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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412화 (412/726)

#412화

로스톤 왕국이 점령되고 피의 숙청이 지나갔다.

그 결과가 처참한 것만은 아니었다.

왕국 전체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고름과 암세포가 적출되는 결과를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타락한 왕실을 밀어 버린 처용이 새롭게 임명한 왕국의 여왕.

“대충 건질 수 있는 것들만 옮겨라!”

아나샤가 기사와 병사들을 향해 명령하듯 소리쳤다.

그녀가 가장 먼저 내린 명령은 무너진 왕궁 속 잔해에서 그나마 온전한 물건들을 찾아 옮기는 것이었다.

기사, 마법사, 병사들이 힘을 합쳐 잔해를 뒤졌고 온전한 물건들을 찾아 광장으로 옮겼다.

“왕궁을 이대로 둘 수는 없고…… 재건하려면 한참 걸리겠군요.”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폐허가 되어 버린 왕궁.

그 모습을 쭉 둘러본 여왕, 아나샤가 착잡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왕국의 상징인 왕궁을 이대로 무너진 채 둘 수는 없었다.

왕궁의 재건은 쉽지 않은 일, 그 일만 해도 많은 시간과 자본이 투자되었다.

왕국은 피의 숙청을 끝내고 고통을 막 벗어났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더욱 많은 상황이었다.

아직 부정부패를 완전히 걷어낸 것도 아니었고 처벌을 논해야 할 이들도 남아 있었다.

그간 부패한 왕실과 귀족들에 의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시민들도 보살펴야 했다.

할 일이 이렇게 태산처럼 많은 상황에서 왕궁 재건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이러한 모든 일들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

“하아…….”

여왕 아나샤가 많은 생각이 담긴 한숨을 흘렸다.

그때.

“기왕 새로 탈바꿈하는 나라이니, 새로운 모습을 갖추는 게 좋겠지.”

처용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왕궁을 무너뜨린 것은 나이니, 이 부분 역시 내가 해결해 주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진지한 말에 아나샤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처용이 무너진 도로를 단번에 말끔한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은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으로 왕궁을 다시 만드는 것은 경우가 달랐다.

왕궁과 도로, 이 둘은 규모 차이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리고 단순히 도로를 만드는 것과 거대한 건축물을 구축하는 것 역시 차이점이 컸다.

아나샤가 걱정 어린 생각을 이을 때.

“끝났습니다. 여왕님.”

수도를 지키는 장군, 병사들과 함께 잔해를 정리하던 데인스가 아나샤에게 다가와 말했다.

무너진 잔해 속, 그나마 온전한 가구와 물건들을 모두 옮겼다.

기사와 병사, 마법사, 하녀, 시종 등 모두 힘을 합쳤기에 이 일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끝났다.

일을 끝마친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 중앙 광장에 모였을 때.

-저벅.

처용이 무너진 왕궁 잔해 앞으로 나아갔다.

“물러나.”

“뒤로 더 물러나라!”

아나샤가 처용의 말을 듣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무너진 왕궁에서 더 멀어지자.

-우우웅.

처용이 신력과 강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팔괘토류진(八卦土流陳) – 지반강화(地盤强化).”

가장 먼저 소환한 자연부는 지 속성의 힘이 담긴 토류부.

여덟 장의 토류부가 처용을 중심으로 팔괘의 진법을 그리더니 땅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처용이 만들어 낸 팔괘의 진법이 무너진 왕궁 아래 지하에 자리 잡자.

-쿠구구!

그 영향인지 땅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팔괘의 진법이 땅에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한 처용은.

“토류부 – 지룡승천(地龍昇天).”

-탁.

두 손을 합장하며 땅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쿠구! 쿠르르!

지면을 울리는 진동이 점점 더 거세졌고.

-크롸라라!

-크라라!

바위로 만들어진 여덟 마리의 용이 땅속을 뚫고 솟구쳤다.

동시에.

“토류부 – 지반건축(地盤建築).”

-쿠루루! 쿠구!

무너진 왕궁의 잔해들이 모이며 두껍고 긴 기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총 여덟 개의 두꺼운 기둥과 그 기둥들을 보조하듯 보다 작은 기둥들이 나열되었다.

그리고.

-크롸라라!

땅속에서 솟구친 여덟 마리의 용들이 가장 큰 기둥을 타고 올랐다.

용들이 기둥을 타고 오를 때.

-쿠궁! 쿵! 쿵!

평평하고 넓은 바위 받침들이 기둥 위로 쌓이기 시작했다.

-쿠드드! 드득!

그런 기둥들을 보조하듯, 기둥을 타던 용들이 머리와 팔로 바위 받침들을 지지했다.

-쿵! 쿵! 쿵!

