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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20화 (420/726)

#420화

이른 오전에 정무 회의가 열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오후에 다시 귀족들이 모였다.

바로 근처, 젠타 왕국에서 참회의 신관이 벌인 인질극 때문이었다.

-신관을 자극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협상을 하는 것이…….

아스터 교단의 신관은 한 나라의 국왕보다도 드높은 존재.

귀족들은 그간의 인식 때문인지 작금의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신관은 ‘신’을 자극했습니다.”

여왕, 아나샤는 참회의 신관을 비판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단상 중앙에 테이블을 놓고 아나샤와 귀족들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우웅.

통신구가 밝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끊어졌던 젠타 왕국의 통신이 다시 연결된 것.

아나샤가 통신구를 활성화시키자.

-여, 아나샤.

통신구 위로 처용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사하셨-! 아니, 당연히 무사하시겠죠.”

나름 이 상황을 걱정한 아나샤가 말을 정정하며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젠타 국왕이 항복했군요.”

통신구 화면 너머로 보이는, 무릎을 꿇고 있는 젠타 왕국의 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빌어먹을 참회의 신관은 게이트웨이를 타고 튀어 버렸더라고. 나도 쫓아가긴 했는데…….

처용이 젠타 왕국으로 향한 이유는 바로 참회의 신관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였다.

참회의 신관이 인질극을 벌인 장소인 젠타 왕국의 수도.

그 장소까지 처용이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그 과정에서 젠타 왕국의 국경 관문과 수도 관문, 그 사이에 있던 신전들이 모두 처참하게 무너졌다.

처용이 수도 중앙에 도착하긴 했지만, 참회의 신관 베드라는 게이트웨이를 타고 도주한 상태.

당연히 처용은 베드라가 탄 게이트웨이를 강제로 활성화시켜 그를 추적했었다.

그 추적 과정에서 베드라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이들이 처용을 가로막았다.

당연히 처용의 앞길을 막는 성기사, 사제, 천사, 신전까지 모조리 무너지고 박살 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베드라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무너진 신전만 스무 개 이상.

-놈의 목숨이 중요하긴 한가 보더라고 날개 많은 비둘기 여섯 마리가 작정하고 방해하던데…….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는 처용의 말이 이어졌다.

베드라를 살리기 위해 젠타 왕국의 대신전에서 여섯의 대천사가 강림해 처용의 앞길을 가로막았었다.

그 결과는.

-덕분에 비둘기 깃털을 많이 얻었지만, 놈을 놓쳤어.

처용을 가로막은 여섯의 대천사는 모두 깃털을 헌납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베드라는 무사히 도망쳤다.

처용의 통신이 이어질 때.

-위잉.

아나샤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에서 옅은 울림이 퍼졌다.

진동을 토하는 팔찌를 아나샤가 두 번 두들기자.

-지잉.

팔찌, 처용에게 받은 통신구 아티팩트 위로 연아의 모습을 비추는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우리 지금 돌아가고 있어. 그리고…….

연아에게서 신전을 네 개밖에 무너뜨리지 못해서 아쉽다는 말이 이어지자.

“…….”

“…….”

상황을 지켜보던 귀족들이 입을 벌린 채 일동 침묵했다.

참회의 신관이 룬티르 일족을 붙잡아 벌인 인질극.

그로 인해 자극받은 마신과 그의 세력이 타국에 침공을 계시했다.

그 결과, 총 서른다섯 개의 신전이 무너졌고 또 하나의 국가가 재앙을 맞이해 반파되었다.

단 하루 만에.

이 모든 일은 마신, 처용을 포함한 연화와 연아, 네이션, 단 네 명이 벌인 일이었다.

모두가 경악을 표할 때.

-이 녀석이 잡힌 이단자들을 마차에 실어 보내 준다고 하니까. 그 녀석들을 처리해 줘.

처용이 젠타 왕의 뒷덜미를 잡아 통신구 앞에 대며 말했다.

-저, 전부 무사히 보내겠습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통신구에 얼굴이 들이밀린 젠타 왕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래 젠타 왕국의 왕은 아스터 교단의 열혈 신봉자.

그런 그가 베드라에게 협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마신에게 바짝 숙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잡아야 할 놈을 놓친 대신 쓸만한 것들을 얻었으니,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될 거다.

말을 이은 처용이 곧 돌아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현명한 선택을 하셨다는 걸, 다시금 실감하셨을 겁니다.”

