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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22화 (422/726)

#422화

옥황상제가 표정 관리를 실패하자.

“…….”

“…….”

눈치 빠른 순혈자들이 작금의 상황을 바로 알아챘다.

유독 옥황상제는 자비의 대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과거 수천 년 전, 자비의 대신을 노리려다가 실패한 일 때문에.

그로 인해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자비의 대신은 혈선의 스승이자, 어머니와 다름없는 존재.

그런 그녀를 노리는 것으로 개인적인 복수심을 충족하기 위해.

동맹을 위해 도움이 되고 개인적인 복수도 달성한다.

각기 생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순혈자들은 옥황상제가 자비의 대신을 노리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라의 폭로로 인해, 옥황상제가 심히 동요를 드러낸 상황.

“……이야~ 정녕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건 것이로구만. 늙다리?”

Ⅵ, 로키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옥황상제를 노려보며 물었다.

다른 순혈자들 역시 로키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동맹을 위해, 순혈자들을 위해 고안한 적전이, 사실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절대로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옥황상제가 다른 순혈자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라를 향해 읊조리듯 물었다.

완전히 낭패였다.

도대체 무슨 수로 자비의 대신이 지닌 비밀을 알아냈단 말인가?

자비의 대신이 지닌 비밀을 아는 신들은 태초신을 포함한 극소수.

그중에는 전대 천교의 주신인 천존도 있었다.

옥황상제는 그런 천존에게서 전해 들었기에 자비의 대신이 지닌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기에는 자비의 대신이 지닌 비밀을 아는 이들은 모두 소멸한 상황.

즉, 본인이 직접 말해주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우리를 배신하고 보현의 편에 선 것인가?’

가장 높은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순혈 의장, 태양신 라는 순혈자들을 배신하고 혈선에게 붙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본인이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진실일 터!”

옥황상제가 추궁하듯 묻자.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그녀의 비밀을 알았습니까?”

언성이 높아지는 옥황상제의 물음에 라가 역으로 물었다.

“신법재판소의 진짜 주인께서 내게 알려주셨다.”

옥황상제가 라의 말에 답한 순간.

“……즉, 나를 네놈의 개인적인 목적 달성을 위한 장기말로 쓰려 했다?”

라가 속으로 미소를 감추며, 옥황상제를 향해 압박하듯 강하게 말했다.

“……보현을 노리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건, 내 인정하지. 허나!”

옥황상제가 순순히 자비의 대신을 노렸던 이유를 인정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년을 잡으면 그 하계종과 혈선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 말이 틀린가!”

자비의 대신은 여래에게도 처용에게도 중요한 존재.

아니 그들에게 합류한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인질로 확보한다면, 처용과 여래뿐 아니라, 방해하는 이들의 행동도 통제할 수 있었다.

즉, 옥황상제의 말은 틀리지 않은 셈이었다.

그의 말에 순혈자들 역시 납득한 듯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의심스럽군. 나조차도 천존께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몰랐던 사실을 어찌 알아내셨을까?”

기회를 잡은 옥황상제가 오히려 라를 향해 압박하듯 물었다.

-쿠구구!

무거운 기세가 섞인 옥황상제의 물음에.

“하…… 내가 그리 무능해 보였나 봅니다?”

라가 한숨을 내뱉으며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기운 빠진 목소리와는 다르게.

-후우우!

옥황상제의 기세에 맞서 거친 신력을 내뿜으며 그의 신력을 밀어냈다.

성운의 주신들이, 서로가 서로를 압박하는 험악한 분위기.

차후 계획을 논하는 자리가 분열과 의심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때.

“……그만두죠.”

-스르르…….

라가 많은 의미가 함축된 한 마디를 내뱉고는 기세를 확 거두었다.

그러자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의문을 표했다.

옥황상제 역시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Ⅱ,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가 본데, 그렇다면 직접 하시지요. 난 여기서 그만둘 테니.”

라가 이젠 지쳤다는 듯한 목소리로 한숨을 섞으며 말을 이었다.

맡은 작전을 모두 그만두고 손을 놓아버리겠다는 것.

“나머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십시오. 난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가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며 고개를 돌려 버리자.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태양신!”

-쾅!

