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69화 (469/726)

#469화

아스터 제국의 수도 중앙에 위치한 대신전.

황궁보다도 더 중요한 장소인 대신전에는 신관과 대주교들에게 허락받지 못한 자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그 대상이 황족이라 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신성한 장소.

그리고 대신전 내부에는 가장 높은 직책인 신관조차 허락을 받지 않으면 발을 들이지 못하는 장소가 있었다.

바로 대신전 지하 최하층이었다.

“신관 베드라입니다.”

-탁.

미리 허락을 받고 지하에 발을 들인 베드라가 지하 계단 끝에 보이는 철문에 손을 대며 말했다.

-우우웅.

철문에 댄 손에서 붉은 신성력이 타오르듯 문에 스며들자.

-끼이이이-끼이잉!

육중한 철문이 거친 소음을 내며 좌·우로 열렸다.

-저벅.

베드라가 열린 철문 안, 짙은 어둠이 깔린 장소에 발을 들이자.

-화아아!

방금까지 마주했었던 칠흑 같은 어둠이 확 걷어지고 환한 빛이 퍼지며 주변을 밝혔다.

동시에 정면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아스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스터 동상 바로 옆에는 참회의 여신과 회개의 여신 동상.

그 주변으로 각각 직위가 높은 신들과 천사들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원형의 동공 외곽에 자리한 신들의 조각상과 그 뒤, 벽에 새겨진 벽화들.

그리고 아스터 동상 바로 앞에는 하얀 융단이 깔린 네모난 제단이 있었다.

베드라가 아스터 동상 앞, 제단 앞에 다가가 발걸음을 멈춰서자.

-화아아아!

아스터 동상에서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안개가 모여 뭉쳐 든 곳은 바로 제단 위.

-스르륵. 또각.

이윽고 안개 속에서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관 베드라, 성녀님을 뵙습니다.”

베드라가 라사벨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사벨이 베드라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조차 하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한처용을 돕는 외신이 저희의 계획에 개입했습니다. 기껏 준비했던 일들이-.”

베드라는 라사벨이 무엇을 묻는지 단번에 알아채고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단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격은 신들이 신들과 마탑의 힘을 합쳐 작정하고 벌인 일.

마신, 처용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홀로 해결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이단국을 없애 버리고 가능하면 마신도 처리한다.

동시에, 자연의 힘이 강한 인간, 카란디아와 다른 재능 있는 인간들을 잡아들인다.

마신과 함께 이 세계로 넘어온 이들, 카란디아를 돕는 이들도 상당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

성녀, 라사벨은 마신이 동쪽의 이단국을 보호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렸다.

그들을 모두 잡아 앞으로의 계획에 활용한다.

이것이 이번 계획이었다.

성공하면, 이단국을 없애고 마신도 처치하는 것에 이어, 상당히 쓸만한 실험체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린 결과, 단 한 마리도 잡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손해만 입고 말았다.

“그 간악한 이단자를 죽이기엔 불가능했습니까?”

사후 보고를 끝낸 베드라가 라사벨에게 물었다.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은 다른 신관들보다도 강한 존재였다.

에스라 성운의 모든 신들이 축복하여 탄생한 존재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그간의 제물들 덕분에 성녀가 더 강해지기까지 했다.

신들만이 다룰 수 있는 권능의 힘을 깨우친 성녀라면, 마신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이단자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라사벨이 작게 인상을 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신들께서 마신을 변종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더군요.”

“놈은 마신이 아닙니다. 그런 간악한 이단자가 신이라니요.”

베드라가 성녀의 말에 표정을 굳히며 분노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신이라 불리는 처용의 진짜 정체는 혈선이라 불리는 사악한 신을 모시는 신관.

베드라는 아무리 그가 신력을 깨우쳤다 해도, 감히 신이라 칭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용은 그 칭호에 걸맞게 인간답지 않은 무력과 잔혹함을 가진 존재.

그로 인해 아스터 교단은 그간 막대한 손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주변에서 그런 처용을 마신이라 표현할 때마다 베드라는 절로 인상이 일그러트렸다.

