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핏빛이 조금씩 일렁이는 안개가 확 짙어지자.
“카란디아와 에블린을 중심으로 모이십시오.”
-탓.
아타가 카란디아의 왼쪽으로 다가가 서며 말했다.
적의 능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흩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카란디아는 검은 대지의 정화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즉,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녀를 돕고 있는 에블린 역시 마찬가지.
적은 이런 기회를 노리고 온 듯 보이기에, 두 사람을 방어하는 게 옳은 판단이라 생각했다.
-휘릭! 탓!
아타의 말에 앞서 있던 네이션이 검은 바람으로 변하며 카란디아의 오른쪽에 나타났다.
“적의 능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아십니까?”
아타가 네이션을 향해 물었다.
조금 전, 네이션은 아스터 교단의 성녀, 라사벨을 알아보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었으니까.
아마도 이전에 한 번 마주친 듯한 분위기였다.
“안개 속에서 저 성녀, 아니 저 괴물 년이 잡아먹은 적들이 나타날 거다.”
네이션이 아타의 말에 답한 순간.
-철컥. 철컥.
짙어진 안개 너머로 병장기를 쥔 사람들의 실루엣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누더기가 된 갑옷을 입고 창을 쥔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병사들과.
-철크럭. 스릉.
검과 창을 쥔, 병사들과는 다른 든든한 갑옷과 무장을 갖춘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런 그들의 뒤로는 지팡이를 쥔,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도 보였다.
대략 사십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이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은.
-지잉.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무표정한 얼굴에 핏빛의 안광을 내뿜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심해라. 저들 중에는 오러 마스터였던 이들도 있으니까.”
네이션이 모습을 드러낸 기사들 중, 몇몇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며 말했다.
-철컥. 철컥. 스르릉!
안개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병사와 기사들, 마법사들이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앞으로 돌진하려는 순간.
“팔괘 - 염화성벽(炎火城壁)!”
-탁!
아타가 손가락을 튕기며 은밀하게 준비하던 술법을 발동시켰다.
-화륵! 화륵! 화르륵! 콰아……!
아타와 카란디아 등 일행들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불기둥이 솟구치며 점점 넓어짐과 동시에.
-쿠콰콰! 화르르륵!
각각의 불기둥과 불기둥 사이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번지며 서로 이어졌다.
마치, 일행들을 감싸는 팔각형의 화염 성벽이 세워진 듯한 모습.
-크아!
-크으으!
불기둥의 열기를 버티지 못한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재가 되며 사라졌다.
보다, 강한 듯 보이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불길을 견디고 뒤로 피하며 물러섰다.
아타는 접근해 오는 적들을 단번에 밀어내고는.
“이전에 저 적을 마주쳤었다면, 그땐 어떻게 빠져나갔습니까?”
네이션을 향해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는 눈앞의 적, 아스터 교단의 성녀인 라사벨과 한 번 마주쳤던 이.
그렇다면 네이션은 한 번, 이 안개에 갇혔다가 빠져나간 적이 있다는 소리였다.
아타는 눈앞의 적, 라사벨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주어진 정보 또한 적었다.
라사벨이 본인 입으로 언급한 ‘고립’이라는 권능.
무한히 되살아나는 능력.
혹은 진짜와 다름없는 분신을 만드는 능력.
그리고, 안개 속에서 그녀가 조종하는 병사들을 소환하는 능력.
얻은 정보라곤 이게 고작이었다.
적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야만, 신속하고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네이션에게 물은 것이었다.
“가장 안개가 옅은 곳을 힘으로 뚫고 빠져나왔다.”
네이션이 아타의 말에 답하듯 입을 열었다.
아타의 예상대로 네이션은 라사벨이 만들어내는 안개 속에 한 번 갇힌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라사벨이 만들어내는 안개의 가장 옅은 부분을 검은 바람의 힘을 집중해 뚫어낼 수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잠입했던 비밀 통로를 무너뜨려 적의 추격을 저지하고 가까스로 도망쳤었다.
그때, 빠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지 않았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도 안개가 더 짙다. 아마도…… 이전보다 강해진 것 같군.”
네이션이 주변을 포위한 안개를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작금 라사벨이 보이는 능력은 이전보다도 더욱 강해진 듯 보였으니까.
