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57화 (457/726)

#457화

태룡사 상단에 위치한 보물전. 루돌프의 대장간.

“허허, 오랜만에 마주하고 하는 부탁이란 것이 참…….”

루돌프가 처용을 보며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헛웃음을 짓는 루돌프의 손에는 칼날이 넓고 큰 대검이 잡혀 있었다.

“신이 깃든…… 아니지, 오크들의 선조께서 깃든 신물을 수리해 달라니.”

루돌프가 황당함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루돌프의 반응에.

“수리가 아닙니다. 이진호 헌터의 검처럼, 태초의 조각으로 강화가 가능합니까?”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초의 조각이라는 강편을 제작하고 가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처용은 오직 루돌프만이 불카가 깃든 신물을 수리하고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때문에, 불카가 깃든 대검을 그에게 가져온 것이었다.

“크음…… 뭐라고 해야 하나.”

루돌프는 처용의 질문에 곤란한 듯한 침음을 흘렸다.

잠시 생각하는 듯,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는.

“정말, 내게 맡겨도 괜찮은 것이오?”

자신이 쥐고 있는 대검을 바라보며 물었다.

루돌프는 손으로 마주 잡은 대상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그만이 가진 장인의 감각이 있었다.

지금, 대검을 쥐고 있는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존재감이 있었다.

-화르륵!

뜨거운 불길처럼 타오르는 오크의 형상.

루돌프도 잘 알고 있는 오크들의 선조, 불카라는 존재였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불카에게 직접 질문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무구의 수리와 강화를 맡겨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를.

그 말은 자신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냐는 물음과 같은 의미였다.

자칫 잘못해서 실수라도 하는 순간, 불카가 소멸할 가능성도 존재했으니까.

그런 루돌프의 걱정 어린 말이 울리자.

[걱정을 담은 질문치곤, 그대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느껴진다.]

-우웅.

루돌프가 쥔 대검이 울리더니 불카의 목소리가 울렸다.

[땅의 일족에서 이 정도의 실력자가 있을 줄이야. 역시 세상은 넓구나.]

“끄응, 정녕 나에게 이 일을 맡길 것이오?”

놀람과 흥미를 드러내는 불카의 목소리에 루돌프가 머리를 긁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물었다.

그의 시선은 우람한 덩치의 오크, 처용 옆에 있는 쿠루타를 향하고 있었다.

화산의 오크인 쿠루타는 드워프와 엘프들에게도 나름 알려진 자.

대족장과 거의 같은 선에서 오크를 대표하는 이로 유명했다.

“친구가 인정한 장인이라면,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쿠루타는 루돌프의 질문에 믿음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에, 루돌프가 고민하는 듯 침묵에 잠기더니.

“하아, 알겠네.”

마지못해 수락하겠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다만.

“하지만, 신이 깃든 신물이니만큼, 실수가 일어나서는 안 될 노릇, 도움을 좀 받고 싶네.”

루돌프는 실수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압박 때문인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바랐다.

특히.

“기계 장치의 여신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줄 수 있겠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루돌프의 요청에.

“커맨더, 지금-.”

처용은 곧장 라이센스를 작동시켜 커맨더에게 연락을 보냈다.

아직, 커맨더의 성지가 태룡사 상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마침 여신님이 옆에 계시는데…….

연락을 받은 커맨더가 곧장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처용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치지지!

처용의 옆으로 전류가 모이더니 직사각형 형태의 게이트가 열렸다.

-저벅.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총 세 명.

커맨더와 그의 성지, 마키나의 시설을 책임지는 함선 기술자 로완.

그리고.

[방금 한 말, 자세히 듣고 싶은데?]

직접 이 자리에 강림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흥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처용에게 물었다.

그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반응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신님. 그러니까…….”

처용이 미소를 머금으며 작금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으음, 으음, 신격이 깃든 신물의 복원, 아니 강화라? 재밌겠는데?]

이야기를 들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흥미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아, 일단 부탁하신 것의 일부입니다.”

-우웅.

처용은 그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아공간을 열어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의 구체를 건넸다.

겉모습은 미니 옵저버와 비슷한 구체 형태의 기계 장치였다.

[오! 마침 딱 데이터가 부족한 참이었는데, 덕분에 제작을 이어나갈 수 있겠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처용이 건넨 기계 장치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에스라 대륙으로 돌아가자마자, 한 번의 전투가 있었거든요.”

처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건넨 작은 옵저버와 같은 기계 장치.

