙은, 이 우주에서 태어난 이는 절대로 거스를 수 없었다.

그 누구라 해도…….

그런데 그런 절대적인 법칙이.

-나 멸천의 신이! 우주의 법칙에 선언하노라!

신에 닿은 한 인간에게 무너졌다.

[인간, 아니…… 정체가 뭐냐?]

비크라가 처용에게 수많은 의문과 혼란스러움이 일렁이는 질문을 던졌다.

그 말에.

“신격에 닿은 인간, 역천군주, 마신, 이단자, 이제는 재앙신이라고도 불리네.”

-탁. 탁.

작은 미소를 보인 처용이 발밑에 떨어진 드래곤 슬레이어 장로의 목을 칼끝으로 탁탁 두들기며 답했다.

“이렇게 보니 나를 지칭하는 말이 너무 많군.”

“워낙 화려하게 날뛰었으니까.”

연아가 처용의 말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단 연아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아의 말에 소리 없이 수긍했다.

지금껏 처용이 저지른 일들은 하나하나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일들이었으니까.

“흠, 그보다도…… 우리에게 알려준 수련법이 ‘신을 죽이는 방법’일 줄이야. 참나.”

처용에 대해 생각하던 백호가 조금 전, 처용이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신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뿐이야.

무슨 짓을 한 것이냐는 드래곤 슬레이어 장로의 말에 처용이 답했던 말.

그 말이 울렸을 때, 딱히 겉으로 표하지는 않았었지만, 헌터들 모두가 속으로 흠칫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본 결과, 조금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뭐라 딱 집어 설명하기에는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지만, 뭔가 마음속으로 수긍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권백호 헌터, 저를 만났을 때, 제게 했었던 말 기억하십니까?”

처용이 백호의 말에 과거를 묻자.

“……악신을 죽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봤었지.”

백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번뜩 떠오른 듯, 진지한 눈빛으로 처용의 말에 답했다.

동시에.

“그렇군…… 알 것 같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생각에 잠기며 읊조렸다.

“예시는 제가 직접, 여러 번, 충분히 보여 드렸었죠.”

“세계 헌터 회의 때라던가.”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이번엔 커맨더가 과거 있었던 대사건을 떠올리며 말했다.

세계에서 최초로 인간이 신을 무력으로 때려눕힌 사건.

처용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신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날이었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난 신화경의 경지에 닿기만 한 반쪽짜리라서 신명이 없는데?

그 당시 처용은 신명이 없었다.

에덴의 대천사들과 싸울 때는 ‘마나’를 위주로 사용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들이 사용하는 스킬과 전투술로…… 신을 때려눕힌 것이었다.

수련자의 의지와 마음으로 단련된 마나는, 신의 권능에도 능히 맞설 수 있다.

처용이 직접 보여준 진실이자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은, 그 가능성을 몸소 체험했다.

“자네가 가진 그 신살자의 힘은, 이 강기를 극한으로 수련한 결과 중 하나였어.”

-파지지직!

생각에 잠겼던 백호가 오른손에 강기를 모아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백호의 말이 울리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방금 그 느낌대로라면……!”

헌터들 중 몇몇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서로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방금 전, 절대적인 신의 힘에 정면으로 맞서 본 이들.

그런 헌터들 중 몇몇은 진호나 백호처럼 강기의 경지 초입에 든 이들도 있었다.

이미 강기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짧게나마 만들어낼 수 있는 강기를 더 견고하게 단련하는 경험이 되었고.

“의지를 담은 마나가 신의 권능에 저항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가능하다!”

이제 벽을 앞두고 있던 헌터들은 강기의 경지로 확실하게 나아갈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 할 놈들이 저런 괴물들이란 말이지?”

진호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경각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름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였어.”

신관을 제외한 지구의 헌터들 중 가장 강한 헌터.

월드 헌터 토너먼트 우승자이자 A급 헌터 1위.

지구에서 ‘강자’로 손꼽히는 진호가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 평가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호는 스스로가 정말로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다.

동료들과 함께 대악마와 맞서 싸울 수 있고 스스로의 힘으로 대악마에게 치명상까지 입힐 수 있었다.

이젠 그 어떤 적을 마주하더라도 능히 싸울 자신이 있었다.

