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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36화 (436/726)

#436화

아라한 왕국의 새로운 국경선.

그곳은 수도 왕궁과 가까운 주요 거점 도시들을 서로 이어 만든 긴 성벽이었다.

새롭게 건설된 성벽 외곽에 있던 작은 도시와 영지들은 모두 버렸다.

그곳에 거주하던 시민들은 이미 수도 근처의 도시로 이주까지 끝마쳤다.

기존 로스톤 왕국보다 영토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탄생한 아라한 왕국은 아스터 제국의 적국.

그런 아스터 제국의 공격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고 그 대비책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국경 수비 성벽이었다.

게다가 본래 로스톤 왕국은 제 그릇에 맞지 않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탐욕스러운 로스톤 왕이 아스터 교단에 충견을 자처하며 얻어낸 보상들.

무분별하게 넓어진 영토이자 관리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은 땅들이었다.

아나샤는 그런 땅들에 미련 따위는 없었기에 가차 없이 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영토가 아니라, 새롭게 탄생한 왕국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여왕 아나샤는 그릇된 욕망을 부정하고 기피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부친, 로스톤 국왕이 그동안 보였던 추악한 욕망을 극도로 혐오했으니까.

추악한 돼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만큼은 극구 사양이었다.

그런 욕망으로 오염되어 썩어가고 있었던 로스톤 왕국이 무너지고 그 위에 새로 돋아난 아라한 왕국.

새싹과도 같은 아라한 왕국이, 나무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정.

그것이 바로 새로운 국경선의 건설이었다.

왕국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

새로운 국경선 건설은 중요한 일이었기에, 여왕인 아나샤가 직접 점검을 나선 것이었다.

“……여기까지 했습니다. 나머지는 철광석이 추가로 도착하는 대로 진행할 예정이고요.”

남쪽 국경선 건설을 도왔던 전 왕국의 왕자.

하레크가 남쪽 국경선 건설의 상황을 아나샤에게 설명했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성벽을 둘러보며 점검하던 아나샤가 하레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과 서쪽, 남쪽으로 쭉 이어진 긴 아라한 왕국의 새로운 국경선.

도시와 도시 사이에 건설된, 투박한 형태의 새로운 성벽.

마치 기초 공사를 막 끝내 놓은 듯한 모습인 성벽은 모두 전 왕국의 왕족들이 만든 성벽이었다.

그 왕족들은 모두 피의 숙청 속에서 아나샤의 자비를 받고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들 모두 아나샤처럼, 강철의 정령과 계약을 맺은 이들.

충분한 광석이 주어진다면, 성벽 정도는 빠르게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지금, 가장 남쪽의 성벽을 맡은 왕족, 하레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쪽 성벽의 끝자락에는 바위 절벽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고를 잇던 하레크가 작은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내가 직접 보고 판단을 내리겠다.”

아나샤가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로 만들어질 국경은 중요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니만큼, 실수 없이 해야 했다.

자신을 믿어 주는 처용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으니까.

이윽고.

-탓.

길게 이어진 성벽의 길을 따라 걷던 아나샤의 발걸음이 끝자락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쪽부터 시작해 서쪽, 남쪽, 반시계 방향으로 길게 쭉 이어지던 성벽의 끝이었다.

그곳에는 남부 대수림 산맥의 일부인 가파른 절벽이 세워져 있었다.

“흐음…….”

절벽을 올려다본 아나샤가 고민하듯 침음을 흘렸다.

서클이 높은 고위 마법사나, 실력이 좋은 전사가 아니라면 오를 수 없어 보이는 드높은 절벽.

만약 적들이 절벽 위를 선점한다면, 병법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절벽 위에 감시탑을 세우면 적들의 동태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겠군.”

아나샤가 절벽과 그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절벽을 없애는 것이 아닌, 활용할 생각부터 했다.

다행히 가파른 절벽의 왼쪽 측면 부분.

경사가 높지만, 충분히 등반할 수 있는 가파른 길이 눈에 보였다.

그 길이 난 방향은 바로 성벽의 안쪽 부분.

반면에 성벽 바깥 부분은 전부 절벽이었다.

천연 성벽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이대로 두고 우리가 활용하는 것이 좋겠어.”

아나샤가 성벽을 활용할 생각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스터 제국을 상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군.”

아나샤가 성벽 끝 절벽을 올려다보며 말할 때.

