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46화 (446/726)

#446화

“……대략, 이런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아나샤의 보고가 끝나자.

“흐음…….”

처용이 잠시 생각에 잠기고는 우선, 아나샤가 언급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시 되짚어 보았다.

“다발성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아나샤가 이야기했던 문제 중 하나.

에스라 대륙 전체에 다수의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보고에 대해 말을 꺼냈다.

“세계 전체가 흔들리더니, 여기저기에 게이트가 엄청나게 생겼었어.”

“방금까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오는 길이야.”

연아의 말에 이어 연화가 답하듯 말했다.

“쯧, 강제로 대격변을 일으키겠다더니, 완벽하게 막지 못했었나?”

처용이 연화와 연아의 말을 듣고는 작게 인상을 쓰며 읊조렸다.

-대격변을 강제로 일으키겠다.

신법재판소에서 아스터가 태초의 조각을 폭주시키며 했었던 말.

세계 곳곳에 게이트가 나타나며 폭주하는 현상은, 1차 대격변의 전조 증상이었다.

에스라 대륙의 상황을 보아하니, 그때 아스터가 저지른 무모한 짓거리를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한 듯 보였다.

처용이 아스터와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며 인상을 쓸 때.

“세계가 흔들린 다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고.”

연화가 처용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연화의 말에.

“헌터들 중 신명을 얻은 이가 있다는 거?”

아스터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은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너였구나.”

그런 처용의 모습에 연화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모든 헌터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시스템 메시지.

[헌터들 중 최초로 신명(神名)을 얻은 자가 탄생했습니다.]

헌터들 중 신명을 얻은 이가 있다는 소식.

연화 역시 이 메시지를 보자마자 처용을 딱 떠올렸었다.

그리고 지금 처용이 보이는 태도를 확인하자,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신명이 뭔데?”

연아가 궁금한 듯, 처용에게 물었다.

“중복 신명은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는 처용이 ‘중복 신명’만큼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각 성운을 대표하는 성좌들은 각각 자신을 상징하는 신명을 짊어지고 있었다.

처용과 함께하는 신들을 예를 들자면.

여래는 신법(神法).

미륵은 관철(觀徹).

보살은 자비(慈悲).

이렇듯, 신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신명을 짊어지고 있었다.

모든 신들이 각각 다른 신명을 짊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태양(太陽)이라는 거대한 신명의 경우.

라와 아마테라스, 아폴론이 나누어 짊어지고 있었으니까.

바다라는 신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세이돈과 그 휘하의 있던 테티스, 오케아노스 등이 나누어 짊어지고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신명의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바다라는 신명의 가장 거대한 지분을 가진 이가 포세이돈.

나머지 지분을 다른 신들이 나누어 짊어지고 있었다.

중복 신명이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연아는 처용이 중복 신명만큼은 아니라 생각했다.

동시에, 어떤 신명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처용을 딱 집어 상징할 만한 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궁금하다고 물어본다 해서 처용이 과연 답해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신명을 함부로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의문이 일렁이는 연아의 질문에.

“멸천(滅天).”

처용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신명을 이야기했다.

“나보고 하늘을 멸하는 자라고 하더라.”

“어…… 예상은 못 했지만, 뭔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망설임 없는 처용의 대답에 연아가 잠시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늘을 멸하는 자.

이 말을 듣자마자 딱!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까.

“천교를 망하게 만들어서 그런 건가?”

하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운, 천교.

처용은 그런 천교의 세력을 망하게 만든 전적이 있었다.

“천교가 끝이 아니겠지.”

그런 연아의 말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당장, 무너뜨려야 할 하늘이 여기에 또 있잖아?”

처용이 진지한 눈빛을 띠고는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며 말하자.

“아아, 이해했어.”

연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처용이 말한 당장 무너뜨려야 할 하늘은 다름 아닌 에스라 성운이었다.

“신명이 무슨 의미인지도 대략 알 것 같네.”

연화 역시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처용에게 주어진 신명.

아니 처용이 자각한 신명인 멸천, 하늘을 멸하는 자.

처용의 역할은 다름 아닌 감시자와 심판자였다.

에스라 성운은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리고 악신들에게 이 세계를 팔아넘기려 했다.

자신들의 이득과 욕망을 위해서.

비단 에스라만이 아닌, 천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신들의 추악함을 드러내고 심판한 이는 바로 처용이었다.

신들이 우주를 위해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감찰관.

제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신의 권리를 악용한다면, 그 신을 응징하는 심판관.