그 감정이, 신관조차도 언사를 조심해야 하는 성녀 앞에서도 튀어나오는 상황.

“단순히 분노하고 그의 힘을 외면한다 해서 해결되는 건 없습니다. 참회의 신관.”

라사벨은 그런 베드라를 향해 질책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조곤조곤 말하는 라사벨의 목소리에도 베드라와 같은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불과 조금 전, 처용을 마주했을 때.

-무능한 아스터를 곱게 갈아서…….

-아스터는 내가 본 신격들 중 제일가는…….

그는 절대로 내뱉어서는 안 되는 말들을 계속 언급하며 신성모독을 저질렀다.

“……그 이단자를 막아야 합니다.”

처용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린 라사벨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라사벨은 본인이 직접 처용과 그의 세력을 마주한 결과, 판단을 내렸다.

“외세의 힘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자를 처단해야 합니다.”

처용과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을 척살해야 한다.

그들이 지닌, 분수에 맞지 않은 힘을 회수하고 신과 세계를 위해 사용해야 옳았다.

이 세계와 신들을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것이 아스터 교단의 성녀이자, 위대한 빛과 지혜를 섬기는 자로서 내린 판단이었다.

“곧, 위대하신 분들을 돕는 이들께서 이 세계에 도달하신다고 합니다.”

베드라가 라사벨을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곧, 아스터 교단을 돕는 외세의 군대가 이 세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을 맞이하고 이 세계를 더럽히는 침략자들을 몰아내라.

하메라가 신관인 베드라에게 직접 전한 말이었다.

“그들이 도달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겠군요.”

라사벨이 베드라의 말에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리고.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할 제물, ‘강력한 빛의 힘을 가진 생명체’는 아직인가요?”

신관들만 알고 있는 최우선 목표에 대해 언급했다.

대주교들조차도 모르는, 라사벨과 신의 신관들만이 알고 은밀하게 수색 중인 목표물.

“그 이단자에게 복속된 망국의 왕녀가 제일 유력합니다만…… 그 외에는 찾질 못했습니다.”

베드라가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라사벨의 말에 답했다.

그가 말하는 망국의 왕녀는 다름 아닌 룬테라 왕국의 마지막 왕족, 카란디아였다.

“그 외에 지상에서는 더 찾질 못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더 없다면…… 그 위에서 찾아야겠군요.”

베드라의 보고를 들은 라사벨이 생각에 잠기며 읊조렸다.

지상에 없다면 그 위에서 찾아야 한다.

언뜻,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듯한 소리였지만.

“참회의 여신님께 드래곤 사냥이 어찌 진행되었는지 조심스럽게 여쭙겠습니다.”

베드라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쉽진 않지만, 신들께서 ‘실버 드래곤’의 레어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실버 드래곤, 강력한 빛의 힘을 지닌 드래곤, 저를 위한, 빛과 지혜를 위한 제물로 딱 좋군요.”

라사벨이 베드라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반달로 휘어진 붉은 눈과 속눈썹은 아주 짙은 기대감이 일렁이는 듯 보였다.

“잘 만 된다면, 나 또한 더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미소를 지은 라사벨이 자신의 팔과 어깨를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간 모은 제물 덕분에, 완전함에 가까워져 성지 밖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했다.

보다 완성에 다가가기 위해선, 강력한 빛의 힘을 가진 생명체를 손에 넣어야 했다.

라사벨은 자신이 완벽한 존재가 된다면, 그 간악한 마신에게서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선, 마신의 행방을 주의하면서 지원군을 맞이할 준비부터 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하신 신들을 위해.”

베드라가 라사벨의 말에 답하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순간.

-콰아아! 콰콰쾅!!

고막을 강하게 후려치는 듯한 굉음이 거세게 울려 퍼졌다.

“이, 이게 무슨!?”

갑작스럽게 들려온 강력한 굉음과 울림에 베드라가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

라사벨 역시 인상을 찌푸리고 흔들리는 천장 위를 응시했다.