꺼진 통신구를 내려놓은 아나샤가 귀족들을 향해 말하자, 귀족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속마음은 사실, 아나샤와 마신에 대한 불안감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마신에게 국가가 점령된 작금의 상황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기회를 봐서 목숨을 부지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불안한 마음이 계속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단 하루 만에 또 하나의 국가가 무너지고 서른 개 이상의 신전이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처용과 그의 세력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무력을 다시 확인한 이상.

“다른 국가에서 보복을 가할 수도 있으니, 새로운 방어선에 집중을…….”

“오웬 자작과 제가 철광석을 전방으로…….”

“왕자님들께서 도와주고 계시니, 국경의 성벽 재건은 수월할 것입니다.”

귀족들의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로 변했다.

“조만간 제가 직접 수도 방어선을 점검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십시오.”

불안감이 사라지고 믿음이 생긴 귀족들을 본 아나샤가 미소를 지으며 지령을 내렸다.

***

젠타 왕국이 마신에게 침공을 당하고 하루가 지난 시점.

“이런 제길!”

-쾅!

가까스로 도망쳐 아스터 제국 수도 대신전으로 돌아온 베드라가 단상을 거칠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베드라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분노를 표하자.

“……인질의 죽음에 일절 동요조차 없다니.”

그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루메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젠타 왕국에 붙잡힌 이단자들을 이용한 협박.

아스터 교단은 그 협박을 통해, 마신을 압박하고 그를 노린 빈틈을 찾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획은 오히려 마신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해 버렸고.

“젠타 왕국에 세워진 모든 신전을 무너뜨릴 줄이야…….”

젠타 왕국이 초토화되었을 뿐 아니라, 왕국 내, 그 근처의 모든 신전이 무너져 버렸다.

“과연 마신이라 불릴 만하군요.”

루메오의 마지막 말이 이어지자.

“마신은 무슨! 놈은 인간이다!”

베드라가 핏발 선 눈으로 루메오의 말을 부정하듯 소리쳤다.

“가축에 불과한 태생이란 말이다! 그런 하찮은 것이 감히……!”

분노가 담긴 베드라의 읊조림에.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신관 베드라.”

루메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베드라가 어째서 분노를 표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계획을 벌이면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었으니까.

신을 향해 모독한 이는 처용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이들도 에스라 성운을 향해 모독을 저질렀다.

게다가 뭐 하나 얻은 이득도 없이, 이런 처참한 결과까지 맞이한 상황.

비단 베드라만이 아닌, 루메오 역시 화가 차오르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이라 해도 그는 마신이라 불릴 만한 강자입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은 분노보다는 차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했다.

그런 루메오의 말에.

“내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지, 무턱대고 그를 도발하라고 하진 않았다.”

그의 옆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제니퍼가 베드라를 향해 핀잔하듯 말했다.

“피해가 여기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 그가 아스터 제국 수도까지 발을 들였다면…….”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읊조리는 제니퍼의 말에.

“우리의 신들께서……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보나?”

베드라가 제니퍼를 노려보며 읊조리듯 물었다.

제아무리 마신이라 해도, 아스터 제국 수도에 함부로 발을 들인다?

이곳은 다른 신전이나 성지로 선포된 장소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그가 이 신성한 장소에 발을 들인 순간.

에스라 성운에 속한 모든 천사들과 신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 못지않은 세력을 가진 성운의 성지가 초토화된 일이 있었지.”

제니퍼는 그런 베드라가 가진 믿음을 부정하듯 말을 이었다.

“전력을 다해 놈을 이긴다 해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해, 결국 더 큰 피해를 초래할 뿐이다.”

한 성운의 세력이 모두 강림하여 처용을 상대한다면, 아무리 처용이라 해도 힘에 부친다.

그러나 과연 그가 순순히 잡힐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신의 성지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처용을 따르는 신들이 강림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제니퍼는 그의 뒤를 받쳐주는 신들이 누구인지까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혈선이 이 성지에 강림이라도 하는 순간…… 재앙이 벌어질 거다.”

처용의 뒤를 받쳐주는 신들까지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지어 그 전장이 에스라 성운의 성지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일이 벌어진다면, 신들이 벌이는 대전쟁으로 작금의 상황이 크게 확장된다.

신들이 벌이는 전쟁 속에서 인간들은 그저 등이 터지는 새우가 될 뿐이었다.

신과 견줄 수 있는, 역천군주 정도의 이례귤러가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그를 직접적으로 노릴 수 없다면…… 그의 세력을 깎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한 루메오가 차선책을 이야기했다.

마신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것은 당장 힘든 상황.

그렇다면, 그가 빠르게 구축한 세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 타겟은 다름 아닌.