연화는 처용의 신명이 이러한 의미로 느껴졌다.

“내가 천천히 수준에 맞춰서 알려줄게, 신명을 얻으면서 나도 새로이 깨달은 바가 있으니까.”

처용이 연화와 연아를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명을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명을 얻는 방법, 완전한 신에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아직 이들에게 알리기에는 너무 이른 정보였다.

‘300레벨, 둘이라면 충분히 도달하고도 남겠지.’

본격적으로 신력을 개화해 내는 시기, 신화경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300레벨.

그것이 처용이 잡은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물론, 제시카처럼 그 이전에 신력을 개화할 가능성 역시 존재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급하게 채우려 들면 독이 되는 법.

적어도 최소한의 기준과 수준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발성 게이트로 피해가 큰가?”

신명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처용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물었다.

“아닙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갖춘 덕분에, 몬스터에 대한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

신명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던 아나샤가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지구에서처럼, 이곳 에스라 대륙에도 게이트와 던전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이계의 괴물들, 몬스터의 위협 역시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아스터 교단의 사제들과 성기사, 용병, 모험가, 왕국의 병사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했었다.

전 로스톤 왕국의 경우, 던전이 많이 없는 지역이라 비교적 몬스터의 위협에서 안전한 편이었다.

다만,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숲, 대수림과 가까웠기에, 야생 몬스터에 대한 대비는 갖춰진 편이었다.

각 영지에 배치된 방위 마도포.

본래 그 마도포의 역할은 타국의 침략에 맞서는 것이 아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국경 방어선 덕분에, 저희는 큰 피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처용의 명령에 의해 아나샤가 우선적으로 추진한 국경 방어선 건설.

아라한 왕국을 방어하는 든든한 방어 성벽 덕에, 다행히 몬스터의 피해가 크진 않았다.

게다가.

“위험한 등급의 몬스터는 우리가 즉각 처치해 버렸으니까.”

연아가 몬스터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 듯, 말했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중에는, 아라한 왕국의 병사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등급 몬스터들도 있었다.

물론,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연아와 연화, 류마를 포함한 뱀파이어들이 즉각 처리했다.

“상공에 복이를 대기시켜놓고 주시하면서 위험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처리하라고 명령해 놨어.”

연화의 주력함, 복이와 복이에 타고 있는 개미들의 역할도 컸다.

태풍이와 물결이만 해도, 어지간한 A급 보스 몬스터는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큰 피해는 없다니 다행이네.”

“네, ‘인명’ 피해가 적은 것이 다행이긴 합니다만…….”

아나샤가 처용의 말에 말꼬리를 흐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 말에.

“곤란한 일이 있나?”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아나샤에게 물었다.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는 말에 굳이 ‘인명 피해’가 적다는 말을 읊조렸으니까.

그렇다면 인명 피해 말고 다른 피해는 있다는 소리였다.

“그게…….”

아냐사가 고민하는 듯, 말을 흐리더니.

“후…… 식량 문제가 있습니다.”

결심한 듯, 짧고 굵은 한숨을 내쉬며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 로스톤 왕국의 식량 생산, 특히 농작물 생산량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자연의 생명력이 가득한 대수림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기름진 땅에서 나오는 작물과 숲에서의 사냥으로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괴물들이 대수림 부근을 장악하는 바람에, 그쪽 인근에 있는 식량 창고와 작물들이 망가졌습니다.”

다발성 게이트로 인해 튀어나온 몬스터들.

게이트 중 일부가 대수림 부근에서 발생해 숲을 장악한 몬스터들이 곧 수확을 맞이할 농작물 지대를 습격한 것이다.

당연히 작물 지대 대부분이 망가졌고 그 인근에 있던 작물 저장 창고까지 무너졌다.

물론, 저장 창고는 곡창 지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라한 왕국 수도 내에도 저장 창고가 배치되어 있었다.

보통 왕국이라면 수도에 식량이나 재화를 저장해 놓는 것이 기본이었으니까.

당연히 가뭄과 기근 등, 재난 발생 시 사용되어야 할 비상 곡물 창고도 수도에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 재상과 로스톤 왕이 사치품 거래에 모조리 쓰는 바람에……!”

아나샤가 이미 죽어 버린 로스톤 왕과 전 재상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전 로스톤 왕국은 귀족들의 사치와 수탈로 몸살을 앓던 왕국.

왕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줘야 할 비상 곡물 창고는 대부분 텅 비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며칠, 길면 몇 달은 버틸 수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겨울 내에 많은 국민들이 굶어 죽게 될 판이었다.

