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아라한 왕국의 국경선 성문 앞.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세 마리의 어린 드래곤이 나타난 장소.
처용은 그 장소에 어린 드래곤들을 다시 이끌고 나왔고.
“시작해.”
명령하듯 말을 이었다.
이 장소에 어린 드래곤들을 이끌고 나온 이유 중 하나.
“여기서 성역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
바로 드래곤들의 성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처용의 말을 들은 드래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으…….”
“이거 정말 위험한 짓이야. 비크라.”
어린 드래곤들에게 일렁이는 감정은 다름 아닌 공포.
그것도 처용이나 미륵을 대상으로 한 공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어린 레드 드래곤, 마티네아와 어린 그린 드래곤, 가네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그 말에.
“미안해, 이런 일이 휘말리게 만들어서.”
비크라가 자신을 따라온 두 드래곤에게 사과하듯 입을 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둘은 곧장 성역으로 도망쳐, 내가…… 내가 남아서 협상을 해 볼게.”
협상을 해 보겠다는 비크라의 말에.
“네가 로드의 직계라 해도 죽을 거야!”
“법칙이 내리는 심판을 피한 드래곤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마티네아와 가네리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
세 명의 꼬마들이 심각하게 떠드는 모습을 바라본 처용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만이 아니라 너희들도-!”
비크라가 그런 처용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인간들 역시 다 죽을 수도 있어.”
진지한 목소리로 주변에 모여든 이들을 둘러보며 말하는 비크라.
지금 이 장소에는 처용과 드래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제 그 드래곤들이죠? 저렇게 보니까 귀엽네.”
“쟤들이 위험하다고 말하는데요?”
“뭘 하려는 거지?”
처용과 드래곤들을 보며 쑥덕이는 이들은 다름 아닌 헌터들.
그들은 처용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구경하기 위해 모였고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인 드래곤들과는 다른 여유 있는 가벼운 분위기.
반면에.
“저들 말이 맞아, 정말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
루비아는 드래곤들이 보이는 심각한 분위기가 공감되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들이 공포심을 보이는 법칙.
루비아 역시 그 법칙이 무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루비아의 반응에.
“나는 분명히 말했다.”
처용이 루비아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멸천의 신명을 걸고, 그 ‘법칙’을 멸종시켜 버리겠다고.”
“…….”
루비아가 처용의 낮은 목소리에 침묵해 보였다.
방금 처용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싸늘한 감정.
강렬한 증오와 분노를 가진 이가 복수의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낸 듯한 싸늘함.
그 감정은 다름 아닌, 잔혹한 살심(殺心)이었다.
어째서 처용이 드래곤들을 제약하는 법칙을 알고 있고 왜 그 법칙에 분노를 보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신명을 건 이상, 그 법칙은 이 우주에서 사라진다.”
루비아와 드래곤들은 신명을 걸고 맹세하는 처용의 말에 뭐라 더 반박하듯 입을 열지 못했다.
“도대체 드래곤들을 죽이는 법칙이 뭔데?”
작금의 상황을 구경하던 연아가 처용에게 다가와 물었다.
비단 연아만이 아닌, 연화, 커맨더 등 다른 이들도 모두 궁금한 듯한 눈빛.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
처용은 연아의 말에 읊조리듯 답하고는.
“저들의 말대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경고를 담아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렇게 말하니까. 더 확인해보고 싶은데?”
진호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커맨더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다.
처용의 경고에도 물러서거나 도망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보시죠. 그렇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겁니다만…….”
헌터들의 자신감 어린 태도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고는.
“이제 시작해라, 너희 셋 모두 다칠 일은 결코 없다. 내 약속하지.”
세 명의 드래곤, 그중 가운데 있는 비크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말이 끝난 순간.
[믿어라.]
-쿠구!
처용에게서 입에서 미륵의 짧고 간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륵의 목소리와 동시에 잿빛 신력의 파동이 주변에 퍼지자.
“으으…….”
기세에 눌려 움츠러든 비크라가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화아아아!
전신에 금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스스스.
황금빛에 휩싸인 비크라가 점점 부풀며 크기가 커져 갔고.
-쿵!
처음 마주했을 당시의 모습, 거대한 황금빛 드래곤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화아!
옆에 있던 두 드래곤도 빛을 내뿜으며 폴리모프를 해제하려 할 때.
[나 혼자 할 거다.]
비크라가 두 드래곤을 향해 만류하듯 말했다.