“이단국의 여왕을 죽여야겠습니다.”

처용이 정복한 나라, 아스터 제국과 대적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거듭난 왕국.

그 나라의 지배자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놈들을 보내는 게 좋을 거야.”

제니퍼가 의견을 더하자.

“당신이 가장 적임입니다만?”

루메오가 제니퍼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녀가 어느 정도 전력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이 특기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를 조용히 처치하는 것이 바로 제니퍼의 전문 분야였다.

제니퍼가 작정하고 은신하여 쏘는 저격은, 이 자리에 있는 신관들의 목숨도 위협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내가 미쳤다고 한처용의 영역에 발을 들이겠냐!!”

-탕!

제니퍼가 루메오의 제안 어린 말에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했다.

이전, 처용과 커맨더의 가족을 노렸다가 호되게 당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모시는 신.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라.

아르테미스에게서 절대로 앞서 나서지 말라는 지령을 받았다.

“나를 소모품으로 쓸 생각이었다면, 네 목구멍에 화살촉을 쑤셔 박아 주겠다. 회개의 신관.”

제니퍼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낮게 말하자.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루메오가 진정하라는 듯한 분위기로 말했다.

“그저 당신이 적임이라 생각했기에 한 말이었습니다.”

“달의 여신께서도 나보고 나서지 말라고 하셨으니, 다른 적임자를 찾아.”

목소리를 낮춘 제니퍼가 루메오의 말에 진지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앞으로 처용을 상대하는 일에는 일절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때.

“순교자들을 모집해 보지요.”

조용히 침묵하며 화를 누른 베드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한 순교자는 말 그대로 교단에 순교할 이들.

즉, 교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작전에 참여할 이들을 모집하겠다는 의미였다.

“크, 크크. 이단 심판관 중에 몇몇을 골라 보내지요.”

베드라의 의견에 이단 심판관장, 안테르가 킥킥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를 따르는 세력인 이단 심판관들은 모두 교단에 충성을 다하는 자들.

아스터 교단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충성심이 높은 자들이었다.

그 외에도.

-회개의 사제들 중에도 기꺼이 순교할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참회의 성기사 중에 정예를 모집…….

대신관들이 루메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심장 약탈자에게도 의뢰를 하겠습니다.”

베드라가 말을 이었다.

“암흑가의 수장이라…… 그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자입니다만?”

루메오가 베드라의 의견에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돈과 재물, 보물을 주면 무엇이든지 하는 암흑가.

타깃의 심장을 뽑아 수집하고 그 심장의 주인이 지녔던 힘까지 빼앗아 다루는 암살자.

심장 약탈자라 불리는 암살자는 암흑가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암흑가를 지배하는 어두운 세력이라 해도, 아스터 교단은 딱히 그들을 정벌하거나 적대하지 않았다.

아스터 교단이 추진하는 이단자 추적과 체포.

암흑가는 그런 아스터 교단의 일을 돕는 이들이었으니까.

다만, 그들의 수장인 심장 약탈자는 아스터 교단의 의뢰를 잘 받지 않는 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은 수행하지 않는 자였으니까.

아스터 교단은 암흑가의 수장이 보이는 비협조적 태도에 암흑가를 밀어 버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세력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것은 사실.

제멋대로 굴지만, 딱히 피해는 주지 않는 암흑가의 수장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심장 악탈자는 자신의 확실한 이득과 안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런 그를 무슨 수로 움직이게 만들 것인가?

“각기 다른 전문 속성을 지닌 6서클 마법사의 심장 다섯 개.”

베드라가 심장 약탈자에게 내밀 조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를 확실하게 처리하면 목표의 심장을 가질 권리를 주지요.”

그가 말하는 목표는 이단국의 여왕, 아나샤를 의미했다.

의뢰 선금인 6서클 마법사의 심장 다섯 개와 암살 목표인 아나샤의 심장.

이것이 베드라가 생각한 조건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구미가 당길 만한 조건이겠군요.”

루메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베드라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심장 약탈자가 흥미를 모이는 것은 바로 특이한 힘을 지닌 인간의 심장.

그는 심장의 주인이 발휘하던 힘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나샤는 강철의 힘을 다루는 로스톤 왕국의 왕족 출신.

심장 약탈자가 흥미를 보일 만한 대상이었다.

그리고.

“방금, 참회의 여신께서 곧 ‘그 계획’이 진행된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라가 차후 있을 가장 중요한 계획의 진행 상황을 이야기하자.

“……이번 일만 계획하고 전력을 가다듬어야겠군요.”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루메오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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