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71화 (471/726)

#471화

‘지금 드래곤들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처용은 결론을 내리듯, 속으로 읊조렸다.

회귀 전, 드래곤들에게 본격적으로 협력을 얻었을 때는 에스라 성운이 본색을 드러냈을 시기.

사실 따지고 보면, 회귀 전 동료였던 이들 모두, 배신자들이 본색을 드러냈을 때 인연이 이어졌던 이들이었다.

에스퍼라 불렸던 능력자들, 청이를 포함한 룬티르 일족의 생존자들.

온갖 비극을 겪고 겨우 살아남은 대마도사 루비아와 강철의 여제 아나샤.

소수의 드래곤들과 엘프, 드워프, 오크 등 이종족들 등.

이들 모두가 배신자들의 농간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한데 뭉쳐 저항군에 합류한 이들이었다.

비단 에스라 대륙뿐만이 아니라, 지구, 무림 등 다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통칭 저항군.

악의 종주가 불러오는 종말에 맞서 싸우는 이들.

그들은 모두 배신과 비극을 겪고 살아남은 각 세계의 패잔병들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처용이 아무리 회귀 전 기억,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각각 저항군에 합류했던 이들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이 각각 어떤 아픔과 시련을 겪었는지 모두 알지는 못했다.

때문에.

‘지금 드래곤들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처용은 지금 드래곤들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어째서 우린 저런 잔학무도한 신들을 신뢰했던 것인가?

회귀 전, 친분이 있었던 드래곤들이 알려준 정보와 그간 있었던 일들을 통해 유추하고 예측할 뿐이었다.

지금 드래곤들의 사정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그래야 더 완벽한 대책을 세우고 적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처용이 작금의 상황, 드래곤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마신! 네가 동쪽의 마신이었구나!]

가장 먼저 제압되었던 골드 드래곤이 옅은 진동음을 토해내며 말했다.

입이 사슬로 묶여 있었지만, 드래곤은 입이 아닌, 신수의 기운이 서린 사념을 방출하는 형태로 의사를 전한다.

골드 드래곤이 입을 열자.

[이 대륙을 난장판으로 만든 게……!]

[우릴 어쩔 셈이야!]

다른 두 드래곤 역시 적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흐음…… 그러게, 너희들을 어쩌면 좋을까?”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답했다.

본래 계획대로 가자면, 이 어린 드래곤들을 설득해 드래곤의 성역으로 가야 했다.

가서 드래곤 로드를 마주하고 작금 드래곤들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무력 진압을 당한 어린 드래곤들이 처용에게 협력해줄 리가 없었다.

“흐음…….”

처용은 어린 드래곤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셋 다, 내게 보내거라.]

이 상황을 지켜보던 미륵이 처용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전투를 연달아 치렀으니, 이만 정비할 시간을 갖거라, 저 아이들은 내가 ‘교육’하겠다.]

‘딱히 지친 것은 아닙니다만…… 미륵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안심이군요.’

처용은 미륵의 전음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만날 분에게 버릇없이 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눈앞에 있는 어린 드래곤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드래곤들이 처용의 말에 뭐라 답하기도 전에.

-우우웅. 획! 휘릭!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로 게이트를 열고 구속된 드래곤들을 붙잡아 게이트 속으로 집어 던졌다.

-슈르륵! 슈륵! 파아……!

황금빛 게이트가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들을 빨아들이고는 이내 사라졌다.

“자, 해결! 우리는 하던 뒷정리나 마저 합시다.”

-탁. 탁.

처용이 잘 해결되었다는 듯, 손을 털며 헌터들을 향해 말하자.

“미륵님께 보낸 거지?”

방금의 상황을 지켜본 연아가 처용에게 물었다.

“어, 직접 교육한다고 하시더라고?”

처용이 연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하. 문제는 없겠네.”

연아가 처용의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천적 신격인 미륵은 무려 태초신을 도와 드래곤 창조에 이바지한 신격.

그가 직접 드래곤들을 맡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경우는 결코 없었다.

“무슨 소리야? 무슨 상황인데?”

작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루비아가 처용과 연아를 향해 물었다.

그런 루비아의 물음에.

“뭐긴, 어린 드래곤들이 참된 교육을 오지게 받고 온다는 소리지.”

연아가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아라한 왕궁이 몬스터 웨이브를 이겨낸 다음 날.

“흠…….”

왕궁 2층에 자리한 처용이 바로 맞은편에 앉은 아이들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대략 열두 살,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쯤으로 보이는 세 명의 소년 소녀들.

