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에스라 대륙 최남단.
-지이이……!
지직거리는 이명이 울릴 정도로 뜨거운 아지랑이가 이글거리는 사막.
그리고 그런 사막을 경계하듯, 하얗고 높은 벽이 세워진 장소.
“놈들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 하얀 성벽 위에 선 성기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사막과 대륙 중앙을 나누는 하얀 성벽과 그 뒤에 세워진 신전.
이 장소는 남부 대사막을 경계하는 아스터 교단의 국경 신전이었다.
그런 국경 신전이.
-화산의 격노를 보여 줘라!
얼마 전, 공격을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감히 신의 신전을 공격한 이들은 남부 대사막 끝에 사는 이단자들.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저주받은 이종족이라 알려진 이들.
오크라 불리는 존재들이 대사막을 넘어와 국경을 침범했다.
“경계를 철처히 하라! 저 쓰레기 같은 이단자들이 국경을 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국경 신전을 책임지는 주교가 성기사와 사제들을 향해 소리쳤다.
대범하게 아스터 교단의 신전을 급습한 오크들.
놈들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성벽을 재구축했다.
지금은 아스터 교단 본부에서 추가적으로 지원을 받아 더 견고하게 방어를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크크. 주교, 이단자 놈들이 또 쳐들어올 것 같나?”
-저벅.
옅은 웃음소리가 섞인 싸늘한 목소리가 주교에게 향했고 누군가가 가까워졌다.
아스터 신전의 주교는 이 신전을 책임지는 최고권력자.
나라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보다도 높은 권한을 지닌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즉결 처형감이었지만.
“분명히 쳐들어올 것입니다.”
주교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이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아래로 내리깐 주교의 시선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들은 대부분 백색의 갑옷을 입는다.
그러나 유일하게 검은 갑옷을 입는 성기사들이 있었다.
이단자들을 앞장서 처단하고 잡아들이는 이단 심판관들.
오직 그들만이 아스터 교단에서 검은 갑옷을 입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온 이는 이단 심판관들 중, 유독 돋보이는 갑옷과 붉은 망토를 걸친 이.
“이단 심판관장님.”
주교가 자신의 앞에 선 검은 갑옷의 남자.
이단 심판관들을 이끄는 총괄자, 이단 심판관장 안테르를 향해 극진히 예를 표했다.
“고개를 들어라. 주교.”
“예.”
안테르에게 고개를 들 것을 허락받자, 주교는 그제야 숙였던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선을 내리며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다.
이단 심판관장은 신전의 주교조차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크크, 대사막 국경을 지키는 주교께서 이단자일 리가 없지.”
“그, 그렇습니다! 언제나 신들을 위해 이 한 몸 헌신해 왔습니다!”
안테르의 말에 주교가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헌신과 신앙을 이야기했다.
“크크…….”
그런 주교의 모습을 본 안테르가 옅은 웃음을 흘리고는.
“헌데, 그리 충성심이 높으신 주교께서 왜 이단자들을 막아내지 못한 것인가?”
웃음기가 싹 사라진 목소리로 주교를 노려보며 말했다.
입가와 눈매는 웃고 있지만, 그 미소 속에는 잔혹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제, 제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시, 식음을 전폐하고 신께 자비를 빌겠습니다…….”
압박이 느껴지는 이단 심판관의 목소리에 주교가 목소리를 떨며 용서를 빌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억울함이 없지는 않았다.
이 장소는 남부 대사막 오지를 감시하는 국경 신전.
중앙과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만큼, 그리 많은 경비 병력이 상주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교는 기지를 발휘하여 오크들의 기습을 막아내고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텨 내었다.
적은 병력으로 버티며 이 지역을 사수한 주교는 상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신성한 신들의 구역을 지키지 못한 죄, 신들께서는 용서해 주실 것이오. 크크.”
아스터 교단, 특히 이단 심판관들은 극단적인 결과론 주의자들이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이 가진 사정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너는 이단자인가? 아닌가?
에스라 성운의 신들을 따르는가? 아닌가?
혹은, 신들이 맡긴 신성한 임무를 완수했는가?
최선을 다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임무를 완수했는가가 중요했다.
완수하지 못했다면, 그 과정에 상관없이 신들의 의무를 저버린 자였다.
“가, 감사합니다. 신성한 이단 심판관장이시여.”
주교가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마음과 목소리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예를 갖춰 말했다.
스스로 식음을 전폐하고 신에게 용서를 구하겠다는 주교의 말.
이단 심판관장 안테르는 그런 주교의 의견을 수용해 준 것이었다.
그나마 신전을 책임지는 주교이기에, 이 정도 선에서 그친 것이었다.
평범한 성기사나 사제였으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거나 이단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크크, 이곳에서의 일은 걱정하지 마시오, 주교. 준비를 철저히 갖추고 왔으니까.”
