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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14화 (414/726)

#414화

처용의 말에 경악을 드러낸 이는 아나샤만이 아니었다.

“대신들 중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오셨다 듣긴 했지만…… 드래곤을 창조하셨을 줄이야.”

그나마 미륵에 대해 알고 있던 연아가 조금 침착한 반응을 보인 정도.

그 외에는.

“…….”

“…….”

지금 자신이 들은 게 정녕 사실인지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보다도 더욱 크게 충격을 받은 한 사람.

“……드래곤을 창조한 신?”

속으로 경악을 억누른 루비아가 불신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드래곤은 세계의 균형을 수호하는 신성한 존재들.

그들은 신과 같은 선상에 놓일 정도로 드높은 격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믿기가 힘들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

“왜? 거짓말 같아?”

불신 어린 루비아의 반응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직접 마주하면 알 거야.”

굳이 루비아의 불신을 해소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백 번 말하는 것 보다,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빠를 테니까.

-스르륵.

처용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태룡전의 열쇠를 소환했다.

“그럼, 열겠습니다.”

-우우웅!

열쇠를 비틀어 열자, 처용의 앞에 황금빛 게이트가 열렸다.

동시에 황금빛 게이트 속에서 검은 실루엣이 일렁였다.

이윽고.

-스스스. 탁.

검은 실루엣, 미륵이 금빛 용의 형상이 수놓아진 검은 용포를 휘날리며 걸어 나왔다.

-키이잉. 키잉.

그런 미륵의 머리 위에는 천천히 회전하는 청동 원판이 부유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미륵 님.”

처용이 게이트를 타고 나타난 미륵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그 모습에 조금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헛숨을 삼켰다.

마신이라 불리는 처용.

지상에 강림한 천사들을 찢어발기고 신조차도 때려눕히는 존재.

그런 막강한 무력을 지닌 존재가 막 나타난 ‘신’으로 보이는 존재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미륵을 본 이들은 석상처럼 굳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라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듯한 모습.

조금 떨어진 이들이 차마 움직이지 못할 때.

[둘 다, 고생 많았다.]

미륵이 처용과 연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헤, 누구 동생인데요.”

[하하. 오냐.]

연아의 당돌한 태도에 미륵이 미소로 답하고는.

[네가 선택한 아이구나.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군.]

처용과 가장 가까이 있던,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인간.

아냐사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미륵이 그녀를 익숙하게 느끼는 이유가 있었다.

처용이 전해 준, 회귀 전 과거의 기억.

그 기억 속에서 처용과 같이 최전선에 서서 싸우던 전사였으니까.

“아, 아나샤라고 합니다…….”

미륵과 시선을 마주친 아나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흐음.]

아나샤에게서 시선을 돌린 미륵의 눈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루비아가 있는 곳이었다.

루비아는 미륵과 시선을 마주친 순간.

“……!”

-화아아아!

붉게 일렁이는 미륵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아득한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스스스.

그녀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더니 파충류의 눈처럼 변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 듯한 모습.

그렇게 미륵과 1초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탁.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

루비아가 긴 한숨을 반복적으로 쉬며 혼란스러움을 토로했다.

처음 겪어보는 현상.

방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본인조차도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아, 불쌍한 아해로고…… 용이 아님에도 바하무트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인가?]

미륵이 루비아를 향해 다가가며 읊조렸다.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직. 파직.

그에 영향을 받듯, 루비아에게서 옅은 전류가 튀었다.

이윽고 미륵의 발걸음이 루비아의 앞에서 멈추었을 때.

[진정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거라.]

-스스스.

미륵이 잿빛의 신력을 은은하게 내뿜으며 말했다.

-파츠츳…….

루비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전류가 점점 약해지더니,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후우…….”

갑자기 통제되지 않고 날뛰던 힘이 가라앉자, 루비아가 안도 섞인 한숨을 쉬었다.

[잘했느니라.]

미륵이 진정한 모습을 보이는 루비아를 향해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쯧, 어쩌다 이런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것인가…….]

“사연이 좀 복잡합니다.”

루비아를 응시하며 읊조린 미륵의 말에 처용이 루비아를 보며 말했다.

[뭐 안 들어도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구나.]

그 말에 미륵의 눈이 가늘어지며 말을 이었다.

[그 융통성 없는 바하무트 녀석이 이 어린 아해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겠지.]

드래곤을 상징하는 이름, 바하무트라는 말이 미륵에게서 흘러나오자.

“도대체…….”

진정을 되찾은 루비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전, 황금빛 게이트를 타고 나타난 신으로 보이는 존재.