조금 전, ‘법칙’이라는 괴상한 힘을 다루는 놈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대악마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자신이,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에 짓눌렸었다.

어떻게든 의지를 다지며 그 힘을 뿌리치고 일어났지만, 즉시 벗어나지는 못했었다.

그 틈을 노린 적들이 치명상을 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만약, 다른 동료들이 없고 자신 혼자 그 적들과 맞선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진호는 진지하게 판단했다.

그렇다면, 같은 위기가 두 번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더 정진해야겠어.”

더욱 노력하고 더욱 수련하여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백호가 진호의 말에 수긍했고 다른 헌터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였던 거야?”

커맨더가 돌연 궁금한 듯,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을 응시하며 처용에게 물었다.

겉으로 볼 때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압박을 가해오던 적들이었다.

드래곤조차도 꼼짝 못 하던, ‘법칙’이라 불리는 알 수 없는 힘.

커맨더는 그런 법칙의 힘을 다루는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태초신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똥 덩어리입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발밑에서 굴러다니는 시체를 혐오스러운 눈길로 노려보며 답했다.

“태초신?”

“네, 이 우주를 창조한 놈, 모든 신들을 창조한 자라고 해야 할까요?”

커맨더의 의문에 처용이 적개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태초신이 드래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이들입니다.”

처용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어떤 존재인지, 태초신이 왜 그들을 탄생시켰는지 이야기했다.

세계의 균형과 평화를 위해 창조된 강력한 신수, 드래곤.

그런 드래곤들이 함부로 제힘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제어하는 존재들이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다루는 ‘법칙’의 힘은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만 다룰 수 있었다.

바로 드래곤이 중립의 법칙을 어기고 마룡이 되었을 경우.

그런 일이나 조짐이 발생하면,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동시에, ‘법칙’을 이행할 이들을 선별하여, 중립의 법칙을 저버린 드래곤을 처단한다.

태초신이 드래곤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감찰자들.

그것이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존재 의의였다.

세계를 관리할 능력을 가진 강력한 신수들.

그런 신수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이들.

언뜻 보면 괜찮은 시스템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 머저리 같은 태초신은 자기 자식들은 믿으면서 드래곤은 믿지 않은 겁니다.”

처용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을 탄생시킨 태초신을 맹렬히 비난하며 말을 이었다.

태초신이 믿은 그의 자식들은 다름 아닌, 아스터와 같은 신들을 의미했다.

제 자식과 같은 창조물, 신들은 신뢰하고 그들을 어여삐 여긴다.

반면에 우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창조물들.

신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에겐 제약을 두었다.

드래곤들에겐 드래곤 슬레이어를.

인간들에게는 신들에게 함부로 맞설 수 없는 족쇄를 걸었다.

이 모든 건, 제 자식들인 신들을 위한 태초신의 편애였다.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드는 생각인데, 태초신은 아주 좆 같은 새끼입니다.”

처용의 입에서 태초신을 겨냥한 거침없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태초신을 좋게 보려고 해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태초신이 잘한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제 자식만 예뻐하고 감싸는 편파적인 절대자.

그 외에는 규칙과 법칙을 강요하며 세계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도록 강요하는 이기주의자.

이것이 처용이 판단한 태초신이었다.

처용의 입에서 태초신을 향한 거친 욕설이 울려 퍼지자, 드래곤과 헌터들이 복잡한 표정을 내비쳤다.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를 욕하는 처용의 말에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

“하아!”

한바탕 태초신을 향한 맹비난을 토해낸 처용이 한숨을 내쉬고는.

“너, 성역으로 가는 문은 내일 열어라.”

골드 드래곤, 비크라를 향해 말했다.

[아, 안 그래도 말하려 했다.]

비크라가 처용의 말에 답하듯 이야기했다.

그는 오늘 드래곤의 성역으로 가는 문을 열려 했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방해를 받았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다루는 법칙의 힘이 비크라를 짓눌렀고 그 결과.

[성역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중간에 닫혀 버렸다.]

비크라가 준비하던 성역으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만들던 작업이 중간에 취소되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다루는 ‘법칙’에 지속적인 압박까지 받아 지치기까지 했다.

지금 상태로는, 성역과 연결되는 게이트를 다시 열기가 어려웠다.

“둘이 이 꼬마들 좀 하루만 돌봐 줘.”

