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콰아아!
아스터에게서 거친 기운이 솟구침과 동시에.
-화아아-!
그의 손아귀에 있는 태초의 조각으로 강렬한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승님.”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낀 처용이 바로 근처에 있는 여래를 부르자.
[분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가?]
여래가 아스터, 정확히는 아스터 손에 쥐어진 태초의 조각을 노려보며 읊조렸다.
[참으로 어리석군.]
“막아야 합니다.”
처용이 여래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스터가 태초의 조각으로 사고를 치기 전에 막아야만 했다.
아마테라스가 태초의 조각을 잘못 다룬 결과, 재앙의 나무가 탄생했었으니까.
그나마 재앙의 나무는 처용이 알고 있던 사전 지식과 미륵의 도움으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떤 재앙이 발생할지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지금 아스터가 저지르려는 짓거리를 막아야만 했다.
지금만 봐도.
[위험합니다. 주신.]
[하계에 어느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지금껏 잔혹한 짓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아 온 두 대신.
하메라와 로메라조차 아스터를 만류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관없다! 하계가 조금 망가져 봐야, 하계종들이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이미 분노에 눈이 돌아간 아스터의 의지는 단호한 듯 보였다.
-콰아아!
태초의 조각 주변에 흐르는 기운이 점점 더 거친 진동을 내뿜기 시작했다.
척 봐도 위험하다는 것이 절로 느껴질 정도의 불길함이 전해졌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
신법재판소를 다룸과 동시에 아스터의 무모한 행동을 지켜본 여래가 처용에게 물었다.
처용은 지금 가장 강력한 권능, 태극천체장을 발현한 상태.
처음보다 많은 힘을 되찾았다 해도, 상당한 신력을 소진하는 권능이었다.
“10분은 더 유지할 수 있습니다.”
처용이 주변에서 달려드는 다른 천사들과 신들을 향해 손들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무리를 한다면 더 유지할 수도 있었다.
지금의 처용은 처음 에스라 대륙의 땅을 밟았을 때보다 더 강해진 상태였다.
이 세계에 오면서 사냥한 천사의 수만 따져도 상당했으니까.
지금껏, 에스라 대륙에서 더 적극적이고 과격하게 행동했던 이유.
이 과정에서 사냥한 적들과 천사가 모두 경험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에스라 대륙에 처음 발을 들일 때에는 200레벨 초반대.
지금은 그 레벨이 슬슬 중반대에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기회를 노리거라 제자야. 곧 틈이 생길 것이다.]
-우우웅.
여래가 신법재판소의 기운을 더 끌어 올리며 처용에게 말했다.
-우웅! 촤라락! 촤락!
여래의 신력을 받은 신법재판소의 사슬들이 찬란한 금빛을 빛내며 휘날렸다.
-촤라락! 촤락! 쿠궁!
아스터가 태초의 조각에 정신이 팔린 탓인지, 백색의 사슬들이 일제히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촤라라!
일부의 사슬이 아스터를 향해 쇄도했다.
그 순간.
[늦었다.]
태초의 조각을 쥔 아스터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고.
-쿠구! 촤라락!
강렬한 파동이 태초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와, 금빛의 사슬들을 모두 밀어냈다.
-콰아아!
태초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 점점 더 거칠어졌고.
-쩌적! 쩌저적!
그 영향을 받은 신법재판소 외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하하! 모조리 제물로 만들어 버리겠다!]
태초의 조각을 폭주시킨 아스터가 광소를 지어 보이며 소리쳤다.
이대로 태초의 힘이 계속 폭주한다면 거센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무려 태초의 힘이 일으키는 폭발.
그 여파는 지금 폭주를 일으키는 아스터조차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신들은 화신체만 잃을 뿐, 그 외에는 타격이 없다.
그러나 처용과 카란디아는 달랐다.
아무리 혈선의 신관이 예상보다 웃도는 힘을 가졌다 해도, 이 폭발에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아스터는 이대로 처용을 처리하고 불완전하게나마 시스템의 벽을 찢어 문을 열 생각이었다.
그때.
[우매한 녀석, 기어코 못난 짓을 자처하는구나!]
-우웅!
여래의 옆에 황금빛 게이트가 열리더니, 미륵이 나타나 소리쳤다.
[멈추거라.]
-쾅!
미륵이 반쯤 무릎을 꿇으며 땅을 향해 자신의 신물, 관철의 조정자를 거세게 찍으며 명령하듯 말하자.
-스르르!
태초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파동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관리자! 이제 와서 개입해 봐야 늦었다!]
-우웅!
아스터가 미륵을 노려보며 소리치고는 태초의 조각에 힘을 부여하며 폭주를 더 부추겼다.
미륵의 조치로 인해 태초의 조각의 폭주가 조금 누그러지는 듯 보였지만.
-콰아아!
태초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 다시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어리석은 것,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뒤늦게 온 것 같으냐?]
미륵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고는.
-화아아!
왼손에 밝은 빛을 흩뿌리는 구체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초의 조각.
