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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17화 (417/726)

#417화

긴 머리가 시야를 방해하지 않도록 왼쪽으로 넘겨 머리핀으로 넘긴 모습.

앞머리를 넘겨 드러난 이마를 가리는 써클렛.

항상 써클렛을 벗은 적이 없던 루비아의 인상은 이러했다.

그리고 그런 루비아의 써클렛이 세 조각으로 분리되며 이마에서 떨어졌다.

-딸각.

루비아가 분리된 써클렛을 단상 위로 올려놓자, 모두의 시선이 루비아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루비아에게서 분리되지 않은 장식품.

-스스스.

다름 아닌, 앞머리를 넘기는 용도였던 머리핀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길게 자라났다.

왼쪽의 앞머리를 고정해두던 머리핀이 외뿔처럼 변함과 동시에.

-스르륵.

왼쪽 눈 주변에 비늘과 같은 각진 피부가 돋아났다.

“……루비아?”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이는 루비아의 친우인 아나샤.

지금의 모습은 그녀조차도 처음 마주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모습으로 변한 친우를 보며 아나샤가 당황스러움을 드러낼 때.

“……뿔? 잠깐만, 얘 엘프 아니었어!?”

바로 맞은편에 있던 연아 역시 루비아를 보며 놀람을 표했다.

루비아의 머리색과 귀를 본 연아는 그녀를 엘프라 생각하고 있었다.

“리카랑 같은 하이 엘프인 줄 알았는데, 다른 이종족이었어?”

연아가 말하는 리카는 처용이 이전 커맨더의 부탁을 받고 치료한 이종족.

최근, 커맨더의 파티원으로 합류해, 스피릿 팀이 일원이 된 하이 엘프였다.

다른 엘프들보다 긴 귀와 백금발의 머리를 가진 하이 엘프 리카.

루비아의 외형이 그런 리카와 흡사했기에, 연아는 루비아를 하이 엘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니 엘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종족……?”

연아가 루비아를 다시금 관찰하며 의문을 표할 때.

“엘프 맞아, 반 정도는…….”

처용이 이어지는 연아의 의문 어린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프?”

아나샤가 처용의 말을 듣고 짐작한 바를 언급했다.

부모가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서도 아주 드물지만, 하프가 태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하프라 해도 부모 중 한쪽의 영향만을 받은 단일 종족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간과 인어를 부모로 예시를 들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대부분 순수한 인간 아니면 인어가 된다.

그러나 간혹, 부모 양쪽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하프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적은 확률로 태어나는 하프 중에서도 아주 희박한 확률.

이 넓은 에스라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아주 적은 케이스였다.

처용의 말에 따르면, 루비아의 부모 중 하나는 엘프.

그리고 루비아는 드래곤과 관련된 비밀을 지닌 존재.

그렇다면?

“드래곤과 엘프의?”

아나샤가 짐작한 바를 이야기한 순간.

“하나가 빠졌어.”

처용이 아나샤의 말을 부정하고는.

“인간.”

그녀가 빠뜨린 종족 하나를 이야기했다.

그 말에.

“……!”

루비아의 눈이 커지며 소리 없는 경악을 드러냈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냐는 듯한 분위기.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침묵 끝에 루비아가 입을 열자.

“내가 따르는 분이 드래곤을 창조하신 분인데, 이 정도를 알아내지 못했을까 봐?”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드래곤과 인간…… 설마.”

아나샤가 처용의 말을 듣고 무언가가 떠오른 듯 읊조리고는.

“루비아, 너 이전에 ‘용기사 루시우스’를 알고 있다는 말이……?”

루비아가 전에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에스라 대륙엔 ‘용기사’라 불리던 영웅이 있었다.

여러 숱한 위기와 재난에서 많은 국가와 사람들을 구하고 도와주었었던 영웅.

그런 용기사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단 하나였다.

바로 드래곤의 뿔과 눈, 날개를 가진 특이한 외형의 인간이었다는 점이었다.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룡(伴人半龍), 즉 부모의 특징을 모두 물려받은 하프.

그것이 용기사의 정체였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좀 잘 알아.

사정이 있어 용기사의 물건을 찾던 아나샤에게 루비아가 도움을 주며 했었던 말이었다.

그 당시에는 자취를 감추었던 용기사를 루비아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혈연관계이거나?”

루비아가 드래곤과 관련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조금 이해가 되었다.