그 말에, 두 드래곤이 폴리모프를 해제하려는 것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바하무트의 이름을 받은 드래곤의 자격으로-.]
-우우웅.
비크라가 드래곤 오러를 끌어 올리며 읊조렸다.
드래곤의 성역으로 가는 문을 만들기 위한 준비였다.
그때.
[이, 인간……!]
비크라가 사색에 잠긴 목소리로 처용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공포심이 일렁이는 목소리.
“나도 알고 있다.”
처용은 비크라의 반응에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놈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와 있었어.”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관찰하던 처용이 말을 이었다.
주변에는 헌터들을 포함한 안면이 익숙한 이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곳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제, 너희들이 여기에 나타난 순간부터, 놈들은 이곳에 있었다.”
드래곤들이 아라한 왕국에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
처용의 신경을 거스르는 미세한 기척이 드러났었다.
그 기척은 처용이 드래곤들을 태룡전에 보낸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었다.
모습도 보이지 않고 주변에 감지되는 것은 없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즉시, 너희들부터 도망쳐라.]
-우우웅!
비크라가 아직 폴리모프를 해제하지 않은 두 드래곤을 향해 말하며 드래곤 포스를 끌어 올렸다.
서둘러 성역으로 향하는 문을 만들어내고 대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쿠구구구!
비크라가 드래곤 포스를 끌어올린 순간, 무형의 기운이 비크라를 짓눌렀다.
[크으……!]
-쿵!
돌연, 들이닥쳐 오는 무형의 기운에 비크라가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최강의 신수라 불리우는 드래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상위 격인 골드 드래곤.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바하무트의 이름을 지닌 골드 드래곤이 맥없이 고꾸라졌다.
비단 비크라 뿐만 아니라.
“으으……!”
“윽!”
폴리모프 상태인 두 드래곤 역시 바닥에 주저앉으며 공포 서린 침음을 흘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이변에 헌터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어허.”
-스륵. 저벅.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누군가가 걸어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길을 가다 흔히 볼 법한 외모인, 평범한 복장의 나이 든 중년 남성.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벌써 마룡(魔龍)이 되려 하는 것인가?”
중년의 남성이 웃는 듯한 실눈을 살짝 뜨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드래곤 슬레이어!]
무형의 기운에 짓눌린 비크라가 중년 남성을 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나는 중립의 법칙을 어긴 게 아니다! 지상의 이변을 확인하러 왔었다!]
“허허, 이미 마룡이 되어버린 것이 틀림없군.”
비크라의 말에 중년 남성, 드래곤 슬레이어라 불린 존재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법칙의 힘이 내 의지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게 무슨 의미지?”
[나, 나도 어쩔 수 없었단 말이다!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드래곤 슬레이어의 말에 비크라가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내가 마룡이 된 네놈을, 아니 네놈들을 처치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비크라의 사정 따윈 궁금하지 않다는 듯, 그의 말을 자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크흐흐, 세 마리라…… 간만에 마을이 풍족해지겠군.”
드래곤들을 바라보며 탐욕 어린 미소를 흘려 보였다.
“……적이다.”
“전투 준비.”
-스륵. 샤샥!
드래곤들을 죽인다는 중년 남자의 말에 헌터들이 기세를 끌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점점 다가오는 중년 남성을 저지하기 위해, 드래곤을 지키듯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법칙의 집행을 방해하다니, 어리석은 인간들이군.”
-쿠구구구!
드래곤 슬레이어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결과.
“크윽!?”
“스킬? 벗어날 수가……!”
드래곤들을 지키려던 헌터들 모두가 무형의 기운에 짓눌리며 침음을 흘렸다.
강력한 구속 계열 스킬에 걸린 듯,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바닥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과연 마신과 함께 이 세계로 침략한 사악한 이들이도다. 법칙의 힘을 견디다니.”
드래곤 슬레이어가 무형의 기운을 견디는 헌터들을 보고는 차가운 눈빛을 띠며 말했다.
“법칙을 거스르는 이단자들을 처리하고 아스터 교단에게 대가를 받는 것도 좋겠군.”
-스륵.
실눈이 휘어질 정도로 탐욕 어린 미소를 흘린 드래곤 슬레이어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 순간.
-촤아! 촤아아!
그런 그의 좌·우로 물줄기가 휘감기듯 나타나더니.
“아스터 교단의 편이라면-.”
“조각조각 찢어 버려야지!”
-우우웅!
