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11화 (411/726)

#411화

처용이 게이트웨이를 이용해 수도에 발을 들이기 전.

왕과 귀족들은 왕궁 내에 자리한 아스터 신의 제전에 대피한 상태였다.

붉은 융단이 길게 펼쳐진 제전.

제전의 끝에는 열 걸음 정도 높이의 계단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계단 위로도 붉은 융단이 펼쳐져 있었다.

계단 높이를 쭉 따라 올라간 융단의 끝에는 순금으로 만들어진 듯, 넓고 번쩍이는 옥좌가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 옥좌 위에는.

“마신은 어찌 되었나?”

-꿀꺽. 꿀꺽.

풍만한 뱃살과 불어난 목살이 돋보이는, 왕관을 쓴 뚱뚱한 남자.

로스톤 왕국의 왕이 취기가 오른 듯, 조금 상기된 얼굴로 말하며 손에 든 와인을 들이켰다.

“끄허.”

와인을 쭉 들이켠 왕이 빈 잔을 왕좌 옆 테이블에 올리자.

-쪼르르륵.

거의 나체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얇은 천 쪼가리를 옷처럼 입은 여성이 빈 잔에 와인을 채웠다.

왕의 빈 잔에 와인이 새로 채워질 때.

“제1 왕자님께서 데인스 장군과 수도 성벽으로 가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녀가 게이트웨이를 타고 마신과 함께 나타나는 순간, 수도 방위 마도포를 맞을 것입니다.”

왕의 앞에 펼쳐진 붉은 융단.

그 융단을 중심으로 양옆에 나열된 신하 귀족들이 입을 열었다.

처용이 라톤 영지의 게이트웨이를 다시 활성화시킬 때.

-우우웅!

수도에 있는 게이트웨이 역시 불빛이 점멸하며 활성화되었었다.

그 모습에 귀족들이 경악했고.

-게이트웨이를 타고 그 천출 계집이 나타나는 순간, 수도 방위 마도포를 쏴 버리겠습니다!

왕자가 좋은 계획이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게이트웨이에서 아나샤와 마신으로 추정되는 이가 나타난 순간, 수도 방위 마도포를 발사하는 것.

거리가 초토화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테지만, 무려 마신을 처치할 기회였다.

덤으로 항상 성가셨던 제1 왕녀 역시 처리해 버릴 기회.

왕은 그런 왕자이자 아들의 작전 수행을 허락했고 지금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소식을 기다리던 중, 불안한 소식이 전해졌다.

“왕궁이 반으로 갈라지지 않았는가? 마신을 저지하지 못한 것 아닌가!”

-쾅!

왕좌에 앉은 왕이 주먹으로 팔걸이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조금 전, 무언가의 공격으로 인해 왕궁이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분명, 마신이 벌인 일이 확실했다.

“대마법사도 이 왕궁을 반으로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이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로스톤 왕국의 왕궁은 한 국가의 왕궁답게 그저 평범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외부의 테러를 막기 위한 방어 마법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공격으로 인해 그 방어 마법들이 모두 무너지고 왕궁이 반으로 갈라졌다.

“병사들은 뭘 하고 있냔 말이야! 데인스 장군은 무얼 하고 있냔 말이야!”

다시 채워진 와인을 들이켠 왕이 거친 목소리로 소리치고는.

-획! 쨍그랑!

바닥으로 와인 잔을 던져 깨뜨려 버렸다.

그 모습에 귀족들 뒤에 있던 시종이 재빨리 깨진 와인 잔을 치웠고.

-탁. 조르르.

왕의 옆에 선 여인들이 새로운 와인 잔을 놓고 와인을 따랐다.

“그대들도! 당장 나가서 마신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취기가 오른 왕이 벌게진 얼굴로 귀족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때.

“걱정하지 마시지요. 전하.”

길게 찢어진 눈에 외눈 안경을 쓴 화려한 사제복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재상.”

왕이 취기가 오른 듯, 풀린 눈으로 외눈 안경의 사제를 보며 말했다.

왕의 말에 답한 사제는 아스터 교단의 주교이자 로스톤 왕국의 재상을 맡은 귀족이었다.

“제아무리 마신이 강하다 해도, 왕궁을 반으로 가르는 강력한 힘을 썼습니다. 분명 지쳤을 겁니다.”