다만, 어린 인간이라기에는 이질적인 모습이 있었다.

목덜미와 팔 부근에 돋아난 비늘과 머리 위에 돋아난 상아 뿔.

등 뒤에 접혀 있는 드래곤의 날개.

처용의 맞은편에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은 다름 아닌 드래곤들.

어제, 아라한 왕궁으로 찾아왔던 세 마리의 드래곤이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Polymorph)한 모습이었다.

드래곤들은 처용에게 적대감을 보이던 어제의 모습과는 달리.

“…….”

“…….”

“…….”

다소 고분고분해진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이름.”

처용이 앞에 있는 세 명의 아이들, 아니 어린 드래곤들을 보며 말하자.

“마, 마티네아.”

레드 드래곤,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와.

“가네리아…….”

그린 드래곤, 녹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비크라 바하무트.”

소녀들 사이에 앉은, 황금빛이 반짝이는 금발 머리의 소년이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골드 드래곤이라서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드래곤 로드의 직계였을 줄이야.”

마지막 금발 머리 소년의 이름을 들은 처용이 작은 놀람을 드러내며 말했다.

바하무트는 드래곤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드래곤들이 바하무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드래곤, 바하무트의 이름을 수여 받을 자격.

그 자격의 첫 번째 조건은, 드래곤 로드의 핏줄을 이은 골드 드래곤이어야 한다가 조건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네 친척이나 사촌 되는 녀석이었나?”

처용이 바로 옆에 앉은 루비아를 보며 말했다.

루비아 역시 바하무트의 이름을 받은 존재.

그녀의 부친 루시우스 역시 바하무트의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루스우스의 부친이자, 루비아의 조부라 할 수 있는 드래곤.

그 드래곤 역시 드래곤 로드와 가까운 바하무트의 직계였다.

각 드래곤들의 가계도(家系圖)가 어떻게 되는지는 자세히 몰랐으나, 대략 이 정도로 유추되었다.

“법칙을 거스르고 태어난 존재와 같은 취급을 하지 마라.”

처용의 말에 어린 골드 드래곤, 비크라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루비아는 온전한 드래곤이라 할 수 없는 존재.

그럼에도 바하무트의 이름을 짊어진 존재.

아주 복잡한 개인사를 가진 만큼, 드래곤들에게도 복잡하게 취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큭, 태초신이 만든 그 개 같은 우주의 법칙 따위……!”

처용은 드래곤의 면전에 대고 그들이 지키려 하는 우주의 법칙을 비웃었다.

그 법칙을 창조한 태초신까지 싸잡아 비웃은 상황.

드래곤이라면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으…….”

비크라는 물론 옆에 있는 두 어린 드래곤도 처용에게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분노를 드러낼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저 불편한 기색만 내비칠 뿐, 어제처럼 처용에게 적대 어린 모습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세 명이 동시에 덤빈다 해도, 처용을 이길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새파랗게 어린 아해들아. 지금부터 좋은 말로 할 때, 잘 새겨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불과 조금 전까지 마주했었던 신격.

관철의 대신이라 불리는 존재 때문에 더더욱 적의를 드러낼 수 없었다.

미륵에게서 처용이 어떤 존재인지도 반강제적으로 들었었다.

지금 드래곤들은 반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태초신을 비웃었던 처용이 주제를 바꾸듯 말을 이었다.

“저 위에 있는 꼴통 새끼들이 내가 이 세계를 망친다고 지랄했다며?”

처용이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키며 어린 드래곤들에게 물었다.

현재 드래곤들이 알고 있는 정보.

아니, 에스라 성운이 드래곤들에게 알린 유언비어가 있었다.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고 태어난 인간이 마신이 되어 이 세계를 부수고 있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이 세계를 부수려는 이들은 에스라 성운이고 처용은 그것을 막기 위해 날뛰었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하지만 에스라 성운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짓까지 모두 처용에게 덮어씌웠다.

“우, 우리도 그렇게 들었다.”

“어른들이 말했었으니까.”

어린 레드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

마티네아와 가네리아가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그리고.

“에스라 성운의 신들이…… 이 세계를 부수려 한다는 게 진짜인가?”

골드 드래곤, 비크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처용에게 물었다.

관철의 대신이라 불리는 드높은 존재에게서 들은 진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달랐으니까.

“너희들 입장에서 믿기지 않겠지만, 그게 진실이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어째서 이 세계를 지켜야 할 신들이…….”

확신이 가득한 처용의 말에 비크라가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처용은.

“용기사 루시우스, 알고 있지?”

