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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35화 (435/726)

#435화

처용의 의념기, 태극천체일도가 아스터를 베어 버린 순간.

-피이!

아스터에게 사선으로 새겨진 검격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무, 무슨 짓을!?]

아스터가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의문과 경악을 내질렀다.

자신과 연결된 무언가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것이 기분 탓이 아니라는 듯.

-촤라라. 촤라…….

아스터의 명령에 움직이던 백색의 사슬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스르륵! 스륵!

신법재판소 내부에 일렁이던 백색의 기운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아스터의 권능이 완전히 파훼된 듯, 진짜 신법재판소의 기운에 밀려나고 있었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아스터가 베인 가슴 부분을 더듬으며 처용에게 소리쳤다.

방금 처용이 내지른 공격으로 인해.

-우웅. 우웅.

지금 처용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태초의 조각.

그것과 자신을 연결해 주던 선이 끊어져 버렸다.

태초의 조각을 통제하기 위해, 그간 수많은 생명 에너지를 제물로 바쳐 만든 지배 수단이었다.

그 연결 고리가…… 방금 처용이 내지른 검격으로 인해 끊어져 버렸다.

아무리 신력과 권능을 깨우친 인간이라고 해도.

수많은 생명을 제물로 바쳐 만들어낸 태초의 조각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낸다?

고작 인간에 불과한 존재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불가능하다! 네놈은 도대체 무어란 말이냐!]

-화아아!

아스터가 흩어지려는 화신체를 강제로 유지하며 소리쳤다.

[어떻게 하계종 따위가 내 지배에 있는 권능을-!]

[네게 희생되어 생명 에너지를 헌납한 영혼들도 그리 생각할 것 같으냐?]

미륵이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아스터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처용의 의념기, 태극천체일도는 자신의 의지를 현실로 구현하는 기술이자 권능이었다.

태극천체일도에 담긴 염원은 다름 아닌, 아스터의 권능과 연결된 모든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

그로 인해 아스터가 모방하여 만들어 낸 신법재판소의 제어권이 끊어졌다.

동시에 아스터가 소유하고 있던 태초의 조각의 지배권까지 사라졌다.

게다가, 아스터의 지배력에 힘을 더해 주고 있던, 생명 에너지.

그것의 정체는 지상의 세력을 움직여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짓밟아 온 사람들의 생명이었다.

아스터의 명령대로 그저 에너지가 되어 움직이기만 했던 생명력이, 처용의 의념기에 자극을 받았고.

-사각! 스르르!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듯한 모습으로 재빨리 벗어나는 듯이.

[신이라고 모든 만물의 의지를 제멋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아스터를 노려보는 미륵의 눈에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죽은 가축 따위에게 무슨 의지가 있다는 것이냐!]

-화아아!

아스터가 미륵의 쓴소리에 거친 목소리로 대꾸하며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처용의 손아귀에 쥐어진 태초의 조각을 향했다.

아직 아스터에 대한 영향이 조금은 남아 있는지.

-우웅. 우우웅!

태초의 조각이 발광하며 파동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드드! 우웅!

처용이 태초의 조각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파동을 억누르려 했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다르게, 태초의 조각이 진정되지 않았다.

[멍청한 놈, 나조차도 그것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스터가 태초의 조각을 억누르지 못하는 처용을 보며 비열한 미소를 머금었다.

태초의 조각을 다루기 위해 많은 세월을 연구하고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한 성운의 주신인 자신조차도 쉽게 제어하지 못하는 물건이 바로 태초의 조각.

고작 하계종 따위가 태초의 조각을 손으로 만지고 일순간 통제한 것은 놀라웠지만, 거기까지였다.

게다가 태초의 조각을 다루려다가 역으로 조각의 힘에 집어 삼켜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힘을…… 고작 인간 따위가 견딜 리가 없었다.

[태초의 조각이 네놈을 집어삼킬 것이다!]

확신 어린 아스터의 비웃음에.

“……그래?”

처용이 시린 목소리로 읊조리며 태초의 조각을 노려봤다.

그리고.

-쿠우우!

황금빛이 신력 위로 일렁이던 검붉은 색의 신력이 더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쩌적.

태초의 조각 겉면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슨!?]

아스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읊조렸고.

[……제자야.]

[설마?]

여래와 미륵 역시 잠시 눈을 돌려 반응을 보였다.

[혹시나 해서 물으마. 설마 그걸?]

미륵이 혹시? 하는 생각을 하며 처용에게 묻자.

“말을 듣지 않겠다면, 이것을 부수고 ‘역천’으로 잡아먹을 수밖에요.”

-우드드!

