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우웅.
처용이 루나가 연, 붉은 게이트 속으로 발을 들이자.
-쏴아아!
붉은 폭포가 거꾸로 솟구치는 원형의 결계가 눈앞에 나타났다.
루나가 처용을 안내한 장소는 다름 아닌 혈옥 속이었다.
“처음보다 많이 넓어졌네?”
처용이 루나의 혈옥 속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 루나의 혈옥을 봤을 때는 대략 100미터,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의 넓이였다.
지금은 그 크기가 두 배는 더 넓어진 듯 보였다.
“나도 많이 강해졌으니까.”
루나가 처용의 말에 답하듯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금의 상황이 많이 신기했다.
막 밤의 성채를 탈출할 당시와 지금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천지 차이였으니까.
만약, 그 당시의 자신이 지금 정도 수준이었다면, 그리 무력하게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그 이유가 특별한 인간과의 만남이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다.
만약, 처용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족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힘들었으리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잠시 떠올린 루나는.
“그보다도 중요한 건 저거야.”
과거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앞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루나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혈옥의 중심.
“흐음……?”
처용이 루나가 가리킨 장소를 바라보며 의문 어린 침음을 흘렸다.
혈옥의 중심에는.
-우우웅.
금빛과 붉은빛의 오오라를 내뿜고 있는 드래곤의 알이 있었다.
“뭐지? 더 커진 것 같은데?”
처용이 드래곤의 알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처음 드래곤의 알을 봤을 때는 대략 1미터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2미터에 달하는 정도로 그 크기가 커져 있었다.
그리고.
“나아…… 가!”
-끼이이-!
두 손으로 혈옥 중앙에 있는 알을 힘껏 밀고 있는 몽마.
“나가란…… 말이야!”
타라샤가 낑낑거리며 알을 밀어내기 위해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
알을 혈옥 중심에 뿌리를 단단히 박은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끄으으-!”
타라샤가 알을 밑에서 들어도 보고 옆으로 밀고 몸으로 들이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아 좀 나가!”
-빡!
짜증을 토로한 타라샤가 드래곤의 알을 발로 찼다.
-…….
그래도 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으으……!”
타라샤가 제 발이 아프다는 듯, 발을 움켜잡으며 뒹굴었다.
종국에는.
“아씨! 쟤 죽으면 나도 죽는단 말이야!”
-우우웅!
타라샤가 어둠 속성 마나를 뭉쳐 몽둥이를 만들고는 머리 위로 치켜들며 소리쳤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검도 자세를 취하며 깔끔한 동작으로 몽둥이를 내리쳤지만.
-빠악! 팅!
나무막대기로 단단한 철을 친 듯한 소리가 울렸고 몽둥이가 튕겨 나왔다.
그리고.
-빡!
“악-!”
몽둥이가 튕겨 나온 탓에, 도리어 타라샤가 스스로의 머리를 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 아으…… 윽!”
이마를 움켜잡고 주저앉은 타라샤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침음을 흘렸다.
“……쟤 뭐하냐?”
그런 타라샤의 모습을 처용이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루나에게 묻자.
“하아, 나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해결해 보라고 하긴 했는데…….”
루나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타라샤를 보며 답했다.
그리고.
“리리아 공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몽마가 물리력부터 쓰는 건 처음 봤어.”
타라샤에게 다가가 한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숨 섞인 루나의 말이 울리자.
“이익! 이미 다 해 봤단 말이야!”
타라샤가 그런 루나의 말에 항의하듯 짜증을 토로하며 소리쳤다.
그녀가 괜히 힘과 물리력을 사용해 본 것이 아니었다.
몽마의 특기, 환영, 현혹, 유혹 등 가진 모든 수단을 다 써 봤었다.
그 결과.
“내가 마기를 쓰면 저 녀석이 다 빨아먹는다고!”
-화아아!
타라샤가 현혹 마법이 담긴 마기를 알 주변에 펼치자.
-슈르릅!
알 주변에 둘러진 금빛과 붉은빛의 오오라가 타라샤의 마기를 밥 먹듯이 빨아들였다.
그 어떤 흑마법을 담아도 마찬가지.
결국, 마기를 이용한 방법을 포기한 타라샤가 떠올린 방법이 물리적인 방법.
하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았고 좋지 않은 타이밍에 처용과 루나가 나타나 망신을 당한 것이었다.
“흐음…….”
처용이 루나 옆으로 다가와 드래곤의 알을 응시하며 침음을 흘렸다.
통찰의 눈으로 드래곤의 알을 바라보자.
[드래곤의 알 / ??]
[성장하고 있습니다.]
[확인 불가.]
“……?”
드래곤의 알을 확인한 처용이 고개를 기울였다.