안테르가 짙은 미소를 짓고는 신전 내부 중앙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교가 아스터 제국으로 지원을 요청한 결과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신전의 중앙에는 여타 신전과 마찬가지로 아스터 신의 동상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동상의 좌·우에는.
-우우웅.
밝은 빛을 퍼트리는 보석이 장식된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다.
지팡이에서 퍼지는 밝은 빛은 바로 신성력.
그 신성력이 성물, 아스터 신의 동상이 가진 힘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것이 안테르가 준비해 온 첫 번째 지원.
두 번째는 자기 자신과 강한 무력을 지닌 이단 심판관 2개 소대.
마지막으로.
-크아아!
-크악!
십자 형구에 묶인 채 피를 흘리며 고통을 내지르는 이들.
바로 안테르가 신전에 발을 들이기 전, 대사막 인근에서 잡아들인 오크들이었다.
사로잡혀 형구에 묶인 오크들의 몸 여기저기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피슈웅! 퍽!
날카로운 화살이 쏘아지는 듯한 소리와 그 화살이 어딘가에 박히는 소리가 울렸다.
-크아악!
화살이 박힌 곳은 다름 아닌 형구에 묶인 오크 중 한 명의 오른쪽 가슴이었다.
“야야, 아직 죽이면 안 된다.”
“한 발 정도는 더 버틸 것 같은데?”
오크들을 과녁 삼아 화살을 쏘는 이들은 바로 이단 심판관들.
그들이 재미 삼아 사로잡힌 오크들에게 석궁을 겨누며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크크크, 이 더러운 이단자들은 동종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다지?”
안테르가 고문당하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그때.
“주, 주교님! 저 저기에……!”
성벽 위에서 전방을 감시하던 성기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냐!? 당장 보고해라!”
주교가 감시를 서던 성기사에게 대답을 촉구하자.
“부, 불덩어리가…… 거, 거대한 불덩어리가 이곳으로-!”
성기사가 성벽 너머와 주교가 있는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네 이놈! 당장 이곳으로-!”
우왕좌왕하는 성기사에게 답답함을 느낀 주교가 호통을 내지른 순간!
-쿠쾅! 푸화아아!
대사막을 가로막는 거대한 성벽에서 강렬한 충격음이 울리더니, 화염이 불기둥처럼 솟구쳤다.
동시에.
-치이! 쩌적! 쩌저적!
새하얀 성벽이 새빨갛게 달구어지며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쩌저저적! 콰콰콰-!!
강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단단하고도 드높았던 성벽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으아!
-피, 피해라!
성벽 근처에 있던 성기사와 사제들이 몸을 날려 불길을 피하며 소리쳤다.
-쏴아아!
무너지는 성벽의 파편이 뜨거운 불길에 달구어지더니, 새까만 모래로 변하며 떨어져 내렸다.
마치, 잿더미의 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
그리고.
-쿵! 쿵!
3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우람한 덩치의 실루엣이 잿더미의 비를 해치며 나타났다.
붉은빛이 섞인 녹색의 피부, 단단한 근육질의 몸체.
등 뒤부터 어깨, 가슴까지 이어지는, 마치 불길이 일렁이는 듯한 하얀 문신.
세 개의 대검을 등 뒤에 맨 하이 오크.
아니, 하이 오크 중에서도 선택받은 극소수만이 달성할 수 있는 최상위 종족.
“화산의 심판을 받을 시간이다!!”
먼 거리에서부터 돌진하여 성벽을 단번에 부숴 버린 화산의 오크.
쿠루타가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며 나타났다.
“크윽!?”
“윽!”
무너지는 성벽을 피해 물러나던 성기사와 사제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비틀거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성기사와 사제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불카르! 복수의 시간이다!”
-콰아아!
쿠루타가 격렬한 화산의 기운을 내뿜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화산의 오크를 따라라!
쿠루타의 뒤로 그와 비슷한, 붉게 일렁이는 피부와 하얀 문신을 지닌 소수의 하이 오크들과
-복수하라!
-불카르!
그런 그들의 뒤로 수백에 달하는 오크들이 무기를 치켜들며 나타났다.
“모조리 죽여 주마!!”
-쿠궁! 콰아아!
쿠루타가 분노를 내지르고는 다리를 강하게 박차 전방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돌진해 나가는 쿠루타의 전신에 마그마처럼 솟구치는 화산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부, 불길이-! 으아악!
-피, 피해라!
쿠루타가 내뿜는 화산의 열기를 버티지 못한 성기사들이 불타 죽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이다아안-자!!”
-스릉! 쿠구구!
이단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이단 심판관장.
안테르가 검을 뽑아 들고는 검붉은 오러를 내뿜으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단자들을 처치해라!”