지금 베드라와 라사벨이 있는 장소는 대신전의 가장 깊은 지하.

깊은 땅속에 있음에도 뇌를 흔들 정도의 굉음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지상에서는 얼마나 큰 소음이 울렸단 말인가?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라사벨이 읊조리듯 말하고는 눈을 감으며 집중했다.

성녀인 그녀는 눈을 감고 집중하면, 대신전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스르륵.

그녀의 눈에 대신전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린 듯 보이는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끝이 날카로운 형태의 긴 원통형의 무언가.

‘저게…… 뭐야?’

라사벨이 눈에 보이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보며 의문을 읊조렸다.

아스터 제국 수도는 에스라 성운의 신들이 선포한 신성한 성지.

성지이니만큼, 이 도시는 신들의 기운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수도 전체를 신들이 펼친 신성한 기운이 원형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알 수 없는 물체가.

-키이이이!

강렬한 힘을 뿜어대며 원형의 보호막을 뚫어 내고 있었다.

-쩌저적! 쩌적!

무언가 조치를 취할 생각도 하기 전에, 신들이 펼친 신성한 보호막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쩌적! 파창! 창!

신들이 펼친 보호막이 깨지며 긴 물체의 머리 부분이 보호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우웅! 화아아!

보호막 안으로 침투한 물체에서 강렬한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안-!’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든 라사벨이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친 순간.

-삐!!

강렬한 빛과 화염이 아스터 제국 수도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그 직후.

-쿠콰콰콰콰!!

바로 옆에서 거대한 화산이 터진 듯, 강렬한 진동과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주변의 온도가 확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 아아, 아.”

눈을 감고 대신전 주변을 지켜보던 라사벨이 떨리는 목소리를 토했다.

“무슨 일입니까? 성녀님!”

거칠게 흔들리는 지하 공동에서 자세를 바로잡은 베드라가 라사벨에게 물었다.

항상 침착하고 근엄한 모습을 보였던 성녀가 당혹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

성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물었지만,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떨리는 목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제길, 밖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베드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지하 신전을 나가 위로 향하는 계단으로 달려 나갔다.

“아, 아니야. 이게…… 이게 도대체.”

라사벨은 베드라에게 신경조차도 쓰지 못한 듯, 계속해서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콰아아! 푸화아아!

마치, 지옥이 지상에 현현한 듯, 잿빛의 화염 폭풍이 주변을 파괴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으아아!

-막-!

-시, 신이시여……!

강렬한 화염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사람들과 건물들이 보였다.

그나마 신들의 가호가 짙은 대신전과 황궁 등에 사람들이 모여 저항하는 듯 보였지만.

-콰아아!

-쿠콰콰!

잿빛 화염 폭풍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다.

신들이 펼친 가호가 옅어지고 화염의 열기가 보호막 내부로 침투해, 사람에게 닿은 순간.

-크아!

-커-!

화염에 노출된 사람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갑작스럽게 아스터 제국 수도에 닥친 대재앙.

“아아…….”

그 모습을 보며 침음을 흘리던 라사벨은.

“마신…… 마신!”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존재를 떠올리며 분노를 읊조렸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아스터 제국의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만한 존재.

아니,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사악한 존재.

그럴 만한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 죗값은…… 천년 간 노역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라사벨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을 뜨며 분노를 읊조렸다.

***

같은 시간, 아라한 왕국 국경선 성벽.

-쿠콰콰콰!

“캬~ 장관이네.”

처용이 지평선 너머로 솟구치는 붉은 버섯 모양의 화염과 검은 흙먼지를 보며 감탄을 내질렀다.

뉴 클리어(Nu Clear).

헌터들의 결전기 중 ‘최강’이라 불리는 커맨더의 결전기.

처용은 아스터 교단의 성지를 불태우는 버섯구름과 흙먼지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연 명불허전, 최강의 결전기 다운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 결전기를 사용한 커맨더는.

“…….”

고개를 숙인 채, 인상을 쓰고 있었다.

감히 에블린을 건드린 대가로 화끈하게 결전기를 사용한 것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모습.