처용이 미륵의 예상이 맞다는 듯, 손아귀의 힘을 더 거세게 쥐며 답했다.

말은 역천으로 잡아먹겠다 했지만, 사실은 포확을 사용할 셈이었다.

당연히 무모한 짓이었다.

아무리 포확이 다른 에너지를 잡아먹는 권능이라지만, 손에 쥔 태초의 조각은 다른 에너지와는 달랐으니까.

무려, 태초신이 소멸하며 퍼진 조각.

태초신의 힘이 담겨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능합니다.”

처용은 태초의 조각을 부수고 그 에너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저 느낌에 불과했지만, 처용은 그 느낌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극도로 단련한 무인이 상대를 향해 검을 내지를 때.

적을 ‘확실하게 베어 냈다’라는 감각이 전해졌을 때와 비슷했다.

할 수 있다.

가능하다.

처용의 생각과 감각이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초의 조각을 부수고 그 힘을 차지하려는 이유는 또 있었다.

“이것을 부수지 않으면, 아스터에게로 돌아갈 겁니다.”

어째서인지 힘으로 억누른 태초의 조각이 말을 듣지 않은 이유.

-우웅. 우웅.

지금도 진동을 토해 내고 있는 태초의 조각이 처용의 손아귀에서 나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아스터에게 돌아가려는 듯, 앞을 향해 강한 인력을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태초의 조각이 내뿜는 의지까지도 처용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손을 놓거나 방심하면, 태초의 조각이 다시 아스터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아스터는 이 태초의 조각으로 더 무모한 짓을 저지를 것이다.

그렇게 될 바에는…….

“내 손에 쥐어진 걸, 개새끼에게 줄 바엔, 부숴서 씹어먹는 게 낫지.”

-우드득! 우득! 쩌적!

처용이 태초의 조각을 더 거세게 쥐며 아스터를 향해 적대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태초의 조각을 부순다고!? 저 짓거리를 두고만 볼 생각이더냐!]

아스터가 처용이 벌이려는 짓거리를 보며 다른 신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대상에는 처용을 돕는 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처용과 동맹이라지만, 신으로서 처용의 행동을 용납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화염부 – 옥염(鈺炎)방패.]

-화르륵! 파아!

여래가 처용에게 달려들려는 천사와 신들을 노려보며, 처용 주변에 불타오르는 방패를 만들어 저지했다.

그리고.

[네 뜻을 관철하거라.]

미륵이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우웅. 촤라라!

신법의 존엄으로 금빛 사슬을 조종해 신과 천사들을 공격했다.

해전무신을 포함한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

태룡전에 합류한 신들 중, 처용을 저지하려는 신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이!]

그 모습을 본 아스터가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이를 갈자.

“네놈이 졌다. 아스터.”

-파지직! 촤아!

처용이 순식간에 아스터의 앞으로 다가와 태극천체일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사가각! 파아아!

경악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반으로 갈라진 아스터의 화신체가 빛무리로 화하며 사그라져갔다.

동시에.

-피이……!

시간이 다 된 듯, 처용의 손에 쥐어져 있던 태극천체일도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처용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태초의 조각.

-우드드! 쩌적! 파사사!

결국, 꾸준히 가해지던 처용의 힘을 더 견디지 못한 듯, 태초의 조각이 부서지며 터져 나갔다.

그 순간.

-파아아! 콰아아!

터져 나간 태초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가 처용을 휘감았다.

“지랄하지 말고 내 손에 모여라.”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신력을 끌어올렸고.

-콰아아! 화악!

붉은빛이 일렁이는 황금빛 신력이 주변에 휘몰아치는 에너지를 휘감았다.

그때.

[우주의 천칭(天秤)이 당신의 의지에 반응합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동시에.

-파아아……!

거칠게 반항하며 날뛰던, 부서진 태초의 조각에서 나온 에너지가 잠잠해졌고.

-슈화아아-!

처용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천칭(天秤)이 당신의 운명을 좌우하기 시작…….]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 이어졌고.

-우웅.

무언가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처용에게 가해지기 시작했다.

“……!”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 처용이 붉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치켜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 위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모습.

-우웅! 파아아!

허공을 노려보던 처용이 신력을 응축하여 파동처럼 뿜어대자, 주변에 가해지던 압력이 풀렸다.

[운명을 좌우할 수 없는 대상…….]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계속 이어지며, 처용에게 다시금 압력이 가해졌다.

하지만.

-쿠구구! 파아!

처용이 이전보다도 더 강한 파동을 내뿜자, 압력이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그러자.

[천■■ ■■■ 들■ 당■을 ■■합…….]

[이 우■■ 운■을 ■제■…….]

[■■…….]