짐작하는 듯한 아나샤의 말에 루비아가 침묵했다.

그때.

“호기심 많은 한 드래곤이 인간과 친구가 되었고 그 둘 사이에서 하프가 태어났다.”

루비아의 반응을 지켜본 처용이 입을 열었다.

“대륙을 유랑하던 그 하프는 엘프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고, 한 하이 엘프와 만났지.”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가족 사정이 참 복잡하지?

회귀 전 그녀에게서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축약한 것이었다.

본래,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서는 하프가 태어나기가 정말 드물었다.

특히, 부모 양쪽의 개성을 다 타고난 하프는 손에 꼽을 정도.

하지만, 드래곤과 인간이 종족의 벽을 뛰어넘어 서로 친구가 되었고 그 이상의 관계로까지 나아갔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의 결실이 바로 용기사.

드래곤과 인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하프, 루시우스였다.

그리고 그런 용기사가 하이 엘프와 만나 맺어졌다.

“하프는 태어나기가 드문 만큼, 그들의 후세를 보기가 더더욱 드물어.”

처용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부모가 서로 다른 이종족 사이에서 드물게 태어나는 하프들.

그들 자체가 태어나기 힘든 존재이니만큼, 그들의 후대를 보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다만 예외는 있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인간의 특징만을 이어받은 ‘인간’이 태어난 경우.

그 인간은 다른 인간과 맺어져 자식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후대들 역시 모두 인간.

후대의 후대를 계속 이어도 선대 엘프의 특징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즉, 격세유전(隔世遺傳)은 없는 셈이었다.

반면에 양쪽 부모의 특징을 모두 타고난 하프의 경우.

그들은 전자와는 다르게 그 후대를 볼 수 없었다.

다른 유전적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이론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우주의 역사로는 부모의 특징을 모두 받은 하프가 자식을 본 사례는 없었다.

그러나.

“유일한 케이스가 나타났지.”

드래곤과 인간의 특징을 모두 지닌 하프, 용기사 루시우스 바하무트.

그런 그와 엘프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났다.

우주에서 최초로 태어난 쿼터(Quarter) 드래곤.

그것이 루비아였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루비아가 처용을 향해 물었다.

처용이 말한 것들은 모두, 외부인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가족사였으니까.

그런 루비아의 반응에.

“네 부모와 드래곤 로드, 아스터가 서로 간에 맺은 약조도 알고 있는데?”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짓고는 알고 있는 비밀을 하나 더 이야기했다.

“……!”

그 말이 울린 순간 루비아의 눈이 커졌다.

처용에게서 흘러나온, 신과 드래곤들이 맺은 ‘약조’라는 말.

그것은 본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자신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였으니까.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스터 그 비열한 개새끼가 부린 개수작을 알고 있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처용의 표정이 싸늘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저 알려진 용기사의 일화를 쭉 들으면, 종족을 뛰어넘은 영웅들의 사랑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내막, 그들 사이에 검은 손길을 뻗어 행복을 망친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이 세계를 지배하는 에스라 성운이었다.

“아스터 교단 놈들도 네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텐데?”

처용이 에스라 성운의 하수인들인 아스터 교단을 언급하자.

“……맞아.”

루비아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긍정했다.

처용이 알려주었던 좌표는 지하에 숨겨져 있던 아스터 교단의 비밀 실험실이었다.

당연히 그곳에 루비아가 나타난 순간.

-어, 어떻게 여기에!?

-하필이면!

-제2 마탑주! 여긴 제한 구역이다! 당장 나가!

그곳을 지키던 사제들이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마치, 비밀 장소를 들켜서는 안 될 이에게 들킨 듯한 모습.

당연히 루비아는 사제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사제들을 힘으로 뚫어내고 그들이 숨긴 것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은 다름 아닌, 혼종 프로젝트라는 비밀 실험.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잡아다가 실험하는 잔혹한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강제적으로 하프를 만들고 그 하프들로 인체 실험을 하고 있었지?”

처용이 루비아가 무엇을 봤는지 알고 있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종적으로는 어떤 ‘병기’를 만들어 내는 게 놈들의 목적일 테고?”

아스터 교단이 왜 그런 실험을 벌이는지도 알고 있다는 듯한 말도 이어졌다.

계속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

루비아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그때.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느낌인데…….”