아마도 그녀가 성지 밖을 나올 수 있게 된 이유와 관련이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당시와 같은 방법을 쓸 수는 있다고 해도.
“지금은 안 되겠군요.”
아타는 그 방법은 지금 쓸 수 없다 단언했다.
현재 카란디아와 에블린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
물론, 카란디아가 정화를 중단하고 네이션이 이전에 썼던 방법을 통해 다 같이 빠져나갈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죄송해요. 지금 당장 멈추기에는……!”
카란디아가 인상을 쓰며 읊조렸다.
지금 그녀는 검은 대지와 완전히 연결되어 본격적인 정화를 시작한 상태.
여기서 바로 연결을 끊고 멈출 수가 없었다.
“제가 강제로 끊을 순 있을 것 같지만, 그랬다간 카란디아가 위험해져요.”
에블린이 우려를 담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카란디아를 보조하기 위해 지면에 박아 넣은 검은 나무뿌리.
그 뿌리로 카란디아와 연결된 검은 대지를 끊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강제로 연결을 끊게 되면, 카란디아가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방어에 집중하면서 적의 능력을 파악하고 섬멸합니다.”
아타가 결정을 내리듯 말했다.
당장, 여기서 도망치기엔 불가능한 상황.
그렇다면, 카란디아와 에블린을 중심으로 뭉쳐 싸우는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적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능하면 쓰러 뜨린다.
이조차도 불가능하다면.
“혹은, 용님께서 이곳에 돌아오실 때까지, 버팁니다.”
처용이 돌아올 때까지 방어에 집중하면서 버틴다.
이게 아타의 계획이었다.
“마신이 이곳에 돌아올 리는 없습니다.”
그런 아타의 말을 들은 듯, 화염의 벽 너머에서 라사벨의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우웅. 푸화아아!
화염의 벽 너머로 강렬한 빛이 마치 거대한 검처럼 길게 뭉치더니.
-촤아아!
아타가 만들어낸 화염의 장벽을 갈라내었다.
화염의 벽이 갈라지자 아타가 표정을 굳혔다.
지금 만들어낸 화염의 벽은 앞서 발휘한 술법보다도 강한 기술.
시간을 벌기 위해 나름 공들여 만들어낸 기술이었으니까.
-파아아……!
화염의 벽이 무너지자.
“으어…….”
그 벽을 갈라낸 듯한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과 이마를 가린 철제 투구에 그 아래로 흘러내린 백발.
대검으로도 창으로도 보이는, 날카롭고 넓게 각진 칼날과 긴 손잡이가 달린 무구를 쥔 기사.
-화아아!
그가 아타의 화염 장벽을 갈라낸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몸에서 새하얀 빛의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카라스…… 오라버니?”
그런 기사의 모습을 본 카란디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빛을 내뿜는 기사가 누구인지 알아본 듯한 분위기.
“카라스 룬티르……!”
네이션 역시 빛을 내뿜는 기사를 알아보며 분노 서린 목소리를 흘렸다.
카라스 룬티르.
룬테라 왕국의 왕족, 카란디아의 형제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적이 되어 나타난 상황.
“상당히 강한 영혼이었습니다. 굴복시키는 데 오래 걸렸거든요.”
카라스의 옆으로 다가온 라사벨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참회와 회개를 마치고 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지만요.”
라사벨의 입에서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리자.
“이 간악한 년이! 감히!”
-쿠화아아!
네이션이 검은 오러를 내뿜으며 격한 분노를 드러냈다.
카라스는 네이션이 모시고 따르던 군주이자 친구였던 이.
그런 존재를 아스터 교단이 타락시키고 굴복시켜 강제로 명령에 따르는 병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대들 역시 신들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웅! 화아아!
그런 네이션의 분노에 미소로 답한 라사벨이 손에 모인 빛과 안개를 퍼트리며 말했다.
“백색의 땅.”
-스르르.
빛과 안개가 지면과 하늘로 퍼지며 주변을 메꾸자,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던 검은 대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라사벨이 자신의 권능, 고립의 힘을 펼쳐 하얀 땅을 만들어내며 미소를 짓고는.
“저들을 빛과 지혜의 이름으로 교화시켜라.”
