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33화 (433/726)

#433화

[저 빌어먹을 이단자들을 당장 처치하라!]

뜻대로 되는 일이 없자, 화가 폭발한 듯, 아스터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동시에.

-우우웅!

왼손에 쥐고 있던 태초의 조각을 더 거세게 쥐며 태초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에 영향을 받았는지.

-촤라라라!

아스터가 만들어내는 백색의 사슬이 두 배로 늘었다.

여래의 진짜 신법재판소의 기운에 밀리던 백색의 기운 역시 더 밀려나지 않았다.

-촤락! 촤라락!

수가 늘어난 사슬이 더 강한 기운을 두르고 여래와 처용을 향해 쇄도했다.

-촤라라!

여래 역시 신법재판소의 기운을 더 끌어 올리며 금빛 사슬을 소환했다.

-촤라락! 차카캉!

백색의 사슬과 금빛의 사슬이 서로 충돌했을 때.

[참회하라!]

-화르르륵!

참회의 여신, 하메라가 양손에 화염을 압축하며 권능을 발동했다.

여래가 아스터의 공격을 막은 찰나를 노린 공격.

압축된 참회의 화염이 강렬한 기세로 여래의 빈틈, 왼쪽을 향해 나타난 순간.

-우웅. 샥!

처용이 연 게이트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여래를 보호하듯 칼을 뽑으며 옆에 섰다.

[파도의 검 – 세 번째 장.]

여래에게 향하는 참회의 화염을 막아선 자는 다름 아닌 해전무신.

[솟구치는 파도!]

-스릉! 샤아악!

그가 환도로 지면 아래를 부드럽게 그으며 선을 그리자.

-촤아아아!

칼날이 지나간 선 위로 거친 파도가 솟구쳤다.

-콰콰! 쾅! 쏴아아!

하메라가 쏘아 낸 참회의 화염이 해전무신이 일으킨 파도의 벽에 충돌했다.

강렬한 폭발음이 울리며 수증기가 터졌고.

-사아아……!

터진 수증기가 빠르게 가라앉으며 파도의 벽과 참회의 화염이 동시에 사라졌다.

[어디서 하찮은 신격 따위가-!]

-화르르륵!

하메라가 자신을 가로막은 해전무신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더 강한 참회의 화염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손아귀에 끌어모은 참회의 화염은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껏 끌어모은 화염의 힘이 전부 소진되기 전까지, 강렬한 화염을 계속 쏘아 낼 수 있었다.

-화르륵! 화륵!

조금 전 여래에게 향하던 참회의 화염보다 더 강한 위력의 화염이 한 번 더 쏘아졌다.

그때.

-쏴아아!

해전무신의 뒤에서 물줄기가 모여들더니.

[돕겠소. 장군.]

몸집을 줄인 청룡이 나타났다.

-콰아아!

청룡의 나타나면서 생긴 물줄기가 두 갈래 채찍처럼 휘어지며 뻗어 나가더니.

-촤라락! 파아!

하메라가 쏘아낸 화염을 휘감고는 수증기가 되며 사라졌다.

그리고.

-쏴아아.

청룡이 나타난 순간, 신법재판소 내부에 옅은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에 영향을 받았는지.

-화르륵……!

하메라의 양손에 활활 타오르던 참회의 화염이 조금 줄어들었다.

[감히 미물 따위가!]

자신을 방해하는 청룡을 노려보며 하메라가 소리치자.

[참으로 어리석은 신이구려.]

청룡은 모욕적인 하메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목소리를 내었다.

[대신격에 닿았다 하여, 만물을 하등하게 여기는 것인가? 너무나도 우매하군.]

청룡은 하메라의 오만과 분노에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된 배움을 받고 자라난 아이를 보듯,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를 냈다.

[사람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스릉.

그런 청룡의 말에 해전무신이 하메라를 향해 환도를 겨누며 말했다.

[내가 볼 땐, 신 역시 다를 바 없소.]

사람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

혹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가진 본질(本質)과 본성(本性), 혹은 천성(天性)은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는 인간만이 아닌, 신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그때.

[사라져라. 하찮은 하급 신격 놈들.]

-콰르릉!

은밀하게 신력을 모으던 로메라가 청룡과 해전무신 위로 녹색의 벼락을 떨구었다.

대신인 하메라를 향해 시선과 감각을 집중할 때 노린 빈틈.

그러나.

-쏴아아!

해전무신과 청룡이 보인 물줄기보다도 더 짙은 물줄기의 파도가 로메라의 벼락을 막아섰다.

-촤아! 파지지직!

청색의 물결과 녹색의 벼락이 서로 충돌해 흩어지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누가 감히-!]

