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16화 (416/726)

#416화

“골치 아픈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게 됐어.”

처용의 입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스라 대륙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정말 많은 문제를 직면했다.

설마 회귀 전보다 심각할까? 생각했었지만, 실상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물론.

‘지구가 멸망을 피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인가?’

어째서 에스라 대륙의 상황이 회귀 전보다 심각한지는 대충 예상이 되었다.

본래, 멸망의 길을 걷고 있어야 할 지구.

악신들의 손에 서서히 떨어졌어야 할 지구의 운명을 처용이 비틀어 버렸다.

지구에 일어날 재앙들을 막아내고 앞잡이 역할을 하던 천교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 버렸다.

종국에는 마인들까지 지구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상황.

지구는 멸망의 길에서 당장 벗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지구를 좀먹던 그 많은 어두운 세력들.

그들이 과연 어디로 갔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답은 뻔했다.

‘이단 심문소에 있었던 실험 기기들은 분명, 지구의 문명이 닿아 있다.’

증거를 얻기 위해 습격했었던 이단 심문소 내부.

그곳에서 보았었던 수많은 실험 기기들.

그것들은 에스라 대륙의 기술이 아닌, 지구의 문명이 닿은 것들이었다.

마인들이 도주한 세계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에스라 대륙.

그 사실의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셈이었다.

그리고 드래곤을 살해한 범인.

그들은 올림포스의 배신자들과 검은 별들이었다.

올림포스의 배신자들이 에스라 성운을 돕고 있다면, 그들의 세력 역시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르테미스의 신관, 제니퍼 로스차일드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렇다면, 그녀를 따르는 마인들 역시 이 세계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추가로 검은 별과 순혈자들, 대악마, 천교까지.

에스라 성운과 동맹인 이들의 세력 모두가 에스라 대륙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앞으로 에스라 대륙에서 발생할 일들에 대한 걱정이 일렁였다.

지구에서 발생했어야 할 재앙들이 이곳에서 발생할 테니까.

“젠장…….”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한 처용은.

“일단 정리 좀 하지.”

우선 에스라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아스터 교단이 벌이는 짓들…….”

가장 먼저 아스터 교단이 벌이는 짓들을 나열해 보았다.

지구의 문명이 더해져 한층 더 잔혹해진 인체 실험.

놈들은 인체 실험에 에스라 대륙의 주민들을 희생시켰다.

이단 정벌을 명목으로 벌인 룬테라 왕국 말살 작전에 더불어 특별한 기운을 지닌 이들을 실험체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놈들이 벌이는 이 잔혹한 실험의 피해자 중에는.

“이젠 드래곤까지 살해되었단 말이지…….”

에스라 대륙의 수호자인 신성한 신수, 드래곤도 포함되어 있었다.

본래, 절대로 인간이 사냥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이에 신들이 협력했다.

룬티르 일족, 드래곤에 이어서 이종족들까지, 아스터 교단에 의해 희생된 정황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당장 해결하기 힘든 또 하나의 문제가 떠올랐다.

“분명, 밤의 일족에게 일어난 내전도 이 일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처용이 에스라 대륙에 직접 발걸음을 옮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바로 뱀파이어들의 내전 개입 문제였다.

가급적이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

빠르게 로스톤 왕국을 정벌하고 아나샤와 루비아를 끌어들인 다음, 곧장 뱀파이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이 사이비 새끼들 도대체 목적이 뭐야?”

연아가 처용의 말을 듣고 의문을 담아 읊조렸다.

처용이 짧게 언급한 문제들만 따져 봐도 하나하나가 심각한 내용들이었다.

그렇다면, 아스터 교단이 이러한 일들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아는 놈들이 무언가 목적이 있기에 이런 잔혹한 일들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아의 의문에.

“대격변.”

처용이 생각을 정리하며 명쾌한 답을 내주었다.

“아스터 교단의 목적은 대격변이다.”

“……지구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한 천교와 마인들의 계획?”

연화가 처용의 말에 대격변이 무엇인지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이 세계에서 대격변을 일으키려 한다고?”

“놈들이 벌이는 일들의 결과를 생각해 봤을 때, 거의 확실해.”

처용이 연화의 질문에 확신한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터 교단이 잔혹한 실험을 벌이는 것으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 이종족, 특별한 힘을 지닌 이들, 드래곤까지.

이들을 모두 희생시켜서 놈들이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 에너지’이었다.

그렇다면 그 생명 에너지를 어디에 활용할까?