그것은 옵저버처럼 주변에 맴돌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치였다.

기계 장치가 수집하는 데이터는 다름 아닌, 처용의 전투 데이터.

이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처용에게 요청한 부탁 중 하나였다.

[중요한 데이터를 주었으니, 이번 일은 내가 기꺼이 도와주지.]

기계 장치를 돌려받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용이 자신의 연구에 중요한 도움을 주었으니, 이번 일을 도와주겠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신격이 깃든 무구를 수리하는 일에 흥미까지 보이고 있었다.

“작품이 완성되면, 한 번 보여 주시죠.”

처용이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커맨더와 함께 무엇을 제작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회귀 전, 그녀의 ‘미완성 상태’인 작품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커맨더와 함께 만들었던 작품이 미완성 상태에 그쳤던 이유는 바로 아르테미스 때문.

그 망할 악신이 커맨더의 성지를 부수었기 때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만드는 작품이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회귀 전보다 그녀의 작품 제작 속도가 빨랐고 처용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일을 도와주면, 여신님 작품 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한 명 소개해 드리죠.”

그녀의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도 한 명 알고 있었다.

[히히, 좋아. 좋아.]

새로운 발명품의 제작이 수월한 탓인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네 실력은 문제가 없을 테고, 보아하니, ‘설계도’가 필요해서 나에게 도움을 바란 건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루돌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정교한 작업을 위한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여신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말이 맞다는 듯, 루돌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보통 무구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진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바로 강편, 어떤 광물로 무구를 제작하느냐?

조잡한 철로 만든 검보다, 미스리움으로 만든 검이 더 강한 것은 일반인도 아는 상식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제작자의 실력.

견습 대장장이와 장인이 같은 철광석으로 같은 검을 만들어도, 그 결과는 장인의 압승.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제작자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더 강하고 유용한 무구가 탄생한다.

이렇게 두 가지가 사람들에게 있어 흔히 알려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앞선 두 가지에 버금가는, 아니 상황에 따라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무구 제작의 ‘설계도’였다.

루돌프가 따로 구구절절하게 언급한 적은 없지만.

-이 강편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그는 태초의 조각을 처음 제작하는 데만, 무려 이백 장이 넘는 설계도를 작성했었다.

마치, 답이 나오지 않는 시험지를 푸는 듯, 무구한 노력과 고민이 이어진 끝에.

-접쇠 단조! 바로 이것이다!

루돌프는 결국 답을 찾아냈다.

이처럼, 정교하게 제작된 설계도가 있고 없고에 따라 제작의 방향성과 성공 가능성까지 좌우된다.

제아무리 장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설계도가 없다면, 만들 수 없는 무구도 있었다.

지금 그가 맡은 일은 무려 신격이 깃든 신물의 강화.

아니, 전체적으로 보면, 무구의 강화라기보단 ‘수술’에 가까웠다.

신물을 구성하는 낡은 부품들을 해체하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작업에 가까웠으니까.

루돌프는 그런 정교한 작업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 기계 장치의 여신에게 설계도를 부탁한 것이었다.

대신급 성좌의 설계도만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드니까.

아니, 완벽하게 성공해 낼 자신이 있었다.

“제가 대략적인 구조는 미리 파악했고 기초 설계도는 그려 놨습니다.”

-촤악.

루돌프가 단상 위에 돌돌 말려 있던 종이를 펼치며 말했다.

그곳에는 불카가 깃든 신물의 겉모습과 그 구조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흐음, 여기서 내 분석과 설계만 더한다면, 설계도 자체는 완벽하겠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설계도를 살피더니.

-우웅. 사각. 사가각.

볼펜을 꺼내어 설계도 위에 추가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쪽 부분의 설계는-.”

“대검 중심에 깃든 핵은 이런 방식으로 안전하게 분리하는 것이-.”

커맨더와 로완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보조하듯, 좌·우로 서며 그녀의 작업을 도왔다.

“그럼, 부탁합니다.”

처용은 집중하는 장인들을 더 방해하지 않도록 인사를 전한 후, 보물전을 나왔다.

“실패할 일은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보물전을 나와 성지 하단을 향해 앞서 나가던 처용이 뒤따라온 쿠루타를 보며 말하자.

“대신급 여신님이 장인을 돕고 있다. 실패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친구.”

쿠루타가 믿음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마침 찾아가려 했는데, 잘 되었군요.”

-탓.

근처에 있었던 태민이 처용과 쿠루타를 발견하고는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리고.

“아, 안녕하세요.”