로메라가 자신의 공격을 방해한 이를 향해 분노를 표함과 동시에 경계심을 보였다.

아무리 신들의 힘이 신력의 크기와 ‘격’으로 나뉜다지만, 상성 간의 우위가 없지는 않았다.

물은 불을 막기에는 탁월하지만, 번개를 방어하기엔 매우 취약한 속성이었다.

애초에 번개의 힘을 지닌 로메라가 해전무신과 청룡, 물의 권능을 지닌 둘을 노린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물의 권능을 지닌 누군가에게 자신의 벼락이 차단당했다.

무려 대신급 성좌가 발휘하는 벼락이 물의 권능에 가로막힌 상황.

게다가 짙은 물결 속에서 순간 느껴졌던 격은 결코 낮지 않았다.

갑옷을 입은 성좌와 드래곤의 아종으로 보이는 성좌보다도 높은 격이 느껴졌으니까.

게다가.

‘이 기운…… 분명, 저 하계종이 참회와 회개의 심판을 막을 때?’

이전, 지상을 향해 쏘아냈던 참회와 회개의 심판.

처용이 신들의 심판을 막아낼 때 사용했었던 기운 중 하나와 같았다.

하메라가 자신을 가로막은 물결의 주인을 찾으며 경계할 때.

[흐음? 대신은 대신인가? 생각보다 저릿하네?]

-탓.

해전무신과 청룡 옆에 인간형의 카투라가 나타나며 말했다.

로메라의 벼락을 가로막은 물줄기는 다름 아닌 카투라의 심해였다.

[감히 대신인 내 앞을 막아서는 것이냐?]

-파직. 파지직!

로메라가 전류가 일렁이는 격을 내뿜으며 적대감을 표하자.

[네게 하대받을 정도로 내가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단다. 꼬마야.]

-스스스.

카투라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청색의 신력을 스멀스멀 내뿜었다.

[……태초의 마수!]

카투라를 노려보며 짧게 생각한 로메라가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태초신에게 버려진 짐승 따위가-!]

혐오감을 가득 드러낸 로메라의 말이 마저 끝나기도 전에.

-화륵! 콰아아!

카투라의 뒤에서 새하얀 화염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로메라에게 쏘아져 나갔다.

[어딜 감히!]

-화르륵!

바로 근처에 있던 하메라가 로메라 앞에 화염을 쏘아 보내며 옆에 섰다.

그리고.

[네놈들은 대신이기 전에, 성좌의 자격조차 없다. 악마의 앞잡이들.]

-화륵. 화르륵.

카투라의 뒤에 새하얀 백염이 타오르더니, 5미터 길이의 불타오르는 도마뱀, 크루마가 나타났다.

대신은 아니지만, 상당한 무력을 지닌 성좌, 해전무신과 청룡.

뒤이어 나타난 태초의 마수까지.

[이……!]

[……좋지 않아.]

하메라와 로메라가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며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대신이라지만, 상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때.

[여신님을 도와라!]

[이 이단자들이!]

처용이 발휘한 항마의 화신, 여래가 신법재판소로 소환한 금빛의 사슬을 상대하던 천사와 신들.

그중 일부가 하메라와 로메라를 도우러 나섰다.

[놈들을 처치해라!]

[천사들은 앞으로!]

-샥! 샤샥!

스무 명의 천사들이 카투라를 포함한 네 명을 둘러싸며 나타났다.

빛의 창과 검이 사방에서 일제히 쏟아지려는 순간.

[모두 멈춰라.]

중후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울렸고.

-우웅!

천사들의 화신체에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시간이 멈춘 듯,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동시에.

“천마신공 - 백보신권, 개(改).”

-우웅! 우우웅!

멈춘 천사들의 주변에 수십 개의 손들이 주먹을 쥐며 나타났다.

바로 처용이 발휘한 항마의 화신의 권능.

태극천체장으로 만들어 낸 손들이었다.

처용이 수인을 맺으며 어둠 속성 마나를 더하자.

-스르르륵!

허공에 떠오른, 주먹을 쥔 손들이 일제히 검게 물들었다.

반투명한 금빛의 손들이 완전히 검게 물든 순간.

“백보암영신권(百步暗影神拳)!”

-쐐에에에-!

어둠이 넘실거리는 주먹들이 일제히 천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천사들의 움직임이 정지된 순간을 노린 일격.

-퍽! 퍼서석! 파아……!

가장 앞서서, 검은 주먹에 얻어맞은 천사들이 풍선처럼 터지며 사라졌다.

순식간에 열 명의 천사가 처용의 공격에 당해 화신체가 흩어졌고.

