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로스톤 왕국의 남서 방향 쪽에 자리한 신전.
정확히는 로스톤 왕국의 국경과 조금 떨어져 있는 장소.
다른 나라의 국경과 국경 사이에 자리한 신전이 있었다.
그 신전의 표면적인 역할은 대륙을 유랑하는 모험가와 용병들의 쉼터.
혹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중재나 무역을 관리하는 관리소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역할이 아닌 진짜 역할은 바로 이단자의 색출.
국경을 넘나들며 도망 다니는 이단자들을 검거하고 이단 심문소에 넘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경과 국경 사이를 감시하고 지키는 아스터 교단의 관문이라 볼 수 있었다.
“계속 감시해라. 이단국에서 이변이 나타나는 즉시, 보고해야 한다.”
신전 안에서 나온 주교가 관문 성벽 위에 올라서며 성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국경을 감시하는 신전이 자리한 장소는 바로 산꼭대기.
산꼭대기에 신전이 자리한 이유는 주변을 수월하게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위에서 바라보면 아래가 훤히 다 내려다보였다.
누군가가 접근하거나 근처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였다.
“국경 쪽에 접근하는 이는 없습니다.”
“가는 사람도, 나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국경을 감시하는 성기사들이 주교에게 감시 결과를 보고했다.
마신에게 점령된 로스톤 왕국.
아스터 제국에서 받은 지령은 이단국이 되어 버린 로스톤 왕국의 국경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군…….”
주교가 전방에 흐릿하게 보이는 국경선 너머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렇습니다. 구름 너머로 날아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옆에 있던 성기사가 하늘 위를 바라보며 답했다.
산꼭대기 위에서 철저히 감시하는 이상, 로스톤 왕국의 움직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국경에서 누가 접근하는지, 누가 나오는지 등, 훤히 볼 수 있었다.
성기사의 말대로, 구름 너머로 날아 오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그런 성기사의 말에.
“마탑의 대마법사 수준이 아닌 이상, 구름 위로 날아오르는 건 불가능하다.”
주교가 하늘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법사들은 대체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바람 속성 마법을 다룰 순 있었다.
그러나 수준이 낮은 마법사들은 고도를 일정 이상 높여 날 수 없었다.
대마법사이거나 그에 근접한 수준의 마법사만이 높은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로스톤 왕국에는 그런 수준의 마법사가 없었다.
게다가 있다고 해도 대마법사 수준의 마법사는 이 세계에서도 극소수.
홀로 마력을 소모해 하늘을 날아 이동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놈들이 하늘을 나는 성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주교가 가능성이 절대로 없는 이야기를 읊으며,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려는 순간.
-화아아!
새하얀 구름을 헤치고 검은 무언가가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
-스르륵.
갑작스럽게 신전 위로, 해를 가린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뭣!?”
말을 잇던 주교가 하던 말을 버벅대며 당황을 표했다.
주변의 성기사들 역시 하늘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하늘 위, 구름을 헤치고 나타난, 거대한 섬과 같은 것이 무언가.
신전을 지키던 모든 이들이 하늘 위를 바라보며 당황을 표할 때.
-발포하라!
하늘 위에서 점점 고도를 낮춰오는 거대한 무언가에서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슈우우우!
하늘 위에서 포격이 빗발쳐 내리기 시작했다.
동체 시력이 좋은 무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꾸르륵. 슈우!
그저 농구공 크기의 물방울이 긴 물의 꼬리를 만들어 내며 비처럼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갑옷을 든든하게 갖춰 입은 성기사 하나가 그 물방울에 가슴을 맞은 순간.
-콰콰-! 파사삭!
맹렬한 충돌음과 동시에 갑옷이 산산조각 나며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
-콰지직!
-푸화!
팔에 맞은 사제들은 팔이 나가떨어지는 이들도 있었고 머리에 맞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스, 습격이다!
-일단 피해라!
한발 늦게 상황을 파악한 사제와 성기사들이 혼비백산하며 소리쳤다.