성장하고 있다는 문구 외에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
-탁. 우우웅.
처용이 드래곤의 알에 손을 얹으며 옅게 신력을 내뿜었다.
그저 가볍게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우웅. 츠츠츠.
드래곤의 알 주변에 둘러진 오오라가 처용의 신력을 막아 내었다.
“몽마의 마기는 흡수하는데, 신력은 막아 냈다라?”
처용이 그 모습을 보며 읊조렸다.
타라샤의 마기가 닿았을 때는 그 마기를 흡수했다.
하지만 처용의 신력은 흡수하지 않고 밀어 내었다.
마치, 먹기 싫어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루나,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고?”
드래곤의 알을 살펴본 처용이 루나에게 물었다.
혈옥은 뱀파이어 왕족의 힘을 각성한 루나가 깨우친 능력이었다.
그녀만이 가진 고유 결계이자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
처용이 볼 때, 혈옥은 아직 완벽하지 않은 심상 세계와 비슷했다.
즉, 드래곤의 알은 지금 루나의 근원에 자리 잡아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눈앞에 있는 드래곤의 알이 그저 단순한 드래곤의 알이 아니라는 것.
알 안에, 처용이 가지고 있던 태초의 조각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드래곤의 알 자체가 무슨 변수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드래곤의 알이 루나의 근원에 자리 잡은 상황.
아직, 뱀파이어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루나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뱀파이어들을 확실하게 아군으로 만들 중요한 카드였으니까.
변수를 걱정하는 처용의 질문에.
“별다른 이상은 없어, 오히려 기운이 조금 강해졌다고 할까?”
-슈르르-!
루나가 오른손을 들어 혈기를 사용해 보이며 답했다.
핏빛의 혈기가 루나의 손 위에서 타오르듯 일렁였다.
“으음…….”
처용이 활활 타오르듯 일렁이는 루나의 혈기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확실하게 이전보다 강해진 듯 보였다.
짧게 생각을 이으며 침묵한 처용은.
“아무래도 내 선에서 해결하기엔 불가능해 보인다.”
이내 결론을 지었다.
작금의 상황을 당사자인 루나와 처용이 해결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태초의 조각이 깃든 드래곤의 알이니만큼, 함부로 손댈 수가 없었다.
알을 부수는 것 역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아, 뭐 이런 일이…….”
처용이 드래곤의 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루나가 팔짱을 끼고는.
“만약, 무언가가 잘못되면…….”
처용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계약자가 책임지도록.”
루나가 처용을 책망하는 듯한 분위기로 말하자.
“미안하다. 이건 내 탓이다.”
처용은 순순히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했다.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루나, 드래곤의 알을 혈옥 속에 보관해.
루나에게 드래곤의 알을 혈옥 속에 가둬 달라 부탁한 것은 처용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스터가 드래곤의 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신급 성좌와 성운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드래곤의 알을 옆구리에 끼고 싸울 순 없는 노릇.
게다가 카란디아를 버리고 드래곤의 알을 향해 달려가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해서, 루나에게 드래곤의 알을 부탁한 것이었다.
그녀가 가진 고유 영역, 혈옥 속에 드래곤의 알을 가둔다면, 아스터라 해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전투가 끝난 이후, 드래곤의 알을 성역 깊숙한 곳에 보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우선, 스승님과 미륵 님께 알려야겠어.”
처용이 눈앞에 발생한 변수, 드래곤의 알을 바라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
성지, 태룡사의 최정상.
드넓은 호수인 태룡담과 그 옆에 드높게 자라난 세계수.
태룡담에서 산 아래로 흐르는 폭포와 세계수가 있는 자리 사이에 있는 가장 높은 정자.
그곳에 처용과 루나,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는 신격들이 모여들었다.
“혈옥.”
정자 중앙에 선 루나가 혈옥을 펼치자.
-슈화아아!
루나를 중심으로 핏빛 혈기가 퍼지며 혈옥이 나타났다.
혈옥이 나타남과 동시에.
-슈르륵.
루나의 바로 옆에 혈기가 일렁이더니, 거대한 타원형의 알이 솟구쳐 올라왔다.
바닥에 콱 틀어박힌 듯, 밑부분의 일부가 혈기 속에 잠겨 있는 모습.
혈옥 속에 보관된 드래곤의 알이 나타나자.
[흐음…….]
미륵이 드래곤의 알을 유심히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비단 미륵만이 아니라 여래와 카투라 등, 다른 신격들도 드래곤의 알을 관찰했다.
“어떻습니까? 미륵 님.”
처용이 알을 관찰하는 미륵을 향해 묻자.
[……이 아이의 근원에 뿌리를 박았구나.]
드래곤의 알을 관찰하며 생각을 잇던 미륵이 입을 열었다.