기둥 위에 평평하게 나열된 받침 위로 1층보다 작은 기둥들이 추가로 나열되었다.

그 위로, 보다 작은 받침들이 나열되었고.

-쿵! 쿠르르! 쿵!

다시 기둥 위로 길고 평평한 받침들이 추가로 나열되었다.

마치 지붕의 뼈대가 형성되듯, 아래는 넓고 그 위로 삼각기둥 형태의 틀이 만들어졌다.

지붕의 틀이 완성된 순간.

-촤라라라!

바위 파편들이 모여 작은 기와들을 형성했고 지붕의 뼈대 위에 차곡차곡 나열되었다.

하나의 메인 건물이 완성되자.

“토류부 – 지반건축.”

처용이 토류부를 추가로 소환하여 그 주변에 다른 건축물들을 추가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반원기둥 형태의 지붕이 씌워진 길쭉한 형태의 아치형 건축물.

높고 두꺼운 탑이 달린 삼각형 형태의 지붕이 나열된 건축물 등.

메인 건축물을 제외한 새로 만들어 내는 건축물들은 모두 이곳, 에스라 대륙의 건축 양식에 맞춰 제작했다.

그 외, 왕궁의 앞에 자리했던 분수대와 화단 등, 자잘한 것들도 추가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촤라라라!

각 건물과 건물을 잇는 평평한 도로가 만들어졌고 그 위로 햇빛을 가리는 아치형의 지붕이 씌워졌다.

무너진 왕궁과 비슷한 규모의 건축물들이 새로 세워지자.

“팔괘수림진(八卦樹林陳).”

처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덟 장의 목림부를 소환하여 팔괘의 진법을 추가로 만들어 내었다.

자연을 형상화한 녹색의 진법이 지면으로 스며들었고.

“목림부 – 수림재생(樹林再生).”

처용이 지맥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을 지상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스르르. 스륵!

황량한 흙더미였던 지면에 푸른 잔디가 자라났고.

-쩌저저적! 쩌적!

건물과 건물 사이의 환경을 조성해주듯, 푸른 나무가 자라나 잎사귀를 피웠다.

아무것도 없던 화단에서는 꽃과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바위로 만들어진 잿빛 가득한 환경에 자연의 색채가 더해져 생동감이 넘쳤다.

여기까지의 일을 마친 처용이 합장한 두 손을 떼고는.

“연아야, 이제 네 차례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연아를 불렀다.

“내가 표시해 둔 부분만 작업하면 된다.”

“좋아, 이 정도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처용의 말에 연아가 두 팔을 걷으며 자신감 있게 답하고는.

-탁!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손을 아래로 뻗어 땅을 짚었다.

“먼저 수맥의 기운을 찾아 끌어올리고…… 방향을 유도한다.”

연아가 눈을 감고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푸슈! 슈르르륵!

지맥 아래에 흐르는 물의 기운이 연아의 신성력에 끌려 지면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 물줄기가 처용이 미리 만들어 놓은 분수를 적시고 수로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자연환경이 조성된 건물에 흐르는 물소리까지 더해지자, 한 폭의 생동감 넘치는 배경이 완성되었다.

“음, 생각나는 대로 만든 것치곤 나쁘지 않군.”

처용이 새로 완성된 왕궁, 그중 가장 중앙에 있는 메인 건축물을 보며 읊조렸다.

크게 2층으로 구성된, 태룡사의 건축 양식과 신전의 느낌이 묻어나는 건축물.

대략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한국의 대통령이 국정을 보는 장소, 청와대와 비슷한 형태였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중앙에 저것만 동양 양식이야?”

연아가 처용이 바라보는 왕궁 중앙의 메인 건물을 보며 물었다.

왕궁의 재건축이면 주변의 건물처럼 유럽, 서양식 건축물로 만들어도 되었을 테니까.

그런 연아의 질문에.

“이유가 있어.”

처용이 오른손에 황금빛 용이 휘감긴 열쇠, 태룡전의 열쇠를 소환하며 말했다.

굳이 왕궁의 메인이 될 건물을 동양의 양식대로 만든 이유가 있었으니까.

-우우웅.

처용이 신력을 끌어올리자, 태룡전의 열쇠에서도 그에 공명하듯 황금빛 신력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곳을, 성지의 두 번째 거점으로 선포한다!”

지면에 열쇠를 꽂고 마치 문을 열 듯, 열쇠를 돌린 순간.

-화아아!

태룡전의 열쇠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이 지면을 타고 넓게 퍼졌다.

그중 가장 환하게 빛나는 빛들이 메인 건축물을 감싸며 빛을 내는 순간.

[성지의 두 번째 거점이 완성되었습니다.]

[메인 성지, ‘태룡사’의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점이 늘어날수록 성지의 힘이 점차 강해집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200레벨을 넘어서고 성지, 태룡사가 더 성장한 결과.