“위, 위대하신 신의 대리자이자, 하늘의 수호자들이시여,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빨리 몸을 피한 주교가 아스터 동상 앞에 넙죽 엎드리며 기도를 올렸다.
천사를 부르려 시도하려는 것.
그러나.
-슈우우우! 콰쾅! 쾅!
하늘 위에서 빗발치는 포탄이 아스터 동상 쪽으로 집중되었고.
-쩌저적! 쩌적!
수십 발씩 몰아쳐 오는 포격에, 아스터 동상이 금이 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종국엔.
-스으읍! 푸화아아!!
하늘 위를 부유하는 거대한 무언가.
아니, 거대한 괴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아스터 동상에 브레스를 발사했다.
강렬한 물줄기 브레스가 아스터 동상 위로 쏟아졌고.
-파사사……!
위력을 감당하지 못한 아스터 동상이 분쇄기에 갈려 나가듯, 가루가 되며 무너졌다.
동시에.
-샤아악!
-사악!
하늘 위에서 청색의 개미들이 떨어져 내리며 사제와 성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색의 개미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검은 갑옷의 기사.
“템페스트 블레이드!”
-휘이이! 콰아아!
네이션이 검을 치켜세운 후 가로로 크게 휘두르자, 검은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치며 나아갔다.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어두운 오러.
성기사와 사제들의 신성한 기운을 갉아먹는 죽음의 기운.
에스라 대륙에서 ‘검은 바람’을 쓰는 검사는 단 한 명뿐이었다.
“거, 검은 기사! 이 저주받은 이단자가!”
주교가 네이션을 알아보며 소리쳤다.
이단국 룬테라가 함락되었음에도 끝끝내 잡히지 않은 이단자.
곳곳에서 반란과 봉기를 일으키는 이들을 돕는 1급 범죄자.
네이션의 신상은 주교급 사제뿐 아니라, 일반 사제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모조리 죽여 주마.”
-우우웅!
네이션이 검은 오러를 넘실넘실 내뿜으며 읊조리고는 주교를 향해 한 발 다가왔다.
“이, 이……!”
주교가 다가오는 네이션을 보며 한 발 뒤로 물러선 순간.
-파아아!
하늘 위에서 빛의 기둥이 지상을 향해 내리쳤다.
정확히 무너진 아스터 동상이 있던 자리에 내리친 빛의 기둥.
그 속에서.
[이 이단자 놈들이!]
[심판을 내릴 것이다!]
다섯 명의 천사가 나타났다.
아스터 동상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 소환 의식에 가까스로 성공한 것이었다.
세 쌍의 날개를 가진 대천사와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중급 천사, 나머진 하급 천사였다.
[제 발로 죽으러 나타났구나! 벌레 같은 놈!]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중급 천사가 네이션을 알아보며 소리쳤다.
“……내가 뒤통수에 새겨 준, 칼자국은 잘 꿰매고 오셨나?”
다수의 천사들이 강림했음에도 네이션은 태연한 목소리로 도발하듯 말했다.
네이션이 창을 겨누며 도발한 중급 천사.
그는 룬테라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네이션과 한 번 맞붙었었던 천사였다.
싸움의 결과는 네이션에게 뒤통수를 베인 천사의 패배였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소멸시켜 주마!]
중급 천사가 창에 빛을 모으며 분노를 토로했고.
[저 이단자부터 처리한다.]
대천사가 네이션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화아! 화악!
빛이 번쩍이더니 네이션의 좌·우에 천사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네이션의 가슴과 머리를 향해 내질러 오는 빛의 창.
네이션은 아래로 내린 검을 위로 휘두름과 동시에 다리를 박차 뒤로 물러났다.
-휘리릭! 차카캉!
검은 바람이 휘감긴 칼날과 빛의 창이 서로 충돌하며 마찰음을 일으켰다.
네이션이 뒤로 물러난 순간.
-후우웅! 화악!
길고 두꺼운 대검을 쥔 대천사가 네이션의 앞에 나타나 검을 내리쳤다.
“흐읍!”