그 존재를 마주한 순간 덮쳐 온,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함.

루비아는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드래곤 로드와 눈을 마주쳤을 때였다.

거대한 금빛 눈동자에 자기 자신이 빨려 들어가 짓눌리는 듯한 기분.

그러나 드래곤 로드를 마주했던 그 당시보다도, 눈앞의 신이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루비아가 차마 미륵과 다시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할 때.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이런 짓거리를 했단 말인가?]

미륵이 고개를 돌리고는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붉게 일렁이는 눈동자가 응시한 곳은 다름 아닌, 뼈만 남은 거대한 드래곤의 시체가 있는 방향이었다.

“사인은 알아냈습니다만, 범인을 확정 짓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예상 가는 놈들이 있지만요.”

처용이 미륵의 옆에 서서 드래곤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구에서 찾아낸 드래곤의 죽음.

에이션트급 드래곤을 살해한 범인은 천교의 성좌들이었다.

그리고 이곳 에스라 대륙에서도 또 다른 드래곤의 죽음을 찾아내었다.

그렇다면 이번 일 역시.

‘에스라 성운에 협력하는 배신자들의 짓이겠지.’

천교처럼, 판데모니움에 협력하는 다른 성운의 짓이었다.

예상되는 범인이 있었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상황.

그런 처용의 의심 어린 말에.

[그놈을 찾아내기 위해, 내가 직접 여기에 오지 않았느냐.]

-쾅!

미륵이 자신의 신물, 관철의 조정자를 꺼내 들고는.

[깨어나거라.]

-우우웅!

관철의 조정자를 드래곤의 시체 쪽으로 겨누며 잿빛 신력을 내뿜었다.

-찰랑. 찰랑.

석장의 머리에 달린 고리들이 맑은 소리를 내었고.

-스르륵. 스륵. 우우웅.

잿빛 신력이 드래곤의 시체를 감싸더니, 희미한 형상의 무언가가 앞으로 스며 나왔다.

점점 형태를 잡아가던 희미한 형상은 다름 아닌, 녹색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었다.

이윽고 형태를 갖춘 드래곤이 눈을 뜨고는.

-……으음. 이건?

주변을 둘러보며 맑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드래곤의 시선이, 뒤에 있는 자신의 시체에 닿았다.

그러자.

-……그렇구나.

마치,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로드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대하신 에스라의 첫 번째 가신이시여.

바로 앞에 있는 미륵을 향해 고개를 낮게 내리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는 누구냐.]

-동부 숲을 관리하는 그린 드래곤 루사낙스라고 하옵니다.

미륵의 물음에 죽은 드래곤의 사념체, 루사낙스가 정중한 목소리로 자신이 누구인지 이야기했다.

[누가 너를 이리 만들었느냐?]

루사낙스의 말에 미륵이 분노가 일렁이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칼과 방패를 든 자, 붉은 화살을 쏘는 자, 은빛 화살을 쏘는 여인, 그리고…… 검고 불길한 존재들이옵니다.

미륵의 물음에 루사낙스가 자신을 죽인 이들이 누구인지 대답했다.

-검고 불길한 존재들이 제 결계를 찢어냈습니다. 그리고 화살이 저를 관통하고 칼이 제 목을…….

루사낙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누가 고요히 잠들어 있던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내고 겉에 둘러진 결계를 찢어냈는지.

어떤 이들이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혔는지 이야기했다.

그때.

“칼과 방패…… 붉은 화살과 은빛 화살…… 검고 불길한 존재라…….”

처용이 루사낙스의 말에 범인을 의미하는 단어들을 읊조렸다.

곰곰이 생각을 잇던 처용은.

“혹시 이렇게 생긴 놈들입니까?”

-스르륵.

마나로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내며 드래곤의 사념체, 루사낙스를 향해 물었다.

어깨까지 늘어진 산발에 투구 사이로 보이는 비열한 얼굴과 날카로운 눈동자를 지닌 남자.

긴 남색 머리에 달과 별이 조각된 은관을 쓴 여인.

웨이브가 진 긴 금발 머리의 미남자.

그리고 검은 안광을 빛내는 비열하고 탐욕이 가득한 남자의 얼굴.

이들을 포함한 여럿의 얼굴이 처용의 마나로 그려졌다.

루사낙스는 처용이 순식간에 그려낸 그림을 응시한 순간.

-맞다. 놈들이다. 저놈들이 나를…… 나를!

루사낙스의 사념체가 분노에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그녀는 처용이 그려낸 얼굴들이 자신을 살해한 이들이라 말하고 있었다.

드래곤을 살해한 범인이 확정되자.