옥황상제가 팔걸이를 거칠게 내려치고는 자리를 박차 일어나며 소리쳤다.

“의장으로서 책임감을 저버리겠다는 것인가?”

붉은 문양이 새겨진 검은 로브, Ⅳ가 눈을 가늘게 뜨며 라의 태도를 지적했고.

“무책임하군.”

아스터 역시 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핀잔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지금 내게 책임을 논하는 것인가!?”

-화르륵!

라가 분노가 담긴 태양열을 내뿜으며 언성을 높였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당신들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아. 당신들 전부 혐오스럽다!”

라는 지금껏 순혈 의회에서 격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항상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라가 분노를 드러냈다.

“…….”

“…….”

로키와 아르테미스 등, 다른 이들에게 날선 말을 주로 내뱉는 이들도 침묵해 보였다.

“순혈자는 고귀한 자들! 스스로 진흙탕에 걸어 들어간 당신들은 그 이름을 쓸 자격이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진심 어린 속마음이 섞인 라의 분노에 순혈 의회가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그래서 이들과 갈라서겠다는 것인가?”

상황을 지켜보던 디아블로가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 섞인 불길.

디아블로는 오히려 그런 뜨거움이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는 디아블로의 태도를 보며 그를 잠시 노려보고는.

“……그럼에도 내가 당신들을 돕는 이유는, 그분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화아아.

다시금, 기세를 잠재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협력하는 게 아니다. 옳다고 믿는 자를 따르는 것이지.”

라는 순혈 의장으로서 순혈자들에게 협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한, 옳다고 믿는 자.

새로운 태초신을 따르기로 결정했기에, 그의 세력을 돕는 것이었다.

“감히 그분을 입에 담다니-!”

라의 말에 옥황상제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언성을 높이려는 때.

-파아아!

중앙에 불타오르고 있는 검붉은 불꽃의 화로가 크게 타올랐다.

이내 불꽃이 점점 크기를 키우며 커져 나가더니.

-지이잉.

그 속에서 외곽이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핏빛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화로 속에서 불길한 기운을 가득 흘려보내는 눈동자가 나타난 순간.

“위대한 존재이시여.”

“위대한 존재이시여.”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동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스르륵. 스륵.

화로 속에서 나타난 눈동자가 뒤룩거리더니.

-……Ⅰ.

순혈 의장인 Ⅰ, 라를 응시하고는 낮고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예, 위대한 존재이시여.”

라가 속으로 침음을 삼키며 대답하자.

-자비의 대신이 지닌 비밀을 어떻게 알아냈느냐? Ⅰ.

화로 속 핏빛의 눈동자, 위대한 존재라고 불리는 자.

악의 종주, 조크-크타니드가 라를 향해 물었다.

그 물음에 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눈을 감고는.

-스륵.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악의 종주를 마주했다.

“……제 능력을 발휘하여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음에도, 의심부터 하시는군요.”

악의 중조의 물음에 라가 체념 어린 목소리로 한숨을 섞어 답하자.

“이, 이 건방진 것! 무슨 말버릇이냐!”

옥황상제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라를 향해 다그치듯 소리쳤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순혈자들 대부분이 소리 없는 경악을 드러냈다.

“죽고 싶은 것인가?”

악의 종주에게 충성심이 높은 바알 역시 라를 향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는 그런 주변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제 의장 권한을 박탈하고 Ⅱ를 의장에 앉히시지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할 말을 계속했다.

그런 라의 태도에 화로 속 눈동자가 조금 가늘어졌다.

-내 명령에 불만인가? Ⅰ.

악의 종주가 라를 향해 묻자.

“누구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누구는 서두르라며 독촉하고 도대체 나보고 어찌하라는 겁니까?”

라가 속으로 긴장감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며 할 말을 계속 이었다.

“실패하면 누구를 탓하실 겁니까? 제 욕망을 얻기 위해 저를 독촉한 Ⅱ? 아니, 저를 탓하시겠지요.”

라의 말이 끝나자.

-……진심으로 나를 따르는 것이 맞는가?

악의 종주가 불길한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으며 압박하듯 물었다.

그러자.

“네년 신격에 걸고 맹세를 해 보아라! 정녕 위대하신 분께 충성하는 것이 맞는가!”