네이션이 오러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며 칼날을 가로로 높이 세웠다.
-콰쾅! 쾅!
대천사의 공격을 막은 네이션이 뒤로 쭉 밀려났다.
이에 휘감겼던 검은 바람이 대부분 흩어졌고.
“이런…….”
강렬한 충격을 받은 탓인지, 떨리는 손을 본 네이션이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가 강자라 해도, 상대는 신격을 지닌 천사들.
특히 대천사가 나타난 이상, 네이션에게 있어서 승산이 없었다.
그러나.
“멍청하군. 최약체인 나를 가장 신경 쓰는 것인가?”
네이션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을 향해 비웃음을 머금었다.
[실성했구나!]
[죽어라!]
-샥! 샤삭!
천사들이 네이션의 주변에 나타나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네이션은 이단 정벌에서 도망친 이단국의 생존자.
작금의 상황을 볼 때, 이번 신전 습격은 네이션의 짓이 분명했다.
천사들은 네이션을 처치한다면, 성기사와 사제들을 공격하는 괴물들도 사라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쐐에에!
하급 천사 둘이 내지른 빛의 창이 네이션에게 쇄도할 때.
“디펜드 팬텀.”
-슈르륵!
네이션의 앞에 연아가 나타났다.
-촤아아!
천사들의 공격을 대신 맞은 연아가 사방에 물을 흩뿌리며 터져나갔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어린 인간이 천사의 공격을 가로막아 죽은 상황.
천사들이 작금의 상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슈르륵!
퍼져 나간 물줄기가 천사들의 뒤에 모여들었고.
“즐거운 심해 탐험 시간이야.”
-푸화아아악!
다시 나타난 연아가 두 명의 천사와 자신을 물줄기 파도로 휘감아 가두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순식간에 천사 둘이 사라지자, 대천사를 포함한 천사들이 당황했고.
“파도의 검 – 네 번째 장.”
-스르릉!
마지막 남은 한 명의 하급 천사 뒤로 푸른 안광을 내뿜는 누군가가 나타나 칼을 내리쳤다.
천사의 뒤에서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연화.
“해일 가르기!”
-샤가가!
파도가 휘감긴 연화의 칼날이 천사의 정수리를 반으로 갈랐고.
-촤아아!
그대로 밀고 나가 반 토막을 내 버렸다.
-파사사……!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당한 천사가 하얀 깃털을 흩날리며 사라졌다.
[뭐냐!]
[무슨 일이냐!?]
대천사와 중급 천사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연화를 보며 당황을 표했다.
[이 이단자가 감히 신성한 천사를 공격하다니!]
-화아아!
분노한 대천사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분노를 표하자.
[그 입 닥치거라.]
-쿠구구!
연화에게서 짙은 청색의 신력이 파도처럼 뿜어져 나오며 대천사의 빛을 밀어내었다.
동시에 여성의 입에서 흘러나올 수 없는 무겁고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딜 감히 그 추악한 입으로 천사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냐.]
잔잔하고 무거운 파도처럼 퍼져 나가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연화의 성좌, 해전무신이였다.
-쿠구! 쿠구구!
제아무리 빛의 신력을 지닌 대천사라 해도, 신의 하수인.
진짜 신이 내뿜는 기백과 신력에 빛의 기운이 짓눌리고 있었다.
[누, 누구……!]
기세에 밀린 대천사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읊조렸다.
[내가 누구인지, 이 아이가 누구인지는-.]
-스르릉.
연화에게 강신한 해전무신이 대천사를 향해 칼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네놈 뼈에 직접 새겨주마.]
무겁게 울려 퍼지는 해전무신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대천사가 한 걸음 더 물러나며 대검을 움켜쥐었다.
눈앞의 인간에게 강림한, 신으로 추측되는 존재.
뿜어져 나오는 격으로 짐작해 봤을 때, 상당히 강력한 신으로 추정되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천사가 당황할 때.
“내가 말 하지 않았나? 오만한 천사여.”
-스릉. 휘이이!