처용은 커맨더가 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커맨더의 눈앞에는.

[결전기 – 뉴 클리어를 사용했습니다.]

[재장전까지 100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마키나의 출력이 7일 동안 15% 낮아집니다.]

.

.

결전기를 사용한 대가로 무수한 시스템 창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뉴 클리어에 의한 킬(Kill) 수가 표시됩니다.]

[4,125,435명]

[4,147,646명]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뉴 클리어에 의한 사망자 수와 그로 인해 레벨업을 했다는 시스템 문구였다.

자신이 사용한 스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잔혹한 정보.

커맨더는 본래의 성향이 선한 사람이기에 그 문구가 달갑게 다가오지 않은 것이었다.

분노로 인해 사용한 핵미사일 한 발.

그로 인해 많은 적도 죽었겠지만, 그만큼, 이 일과 관련이 없을 일반인도 많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좋습니다. 적어도 5백만 명의 ‘마인’들이 사살되었겠군요.”

커맨더의 좋지 않은 표정을 눈여겨본 처용은 역으로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5백만 명의 적이 줄어든 만큼, 저희들이 흘릴 피가 적어질 겁니다.”

핵미사일에 불타 죽는 사람 전원을 ‘적’이자 ‘마인’이라 단정 지어 버리는 처용의 말에.

“…….”

커맨더가 고개를 들고 아직도 타오르는 버섯 구름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도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은 아스터 교단의 광신도들입니다. 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그렇군.”

이어지는 처용의 진지한 말에 커맨더가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유진아! 왜 갑자기 뉴 클리어를?”

-탓!

-샤샥!

성벽 외곽에서 몬스터들을 분류하던 헌터들.

이진호를 포함한 몇몇이 커맨더에게 다가오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헌터들의 놀란 반응에.

“아스터 교단 놈들이 에블린을 산 제물로 잡아가려 했습니다.”

처용이 커맨더가 왜 뉴 클리어를 발사했는지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러자.

“이런 씨발 놈들이!? 한 발 더 쏴버려!”

“당장 가서 다 박살을 내 버릴라!”

진호와 백호를 포함한 헌터들의 분위기가 분노로 바뀌었다.

그들은 모두 에블린이 겪은 비극을 슬퍼하고 공감해 주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했던 이들.

그런 그들에게, 에블린은 이번에야말로 꼭 지켜줘야 하는 어린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에블린이 겪은 비극을 재현시키려는 놈들이 있다?

그 행위는 특히 커맨더의 파티원들에게 있어서 선전포고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었다.

진심 어린 분노를 표하는 헌터들의 모습을 본 커맨더는.

“……그래, 뉴 클리어 한 발로 놈들의 죄를 끝내기에는 가볍겠지.”

어두운 표정을 지우고 이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헌터들이 분개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지운 커맨더가 미소를 지을 때.

“……이젠 진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지평선 너머를 응시하던 루비아가 아나샤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쿠구구구!

아스터 제국의 수도를 실시간으로 불태우고 있는 격렬한 화염.

신의 성지가 불바다가 되어 버렸으니, 이젠 정말로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에스라 대륙에서 이런 ‘강력한 이변’이 일어난 이상.

“드래곤들이 곧 나타나겠네.”

이 대륙의 평화와 균형을 수호하는 신성한 존재들.

드래곤들이 이변을 알아차리고 곧 행동을 개시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굳이 작금의 상황만이 아니더라도.

‘내가 드래곤 오러를 사용한 것을 알아챘겠지.’

루비아는 방금 전투에서 드래곤 오러를 사용한 것을 드래곤들이 알아차렸으리라 확신했다.

“……루비아.”

어두운 표정을 짓는 루비아의 말에 아나샤가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모든 뒷감당은 나와 미륵님이 한다고 했다.”

처용이 루비아에게 다가오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게다가…… 드래곤들은 이미 조금 전부터 우릴 지켜보고 있었어.”

거대한 존재감이 일렁이는 시선을 느낀 처용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쓱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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