처용이 그런 비크라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동시에, 연화와 연아에게 드래곤들을 하루만 돌봐달라 말했다.

“너는 어쩌게?”

연아가 처용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오늘 드래곤들이 거주하는 성역으로 가는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으니까.

“아까 내가 말한 약속을 지키러 가 봐야지.”

처용이 연아의 말에 왼쪽 손목에 착용된 아티팩트를 응시하며 말했다.

마나 레이더라 불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작품.

그리고.

[데이터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방금 처용의 눈앞에서 시스템 창이 떠올랐었다.

처용이 데이터 분석을 끝냈다는 시스템의 문구를 확인하자.

‘놈들이 이 사태를 눈치채기 전에…… 끝낸다!’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그리고.

“분리수거 좀 하고 온다.”

진지한 목소리로 연아의 물음에 답하듯 말하고는.

-탁. 탁. 지이잉.

왼쪽 손목에 착용된 아티팩트, 마나 레이더를 두 번 두들겼다.

아티팩트에서 얉은 선이 나타나 어딘가를 가리킨 순간.

-파지직!

처용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에스라 대륙의 북서쪽, 빼곡한 숲이 우거진 오지라고도 할 수 있는 장소.

-파지직!

그곳에 숲의 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처용이 나타났다.

“……찾았다.”

마나 레이더가 가리킨 방향을 쫓아 온 처용이 앞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처용의 시야가 닿은 곳, 저 먼 곳에는.

-……스르르.

나무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숲 한가운데 형성된 작은 마을이 보였다.

외진 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듯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

-스륵.

처용이 동화경을 유지한 채, 마을에 가까이 접근하자.

-이번에 사냥을 나간…….

-곧 오시겠지.

-만찬을 준비해야겠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우물에서 물을 긷는 아낙.

잘 정돈된 통나무를 옮기는 남자.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있는 중년 여성.

투박한 목검을 들고 칼싸움 흉내를 내며 노는 아이들까지.

눈으로 구경할 때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유사 마나 추적 활성화,”

-탁.

처용이 왼손에 장착된 아티팩트를 한 번 두드리며 명령하듯 말하자.

[분석된 대상과 혈연관계인 마나를 추적합니다.]

[분석된 대상과 유사한 패턴을 지닌 마나를 추적합니다.]

아티팩트에서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스르륵. 스륵.

여러 갈래로 갈라진 빛줄기가 흘러나왔다.

그 빛줄기의 대부분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평화로운 마을.

정확히 말하자면, 마을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처용이 그 광경을 확인한 순간.

“크, 크흐흐…….”

-지잉.

눈이 붉게 물들며 살기가 찐득하게 일렁이는 잔혹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팔괘독마진(八卦毒魔陣).”

-스륵. 우우웅.

평소, 잘 사용하지 않았던 독류부를 소환하여 팔괘의 진법을 만들어 내었다.

처용이 만들어낸 보랏빛 팔괘의 진법은 총 두 개.

-우웅. 스르륵. 스륵.

독류부로 만들어낸 진법 중 하나는 땅으로, 다른 하나는 하늘로 향하며 사라졌다.

땅과 하늘에서 마주 보는 두 개의 진법이 은밀히 이동하여 마을 중심에 자리했다.

그리고.

“내가 독마(毒魔)의 기술을 사용하는 날이 올 줄이야.”

처용이 실소를 흘리며 읊조리고는.

“녹혈독마신공(綠血毒魔神功) – 무형지독(無形至毒).”

-샥. 주륵. 뚝. 뚝…….

손바닥에 상처를 내어 지면에 피를 뿌린 후,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치이이…… 스르륵.

바닥에 뿌려진 피가 옅은 녹색의 안개로 기화하며 일부는 땅으로, 일부는 하늘로 스며들었다.

녹색의 안개가 향한 곳은 땅과 하늘에 모습을 숨긴 팔괘의 진법.

두 개의 진법이 그 안개를 흡수한 순간.

“금술(禁術) - 인고독(人蠱毒)의 항(缸).”

무림 세계에서 절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무공.

사용하는 순간, 죽을 때까지 온 무림의 공적으로 낙인찍히는 금지된 기술.

무림공적(武林公敵).

독마라 불리는 자의 무공 중, 가장 잔인하고 잔혹하다 알려진 금술을 사용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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