처용은 회귀 전, 아스터 교단과 에스라 성운이 일으켰던 일들을 알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출력되었다.

“천교 놈들이 검은 대지를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기억해?”

“성지의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아!”

연아가 처용의 질문에 대답함과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천교가 일으킨 대격변 계획의 일부, 검은 대지를 만들어 낸 목적은?

지구를 보호하는 시스템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검은 대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희생, 즉 생생한 생명 에너지가 필요했다.

작금 아스터 교단이 벌이는 인체 실험으로 인해 수집하는 것 역시 생명 에너지.

그 생명 에너지로 놈들이 벌이는 목적은.

“여기에 검은 대지를 퍼트릴 작정이구나.”

시스템의 붕괴, 즉 대격변 계획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사람들을 산 채로 희생시켜서 벌이는 짓거리가……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과정이다?”

-스르르.

연화가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신성력을 스멀스멀 내뿜으며 분노를 읊조렸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이단 심문소 지하 실험실에서 마주했던 참상이 떠올랐다.

도저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기억.

그런데 아스터 교단이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이유가, 더 끔찍한 일을 벌이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래, 놈들의 목적은 이곳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대격변을 불러일으키는 거야.”

처용이 연화의 말이 맞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놈들의 최종 목적은 이곳에 악마의 군세를 일으키고 지구를 침공하는 것이겠지.”

놈들의 진짜 궁극적인 목적 또한 이야기했다.

지구는 모든 차원과 연결되어있는 우주의 요충지.

놈들은 지구와 연결된 에스라 대륙을 정복하고 이를 토대로 지구를 습격할 생각이었다.

“내 생각보다 사정이 너무 복잡하고 규모가 커졌어.”

처용이 지금껏 알아낸 일들을 다시금 정리하며 읊조렸다.

그때.

“그 망할 사이비 놈들만 싹 쓸어버리면 끝 아니야?”

연아가 처용의 말에 답하듯 입을 열었다.

에스라 대륙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아스터 교단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연아는 단순하게 아스터 교단만 처리해 버리면, 웬만한 일들은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그건 정답이야.”

처용 역시 연아와 같은 생각이긴 했다.

작금의 골치 아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었으니까.

그러나.

“하지만 바퀴벌레 집이 커도 너무 커, 아무리 나라 해도 단번에 불태우기엔 힘들어.”

아스터 교단의 규모는 이 대륙 전체라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처용의 무력이 상당하다 해도, 아스터 교단은 단신으로 빠르게 쓸어 버리기엔 무리였다.

게다가 이 대륙에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다른 일들도 있는 상황.

아스터 교단에만 신경 쓸 수만은 없었다.

“……지구에 알려야 해, 세계 간에 전쟁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연화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터 교단이 악신들의 세력이고 그들의 목적은 대격변이다.

그 대격변으로 인해 지구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정도 증거와 정황이면, 지구의 세력이 개입하기엔 충분했다.

“안 그래도, 옵저버로 수집한 증거들을 커맨더와 이사님에게 보내긴 했어.”

처용은 이미 준비를 했다는 듯, 연화의 말에 대답했다.

지금 있는 장소는 태룡사와 같은 처용의 제2 성지.

성지와 성지가 서로 무사히 연결되었기에, 지금껏 수집한 증거를 지구에 바로 보낼 수 있었다.

아마 지금쯤, 태민과 커맨더가 처용이 전송한 증거와 기록들을 확인했을 것이다.

“새로운 증거들을 계속 확보할 때마다 지구에 보내고 있으니까. 아마 곧…….”

“세계 헌터 회의가 열리겠구나.”

연화가 이어지는 처용의 말을 알아챘다는 듯, 대신 이어 말했다.

그리고.

“지구의 세력이 이곳에 들이기 전에, 이 복잡한 일들을 좀 순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봐.”

처용은 지구의 헌터들과 성운들이 이곳에 발을 들이기 전에, 복잡한 문제를 좀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다만 처용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곧장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미안하다. 가능하면 밤의 일족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어.”

에스라 대륙에 발을 들인 주목적 중 하나.

뱀파이어의 내전 개입 문제였다.

다만, 뱀파이어 문제는 당장 처리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밤의 성채가 자리한 곳은 이 대륙의 서쪽 끝.

동부인 이곳과는 완전히 반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장소였다.

당장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데다가, 이곳의 문제를 방치하고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해해.”

루나가 처용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뱀파이어 왕족인 그녀의 입장에서 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긴 했지만.

