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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68화 (468/726)

#468화

라사벨이 완전히 물러났음에도.

“흐음.”

처용은 감각을 넓게 펼치며, 마치 주변을 경계하듯 사방을 멀리 둘러봤다.

딱히, 감지되는 이변은 없었지만, 카란디아가 검은 대지의 정화를 무사히 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조금 전의 상황처럼, 적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몰랐으니까.

게다가, 회귀 전에는 한참이나 뒤에 나타났어야 할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앞으로 또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경계와 대비는 필수였다.

그나마 이번에는 위기를 무사히 넘겼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망할 년이 성지 밖으로 나왔다면…… 다른 장소에서 갈 수 있다는 뜻인데…….’

처용은 방금 마주했었던 라사벨을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그때.

“용님, 저희를 습격한 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타가 처용에게 질문하듯 말을 이었다.

그녀 역시 처용처럼 이곳을 습격한 라사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도저히 정확한 능력을 파악할 수 없었던 적.

그나마, 라사벨이 만들어낸 특수한 공간에 갇혔을 때.

“놈의 공간에 갇혔을 때, 신력과 감각을 넓게 퍼트려 본체를 찾아내긴 했습니다만.”

아타는 그 위기를 역으로 기회 삼아, 적의 능력을 파악하고 약점을 찾아 내었다.

라사벨의 본체를 찾아낸 아타는 자신을 가둔 공간을 힘으로 부수고 빠져나갔다.

때마침, 이변을 느낀 처용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주기까지 한 상황.

아타는 처용에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빠르게 전달했다.

그 결과.

“네 덕분에, 그 망할 년을 손쉽게 쫓아 버릴 수 있었지, 훌륭하다.”

정보를 얻은 처용이 신속하게 행동했고 라사벨의 핵을 찾아 부술 수 있었다.

처용은 그런 아타에게 칭찬하듯 말했다.

카란디아와 에블린이 무사한 건, 아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사벨이 고립의 힘을 모아 아타를 따로 격리시켰던 이유.

그만큼, 아타가 라사벨에게 있어 성가셨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아스터 교단의 성녀는…… 인간이 아니다.”

아타를 칭찬한 처용은 그녀가 건넨 질문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다.

“저도 인간이나 이종족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병기 같은 것입니까?”

“비슷하다.”

처용이 아타의 질문 어린 말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스터 교단의 성녀는…… 간단하게 말해서 ‘버섯’이라고 할 수 있겠네.”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 어린 침음을 흘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 처용의 말에.

“버섯…… 포자 군체, 그렇군요.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아타가 이해가 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주변에 빼곡하던 하얀 안개, 포자 가루 전체가 놈의 육체라고 봐도 무방하지.”

처용이 라사벨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라사벨이 나타나기 전, 사방에 퍼졌던 새하얀 안개.

그 안개는 라사벨의 핵으로 보이던 검은 구에 달라붙은 촉수에서 뿜어져 나왔다.

라사벨의 정체는 버섯과 같은 존재.

즉, 그녀의 본채에서 만들어낸 하얀 안개는 입자가 고운 포자 가루였다.

그리고 라사벨이 만들어내는 포자 가루 중, 특별히 공들여 만들어내는 포자 가루가 있었다.

그저 흩뿌려지기만 했을 때는 다른 포자 가루와 차이가 없었지만.

“녀석이 육체를 만들려 시도할 때에는 그 특별한 포자가 진동하며 주변의 다른 포자를 끌어모은다.”

라사벨이 육체를 만들어낼 때는 그 특별한 포자로 다른 포자가 모여 사람 형태의 육체가 만들어진다.

그 속도가 찰나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빠른 속도였지만.

“주변에 깔린 하얀 안개를 경계하고 집중하면, 충분히 놈이 나타날 장소를 미리 알아낼 수 있다.”

라사벨이 육체를 만들기 위해 포자를 진동시키는 순간, 처용은 그 이변을 미리 포착해 움직였다.

육체가 무너진 라사벨이 육체를 다시 만들어내는 순간 족족 처용에게 처치당한 이유였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용님, 더 정진하겠습니다.”

적에 대한 공략법을 들은 아타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동시에, 다음번에는 오늘처럼 질질 끌려다니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적의 정체와 능력, 공략법을 숙지한 지금은 그 적과 1:1로 싸운다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처용과 아타가 라사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후, 끝났습니다. 용님.”

검은 대지 정화를 진행 중이던 카란디아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끝났다는 카란디아의 말이 울리자.

-스르륵. 스륵.

그녀와 연결되어 있던 검은 대지가 눈에 띄게 확 줄어든 것이 보였다.

이제는 평범한 흙바닥이 눈에 보였고 군데군데 검은 얼룩만 남아있었다.

그마저도.

-슈르륵.

마치 땅에 녹아들 듯, 사그라졌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는데?”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본래 카란디아가 말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는 더 빨리 끝났으니까.

“불필요한 것들은 제가 다 먹어 치웠어요.”