옥황상제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라를 향해 소리쳤다.

아스터와 Ⅳ 등, 평소 의장인 라를 좋게 보지 않던 이들이 라를 응시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을 때.

“하……!”

라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태양신의 신격을 걸고 나는 조크-크타니드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라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

“……!”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이 크게 떠지며 소리 없는 경악을 내질렀다.

명백한 배신 선언과 다름없었으니까.

“당장 의장의 권한을 박탈하고 태양신의 성역을-!”

옥황상제가 환희 어린 미소를 머금으며 소리친 순간.

-닥쳐라.

악의 종주가 일동 침묵을 명했다.

그 말에 분노와 경악을 드러내려던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소리 없이 쇄도하는 싸늘한 침묵이 계속될 때.

-그렇군.

-쩌저적!

거대한 핏빛 눈동자 아래가 길게 찢어지며 핏빛 가득한 입이 드러났다.

마치 미소를 짓는 듯한 모습.

-야드를 따르겠다는 그 의지는 변함이 없는 것인가?

악의 종주가 미소를 머금으며 라를 향해 묻자.

“나는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미래를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라가 과거 악의 종주와 마주쳤을 때를 떠올리며 읊조리듯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

악의 종주가 벌이려는 진짜 계획.

라는 그 계획을 알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악의 종주를 처음 마주쳤을 때, 그가 직접 말해주었었으니까.

“태초신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존재, 이 우주의 멸망을 저지할 수 있는 존재.”

태초신이 만든 이 우주는 곧 사라진다.

우주 전체가 소멸한다면, 이 우주에 속한 모든 존재들이 소멸한다.

흔적도 없이…….

하지만 그런 우주의 소멸을 막을 방법이 존재했다.

아니, 우주의 소멸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었다.

그 유일한 존재가, 순혈 의장이었던 라에게 협력을 바랐었고.

“그 유일한 존재가 하나뿐인 이상…… 따를 겁니다.”

그렇게, 라는 악의 종주가 내민 손을 잡았었다.

과거를 언급하는 라의 말이 끝나자.

-그렇다면, 좋다.

-스르르…….

악의 종주가 불길한 기세를 잠재우며 미소를 지었다.

-더는 너를 방해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Ⅰ.

“알겠습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라가 악의 종주가 전한 목소리의 뜻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더는 자신을 방해하거나 독촉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태초의 그릇을 찾는 일에 집중하라,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악의 종주가 바알을 포함한 삼천마, 옥황상제를 순서대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따르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시선을 받은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일제히 답했다.

-그 외의 일은 알아서 하도록.

악의 종주에게서 마지막 말이 끝난 순간.

-화르륵! 파아아……!

칠흑 같은 어둠이 크게 퍼지며 주변을 휘감았다.

순혈 의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하나둘 가루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악의 종주가 순혈 의회를 끝낸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졌을 때.

“도대체…….”

-화륵.

홀로 남은 악의 종주에게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듯, 다급함과 착잡함이 일렁이는 목소리.

마치, 조금 전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태초의 그릇을 의미하는가 싶었지만.

“도대체 어디로……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가 진심으로 찾는 것은 태초의 그릇이 아니었다.

태초의 그릇이 중요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는 그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조크 크타니드가 판데모니움에 자리 잡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악마들의 세력을 규합하여 자신의 세력으로 재구축하기 위해.

두 번째는 효율적으로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힘을 축적하면, 강제로 균열을 찢어 하계에 강림할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악마들과 그들의 세력을 이용해 태초의 그릇까지 확보한다면?

태초신, 야드가 펼친 장막을 무시하고 지상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가 미래를 예지하는 권능을 깨우쳐 버렸다.

온갖 방법으로 악마들의 세력을 농락하며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당장은 잡아들이기가 힘든 상황.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아직 이 우주가 종말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있다.”

생각을 그만둔 악의 종주가 스르륵 눈을 감으며 읊조렸다.

“종말을 막기 위해선, 때가 도래하기 전에 끝을 내야 한다.”

우주를 종말로 이끄려는 악의 종주, 조크-크타니드.

그런 그에게서 종말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네놈들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말을 마지막으로.

-스륵.

악의 종주가 완전히 눈을 감으며 다시금,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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