고뇌하는 어린 골드 드래곤, 비크라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처용의 질문은 그저 용기사를 알고 있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지금 용기사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비크라 역시 그런 처용의 질문이 담은 뜻을 알아채고는.

“알고…… 있다.”

“…….”

루비아를 눈짓하며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옆에 있는 두 드래곤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죽어서 신들의 장난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와 눈빛을 보이며 질문을 이었다.

그 말에, 비크라가 기세에 눌린 듯, 움츠러들더니.

“알고 있었다기보단……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처용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에스라 성운의 신들과 일부 드래곤들이 만났을 때, 비크라는 그 현장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에스라 성운에 봉사하는 형벌을 받은 용기사 또한 목격했었다.

드래곤으로써 지켜야 할 중립의 법칙과 우주의 질서를 어긴 대가로 받은 형벌.

용기사는 에스라 성운을 위해 봉사, 아니 노역 중이었다.

그러나.

-좀 이상한데?

멀리서 봤었던 용기사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또한 전과는 달랐다.

이상한 기분을 느낀 비크라는 호기심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 보려 했지만.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어른 드래곤들에 의해 저지당해 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아주 가끔 용기사를 멀리서 몇 번 봤었지만.

“세 번째로 녀석을 봤었을 때…… 그가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사의 눈빛과 안색에 생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비늘 또한 탁하게 변했고 그에게서 은은하게 느껴지던 기운도 변질된 것이 느껴졌다.

마치, 죽음을 거스르고 태어난 불길한 존재.

생전,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간이 악념과 어둠에 사로잡혀 부활한 언데드.

데스나이트와 리치 같은 고위 언데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에스라 성운과에 협상 자리에 있던 어른 드래곤들.

그들 중 누구도 용기사에 대해 의문을 표하지 않았기에, 비크라는 가만히 있었다.

비크라의 증언이 끝나자.

“……!”

-으드득!

루비아가 두 주먹을 거세게 쥐며 소리 없는 분노를 드러냈다.

그런 루비아의 모습을 본 세 마리의 드래곤들이 조심스럽게 서로를 눈짓했다.

“아예 정이 없는 꼬마들은 아니었군.”

처용이 드래곤들의 반응을 지켜보고는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자.

“우리를 무시하지 마라. 인간.”

비크라가 작게 인상을 쓰며 답했다.

드래곤들은 살아 있는 ‘오점’인 루비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친의 죽음에 분노하는 이를 앞에 두고 불편한 감정을 우선시할 만큼 안하무인은 아니었다.

적어도 비크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렇다 치지만, 다른 드래곤들도 과연 그럴까?”

처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용기사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었는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구경만 한 놈들이 있지.”

“…….”

비크라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다.

에스라 성운 신들과의 협상 자리에 있던 어른 드래곤들.

그들이라면 용기사가 무슨 꼴을 당하고 있었는지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용기사를 생각하며 추가로 든 생각.

용기사의 부친, 바하무트의 이름을 지닌 로드의 직계 골드 드래곤.

그 역시 용기사처럼 노역의 형별을 받고 에스라 성운에 붙잡혀 갔었다.

용기사가 죽었다면, 그 골드 드래곤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비크라가 소리 없이 복잡한 감정을 내비치며 침묵하자.

“너희들이 나와 루비아를 드래곤의 성역으로 안내해 줘야겠다.”

처용이 드래곤들에게 본론을 이야기했다.

눈앞의 어린 드래곤들의 안내를 받아 드래곤들의 성역에 방문한다.

세계 헌터 회의가 있기 전에 드래곤들의 문제를 직접 확인하고 가능하면 해결한다.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러나.

“타, 타인을 함부로 성역에 들이려 하면…….”

처용에게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던 비크라가 목소리를 떨며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드래곤들을 제약하는 ‘우주의 법칙’ 때문인가?”

비크라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비크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태어나는 드래곤.

그들은 지상의 절대자로 보였지만, 드래곤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도록 제약하는 우주의 법칙이 있었다.

드래곤들이 지상의 일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이유도 그 제약 때문이었다.

그 제약을 무시하고 지상에서 드래곤이 활개를 친다면.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드래곤은 죽는다.

비크라가 굳은 표정으로 두려움을 담아 말하자.

“멸천(滅天)의 신명을 걸고 내가 약속 하나 하지.”

처용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자각한 자신만의 신명인 멸천.

처용은 그 신명을 걸고 한 가지를 약속했다.

아니.

“드래곤들을 제약하는 그 우주의 법칙, 내가 모조리 ‘멸종’시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행할 징벌이자 맹세를 언급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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