[제길!]

[일단 피해라!]

-파아아!

정체불명의 속박 권능에서 겨우 벗어난 대천사들이 날개를 크게 펴며 뒤로 물러났다.

“나와 싸우다 말고 어딜 쳐 가냐 이 비둘기 새끼들아.”

처용이 전장을 이탈해 하메라와 로메라에게 합류한 천사와 신들을 보며 비웃었다.

그리고.

[허허, 신성한 재판장에 왜 이리 날벌레들이 많은 것인가?]

-저벅.

처용의 옆에 허름한 삼베옷을 입은 이가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촤락. 촤락.

한 장 한 장, 천천히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는 허름한 책을 오른손에 든 자.

[날갯소리가 거슬려 책을 읽을 수 없으니, 내 손수 청소를 해야겠어.]

언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의 오른손 위에 펼쳐진 낡은 책 위에는 ‘멈춰라’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조금 전, 천사들의 몸을 멈추게 만들었던 권능.

그것은 언문의 권능인 문자(文字)의 언령(言靈)이었다.

[부슬비에 맞은 잠자리는 날개가 무거워지는 법.]

언문의 입에서 언령이 흘러나오자.

-스륵. 스륵.

그가 손에 쥔 책 위로 자음과 모음이 떨어져 나와 허공을 부유했다.

이윽고 언문이 읊은 말과 같은 문장(文章)을 만들어 내자.

-쏴아아. 우웅!

청룡이 만들어 낸 옅은 부슬비, 그 빗방울에 푸른 빛이 일렁였다.

[윽!? 무슨-!]

[무게가?]

가장 먼저 이변을 보인 이들은 하급 천사들.

그들의 날개가 부들부들 떨리더니, 물먹은 솜처럼 아래로 축 처졌다.

허공을 날고 있던 이들 중에는 날개가 무거워져 떨어진 이들도 있었다.

다른 상위 계급의 천사들 역시 영향을 받은 듯, 날개를 조금씩 떨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단자가 사특한 권능을 썼다!]

[정화하라!]

대천사들이 빛을 흩뿌리며 언문의 권능에 저항했다.

[이, 이것들이 감히…… 감히!]

주변의 상황을 본 아스터가 이를 갈며 답답함이 담긴 분노를 토로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 하나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본래라면 여기서 신법재판소와 태초의 조각을 이용해 제물을 바치고 문을 열었어야 했다.

그런데, 하찮은 하계종이 감히 지녀서는 안 되는 힘으로 원대한 신들의 계획을 막아섰다.

그 하계종을 돕는 여래를 비롯한 이단의 신들까지 나타나 방해를 일삼고 있었다.

결국.

[대격변을 강제로 일으키겠다.]

아스터가 이를 아득바득 갈며 선언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가장 가까이 있던 두 대신, 하메라와 로메라가 흠칫하며 아스터를 눈짓했다.

[그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함부로 쓰면, 우리의 하계가……!]

아스터 만큼이나 작금의 상황에 분노를 표하고 있는 두 대신이 우려를 표했다.

그만큼 아스터가 저지르려는 짓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대격변.

이 세계에 펼쳐진 시스템의 장벽을 뚫고 악마의 군세를 불러온다.

이 세계를 빠르게 잠식시켜 장악하고 ‘지구’로 향할 교두보로 삼는다.

아스터가 맡은 가장 중요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격변은 본래, 작금의 계획이 성공하고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진행해야 했었다.

태초의 조각을 활용하는 만큼, 자칫 잘못하면 큰 위험이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그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제물로 바칠 생명 에너지를 모은 것이었다.

지금껏 모은 생명 에너지를 한곳에 모아 바칠 준비도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계획이 성공하려나 싶었지만, 처용과 이 장소에 난입한 신격들에 의해 망해 버렸다.

제물의 그릇이 되는 하계종은 혈선의 신관이 옆에 두고 보호하는 상황.

당장이라도 처용을 죽여 버리고 제물들을 강탈하고 싶었다.

하지만, 혈선의 신관이 지닌 무력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무려 백여 명에 가까운 신격들의 총공세도 잠시 막아내기까지 했었으니까.

게다가 처용을 돕는 신격들도 하나하나가 강력한 무력을 지닌 이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차라리 차후를 기약하고 뒤로 물러난 다음, 재정비를 갖추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바엔! 차라리 내 손으로 끝내 버리겠다!]

아스터는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분노에 이성이 지배된 듯, 뒷일 따윈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윽고.

-콱! 우우웅!

아스터가 태초의 조각을 강하게 움켜쥐며 거친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