“감히 아스터 제국과 맞서 싸울 일은 없을 거야.”

-탁.

하레크가 아냐사에게 한 걸음 걸어 나오며 말했다.

지금까지, 여왕인 아나샤를 조심하는 듯 보였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방금의 말속에는 여왕인 아나샤를 향한 존중이 없었다.

그리고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 비열한 웃음을 보이기까지.

“하레크…… 설마?”

불길함을 느낀 아나샤가 입을 연 순간.

-샤아악!

바로 근처에서 성벽 보수를 위해 일을 하던 두 명의 광부가 양손에 단도를 쥐며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난 곳은 아름 아닌.

“죽어라!”

“이단자!”

아나샤와 열 걸음 떨어진 장소에서 성벽 밖을 구경하던 연아의 뒤였다.

마치, 암살자처럼 빠르게 연아의 뒤를 점거한 그들이 단도를 휘둘렀다.

오러 유저인 듯, 단도의 칼날에는 마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윽고.

-촤아! 촤아아!

뒤를 기습당한 연아가 암살자들의 안도에 찢겨 나갔다.

동시에.

“참회의 화염.”

“여신의 분노를 받아라!”

방금 나타난 광부들처럼, 떨어진 장소에서 일하던 두 명의 시민이 손을 뻗어 화염을 쏘아냈다.

그로 인해.

-화륵! 화르륵!

온몸이 찢겨 나간 연아가 새빨간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나샤가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침과 동시에.

-우우웅!

전투를 준비하듯, 강철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척. 척. 스릉! 스르릉!

근처에서 일하던 광부와 시민들이 각각 무기를 꺼내 들며 모여들었다.

대략 삼십 명 정도의 인원들.

시민으로 위장한 채 숨어 있었던 이들이 아나샤를 향해 무기를 겨눈 채 본색을 드러냈다.

“……배신한 것이냐? 하레크.”

아나샤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제1 왕자와 같은 최악의 악질들만은 제외하고 남은 로스톤 왕족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눈앞에 있는 제3 왕자 하레크 로스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는.

-은혜를 갚겠습니다. 누님.

가장 먼저 충성을 맹세하겠다 다짐하며 고개를 숙인 인물.

그런 그가 자신이 베푼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을 저지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배신이라니? 국가를 배신한 건 네년이다. 아나샤.”

-쩌저저적!

하레크가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철의 힘을 끌어 올렸다.

손에 날붙이를 생성한 하레크가 아냐사를 향해 칼끝을 겨누자.

-스릉. 스르릉.

그의 주변으로 모여든 광부와 시민들, 아니 암살자들이 옆에 서며 아나샤에게 칼을 겨누었다.

“어떻게…… 국경 성벽 재건 일에 선발된 이들이……!”

아냐사가 위장한 암살자들을 보며 의문을 읊조렸다.

아라한 왕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새로운 국경선 건설.

이 일에 선발된 이들은 모두 하나하나 엄중한 심사와 절차를 걸쳐 선발된 이들이었다.

아무나 막 뽑은 이들이 결코 아니었다.

심지어 아라한 왕국 내부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던 이들만 작업자로 선발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 중에 아스터 제국의 스파이, 암살자들이 숨어있었다?

아나샤가 의문을 읊조리자.

-촤악. 촤아악.

하레크 옆에 선 암살자들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얼굴 가죽을 잡아 뜯었다.

그러자 나타난 것은 원래 얼굴과는 다른 얼굴들.

“곧 죽을 테니 알려주지, 페이스 마스크라고 하는 아티팩트야.”

하레크가 옆에 있던 암살자가 건네는 얼굴 가죽을 받아 흔들며 말했다.

겉모습, 얼굴을 감쪽같이 바꿔주는 일회용 아티팩트.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뜯어서 만든 거라니까. 신기하지?”

암살자들이 얼굴과 신분을 바꾸고 아라한 왕국에 잠입한 방법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 가죽? 설마 왕국의 시민들을……!”

아나샤가 하레크의 말에 분노를 표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 만든 아티팩트.

그렇다면, 암살자들이 쓰고 있던 얼굴은 원래 주인의 얼굴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에서 짐승 밥이 된 가축들 걱정부터 한다라? 이런 년이 여왕이라니…….”