-우드득. 우득.

처용의 말에 에블린이 땅에 뻗었던 검은 나무뿌리를 회수하며 답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카란디아는 저주를 받아 배회하는 영혼들의 정화를 위주로.

에블린은 그들을 잠식하는 검은 대지를 위주로 서로 역할을 나눠 처리한 것이었다.

“잘해 주었다.”

처용은 일을 일찍 끝낸 카란디아와 에블린을 칭찬하고는.

“성역의 입구를 옮기겠다.”

-화아아!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바닥에 대며 말했다.

그러자.

[태룡전의 열쇠가 룬티르 성역의 입구를 인수합니다.]

[다른 임의의 지점에 입구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스르르륵.

시스템 문구가 뜸과 동시에, 태룡전의 열쇠가 지면 속에서 백색의 기운을 흡수했다.

지금 일행들이 있는 장소는 룬테라 왕국의 중심.

이곳과 연결되어 있던 룬티르 일족의 성역을 태룡전의 열쇠가 인수한 것이었다.

이전에는 빼곡하게 깔린 검은 대지의 영향으로 입구를 떼어 내는 게 불가능했지만.

-스르륵.

검은 대지가 사라진 이상, 입구를 인수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좋아, 임무는 완료다. 이제 돌아가지.”

-우우웅.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처용이 게이트를 열며 말했다.

***

아라한 왕국 국경선 성벽.

한참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곳부터 보수해라!

-여기 철광석 더 주고! 화염 마법사 한 명 이쪽으로-!

두꺼운 성벽 곳곳에 난 손상들을 여러 사람들이 달라붙어 보수하고 정비 중인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건축 로봇, 가동 완료.

-지이잉.

허공을 부유하는 투박하고 각진 형태에 견고한 팔이 달린 로봇.

커맨더가 ‘건축 로봇’이라 이름을 붙인 골렘이 국경선 성벽의 수리를 돕는 중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달라붙어 수리하는 속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나샤가 성벽이 수리를 돕는 골렘들을 소환한 이, 커맨더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이 정도쯤은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죠.”

커맨더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서로가 간단하게 통성명은 끝낸 상태였다.

‘지구에서 넘어오신 분들이라…….’

아나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지금 하늘 위에는.

-쿠구구.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도저히 현실감이 와닿지 않는, 거대한 성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에서 나타난, ‘헌터’라고 불리는 이들은.

“C급 몬스터 랩터 불독, 이건 식용 가능.”

“마수 사체, 아니 그냥 시커먼 놈들은 다 현아 쪽으로 보내!”

성벽 외곽에 빼곡한 몬스터 사체의 정리를 돕고 있었다.

그들이 몬스터들에 대한 전문가임을 증명하듯, 몬스터들을 빠르게 분류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식용 가능 여부와, 쓸만한 소재를 건질 수 있는가로 나누었다.

그리고 불길한 기운을 넘실넘실 뿜어대는 거대한 덩치의 검은 괴물들은.

“플레임 월!”

-콰아아!

지구에서 넘어온 헌터 중 하나, 화염 마법을 다루는 여성이 단번에 불태우고 있었다.

대충 눈여겨봐도, 그녀가 다루는 화염은 마법 단장인 하인겔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보였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다수의 검은 괴물들 시체를 마법 한 번에 불태우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7서클, 대마법사와 같은 수준이었다.

아니, 비단 그녀만이 아니라 ‘헌터’라 불리는 이들 모두가 상상 이상의 강자들로 보였다.

‘헌터들 전원 자잘한 상처 하나 없다.’

아나샤가 주변 정리를 돕는 헌터들을 보며 속으로 놀라움을 삼켰다.

단 스무 명에 불과한 인원이 엄청난 수의 몬스터 대군과 정면으로 충돌했었다.

그 스무 명 전원이 오러 마스터라 해도, 무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하지만, 그 스무 명이 역으로 몬스터 대군을 압도했다.

-지구의 헌터들 중에는 저희보다 강한 이들도 있습니다.

-진호 아저씨나 백호 아저씨는 확실히 강하지.

이전, 연화와 연아가 지구의 헌터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했었던 말이었다.

천사조차도 가볍게 상대하는 그녀들이 자신들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분명, 저 남자의 이름이 이진호라고…….’

연화와 연아의 말을 떠올린 아나샤가 어느 한 방향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이건 식용, 이건 소재, 이건 마수, 이건…….”

-휙! 휙! 휙! 휘릭!

옆구리에 두 자루의 쌍검을 찬 남자가, 맨손으로 거대한 덩치의 괴물들을 휙휙 집어던지며 분류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성에서 가장 먼저 뛰쳐나왔던 헌터.

그가 단번에 천사 둘을 도륙 내는 모습은 아나샤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단 이진호라 불리는 헌터만이 아닌, 같이 온 스무 명 전원이 그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고작 스무 명이 이 정도의 전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지구라는 세계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이곳에 들어선다면?

‘아스터 교단을 쳐부술 수 있다!’