태민과 함께 있던 이들 중 하나, 카란디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처용에게 인사를 건넸다.

“카란디아? 에블린에 아타까지?”

처용이 태민과 함께 있던 이들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굳이 이들이 함께 있을 만한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런 처용의 의문에.

“그게…… 우선 중요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태민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 침음을 흘리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처용이 태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세계 헌터 회의 개최가 결정되었습니다. 날짜는 오늘로부터 5일 뒤, 장소는 이전과 같은 호주 시드니입니다.”

태민은 우선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부터 이야기했다.

“5일 뒤라…… 알겠습니다.”

처용이 태민의 말에 생각을 잇는 듯, 말을 흐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 같이 오신 오크 분들은 ‘탄타’ 씨에게 안내를 맡겼습니다.”

태민이 처용의 대답을 듣고 계속 말을 이었다.

오늘 처용과 함께 태룡사에 온 오크는 쿠루타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르는 하이 오크 둘과 장로 오크 둘을 포함한 열두 명의 오크들이 함께 왔다.

그들을 안내하고 있는 이는 태민이 언급한 ‘탄타’라는 오크.

태룡사에 거주하는 오크 중 유일한 하이 오크로 이곳에서 오크를 대표하는 이였다.

“오크들 역시 식량 문제를 겪고 있을 줄이야.”

처용이 오크들의 문제를 언급하며 읊조리듯 말했다.

남부 대사막에 거주하는 오크들은 주로 야생 몬스터를 사냥하며 수렵 생활을 하는 이들이었다.

척박한 환경인 모래 산맥, 용암 화산 지대, 뜨거운 오아시스 등.

그런 최악의 환경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흉폭한 몬스터들이 있었다.

남부 대사막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오크들이 몬스터를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그래도 버틸 만했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더군.”

처용의 말에 쿠루타가 어두운 목소리로 답하듯 말했다.

몬스터를 주로 사냥하며 살아가는 오크들.

그런 그들의 환경에 돌연 1년 전,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몬스터들의 갑작스러운 개체 수 감소.

야생 몬스터들의 둥지와 서식지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동시에.

“먹을 수 없는 괴물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그 원인을 찾아냈던 쿠루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전신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는, 곤충과 동물이 섞인 듯 보이는 기괴한 형태의 괴물.

대사막에서 서식하는 토종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던 신종 몬스터.

오크들이 단합하여 그 괴물을 사냥할 순 있었지만, 토종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식용이 불가능했다.

언데드에 가까울 정도로 살과 가죽이 검게 부패하고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대사막에서 마수 실험을 한 것 같군.”

쿠루타의 이야기를 들은 처용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인적은 드물고 야생 몬스터는 많은 남부의 오지 대사막.

에스라 대륙으로 도피한 마인들은 새로운 마수 실험장으로 대사막을 선택했다.

덕분에 토종 몬스터들이 실험체로 잡혀가고 마수들의 먹이가 되어 버린 것.

대사막에서 살아가는 오크들은 그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대사막에서 마수 실험을 벌이고 오크들의 수렵 생활에 영향을 준 덕분에.

“남부 대사막과 동부 대수림을 잇는 교역로가 활성화되면,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처용은 작금의 상황을 보다 유리하게 이용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동부는 아나샤를 여왕으로 세운 아라한 왕국이 자리한 곳, 즉 처용이 장악한 지역이었다.

남부의 오크들 역시 쿠루타, 불카와 맺은 동맹으로 같은 편이 되었다.

그렇게 동부와 남부를 잇는 교역로를 활성화하면, 중앙에 자리한 아스터 제국을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아라한 왕국에는 이제 곧 지구의 문물과 문명이 자리 잡을 터.

오크들은 그런 아라한 왕국과 교역하는 것으로 식량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반면에 아라한 왕국은 오크들의 힘과 노동력을 지원받는다.

특히, 전사 계급의 오크들은 모두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바.

그들을 통해 대수림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추가로 동부와 남부를 합쳐 넓은 지역을 장악하는 것으로.

‘지구의 세력이 더 넓게 뻗어 나갈 발판이 될 수 있다.’

이후 지구에서 발을 들일 길드들이 더 폭넓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이는 아스터 교단을 더욱 압박할 수단이자 그들을 에스라 대륙에서 박멸시킬 수단으로 작용하리라.

“그보다도, 카란디아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생각을 마친 처용이 태민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카란디아를 도울 방법을 찾았어요.”

의외로 에블린이 입을 열어 처용의 말에 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