주변에 나타난 병사들과 기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병사들과 기사들이 일제히 돌격했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준비하듯, 마나를 모으는 모습을 보였다.
-타닷!
가장 앞서 돌진해오는 이는 다름 아닌 카라스.
-샤아악!
그가 두껍고 날카로운 창날을 앞세우며 카란디아를 목표로 돌진했다.
그때.
-푸화아아!
카란디아에게서 검은 안개가 솟구쳐 나오더니.
“허락할 수 없다!”
-쿵!
철퇴를 든 호단이 나타나며 카라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카캉! 쾅!
카라스의 창날과 호단의 철퇴가 서로 충돌하며 충격음이 울림과 동시에.
-화아아!
호단과 동시에 검은 안개에서 나타난 대마법사.
에린이 마나를 모으며 손을 위로 뻗었다.
“라이트닝 볼텍스!”
-파지지직!
그녀의 손아귀에서 여러 줄기의 벼락 다발을 솟구치더니.
-콰콰콰! 콰콰!
땅으로 쏟아지며 병사들과 기사들을 휩쓸었다.
7서클, 대마법사가 발휘하는 강렬한 마법의 위력에 돌진해오던 적들이 터져 나가며 저지되었다.
“카란디아……!”
적들을 저지한 에린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카란디아를 불렀다.
지금 카란디아는.
“하아. 후우……!”
창백해진 안색으로 옅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니까.
“저는…… 괜찮아요.”
카란디아가 숨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지금 검은 대지의 정화에 집중하던 상태.
지금 상황에서 카란디아에게 속한 불사의 기사들이 그녀에게서 벗어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검은 대지를 정화하기 위한 연결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었다.
네이션 혼자 나섰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지금은 셋이 나온 상황.
-스르르륵.
카란디아의 왼손을 휘감은 검은 넝쿨이 점점 두꺼워지며 더 크게 자라나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잘못되면, 카란디아가 검은 대지를 정화하지 못하고 역으로 잠식당할 것이다.
그때.
“걱정하지 마세요.”
-우우웅!
카란디아를 보조하던 에블린이 짙은 녹색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카란디아에게 주입했다.
그 기운은 다름 아닌 세계수에게서 하사받은 신력.
세계수와 신수의 계약을 맺고 얻은 기운이었다.
-스르륵……!
강력한 신수의 힘이 카란디아에게 스며들자, 그녀를 잠식하려던 검은 넝쿨이 쪼그라들며 사그라졌다.
“네가 잘못될 일을 없어.”
“……고마워요.”
즉각 조치를 취해 준 에블린에게 카란디아가 감사를 전했다.
그 순간.
“이 짙은 자연의 기운, 역시 그대도 이 세계를 위해 봉사할 가치가 충분하군요.”
-스륵.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라사벨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타났다.
카란디아와 에블린을 향해 라사벨이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절대영도.”
-쩌저적!
그 모습을 두고 볼 리 없는 아타가 라사벨을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성가시-.”
얼어 버린 라사벨 옆으로 멀쩡한 모습의 라사벨이 다시 나타났고.
“염옥.”
-콰아아!
아타가 점점 접근해 오는 라사벨을 저지하기 위해, 불기둥을 터트렸다.
그러자.
“당신은 천천히 교화시켜 드리죠.”
-또각.
아타의 뒤에 나타난 라사벨이 손을 들어 올리고는.
“고립, 격리의 땅.”
-피이이!
아타를 향해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촤라라라!
하얀 벽돌이 아타 주변에 차곡차곡 쌓이더니, 점점 아타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타가 라사벨이 발휘하는 알 수 없는 기술에 마나를 내뿜으며 저항해 보았지만.
-사라락.
순식간에 쌓이는 하얀 벽돌의 벽 너머로 사라졌다.
아타가 사라진 순간.
“템페스트 블레이드!”
“플레임 버스트!”
라사벨을 저지하기 위해, 네이션이 검은 바람을 쏘아 보냈고 에린이 타오르는 불덩이를 발사했다.
-푸화! 콰콰쾅!
라사벨이 검은 바람에 찢겨 나가고 화염에 불타올랐다.
적을 저지한 네이션과 에린이 카란디아 쪽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샥! 스르릉!