“감히 신의 땅을 넘보다니!”
-스릉! 탓! 타닷!
다른 이단 심판관들 역시 안테르를 따라 검을 뽑아 들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모조리 불태워 주마!”
“더러운 이단자가!”
-차카캉! 콰쾅!
화산의 기운을 내뿜는 쿠루타의 대검과 검붉은 오러를 크게 피워올린 안테르의 검이 서로 충돌했다.
동시에.
“불카르!”
“이 이단자들이-!”
-차카캉! 쿠궁!
소수의 하이 오크들과 다수의 이단 심판관들이 맞붙었다.
그 뒤로는 겨우 대열을 갖춘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 오크 부대가 병장기를 휘두르며 충돌했다.
“불-카아아르!!”
-쿠콰콰!
쿠루타가 화산의 기운을 더욱 끌어올리며 대검에 힘을 주자.
-쿠구-! 치이이-!
안테르의 오러가 짓눌리며 그의 말이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더러운 이단자가!”
쿠루타가 발휘하는 화산의 기운이 생각보다 강하자, 안테르가 인상을 크게 찌푸리고는.
-우웅! 차카캉!
오러를 크게 피워올리며 쿠루타의 대검을 쳐냄과 동시에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리고.
“나약한 이단자 놈들! 당장 조아려라!”
-콰쾅! 화아아!
땅을 강하게 밟으며 검붉은 기운을 넓게 퍼트렸다.
지면을 타고 번지는 기운은 오러가 아니었다.
바로 신에게 하사받은 신성력.
신성력으로 발현하는 신의 능력, 권능을 사용했다.
그 결과.
“크으……!”
“윽……!”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침음을 흘리더니, 성기사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힘이 약해진 것.
하이 오크들 역시 영향을 받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나마 화산의 오크인 쿠루타만 권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사악한 신의 힘에 굴하지 마라! 전사들이여!”
-콰쾅!
오크들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한 쿠루타가 크게 소리치며 땅을 강하게 밟자.
-쩌저저적! 치이-!
지면에 붉은 균열이 퍼지며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카르!
-우워어어어!
오크들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며 다시금 성기사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 쓰레기 같은 이단자가 감히 신의 힘을!”
안테르가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소리칠 때.
-피이이!
그의 뒤, 아스터 신의 동상이 자리한 방향에서 빛의 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안테르가 잠시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자.
“위대하신 천사들이시어, 사악한 무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소서.”
동상 앞에 부복한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주교의 모습이 보였다.
“크크크, 네놈들은 모두 심판받을 것이다!”
-스릉!
안테르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치자.
“불태워 주마!”
-화르륵! 콰콰콰!
쿠루타가 화산의 기운을 내뿜으며 안테르를 향해 돌진해 나갔다.
육중한 대검이 안테르를 반으로 가를 듯, 가로로 휘둘러져 올 때.
-차카캉! 차캉!
안테르의 좌·우에서 빛의 창이 나타나 쿠루타의 대검을 가로막았다.
[이 이단자들이!]
[감히 신의 신성한 땅을 넘보는 것이냐!]
쿠루타의 공격을 막은 이들은 다름 아닌 천사들.
“방해하지 마라!”
-쿠콰콰!
그런 천사들이 거슬린다는 듯, 쿠루타가 더 강렬한 화산의 기운을 분출하며 대검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자.
-쿵! 콰쾅! 치이이-!
안테르와 그를 보호하듯 나선 두 명의 천사가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이, 이단자가 감히!]
[하찮은 벌레 따위가!]
예상보다 강한 쿠루타의 힘에 천사들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하계종에게 용납되어선 안 되는 힘이다.]
[네놈의 힘을 거두어 신에게 바치겠다.]
-화락! 파아아!
눈부신 빛을 내뿜는 세 쌍의 날개를 지닌 천사들이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해 강림한 이들은 세 명의 대천사를 포함한, 열두 명의 천사들이었다.
본래, 이런 변방의 신전에서 이 정도의 천사들이 강림할 순 없었지만.
-우우웅.
안테르가 가져온, 신의 힘을 증폭시키는 성물에 힘을 받아 강림이 가능했다.
대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화산의 격노!”
-치이이!
쿠루타가 화산의 힘을 대검에 응축시키고는.
“불카의 심판!”
-쿠쾅! 화르륵! 쏴아아!
새빨갛게 달아오른 대검을 땅에 박으며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켰다.
-쩌저적! 까강!
강력한 기술을 사용한 탓인지, 쿠루타가 땅에 박은 대검에 금이 가며 부서졌다.
-푸화아아!
쿠루타가 무기를 희생하여 만들어낸 불기둥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신전을 해일처럼 덮칠 때.
“물러나라 형제들이여!”