[성지의 두 번째 거점을 세울 수 있습니다.]

태룡전의 열쇠에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회귀 전에는 메인 성지였던 태룡사가 무너지고 지구가 멸망했기에 알 수 없었던 능력.

물론, 그 이후에도 다른 세계에 성지를 건설해 보았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악신들과 배신자들로 인해 성지가 파괴되곤 했다.

성지를 이 정도로 성장시킨 적이 없었기에, 알 수 없었던 능력이었다.

그런 새로운 능력을 이번 기회에 시험해 본 것이었다.

간단하게 식당으로 비유하자면, 메인 성지인 태룡사가 본점.

방금 성지로 선포한 이곳, 새로 건축한 왕궁은, 지방에 만든 분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뭐, 두 번째 분점 성지라고 할 수 있겠네.”

처용이 연아에게 설명하자.

“아아~ 이해했어.”

연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어때, 새로운 왕궁은 마음에 드는가?”

처용이 연아의 뒤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나샤를 향해 말을 이었다.

비단 아나샤만이 아닌, 카란디아, 청이 등 처용과 함께 나섰던 사람들.

숙청 속에서 살아남은 귀족들과 왕궁에서 일하던 사람들, 병사들, 시민들까지.

순식간에 새로운 왕궁이 건설되는 것을 본 모든 이들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네가 선택한 신의 능력이다. 에스라의 무능한 성좌들은 이런 능력이 없을 테지.”

처용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잇자.

“……아!”

아나샤가 멍한 정신을 되찾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 그렇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저희에게 이런 힘을 베풀지 않을 테지요.”

그리고 처용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를 바로잡으며 읊조리듯 답했다.

신들은 오만하다.

신들은 무자비하다.

신들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다.

신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소모되고 다시 채워지는 가축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그들을 받들어 모신다.

인간은 신에게 거스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인간으로 시작해 신으로 승천한 눈앞의 존재.

처용만큼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에스라 성운과 달랐다.

신들의 오만한 행위를 거침없이 비판하며 힘으로 그들을 응징한다.

다른 신들과는 다르게, 처용은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힘을 쓰는 존재였다.

“감사합니다.”

아나샤가 처용이 준 선물을 바라보며 감사를 전했다.

“겉모습만 이럴 뿐, 안쪽은 텅 빈 공동일 것이다.”

처용은 그런 아나샤를 보며 작은 미소를 담아 말했다.

“벽을 세워 방을 나누든, 비밀통로를 만들든, 내부를 꾸미는 건 알아서 해.”

무너진 왕궁 위에 새로 세워진 왕궁은 말 그대로 겉모습에 불과했다.

내부는 텅 빈 공동과 마찬가지.

이제 그 내부를 왕궁에 익숙한 이들이 뜻에 맞게 꾸미는 과정이 남았다.

물론.

“왕궁을 새로 세우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일주일 내에 마무리될 것입니다.”

왕궁 전체를 구축하고 새로 건설하는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게다가 잔해 속에서 나뒹굴던 물건들도 모두 따로 정리해 둔 상황.

가구와 물건들을 다시 내부로 들이고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나샤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다짐한 듯, 겸허한 목소리로 다시 감사를 전했다.

처용은 그런 아나샤를 향해 미소를 짓고는.

“구경은 다 했나?”

아나샤의 오른쪽 뒤, 아무도 없는 곳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런 처용의 태도에 아나샤와 연아 등 사람들이 의문을 표할 때.

-스르륵.

아무도 없던 공간이 회오리처럼 일그러지며 일렁이더니.

-저벅.

일그러진 공간이 되돌아오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루비아!?”

아무것도 없던 공간 속에서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루비아였다.

-대, 대마법사?

-제2 마탑주가 왜 여기에?

-설마 마신하고 관련이?

루비아를 알아본 몇몇 귀족들과 마법사들이 쑥덕대는 소리가 울렸다.

그런 주변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

루비아는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는 눈빛을 띤 채, 처용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할 말이 무척이나 많지만, 뭐라 말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듯한 모습.

처용은 그런 루비아의 시선을 받고는.

“따라와라.”

-저벅.

새로 건축된 왕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네가 본 것들과 비슷한 게, 이 왕궁 지하에도 있다.”

아스터 교단의 잔혹한 인체 실험.

그 실험이 진행되는 장소는 루비아에게 알려준 장소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로스톤 왕궁 지하에도 비슷한 시설이 존재했다.

“가면서 궁금한 점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마.”

-루비아 바하무트.

말을 잇던 처용이 마지막 말.

루비아의 풀네임을 소리 없이 전음으로 전했다.

그 말에.

“…….”

-저벅.

멍하니 서 있던 루비아가 발을 움직이며 처용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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