짙은 청색의 신성력을 피워내는 연화와 연아가 나타났다.
-샤악! 스가각!
연화는 신성력이 휘감긴 환도로 목을 내리쳤고 연아는 물줄기 칼날을 뭉쳐 만들어낸 손톱을 아래에서 위로 후려쳤다.
A급 몬스터라 해도 단번에 찢어버릴 수 있는 기습 공격.
그러나.
-까가강! 파아……!
연화의 칼날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목을 지나갔고 연아의 손톱은 물줄기가 되며 흩어졌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듯,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
“크흐흐, 가장 위대하신 창조신께서 만드신 법칙이…… 우리를 보호한다!”
-쿵!
미소를 흘린 드래곤 슬레이어가 발을 강하게 밟자.
-파아아!
무형의 기운이 퍼지며 연화와 연아를 뒤로 밀어내었다.
동시에.
“전부 나와라, 법칙을 집행할 시간이다.”
중년 남자, 드래곤 슬레이어가 말하자.
-샥! 저벅. 저벅.
그 명령을 받고 움직인 듯, 다섯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전부, 앞서 나타난 중년 남자처럼 허름한 옷에 단순한 형태의 철검과 도끼를 쥔 이들.
가장 먼저.
-샤악!
양산형 철검을 쥔 남자가 연화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연화가 환도를 치켜들며 남자의 철검에 맞섰다.
연화의 환도는 해전무신이 직접 건네주었던 그의 신물.
거기에 강력한 파도의 신성력까지 일렁이고 있어, 단순한 철검으로는 절대로 맞설 수 없었다.
그러나.
-차카캉! 우웅!
남자, 드래곤 슬레이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기운이 연화의 신성력에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연아에게 달려든, 철검을 쥔 다른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어!”
-촤아! 촤아아!
철검을 들고 덤벼드는 남자를 향해 연아가 물줄기 칼날을 후려치며 공격했지만.
-차아아……!
몬스터도 단번에 갈라 버리는 물줄기 칼날이 남자의 육체에 닿자, 흩어져 버렸다.
물론 남자의 공격도 팬텀인 연화에게 유효한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짜증 나네!?”
연아가 눈앞에서 달려드는 남자를 상대하며 짜증을 토로했다.
상대가 강한 건 아니었다.
칼을 휘두르는 솜씨나 움직임이 너무나도 단순했으니까.
하지만.
-화아아!
남자를 휘감는 무형의 기운, 그 정체불명의 기운이 적을 보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무형의 기운은 주변 사람들을 짓누르기까지 하고 있는 상황.
신성력을 휘감으면 그 알 수 없는 기운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게 고작이었다.
연화와 연아가 답답한 전투를 시작할 때.
“법칙을 집행해라.”
중년 남자가 명령하듯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그러자.
-샥!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 명 중, 두 명이 드래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다이너마이트 킥!”
-파지직! 쐐에에!
전신에 청록빛 신성력을 휘감은 커맨더가 다가오는 두 남자를 향해 돌려차기를 하며 나타났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뇌전과 화염이 휩싸인 발차기가 두 남자가 앞으로 뻗은 칼과 충돌하자.
-콰콰콰!
격렬한 폭발이 일어나며 커맨더와 두 드래곤 슬레이어가 서로 물러섰다.
동시에.
-콰드드득! 콰득!
뒤로 밀려난 두 남자의 발밑에서 검은 나무뿌리가 솟구쳐 둘을 휘감았다.
나무뿌리를 만들어낸 이는 다름 아닌.
“저도 도울게요!”
-우우웅!
검녹색의 기운을 스멀스멀 피워내며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있는 에블린이었다.
-우드드!
이대로 에블린이 만들어낸 검은 나무뿌리가 두 드래곤 슬레이어를 휘감아 으스러뜨리나 싶었지만.
-우득! 우드드드-!
두 남자가 자신을 휘감은 나무뿌리를 힘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흡수가…… 불가능해요.”
그 모습을 본 에블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적들을 보호하는 무형의 기운은 검은 나무뿌리로도 흡수가 불가능했다.
두 드래곤 슬레이어가 구속을 풀고 커맨더와 에블린이 전투 태세를 갖출 때.
“강한 의지가 깃든 마나는…….”
-우우웅!
무형의 기운에 짓눌려 있던 진호가 전신에 강기를 피워올리며 읊조렸다.
“신의 권능에도…… 능히 저항할 수 있다!”