다른 나라와 식량 거래를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이단의 왕국이라 불리는 아라한 왕국과 거래하려는 왕국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제가 가진 힘만으로는…… 당장 해결하기가 힘듭니다…….”

아나샤가 분한 듯, 작게 인상을 쓰며 읊조렸다.

처용은 이 대륙의 존망을 위해 신들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작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조언을 구하는 것이 민폐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면,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좋은 거다.”

처용은 아나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는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매번 도와줄 순 없지만, 이번만큼은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이후에는 어떻게든 자생할 방법을 찾겠습니다.”

도움을 주겠다는 처용의 말에 아나샤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동시에 아라한 왕국이 자생할 방법을 찾겠다 말했다.

아나샤는 온전히 처용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계속 처용에게 의지하여 매번 위기를 벗어난다?

그렇다면, 처용이 없을 시, 아라한 왕국은 곧장 무너질 것이었다.

아나샤는 처용에게 새로운 이름을 받아 세운 왕국을 그리 허술하게 만들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한시름 놓았다는 듯, 아나샤가 안도를 표할 때.

“그보다도, 오크 이야기를 좀 들어보지.”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다음 주제, 아주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

다름 아닌, 오크의 출현이었다.

“남부 대사막 너머에 오크 종족 대부락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에스라 대륙에서 살아가는 이종족 중,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진 이종족인 오크.

본래, 아스터 교단의 교리대로라면, 이단 종족인 오크들의 무리를 토벌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오크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에스라 대륙 최남단에 펼쳐진 광활하고도 뜨거운 모래 산맥.

오크 종족은 그 광활한 대사막 너머에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남부 대사막은 조금만 걸어도 태양 빛에 타죽을 것 같은 열기가 피어오르는 장소였다.

게다가 밤이 되면, 그 열기가 환상이었다는 듯, 한기가 가득한 모래바람으로 뒤바뀐다.

낮에는 타죽을 것 같은 열기.

밤에는 얼어 죽을 것 같은 냉기.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극한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대사막이었다.

오크 종족은 그런 최악의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종족이었다.

아스터 교단은 그런 대사막에서 살아가는 오크들을 향해 정벌군을 보내지 않았다.

굳이 지옥 같은 대사막을 뚫고 오크들을 정벌해 봐야, 막대한 손실만 나고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크들은 대사막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상황.

아스터 교단은 대사막의 국경선만 지키고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크들이 대사막 밖으로 나와 아스터 교단을 공격했습니다.”

남부 대사막 밖으로 나오지 않던 오크들이, 에스라 대륙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국경을 지키는 아스터 교단의 신전을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오크들이 선제공격을 했다고?”

“그들이 먼저 공격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노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군요.”

아나샤가 처용의 물음에 잘 모르겠다는 듯, 아는 정보를 이야기했다.

그때.

“망할 아스터 교단 놈들이 이종족들을 납치해 실험했잖아? 그 피해자 중에는 오크들도 있었고.”

연아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스터 교단 놈들이 대사막 인근에 자리한 오크 부락을 습격해 오크들을 잡아갔다고 하더라고?”

“흠, 먼저 오크들을 자극한 건, 아스터 교단이다?”

처용이 연아의 말을 듣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며 묻자.

“동족들을 실험체로 납치해 가놓고 대사막을 넘어오지 말라 지랄하니, 빡칠 수 밖에. 그러니까…….”

연아가 처용의 물음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생명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잔혹한 인체 실험을 자행해 왔던 아스터 교단.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같은 인간만이 아닌 이종족들도 있었다.

그런 이종족들 중 하나인 오크.

아스터 교단은 대사막 경계선과 가까이 있는 오크 부락을 습격해 그들을 실험체로 잡아갔다.

당연히 오크들은 분노했고 국경선 인근에 찾아와 항의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아스터 교단 사제와 성기사들의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함부로 신의 땅을 밟았다는 이유로 항의하러 찾아온 오크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 결과.

-화산의 격노를 보여줘라!

분노한 오크들이 대사막 국경을 지키는 아스터 교단의 신전을 공격했다.

“오크들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백 퍼센트 아스터 교단 새끼들 잘못이야.”

연아가 혀를 차며 말을 마치자.

“어째 일국의 여왕님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

처용이 의외라는 듯, 의문을 담아 물었다.

아라한 왕국의 여왕인 아나샤조차 오크들을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아는 오크들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히히, 아주 충~직한 정보원이 생겼거든.”

연아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처용의 의문에 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