쿠루타가 오크들에게 퇴각을 명령했다.
신격들이 강림한 이상,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면 크나큰 피해를 입게 되리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것!]
[네놈들은 한 놈도 살아 나갈 수 없으리라!]
-피이이!
대천사들이 힘을 모아 빛을 퍼트리는 것으로 쏟아지려는 화염의 해일을 터트려 산화시켰다.
동시에.
-우웅! 피이이-!
세 명의 대천사들이 일제히 빛의 창을 생성하고는 쿠루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길! 화산의 격노!”
쿠루타가 침음을 흘리고는 등 뒤에 맨 다른 대검을 꺼내 화산의 힘을 응축시켰다.
-치이이!
다시금 대검이 붉게 달아올랐고.
“불-카르!!”
쿠루타가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며 대천사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쩌적! 파창! 창!
또다시 대검이 부수어지며 파편이 흩날렸다.
동시에.
-화르륵! 쿠콰콰!
이글거리는 용암의 파도가 지면에서 솟구쳐 대천사들을 뒤덮었다.
쿠루타가 무구를 세 개나 준비한 이유는 그의 힘을 온전히 담아낼 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금의 상황을 오래 끌어선 아니 되었고 시간을 번 후, 신속히 퇴각해야 했다.
심지어 이제 남은 대검은 단 하나뿐이었다.
쿠루타의 명령을 들은 오크들이 뒤로 점점 물러나며 퇴각을 준비할 때.
[하찮은 하계종들 그 누구도 여길 나갈 수 없다!]
[네놈들을 모두 제물로 바쳐 주마!]
-피이이!
다섯 명의 천사들이 반구형의 결계를 만들어 이 신전 주변을 감쌌다.
단 한 명의 오크도 도망치게 두지 않겠다는 의미.
그리고.
[이놈이 감히!]
[곱게 죽이진 않을 것이다!]
-피이이!
세 명의 대천사가 빛을 내뿜으며 쿠루타가 일으킨 용암을 날려 버리고는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디 덤벼 봐라!”
-스릉!
마지막 남은 대검을 쥔 쿠루타가 전의를 불태우며 소리쳤다.
대천사를 상대하면서 마지막 남은 무구를 희생해 결계를 부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작전이 통한다 해도, 작금의 상황이 위기인 것은 사실.
어떻게든 대천사들을 밀어내고 결계를 부술 틈을 만들어내야 했다.
쿠루타가 천사들을 경계하며 기회를 엿볼 때.
[저 하계종은 신의 제물이 될 것이다!]
-샥!
천사 중 하나가 쿠루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천사들이 쿠루타를 수월하게 사냥하기 위해 힘을 빼 놓을 작정이었다.
쿠루타가 다가오는 천사를 노려보며 심기일전을 다지고 대검을 치켜든 순간.
-쩌저적! 파창! 창!
천사들이 만들어낸 반구형의 결계 가장 윗부분이 부수어지고는.
-쐐에에엑!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콰쾅!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무언가.
아니, 누군가가 쿠루타에게 달려드는 천사를 밟아 땅에 처박으며 나타났다.
어깨에 거대한 도끼를 짊어진 채, 천사를 땅에 박으며 나타난 존재.
[이, 이-!]
[이 변종 놈이-!]
처용의 얼굴을 확인한 대천사들의 표정에 경악이 일렁였다.
그런 대천사들의 표정을 본 처용이 비웃음을 끌어올리고는.
“차륜격.”
-화르르륵! 콰아아!
도끼에 휘몰아치는 화염을 휘감아 천사들을 향해 휘둘렀다.
-쿠콰콰콰!
강렬하게 터지는 화염의 폭발이 천사들을 향해 퍼져 나갔고.
[젠장! 막아라!]
대천사들을 포함한 천사들이 화염의 불길을 향해 빛을 내뿜으며 방어했다.
하지만, 온전히 막아 내지는 못했고.
-화르륵! 치이이!
천사들과 성기사들의 진영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강렬한 불길이 천사들과 성기사들을 밀어낸 순간.
“화산의 가호는 식지 않았구나.”
처용이 자신의 앞에 있는 쿠루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오크의 언어로 목소리를 내었다.
화산의 가호가 함께하길.
이 말은 오크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표적인 인사말이었다.
서로 헤어질 때 상대의 무사와 안녕을 빌어주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화산의 가호는 식지 않았구나.
이 말은 오랜만에 재회한, 반가운 친구를 다시 마주했을 때 쓰는 말이었다.
화산의 가호를 빌어 준 상대가 무사하다는 것에 기뻐한다. 대략 이런 의미였다.
처용의 입에서 오크의 말이 흘러나오자.
“불카의 축복이 불타오르는구나!”
쿠루타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처용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