“하, 역시 이 개새끼들 짓이었나?”

처용이 자신이 그려낸 이들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욕을 내뱉었다.

“어디로 쳐 도망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군?”

드래곤을 살해한 용의자는 에스라 성운에 협력하는 배신자들 중 하나.

처용은 이번 일 역시 천교가 저지른 짓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피해자, 루사낙스의 증언을 듣자마자, 범인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들 모두 회귀 전,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처용이 직접 죽여 버렸었던 이들이었으니까.

수십, 수백 번을 충돌하며 싸웠었기 때문에, 드래곤의 증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범인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올림포스를 배신한 머저리들, 저건 검은 별들인가?]

미륵이 처용의 그림들을 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용이 그림으로 그려낸 얼굴들.

그들은 순서대로 아레스, 아르테미스, 아폴론 그리고 조제군을 포함한 검은 별들의 얼굴이었다.

드래곤을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올림포스의 배신자들과 검은 별들이었다.

작금의 참사를 일으킨 놈들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아아, 아아아……!

드래곤의 사념체, 루사낙스가 괴로운 목소리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놈들이…… 놈들의 나의…… 나의 자식을……!

이어지는 루사낙스의 목소리에.

[……네가 품은 알을 놈들이 가져갔느냐?]

미륵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 도와……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제, 제 자식이…… 자식이…….

그런 미륵의 짐작 어린 질문에 루사낙스가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잠시 자신의 레어에서 동면에 든 이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곧 태어날 그녀의 자식 때문이었다.

알에서 드래곤이 태어나려면, 오랜 시간 알을 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루사낙스가 드래곤의 알을 품고 잠들었을 때 하필이면 침입자가 들어섰고.

-제 자식을…… 앞으로의 원대한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빼앗아 갔습니다.

침입자들이 루사낙스를 살해한 후, 그 알을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진정하거라.]

미륵이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호소하는 루나사낙스를 향해 말했다.

-차랑. 차랑.

관철의 조정자 끝에 달린 고리가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자.

-아아…….

루사낙스가 흥분이 점점 가라앉히며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나를 믿고 편히 쉬거라.]

-우우웅.

미륵이 관철의 조정자를 통해 내뿜었던 신력을 거둬들이며 말하자.

-……감사합니다. 어르신.

드래곤의 사념체, 루사낙스가 마지막 목소리를 전하고는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루사낙스의 사념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드래곤 로드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처용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미륵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당장, 바하무트의 성역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

미륵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관리자의 권한을 사용한다 해도, 입구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인데…….]

정말로 당장 드래곤의 성역에 갈 방법이 없는지, 미륵이 답답한 목소리를 토했다.

그때.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미륵의 말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당장 찾아가기 힘들다면…….”

[……찾아오게 하면 되겠구나.]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미륵 역시 눈치를 챘다는 듯,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작금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드래곤을 끌어들여 보겠습니다.”

처용이 앞으로 진행할 일들과 계획을 다시 머릿속으로 점검하며 말하자.

[오냐, 네가 이쪽 세계와 ‘문’을 연결시켜 준 덕분에, 이 세계와 연결된 신계에도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미륵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리고.

[네 스승이 이쪽 신계를 조사해 보고 있으니, 곧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래가 에스라 성운이 자리한 신계를 살펴보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내면, 곧장 알리겠습니다.”

처용이 미륵의 말에 답하자.

[그럼 가보마.]

-탁. 우우웅.

미륵이 관철의 조정자로 땅을 내려찍으며 황금빛 게이트를 열었다.

동시에.

[이 불쌍한 녀석은…… 우선, 내가 데려다 놓으마.]

-우우웅.

잿빛 신력으로 거대한 드래곤의 시체를 감쌌다.

이윽고 미륵과 그 뒤에 있는 드래곤의 시체가 잿빛 신력에 둘러싸였고.

-화아아!

금빛으로 번쩍이며 사라졌다.

미륵이 성역, 태룡전으로 돌아가자.

“후-!”

처용이 답답한 한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드래곤들을 자극할 만한 증거는 확보했다.

그리고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드래곤을 직접 사냥한 놈들이 누구인지도 밝혀냈다.

하지만, 드래곤 사태만을 생각하기에는 이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드래곤 뿐만 아니라, 룬테라, 뱀파이어, 아스터 교단의 실험 등.

이 모든 일들이 실처럼 엮이고 서로 엮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보이지 않는 꼬인 매듭을 풀거나, 잘라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처용은.

“이야기 좀 하지.”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나샤를 포함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

처용과 시선을 마주친 루비아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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