네이션이 시커먼 바람을 검에 휘감으며 말하고는 중급 천사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나는 여기서 ‘최약체’에 불과하다고.”
룬테라의 멸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마지막 전사.
천사들과 아스터 교의 사제, 신관들의 끈질긴 추적에도 매번 벗어났었던, 가장 성가셨던 적.
그런 존재가 스스로를 최약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이 이단자 놈이!]
-피이이!
중급 천사가 인상을 한껏 일그러뜨리고는, 창에 빛을 휘감으며 네이션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리릭! 쿠구!
네이션 역시 죽음의 힘이 일렁이는 검은 바람을 거칠게 내뿜고는.
“템페스트 블레이드!”
창을 내질러 오는 천사를 향해, 검에 압축된 검은 바람을 폭발시켰다.
-쿠콰콰! 콰아!
나선으로 휘몰아치는 검은 폭풍의 소용돌이가 중급 천사를 향해 쇄도했다.
-쿠구! 쿠구구!
빛과 검은 바람이 서로 충돌하며 거친 마찰음이 울렸다.
깨져 나간 빛의 파편과 검은 바람의 잔재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 이-!]
창을 내지른 천사가 네이션의 검은 바람을 뚫어내며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이대로 네이션의 공격을 정면으로 뚫고 그를 끝장낼 생각이었다.
그 순간.
-샥!
-샤샥!
중급 천사의 뒤로 날카로운 여섯 개의 칼날을 치켜세운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고.
-촤자자작! 촤자작!
총 열두 개의 칼날이 푸른 선과 녹색의 선을 그려내며 중급 천사를 찢어발겼다.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날개가 조각나고 등과 어깨에 깊은 절상이 그어졌다.
[크아아아-!]
뒤를 기습당한 중급 천사가 경악을 내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중급 천사의 뒤를 기습한 두 존재는 다름 아닌, 물결이와 태풍이.
연화의 함선, 복이에 타고 있던 아타의 정예 개미들이었다.
천사의 무릎이 땅에 닿은 순간.
“끝이다.”
-스릉. 휘리릭!
검날에 검은 바람을 휘감은 네이션이 검을 치켜든 채 천사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아악!
천사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크게 베어 내었다.
-파아아……!
치명상을 입은 중급 천사가 새하얀 깃털을 휘날리며 흩어지는 모래처럼 사라졌다.
네이션이 중급 천사를 막 끝장냈을 때.
[이 악귀 같은 것들, 모두 파도 속에 묻어 버리겠다!]
-쏴아아!
연화에게 강림한 해전무신이 환도를 머리 위로 한 바퀴 크게 휘두르자.
-쿠과과!
환도에서 푸른 신력이 넘실거리며 신전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마치, 허공에 넘실거리는 거대한 해류가 신전 주변을 포위하듯 감싼 모습이었다.
동시에.
-스르륵.
연화에게서 흘러나온 푸른 신력이 그녀의 위로 떨어져 나오더니.
-스르릉.
환도를 쥔 해전무신의 형상으로 변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스르릉.
강신이 반쯤 유지되던 연화가 양손으로 쥔 환도로 큰 원을 그리며 읊조리자.
[한 번을 휩쓸어 산과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일지니!]
-스르릉. 쏴아아!
그녀의 뒤에 자리한 해전무신의 형상이 연화를 따라 환도를 크게 휘두르며 해류를 만들어 내었다.
-쏴아! 쏴아아!
연화와 해전무신이 그리는 원에 따라 신전을 포위한 파도가 위·아래로 넘실거리며 출렁였다.
[이, 이 정도 신격이……!? 어째서 우리를 적대하는 것인가!]
주변을 포위한 파도와 연화, 해전무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격에 경악한 대천사가 소리쳤다.
[가서 네놈 주인에게 똑똑히 전하거라.]
-스르릉.
해전무신이 대천사를 향해 환도를 겨누며 말했다.
[네놈들이 누구를 적으로 만들었는지를!]
해전무신의 말이 끝난 순간.
-쿠콰콰!