[거의 반쯤 융합되어 있다 봐도 무방하다. 함부로 떼어 내면, 둘 다 다칠 것이야.]
“……알 속에 스며든 태초의 조각만이라도 분리할 순 없습니까?”
처용이 미륵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 후 질문을 올리자.
[불가능하다.]
미륵이 확신을 담듯 딱 잘라 말했다.
[지금 내 눈으로도 이 안이 보이지 않는다.]
“미륵 님도요?”
처용이 미륵의 말에 놀람을 표했다.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대신의 권능으로도 드래곤의 알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태초의 조각이 깃든 드래곤의 알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알을 부수고 태초의 조각을 꺼낼까도 생각만 해 봤었습니다만…….”
처용이 드래곤의 알을 응시하며 읊조리듯 말하자.
[……나도 생각만 해 보긴 했다.]
미륵이 답하듯 입을 열었다.
[허나,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두는 것이 좋겠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미륵의 말에 처용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기에, 이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일까요?]
-스윽.
보살이 드래곤의 알 쪽으로 다가가 옅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순간.
-스르륵.
보살의 손에 희미하게 일렁이던 연분홍빛 신력.
그 신력이 알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음?]
의문을 표한 보살이 다시 자비의 신력을 조금 끌어올리며 알을 쓰다듬자.
-우웅. 슈르릅.
알 속으로 보살의 신력이 빨려들어 갔다.
“이 녀석…… 내 신력은 흡수하지 않았는데.”
-우우웅.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신력을 끌어올리며 알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
처용의 신력을 그대로 손에 일렁이기만 할 뿐, 알이 흡수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일 때.
[흠.]
-우웅.
뒤에서 지켜보던 여래가 손에 신력을 두르며 알에 대었다.
-…….
여래 역시 처용과 마찬가지로 알이 신력을 흡수하지 않았다.
[내가 해 볼까?]
-슈화아아.
이번엔 카투라가 손에 신력을 두르며 알에 대었다.
그러자.
-슈르릅.
드래곤의 알이 카투라의 신력을 흡수했다.
[흐음? 요놈 봐라?]
카투라가 드래곤의 알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신격들이 차례대로 드래곤의 알에 손을 대 보았다.
그 결과를 정리하자면.
보살, 카투라, 세계수의 신력은 흡수했다.
반면에 처용과 여래, 미륵을 포함한 다른 이들의 신력은 거부했다.
모두가 각각 다른 결과로 나타난 상황이었다.
“뭘까요? 이게…….”
처용이 드래곤의 알을 보며 의문 어린 목소리로 읊조리자.
[마치,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아이 같구나.]
여래가 생각을 하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먹고 싶은 것만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먹는 듯합니다.]
-탁.
보살이 다시금 드래곤의 알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우웅.
알 위에 얹어진 보살의 손에 옅은 신력이 둘러졌다.
이전처럼 드래곤의 알이 그 신력을 흡수해야 했지만.
-부르르.
드래곤의 알은 조금 떨기만 할 뿐, 보살의 신력을 더 흡수하지 않았다.
[필요한 에너지만 흡수하고 이 이상은 거부하는 것 같군요.]
“필요한 에너지…….”
처용이 보살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며 읊조리고는.
-탁. 우우웅.
다시금 드래곤의 알 위에 손을 얹으며 신력을 끌어올렸다.
다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붉은 신력, 징벌자의 힘을 포함한 다른 힘을 모두 배제했다.
처용이 순수하게 끌어올린 단 하나의 힘은 바로.
‘자비의 손길.’
황금빛으로만 일렁이는 신력, 자비의 손길이었다.
그러자.
-스르륵. 츠즈즈.
드래곤의 알이 자비의 손길을 일부분 흡수하고 나머지는 거부했다.
“입맛 한번 까다로운 것 봐라?”
처용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계약자, 혈기의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우우웅.
루나가 손아귀에 혈기를 피워 올리며 처용에게 말했다.
드래곤의 알이 신력을 흡수한 결과, 루나의 힘이 강해졌다.
“보통 기생(寄生)이라면, 숙주의 힘을 흡수하고 약하게 만들어야 정상인데…….”
처용이 작금의 상황을 다시금 생각해 보며 읊조렸다.
루나의 근원에 자리 잡은 드래곤의 알.
처용의 눈에는 드래곤의 알이 루나에게 기생충처럼 들러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드래곤의 알은 루나의 기운을 빨아먹거나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기운을 더 북돋아 주고 있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
처용이 드래곤의 알을 응시하며 물어보듯 말했다.
그 순간.
-우웅-!
드래곤의 알이 희미한 파동을 토해냈다.
옅은 울림이 처용에게 닿은 순간.
[신수의 격이 반응합니다.]
신수의 격이 반응을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