“나도 우리의 세계가 이 정도로 개판일 줄은 몰랐어.”

그녀 역시 처용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작금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무엇부터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화를 듣던 아나샤가 처용에게 물었다.

“당장 떠오르는 건 두 가지다.”

처용은 아나샤의 말에 검지와 중지를 피며 말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로 꼽은 주제 두 가지는.

“첫 번째는 룬티르 일족.”

바로 룬티르 일족, 카란디아와 관련된 일과.

“두 번째는 드래곤이다.”

세계의 수호자들, 드래곤 살해와 관련된 문제였다.

“저, 저희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카란디아가 처용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까지 오고 간 모든 이야기를 들은 바.

그녀에게 있어 룬테라 왕국의 정화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들은 문제들을 따져보면, 룬테라의 일은 작게만 느껴졌다.

그런 카란디아의 말에.

“룬테라 왕국의 일부터 해결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왜 룬테라 왕국의 일을 우선순위로 잡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여기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아스터가 룬티르 일족을 노린 이유는 자연의 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니까.”

아스터 교단이 룬테라 왕국을 멸망시킨 목적 때문이었다.

그들이 실험을 통해 확보하는 것은 생명 에너지였다.

룬티르 일족은 자연의 축복을 받은 이들.

평범한 사람들보다 지닌 생명력 자체가 정순하고 높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고작 이단 정벌이라는 이유만으로 룬테라를 멸망시켰을 리가 없었다.

진짜 목적은 다름 아닌 실험체 확보였다.

“분명, 룬테라 왕국에 저주만 뿌린 게 아니라, 어떤 개짓거리를 해 놓았겠지.”

“……그곳에서 검은 대지를 퍼트릴 준비를 한다던가.”

연화가 처용의 말에 그럴듯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하나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저주를 뿌려 사람들을 죽였다?

자연의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을 죽여 무엇을 했을까?

천교가 했었던 짓거리를 생각하면 쉽게 유추가 가능한 생각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확인을 해 봐야 해.”

처용이 연화의 말에 긍정하며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마검의 탄생이, 에스라 대륙의 대격변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룬테라를 신경 쓰는 세 번째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회귀 전 크타니드의 무구, ‘마검 카란디아’ 때문이었다.

그런 끔찍하고도 흉악스러운 무구를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카란디아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면 막는다.

아니면…….

‘내가 카란디아의 힘을 거머쥘 수 있다면, 반드시 차지한다!’

그 막강한 위력을 지닌 마검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마검 카란디아를 손에 쥐고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면?

혼자서 아스터 제국과 전쟁을 벌여 이길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카란디아가 희생될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 희생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했다.

아스터를 짓밟아 버릴 수 있다면 개의치 않았으니까.

처용의 마음속에 잔혹한 복수심이 다시 스멀스멀 솟구칠 때.

-…….

그런 처용의 마음에 동조하는 어둡고 붉은 존재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루비아 바하무트.”

생각을 마친 처용이 부른 이는 다름 아닌 루비아.

“…….”

루비아는 풀 네임을 부른 처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작게 인상을 써 보였다.

“……바하무트는 드래곤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루비아와 무슨 연관이…….”

아나샤가 루비아와 처용을 번갈아 바라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불과 어제 마주했었던, 드래곤을 창조하는데 일조한 관철의 대신.

그런 드높은 신격을 보며 반응을 보였던 루비아.

그리고.

-용이 아님에도 바하무트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인가?

관철의 대신이라는 존재가 루비아를 향해 했었던 말이었다.

친구의 비밀을 들춘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볼 때, 더이상 간과하고 넘어가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루비아.”

아나샤가 진지한 목소리로 루비아를 부르자.

“…….”

루비아가 고민이 일렁이는 눈빛으로 입을 다물며 침묵했다.

그러자.

“미안한데, 네 비밀과 이 세계의 멸망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계속 감출 수만은 없다.”

처용이 루비아를 향해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침묵하던 루비아가 자신의 머리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딸각.

이마에 씌워진 써클렛.

아니, 머리에 씌워진 봉인 아티팩트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탁. 탁. 타닥.

마나가 일렁이는 루비아의 손길에 이마에 고정되었던 써클렛이 해제되었고.

-탁.

루비아의 머리를 가리던 써클렛, 봉인 아티팩트가 단상 위에 놓였다.

그러자.

“……루비아, 설마?”

드러난 루비아의 머리를 본 아나샤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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