아니, 태초의 조각 중 가장 거대한 조각.
태초의 심장이었다.
-화아! 화아아!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이 떨어져 생기는 파문처럼, 태초의 심장에서 새하얀 파문이 일렁이며 펴졌다.
점점 넓게 퍼지던 파문이 아스터가 쥐고 있던 태초의 조각에 닿자.
-파지직! 파직!
마치, 파문에 저항하듯, 옅은 전류가 튀기 시작했다.
이윽고.
-쿠구……!
태초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진동이 점점 약해져 갔다.
[그, 그건?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분명-!]
아스터가 미륵의 손에 쥐어진, 일부가 깨진 둥근 구체를 보며 경악을 표했다.
[파괴했다고 알고 있었겠지, 네놈들이 살해한 천찰의 대신과 함께 말이다!]
그런 아스터의 반응에 미륵이 냉랭한 분노를 표하며 소리쳤다.
지금 미륵이 손에 쥐고 있는 태초의 심장.
이것은 본래 천찰의 대신, 환인이 관리하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환인은 어느 날 갑자기 미륵에게 태초의 심장을 맡기고는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아니,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천찰의 대신을 살해한 용의자 중 하나는 바로 천교.
그리고 그들을 도왔던 이들은 바로 순혈자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순혈 의회 멤버들이었다.
순혈 의회 멤버들 중 누가 천찰의 대신을 죽이는 데 동참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었지만.
[천찰의 대신에 이어 사신수와 드래곤까지,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지금 이 순간, 그 범인 중 하나가 드러났다.
[……차라리 잘 되었군. 태초의 심장도 내 손에 넣겠다!]
아스터는 잠시 당황했던 표정을 지우고는 곧장 탐욕을 드러냈다.
천찰의 대신이 소멸하며 함께 부서진 줄 알았던 태초의 심장.
저것이 있다면, 대격변을 보다 수월하게 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
[제 그릇에 맞지도 않은 강욕을 부리는구나!]
미륵이 그런 아스터를 향해 경멸 어린 표정을 짓고는.
-탁.
오른손에 쥐고 있던 관철의 조정자에서 손을 떼며 일어섰다.
동시에 무언가를 쥐듯, 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아아! 파앗!
황금빛이 미륵의 손아귀에 모이며, 작은 망치의 형상이 나타났다.
바로 신법재판소의 신물, 신법의 존엄이었다.
[재판장을 대리할 권한을 맡겠네.]
[허가합니다.]
신법의 존엄을 쥔 미륵의 말에 여래가 곧장 대답한 순간.
-촤라락! 촤락!
미륵이 신법재판소의 금빛 사슬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웅! 우우웅!
신법재판소의 제어권을 넘긴 여래가 수십 장의 자연부를 소환해 띄우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염부 – 염룡진격(炎龍進擊).]
-화르륵! 크롸아아!
이글거리는 화염의 원소가 뭉쳐져 만들어진 용이 나선을 그리며 천사들을 향해 쏘아졌고.
[뇌격부 – 뇌룡진격(雷龍進擊).]
-파지직! 크라라!
샛노란 번개의 원소가 뭉쳐져 만들어진 용이 주변의 천사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제길! 위력이!]
[막아라! 뭉쳐라!]
직접 앞으로 나선 여래의 선술에 천사들이 힘에 부친 듯,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때.
-화르륵!
-파직!
천사들을 휩쓸던 화룡과 뇌룡 앞에 하메라와 로메라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화륵! 파직! 쿠구구!
거친 화염과 화염이, 날카롭게 스파크를 튀기는 뇌전과 뇌전이 서로 충돌하며 굉음을 자아냈다.
직접 나선 여래와 두 명의 대신이 서로 격렬히 충돌한 순간.
“태극천체장 – 신검합일(神劍合一)!”
-탁! 스르륵! 스륵!
처용이 두 손을 합장하고는 천사들을 상대하던 태극천체장의 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에스라 성운의 신격들은, 태룡전의 신격들과 미륵이 다루는 신법재판소, 여래가 상대하고 있는 상황.
이제 자신은 더 중요한 타겟을 노릴 때였다.
-스륵! 화아아!
백여 개의 손들이 처용 앞에 모여들며 한 줄기 빛으로 변했다.
동시에 긴 막대 형태로 압축되며 처용의 손아귀에 모여들었다.
“의념기 – 태극천체일도.”
-피이이!
처용이 태극천체장의 손들을 한 지점에 모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의념기.
자신의 의지를 현실에 관철할 수 있는 권능이자, 심상검(心象劍).
태극천체일도(太極天體一刀)였다.
본래 태극천체일도를 쓰려면, 여래의 도움을 받아 완전한 항마의 화신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자신의 결전기로 소환한 무구를 한 지점에 합쳐 힘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처용은 뤼장첸을 상대할 당시보다도 힘을 많이 회복하고 더 성장한 상태.
지금의 수준에서는 태극천체장으로 소환한 손들을 한 지점에 모으는 것으로 의념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슈화아아!