이곳을 지배하는 아스터 교단을 충분히 박살 내고도 남으리라 생각했다.

아나샤가 희망 어린 미소를 지을 때.

-우우웅.

바로 근처에서 황금빛 게이트가 열리며 처용이 나타났다.

“돌아왔구나.”

커맨더가 가장 앞서 나오는 처용과 그 뒤에 나오는 아타, 카란디아를 보며 반가운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에블린? 다쳤어!?”

마지막에 나온 에블린을 보며 미소가 굳어졌다.

에블린의 옷깃에 묻은 피가 보였으니까.

마치 입에서 토해내 흐른 듯한 자국.

헌터로 살면서 숱한 피를 봤던 커맨더가 그 흔적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아, 아니에요. 지금은 멀쩡해요!”

에블린이 당황한 듯, 두 손을 휘저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하아, 커맨더 제가 그곳에 가니까…….”

처용은 커맨더에게 북쪽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왜 자신이 다급하게 북쪽으로 날아갔는지.

카란디아와 에블린, 아타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런 그녀들을 누가 습격했는지.

“아마 여기에 일을 벌이고 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카란디아를 노린 듯 보였습니다.”

처용은 자신이 파악한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놈들이 노리는 대상은 강력한 생명 에너지를 가진 재능 있는 인간, 아마도…….”

“에블린 역시 아주 훌륭한 재물로 보였겠지.”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분노 서린 목소리를 읊조리고는.

“이 개새끼들이 감히……!”

-으드드!

주먹을 강하게 쥐며 핏발 서린 눈으로 서쪽 방향을 노려봤다.

그가 노려보는 방향은 다름 아닌 아스터 제국이 자리한 곳.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에블린을 노려?”

-쿠구구!

분노를 읊조리는 커맨더에게서 거친 기운이 솟구쳤다.

동시에.

-우우웅.

그의 성지, 마키나에게서도 거친 울림이 전해졌다.

처용은 커맨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눈치채고는.

“정확한 좌표를 짚어드릴까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커맨더를 향해 말했다.

지금 커맨더가 머릿속으로 고민 중인 것을 그냥 실행하라는 듯한 분위기.

“날 말릴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커맨더의 말에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놈들은 악의 종주에게 복종을 맹세한 놈들입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테고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차가운 처용의 말에 커맨더가 결심한 듯 오른손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고는.

“내가 맹세한 게 하나 있어, 에블린에게 이전과 같은 상처와 비극을 주려는 놈이 있다면!”

-쿠구구구!

강렬한 기운을 하늘로 쏘아 보내며 말을 이었다.

“그놈이 신이든 대악마든 간에 불벼락 맛을 보여주겠다고.”

-슈화아아!

커맨더가 쏘아 보낸 기운이 닿은 곳은 마키나의 하단부.

마키나가 커맨더의 마나와 신성력을 받자.

-철컥! 철컥! 우우웅!

뱃머리 부분, 강력한 플라즈마 포를 발사하는 포대가 반으로 갈라지며 좌우로 벌어졌다.

이윽고.

-철크럭! 키잉!

갈라진 틈에서 나타난 것은, 날렵한 모습의 미사일 머리 부분이었다.

“좌표는 여기서 서남쪽 방향…….”

처용이 서남쪽 방향을 바라보며 커맨더에게 말했다.

지금 말하는 좌표가 가리키는 지점은 다름 아닌.

“목표 지점은 아스터 제국의 수도입니다.”

아스터 제국의 수도, 정중앙이었다.

싸늘한 미소를 지은 처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결전기 – 뉴 클리어!”

커맨더가 위로 올렸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결전기를 발동했다.

그러자.

-뉴클리어 런치 디택티드(Nuclear Lunch Detected)

마키나에서 기계음이 울려 퍼졌고.

-키이이잉! 피! 슈우웅!

뱃머리에 장전된 미사일이 불꽃을 튀기더니, 격렬한 소음을 내며 쏘아져 나갔다.

핵미사일이 날아가는 방향은 다름 아닌 처용이 말한 좌표.

아스터 제국의 수도였다.

“저게…… 무엇입니까?”

아나샤가 멍한 눈빛으로 미사일이 날아가는 방향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 말에.

“뭐긴, 전쟁의 신호탄이지.”

처용이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피이이……!

저 멀리, 한 점의 빛으로 보일 정도로 멀리 날아간 미사일이 점점 아래로 하강하는 것이 보였다.

그 빛이, 지면 아래로 모습을 감춘 순간.

-피이! 화아아-!

하늘 위로 솟구치는 샛노란 빛의 기둥에서 밝은 빛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쿠콰콰콰콰!

버섯 모양을 그리며 하늘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불길과.

-쿠르르르르!

화염의 버섯구름 아래로 번져 나가는 검은 흙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저, 저게…… 저게 무슨!?”

강렬한 섬광과 솟구치는 화염, 검은 흙먼지를 본 아나샤가 떨리는 목소리로 경악을 드러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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