신전 주변에 넘실거리던 파도가 해일처럼 크게 솟구쳤다.
그리고.
“파도 속에 삼켜져라!”
[파도 속에 삼켜져라!]
연화와 해전무신이 동시에 칼을 내리치는 것으로.
-쿠콰! 쏴아아!
높게 솟구친 파도의 해일이 신전 전체를 덮쳤다.
“으, 으아아!”
“크아아!”
묵직하게 밀려오는 해류에 사제와 성기사들이 이리저리 휩쓸리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피아식별을 하지 않는 광역 공격 같았지만.
-쏴아! 쏴아아!
거침없이 밀려드는 해일은 신기하게도 개미들을 비껴가고 있었다.
마치, 파도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아군으로 인식되는 이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거칠게 솟구쳤다.
“이런 거대한 힘을…… 이 정도로 정교하게 다룬단 말인가?”
네이션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파도를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거대한 힘을 내리쳐 적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강력한 기술.
그럼에도 아군에게는 단 한 치의 피해도 주지 않는 정교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쏴아! 쏴아아!
아군을 요리조리 피하며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가 한 지점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모여들었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크아아아!]
대천사가 온몸에 신력을 두르고 다가오는 파도를 가까스로 막아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대천사라는 이름답게 해전무신의 권능 속에 버티는 듯 보였지만.
-쩌저저적!
이미 온몸에 두른 신력의 보호막은 깨지기 직전까지 균열이 간 상태였다.
이윽고.
-파차창! 쏴아아!
대천사의 보호막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고 거친 파도가 덮쳐들었다.
[크아아-!]
파도 속에 잠긴 대천사가 내지른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쿠화아아! 쏴아아……!
한 지점으로 뭉쳐 들던 파도가 다시 크게 퍼지더니, 허공으로 솟구치며 비를 만들어 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마지막으로, 신전 내에 남아있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전멸(全滅).
신전 내에 자리한 모든 적들이 파도에 잠겨 사라지고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점점 잦아질 때.
-슈와아아!
허공에 물줄기가 모여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더니.
“어, 뭐야? 내가 꼴찌야?”
연아가 손아귀에 천사 깃털을 한가득 움켜쥔 채 나타났다.
“에이, 놀지 말고 빨리 끝내 버릴걸.”
중얼거리는 듯 읊조리는 연아의 말에.
“…….”
네이션의 눈이 가늘어지며 연아와 연화를 번갈아 관찰했다.
자신은 중급 천사 하나를 상대하면서도 꽤 힘을 소진했다.
반면에 둘은 상처는커녕, 조금도 지친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대천사와 함께 적들을 단번에 휩쓸어 버린 연화.
그런 그녀에게 강림한 듯 보이는, 알 수 없는 강력한 신격.
아직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신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게다가.
-지구의 헌터들 중에는 저보다 강한 이들도 있습니다.
연화가 지구에 대해 말해줄 때, 했었던 말이었다.
마신, 지구에서 역천군주라 불리는 처용은 그가 있던 세계에서도 규격 외라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 쳐도, 눈앞의 두 여인 역시 만만치 않은 강자였다.
그런 두 여인에 버금가거나 웃도는 힘을 지닌 전사가 더 있는 세계?
네이션은 이제 지구라는 세계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데스나이트 아저씨, 생각보다 잘 싸우네요?”
그런 네이션의 복잡한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연아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걸자.
“……우리를 도와주어서 정말 고맙소.”
네이션은 얼떨떨한 마음을 감추며 감사를 전했다.
“속도를 좀 높이는 게 어때? 한처용은 벌써 신전 여덟 개를 부쉈다는데…….”
연아가 먼저 출발했던 처용의 소식을 이야기하자.
“계속 가실 겁니까?”
강신이 풀린 연화가 네이션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이션은 그 질문에 작은 미소를 짓고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신전이 남쪽에 하나 있소.”
가장 가까운 신전의 위치를 이야기하며 함께 할 의사를 비쳤다.
동시에 이번에야말로 아스터 교단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