처용의 손아귀에 태극천체장을 구성하던 모든 손들이 한 지점에 모여 빛을 내었다.
태극천체장의 힘을 한 지점에 성공적으로 모으자.
-키이잉!
처용의 양손에 마치 빛이 뭉쳐져 만들어진 듯한, 한 자루의 도(刀)가 나타났다.
스스로의 의지를 권능으로 승화시켜 현실에 구현하는 기술인 의념기.
-우웅! 샤아악!
태극천체일도를 양손으로 굳게 쥔 처용이 아스터를 향해 돌진해 나갔다.
[막아라!]
[저 빌어먹을 하계종을 죽여라!]
그 모습을 본 에스라 성운의 신들과 천사들이 처용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파도의 검 – 첫 번째 장.]
-샥! 쏴아아!
환도를 치켜든 해전무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처용의 오른쪽에 나타났고.
[들이치는 밀물!]
-촤아아!
처용에게 달려드는 천사와 신들을 향해 파도를 쏘아내며 저지했다.
뒤이어.
[화염부, 철벽부 – 염철궤(炎鐵潰).]
-촤자자자-! 촤작!
여래가 만들어 낸, 새빨갛게 달구어진 철조망이 처용의 왼쪽에 솟구쳐 오르며 천사들을 저지했다.
그리고.
[멈춰라. 묶여라.]
언문이 문자의 언령을 읊자.
-우웅. 우우웅!
처용을 위에서 급습하려는 천사와 신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동시에.
[백회(白灰).]
-화르륵! 콰아아!
크루마가 새하얀 백염이 응축된 브레스를 내뿜었고.
[대양(大洋)의 숨결.]
-쏴아아! 푸화아아!
청룡이 숨을 들이쉬고는 청색의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쏴아아! 화르륵!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는 백색과 청색의 브레스가 서로 교차하며 처용의 위를 휩쓸며 지나갔다.
이윽고.
-우웅!
태극천체일도를 치켜든 처용이 아스터의 앞에 도달했다.
[이 건방진 하계종이 감히!]
-화아아! 촤르륵!
아스터가 왼손을 뻗어 새하얀 빛무리와 하얀 사슬을 불러내었다.
사슬과 빛무리가 엮인 벽이 처용을 가로막았고.
-콰쾅! 푸화아아!
처용의 태극천체일도가 아스터가 만들어 낸 빛무리와 사슬의 벽을 내리쳤다.
권능과 권능의 힘이 서로 격돌하자, 그 충격으로 강렬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감히 하찮은 하계종 따위가! 신에게 맞서다니!]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린 아스터가 분노를 내지르며 권능에 힘을 더했다.
[네놈 존재 자체가 우주의 질서에 어긋난다!]
“……우주의 질서를 망치는 건 네놈이겠지. 아스터.”
-우드드!
아스터의 분노 어린 반응에 처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하찮은 하계종한테 권능으로 밀리는 주신은 얼마나 하찮은 놈일까?”
-키이잉!
처용이 비웃음 어린 말을 읊조리며 태극천체일도의 힘을 더하자.
-촤아아-!
태극천체일도가 아스터가 내세운 사슬과 빛무리의 벽을 갈라 내기 시작했다.
[이,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껏 한 성운의 주신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아스터.
항상 인간을 가축 그 이하로만 판단했던 선천적 신격.
그런 가축과 같은 존재에게 선천적 신격이자 주신인 자신의 권능이 밀린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상에 아스터가 부정하듯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인간 따위가, 가축에 불과한 존재가 신에게 거스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촤아아!
그런 아스터의 염원이 부서지듯, 백색의 사슬과 빛무리가 반으로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그 순간.
-휙!
아스터가 손에 쥐고 있던 태초의 조각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우웅!
태초의 조각이 아스터의 손에서 살짝 벗어나 거친 파동을 내뿜었다.
아직 태초의 조각 속에 남아있는 폭주의 기운이었다.
제아무리 처용이 하계종답지 않은 힘을 지녔다 해도, 태초의 조각이 내뿜는 힘을 견딜 리가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두 손으로 쥐고 있던 태극천체일도에서 왼손을 떼고 앞으로 내밀었다.
이윽고.
-탁.
처용이 폭주의 기운을 뚫고 왼손으로 태초의 조각을 잡아챘다.
[멍청한 것! 이대로 폭주에 휩쓸려-!]
그 모습을 본 아스터가 냉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설마 무식하게 맨손으로 태초의 조각을 잡아챌 줄은 몰랐지만, 그로 인해 처용은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드드! 지잉!
처용은 왼손으로 태초의 조각을 강하게 움켜쥐며 폭주의 기운을 힘으로 억눌러 보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인간이 맨손으로 태초의 조각이 폭주하는 힘을 억눌렀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아스터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가능하다!]
“난 되는데?”
아스터가 보이는 경악에 처용이 작은 만족이 섞인 비웃음을 던지고는.
-촤아아!
오른손에 쥐고 있던 태극천체일도를 사선으로 휘둘러 아스터를 베어 버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