네이션의 주변에 기사와 병사들이 나타나 칼을 휘두르며 그를 가로막았고.
-우웅! 화아아!
에린의 주변에는 마법사들이 나타나 그녀를 저지했다.
호단은 카라스를 저지하느라 도울 수 없는 상황.
“이제, 신의 소유물부터 되찾아 볼까요?”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라사벨이 미소를 지으며 카란디아와 에블린에게 점점 다가갔다.
-쿠구! 콰드드득!
그런 라사벨의 발밑에서 검은 나무뿌리가 솟구치더니.
-우드득! 파아아!
라사벨을 휘감고 으스러뜨리며 찢어 버렸다.
그러자.
“이 뿌리는 당신과 연결되어 있군요?”
-또각.
그 옆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라사벨이 검은 뿌리에 손을 대며 말했다.
“나를 파괴한 만큼, 내가 무수히 깃들었겠지요?”
“죽어.”
에블린은 라사벨의 말을 무시하고는.
-콰지직! 콰직!
뿌리를 조종해 라사벨을 휘감고 터트려 버렸다.
그 순간.
“으윽!? 커허!”
-주르륵.
에블린이 돌연 숨을 들이쉬더니, 입에서 검은 피를 토했다.
‘무언가가, 나를……!’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은 에블린이 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주 작은, 먼지와 같은 물질이 나무뿌리에 달라붙고 파고들어 잠식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침식해 훌륭한 제물로 만들어 드리죠.”
에블린의 모습을 본 라사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쉽진…… 않을 거야.”
-우우웅!
에블린이 검녹색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읊조렸다.
그녀가 조종하는 검은 나무뿌리에도 검녹색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 나왔다.
‘나는…… 나는 재앙의 나무, 내가 역으로 잡아먹을 수 있다.’
에블린은 스스로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시금 되새기고는 어두운 기운을 더 끌어올렸다.
그 결과.
-으드드득! 우득!
검은 나무뿌리가 한 번 몸을 뒤틀더니,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되돌아왔다.
“후-.”
자신을 잠식하던 정체불명의 기운을 역으로 잡아먹어 소화시킨 에블린이 짧고 굵은 한숨을 내쉬었고.
“과연 마신을 따르는 종이라, 쉽지 않군요.”
일이 뜻대로 쉽게 풀리지 않은 듯, 라사벨이 작게 인상을 쓰며 읊조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당신들이 버텨 봐야 얼마나 버틸까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목소리.
그런 그녀의 말대로 작금의 상황은 결코 좋다고 볼 수 없었다.
-스르륵. 스륵.
지금 이 순간에도, 안개 속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병사와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시간을 벌고 있는 네이션과 호단, 에린의 부담은 커지고 있었다.
가장 큰 도움이 되던 아타도 알 수 없는 적의 능력으로 인해 사라졌다.
충분히 위기라고 볼 수 상황.
그러나.
“흐흐…….”
에블린은 이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 옅은 미소를 흘렸다.
“웃음이 나오나요?”
라사벨이 에블린의 미소를 보고는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하자.
“우리를 잡을 생각이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서둘렀어야 했어.”
에블린이 미소를 이은 채, 말을 이었다.
“너는 마신의 힘을 너무 간과했으니까.”
“마신은 절대로 여기에 오지 못합니다.”
라사벨이 헛된 희망을 품는 듯한 에블린의 말에 실소를 머금으며 비웃었다.
“과연, 그럴까?”
에블린이 여유를 부리는 라사벨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되물은 순간.
-콰쾅!!
거대한 바위가 땅에 떨어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쿠구구구!
백색으로 가득한 이 공간, 라사벨이 만들어낸 백색의 땅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갑작스러운 이변에, 라사벨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위를 응시했다.
-쩌저적! 쩌적!
백색 공간의 위쪽 부분에 붉은 균열이 번지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파창! 차차창!
새하얀 하늘이 무너짐과 동시에.
-쐐액! 샥!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라사벨의 앞에 역천의 절을 쥔 처용이 나타났다.
그리고.
“반갑다 이 쌍년아.”
처용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라사벨을 노려보며 읊조리고는.
-사가가각!
역천의 절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라사벨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