이번엔 읽을 수 없는 시스템 메시지들이 처용의 눈앞에 나열되었다.

그리고.

-피이이!

처용에게서 뿜어지는 환한 빛이 크게 퍼지며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하얗게 변한 영향으로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 와중에.

[계승자 한처용에게 신명(神名)이 부여됩니다.]

[당신이 신명은…….]

빛으로 인해 처용의 눈이 거의 감기기 직전.

[멸천(滅天)]

[당신이 신명은 ‘하늘을 멸하는 자’입니다.]

처용은 자신이 부여받은 역할.

아니, 스스로 자각(自覺)한 신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처용과 카란디아가 룬테라 왕국으로 향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시점.

“국경 성벽의 재건은 순조롭습니다. 여왕님.”

아나샤의 뒤에서 그녀를 따라 걷고 있는 벤이 보고를 올리듯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아나샤와 벤이 있는 장소는 아라한 왕국 국경에 새로 지어진 성벽 위였다.

둘은 차후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국경의 경계선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이제, 성벽 재건 부분은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벤 재상.”

벤의 보고에 아나샤가 존중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라톤 영지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아나샤를 충실히 따라온 벤.

그는 이제 단순한 나라의 관리, 일개 행정관이 아니었다.

아라한 왕국의 재상(宰相).

군주의 바로 아래에서 국정을 보좌하는 최고 책임자.

모든 귀족과 관리들을 통솔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력자.

벤은 이제 왕국의 재상이 되어, 여왕인 아나샤를 보좌하고 있었다.

“모든 권한을 일임하겠습니다. 국내 국정을 정리해 주십시오.”

이어지는 아나샤의 말에.

“알겠습니다. 여왕님.”

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왕국의 왕녀였던 아나샤.

제 발로 왕녀의 신분을 벗고 라톤 영지의 영주가 되었던 아나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일국의 군주가 되었다.

게다가 앞서 보인 두 모습과는 다르게, 이젠 더 이상 미숙하지 않았다.

벤은 미숙함을 벗고 군주의 위엄을 보이는 아나샤가 대견스러웠다.

지금껏 폭정과 삐뚤어진 욕망만을 추구해 온 왕과 왕족들.

구(舊) 왕족들과는 전혀 다른, 성군의 모습을 보이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그런 그녀를 따른다 생각하니 자부심이 절로 차올랐다.

게다가 성군인 아나샤가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운 존재.

처용에게도 속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재상.”

아나샤가 존중 어린 목소리로 벤을 향해 말했다.

벤 아저씨라고 부를 때와는 다른 조금 딱딱한 말투였지만.

“예.”

벤은 그런 아나샤를 향해 믿음 어린 목소리로 답하며 한 번 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부탁해요. 재상 아저씨~.”

아나샤를 대신해 그를 ‘재상 아저씨’라고 부르는 소녀.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된 재상에게 해서는 안 될 버릇 없는 말이라 할 수 있었지만.

“걱정 마십시오. 연아 님.”

벤은 그런 소녀, 연아에게 작은 미소를 보이며 정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신, 처용과 함께 이 세계로 넘어온 소녀.

겉모습은 아나샤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 소녀였지만, 절대로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녀 역시 천사를 상대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무력을 지닌 존재였으니까.

그런 존재가 아나샤의 옆에 붙어 자잘한 일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저분이 같이 있는 한, 여왕님은 안전하겠지.’

연아가 아나샤 옆에 붙어 있는 진짜 이유는 바로 아나샤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마신만큼은 아니라 해도, 가늠할 수 없는 무력을 지닌 연아가 여왕을 지키는 한, 여왕은 안전하리라.

“그럼 물러나 보겠습니다.”

속으로 안도를 표한 벤이 명령을 받은 업무 처리를 위해 물러났다.

벤이 왕궁으로 향했을 때.

-저벅.

“나, 남쪽 수도 관문을 점검할 차례입니다. 누님, 아니 여왕님.”

아나샤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옅은 갈색 머리의 어린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 말에.

“가지, 하레크.”

아나샤가 명령하듯 답하고는 앞장서 걸어 나갔다.

아라한 왕국은 로스톤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고 새롭게 새워진 왕국.

그런 구(舊) 왕국, 로스톤 왕국의 제3 왕자인 하레크 로스톤.

무언가 불편한 시선으로 아나샤에게 다가와 보고를 올린 남자의 정체였다.

“……예. 여왕님.”

-저벅.

하레크가 앞서 나가는 아나샤를 따라 걸으며 답했다.

그리고.

“……흐음.”

하레크를 보며 의미심장한 침음을 흘린 연아가 둘을 따라 걸어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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