하레크가 비틀린 미소를 섞어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뭐, 다시 로스톤 왕국이 돌아오고 내가 왕이 될 테니까. 상관없지. 크크크.”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레크가 배신한 이유는 별것 없었다.

아스터 제국을 도와 아나샤를 죽인다면,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 가만히 있으실 것 같나?”

아나샤가 처용을 언급하자.

“마신, 아니 그 인간은 곧 죽어 사라질 거야.”

하레크가 미소를 싹 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스터 제국, 정확히는 에스라 성운의 신들이 처용을 죽이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했다고 들었으니까.

제아무리 마신이라 해도, 한 성운의 신들이 모두 모여 힘을 합친다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예년 뱃속에서 튀어나왔으면 노예답게 기면서 살았어야지.”

아나샤를 향해 모욕적인 말을 내뱉은 하레크가 손을 들어 올리자.

-우웅. 우우웅.

암살자들이 칼날에 오러를 부여하며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자세를 잡았다.

“이제 죽-.”

하레크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선언하듯 입을 연 순간.

“흐음, 할 말은 다 했어?”

-스륵.

연아가 하레크의 오른쪽에 귀신처럼 나타나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읊조렸다.

“뭣!? 무슨!”

-탓.

화들짝 놀란 하레크가 뒤로 크게 물러나며 소리쳤고.

“분명 찢어 죽였을 텐데.”

“……공격해라.”

-샤악! 샤가각!

주변에 있던 암살자들이 의문을 읊조림과 동시에 칼날을 휘둘렀다.

-촤자자자작!

연아를 향한 칼날의 선들이 폭풍처럼 몰아쳤고.

-푸화아아!

오러를 담은 칼날의 무자비한 쇄도에 연약한 소녀의 육체가 찢겨 나갔다.

그러나.

“내가 불사신이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나 봐?”

-스르륵.

거침없이 찢겨 나간 육체가 스멀스멀 모여들더니, 멀쩡한 모습의 연아가 나타났다.

그 순간.

“불사신이라고?”

-샥!

고혹적인 목소리를 내뱉는 누군가가 연아의 뒤에 나타났고.

-우웅! 콰지직!

붉은 오러가 일렁이는 오른손을 연아의 등을 향해 뻗었다.

살점을 강제로 뚫어내는 듯한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푸화아아!

기습을 당한 연아가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그리고 뒤에서 연아를 기습한 여성의 손에는.

-툭. 툭.

작게 박동하고 있는 푸른색의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리치의 한 종류인 것 같은데…… 어차피 근원인 심장을 잃으면 죽는다.”

연아를 처치한 듯 보이는 여성이 손에 쥐어진 심장을 구경하듯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리고.

“계약대로 저 귀여운 여왕님의 심장은 내 것이다.”

아나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대로 해라. 심장 약탈자.”

하레크가 그런 여성의 정체를 언급하며 대답했다.

“이런……!”

아나샤가 하레크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지며 침음을 흘렸다.

타인의 심장을 강탈하는 암살자에 대한 괴담을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검은 단발머리에 왼쪽 눈 아래에 점이 돋보이는 여성.

직접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괴담 속의 주인이 맞는 것 같았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나는 멜리제라고 한단다.”

심장 약탈자가 자신을 멜리제라고 소개하며 아나샤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며 말했다.

“얌전히 내게 심장을 바친다면, 고통 없이 죽여 줄게.”

“어디 한번 가져가 봐라.”

-쩌저저적!

각오를 다진 아나샤가 온몸을 철갑으로 두르며 랜스와 방패를 든 골렘의 형태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심장 약탈자.

“평소 가지고 싶었던 로스톤 왕족의 심장에, 리치의 심장이라…….”

멜리제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오늘은 운이 좋은가? 신기하네.”

평소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오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고양감 때문인지, 멜리제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러게, 신기하네?”

멜리제의 바로 옆에서 연아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

순간, 눈이 커진 멜리제의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딱 심장이 있는 부위만 도려내는 능력인가? 이런 스킬은 처음 보네?”

고개를 앞으로 내민 연아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멜리제의 오른손에 들린 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탓!

화들짝 놀란 멜리제가 빠르게 땅을 박차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되지 아줌마.”

왼쪽 가슴이 뻥 뚫린 체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

“그러니, 내가 아줌마 심장을 가져가도 괜찮겠지?”

연아가 장난기 섞인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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