-우우웅! 파아아!
진호가 강기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고 강한 의지를 담아 소리치며 퍼트리자.
-화아아……!
그를 짓누르던 무형의 기운이 흩어졌다.
강기(罡氣)의 경지.
마나 자체에 자신의 ‘의지(意志)’를 담아내기 시작하는 경지였다.
그리고.
-굳건한 마음과 의지가 담긴 마나는, 신성력은 물론 신의 권능에도 능히 맞설 수 있습니다.
처용이 헌터들을 가르치며 했었던 말 중 하나.
진호는 처용이 알려주었던 가르침을 떠올리고 강기에 강한 의지를 담았다.
적들이 사용하는 법칙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겨우 저딴 놈들한테, 짓눌릴 정도로…… 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신이 다루는 강기에 더욱 강한 의지를 실어 내뿜자, 적들이 펼친 무형의 기운에 저항할 수 있었다.
진호가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펼친 법칙의 힘에서 벗어난 순간.
“하압!”
-파지지직! 파아……!
백호 역시 기합을 지르며 구속에서 벗어났다.
가장 강한 둘을 시작으로.
-화아!
-파아아!
현아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 역시 하나둘, 구속에서 빠져나왔다.
“감히, 신성한 법칙을 거스르려는 어리석은 놈들이…….”
그 모습을 본 중년의 남성, 드래곤 슬레이어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때.
“네놈들의 잘난 법칙 놀이는 끝났어.”
-저벅.
뒤에서 작금의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처용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신, 아무리 네놈이라 해도, 이 절대적인 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중년 남자가 처용을 노려보며 경계심을 드러내고는.
“찰스, 법칙을 집행해라.”
이내, 미소를 지으며 뒤에 있던 덩치가 큰 남자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 말에.
“우워워!”
-쿠구구!
찰스라 불린 남자가 무형의 기운을 내뿜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윽고.
-스릉! 탓!
등 뒤에 맨 대검을 치켜들고는 처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들은 절대적인 법칙의 보호를 받고 있다.
드래곤 로드라 해도, 신들이라 해도, 이 법칙의 힘을 거스를 순 없었다.
제아무리 마신이라 불리는 흉악한 존재라 해도, 이 법칙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보이는 자신감이었다.
처용은 달려드는 남자를 보며 눈빛을 차갑게 빛내고는.
‘검성류 – 오의.’
-스릉.
역천의 절을 두 손으로 쥐고 강기를 끌어 올렸다.
본래 주로 사용하는 검성의 검술 중 최강이라 불리는 기술은 다름 아닌 단절(斷切).
검에 강렬한 강기를 휘감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간결하게 적을 베어 버리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지금 역천의 절에 둘러진 강기는 이전처럼 타오르며 넘실거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스르륵.
이전과는 반대로 잔잔한 물결처럼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죽어라!”
-스릉! 후우욱!
대검을 쥔 드래곤 슬레이어가 처용의 지척에 다가오며 대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심검(心劍) – 단절(斷切).”
-사악. 탓.
처용이 역천의 절을 위에서 아래로, 가볍고 느긋한 속도로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차! 카캉! 촤아악!
대검을 쥐며 돌진한 드래곤 슬레이어와 처용이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한 모습.
“으워워!”
-후우웅!
드래곤 슬레이어가 뒤로 돌고는 대검을 치켜들며 처용의 등 뒤를 공격하려 했다.
반면에.
-스르릉.
처용은 역천의 절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전투를 포기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알 수 없는 행동.
그러나.
-스릉. 철컥.
역천의 절이 칼집에 완전히 들어간 순간.
-탁.
처용에게 달려들던 드래곤 슬레이어가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피이-!
머리, 정수리에서부터 땅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얇고 하얀 선이 생겨났다.
“자, 자, 장로님…….”
처용에게 달려든 드래곤 슬레이어가 눈동자를 떨며 마지막 말을 읊조린 순간.
-쩌적! 푸화아아아!
그가 반으로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주변에 피를 흩뿌렸다.
“……찰스?”
그 모습을 본 중년의 드래곤 슬레이어.
방금 죽은 이에게 장로라 불린 이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믿기지 않는 듯, 경악을 읊조렸다.
“네놈들을 지켜주던 그 잘난 법칙 말인데…….”
드래곤 슬레이어를 반으로 갈라 버린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고는.
“그게 절대적인 줄 알았나 봐? 크흐흐.”
살기가 가득 담긴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