이야기를 듣던 연아가 눈을 감고 작게 인상을 쓰며 읊조렸다.

그렇게 생각을 계속 잇던 중.

“데미갓 프로젝트!”

-짝!

연아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그런 연아의 반응에.

“정답이야. 많이 똑똑해졌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그것 때문에, 나랑 윤아가 죽을 뻔했었으니까.”

연아가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작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용과 연아의 대화에 아나샤가 의문을 표했다.

“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

그런 아나샤의 의문에 처용이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데미갓 프로젝트라고 인공적으로 생체 병기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 있었다. 그때…….”

누가 그런 일을, 왜 벌였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될 뻔했는지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넘어온 마인들이 아스터 교단의 혼종 실험을 돕는 것 같다.”

의심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도 이야기했다.

지구에서 벌어졌던 데미갓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인간 병기’를 만들어 내는 것.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진짜 데미 갓이었던 처용이었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L, 이 혼종 실험의 대상이자 최종 목표는 과연 누구일까?

“지구에서는 내가 목표가 되었었지, 그렇다면 이 대륙에서는 누가 목표가 되었을까?”

처용이 모두에게 묻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함과 동시에 누군가를 응시했다.

인간과 드래곤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드래곤과 하이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쿼터.

세 가지 종족의 특징을 모두 지닌 혼종.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고 태어난 존재.

“나……구나.”

그 당사자인 루비아가 자신을 지목하며 읊조렸다.

“나 역시 신들의 목표물이 되었기에, 네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

처용이 루비아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절대로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신력을 개화한 인간.

절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쿼터.

이 두 가지 사연은 서로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신들이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전자는 하등한 인간이 감히 ‘신’이라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후자는 신과 같은 선상에 놓인 드래곤의 힘을 하등한 지상의 존재들이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언성을 높이고 우주의 법칙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속내는 자신들의 같잖은 권력과 위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신을 위협하는 이들을 처단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아 뱃속을 불리기 위함이었다.

수천 년 전, 보살과 여래가 신들에게 당했던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성운은 신들을 위협할 힘을 기르는 인간들의 처형을 원했다.

또 다른 성운은 그 인간들을 잡아 성운의 힘을 키우려 했다.

누구는 대신에 오른 인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이렇게 선천적 신격들이 제 욕망에 눈이 멀어 과욕을 부린 결과.

신계의 반 이상이 피바람에 휩쓸려 초토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피바람을 일으킨 당사자는 여래.

하지만 여래는 그저 신들에게 핍박당한 피해자가 참다못해 응징을 가한 것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극을 일어나게 만든 원인.

누가 이러한 비극을 만들어 냈는가가 중요했다.

이 모든 비극과 문제를 만든 원인은 바로 선천적 신격들이었다.

선천적 신격들이 문제였다.

이것이 처용이 내린 결론이었다.

“스승님, 나, 너까지, 같은 상황을 세 번이나 마주한 이상. 나는 이 일을 도저히 간과할 수가 없어.”

처용이 루비아가 처한 상황과 비슷한 사례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리고.

“제안을 하지, 루비아 바하무트.”

루비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목적은 아스터 교단을 짓밟아 버리는 것.”

처용의 목적은 에스라 대륙에 검은 뿌리를 박고 잡초처럼 자라난 아스터 교단을 뿌리 뽑는 것.

“최종적으로는 에스라 성운의 주신, 아스터를 소멸시키는 것.”

종국에는 그들이 모시는 성좌의 주신.

아스터를 소멸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내게 협력해라.”

“…….”

협력을 요구하는 처용의 말에 루비아가 고민하는 듯 침묵했다.

처용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지닌 대마법사라 해도, 상대는 신.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복잡하게도 이 일에 드래곤들까지 엮인 상황이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도, 운명에 맞설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짜증 나…….”

루비아는 처용의 제안을 곧장 수락하지 않았다.

“뭘 해도 내가 하고 싶은데……!”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참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본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자신.

그런 자신이기에 이대로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루비아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자.

“내 제안을 한 번 진지하게 잘 생각해 봐.”

처용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루비아를 향해 말했다.

루비아는 자신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루비아가 얼마 안 가 수락한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회귀 전 절망에 빠져 있던 루비아를 설득한 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나랑 같이 가. 루비아.

강철의 여제, 아나샤 로스톤.

지금 루비아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친우.

아나샤가 루비아를 끌어들일 확실한 카드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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