제상이 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데인스 장군은 소드 마스터입니다. 왕자 전하 역시 강합니다.”

“그으~래, 맞구나, 장군은 소드 마스터였지.”

왕이 재상의 말에 취기 어린 목소리를 흘리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왕국은 위대하신 신들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분명, 신들께서 저희를 도우실 겁니다.”

미소를 머금은 재상의 말이 계속 울리자.

“그래, 위대하신 신들께서 우리를 보우하실 것이다.”

왕이 재상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그,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들께서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암요! 우리가 그동안 바친 정성을 기특히 여기실 것입니다!”

걱정과 불안을 내비치던 귀족들이 웃음을 보이며 떠들었다.

제아무리 마신이 강력하다 해도, 이곳은 왕국.

혼자서 왕국을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로스톤 왕국을 가호하는 신들이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에 모인 귀족들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곧 왕자 전하께서 마신을 처치하고 배신한 왕녀를 잡아 오실 것입니다.”

재상이 왕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간사한 목소리로 말을 잇자.

“거두어 준 은혜도 모르는 건방진 년이……!”

-으드드!

왕이 다시 화가 솟구치는 듯, 와인 잔을 강하게 쥐며 읊조렸다.

“아양이나 떨며 왕궁에 봉사할 것이지, 감히 마신에게 빌붙어!?”

-차창! 창!

결국, 분노를 내지른 왕이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또 내던지며 깨뜨렸다.

“얼굴 반반한 제 어미를 닮아 마신을 홀린 게로구나! 이 악독한 악녀 같은 것!”

왕의 입에서 아나샤와 그녀의 어머니를 향한 모함이 울렸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 왕인 자신을 홀렸고 악녀인 아나샤가 태어났다는 왕의 말.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와 혼인할 예정이었던 한 여성.

그러나 우연히 평민들의 약혼식을 보며 지나가던 왕이 그 여성의 외모를 보며 추악한 욕망을 품었고.

-이 나라의 모든 것은 왕인 나의 것이다!

여성과 맺어질 운명이었던 남자를 죽이고 강제로 그 여성을 취해 첩으로 들였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남은 가족들을 참형시킨다는 말에 여성은 어쩔 수 없이 왕의 명령에 따랐다.

그 평민 여성이 바로 아나샤의 어머니였다.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모두가 이 추악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한 피는 속일 수 없는 법이지요. 하하하!

-이제야 그 더러운 피를 치워 버릴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거짓을 입에 담았다.

돈과 권력을 쥐고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

돈과 권력을 가진 자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 세상.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법이 되고 그들이 하는 말만이 진실이 되는 세상.

명확한 진실이 있음에도 힘이 있는 자가 거짓이라 말하면 거짓이 되는 세상.

로스톤 왕국은 이러한 법도가 당연시되는 나라였다.

왕과 재상, 귀족들이 진실을 짓밟은 거짓을 계속 입에 담을 때.

-쾅!

왕과 귀족들이 자리한 제전의 정문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크게 열렸다.

웃고 떠들던 귀족들의 고개가 일제히 제전 입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

싸늘한 눈을 치켜뜬 채 굳은 표정을 지은 아나샤가 서 있었다.

“왕녀!?”

“이 천출 계집이 제 발로-!”

귀족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여는 순간.

“찾았습니다.”

-슥.

아나샤가 옆으로 비켜서며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아아, 이 개돼지 새끼들이 어디 숨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군?”

-저벅.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를 흘리고는 제전 앞에 펼쳐진 레드 카펫을 밟으며 걸어 나왔다.

동시에 아나샤가 처용의 뒤에 섰고.

-저벅. 저벅.

그 뒤로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감히! 신의 제전에 함부로 발을 들이다니!”

왕이 늘어진 턱살을 부르르 떨며 제전에 함부로 들어선 이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이어서.

“데인스! 하인겔! 당장 저 왕녀를 잡아 무릎을 꿇리고 저것을 죽여라!”

왕의 옆에 선 재상이 아나샤의 뒤에 있는 장군과 로브를 입은 마법사를 보며 소리쳤다.

감히, 아스터 신의 제전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인 불청객을 즉결 처형하고 왕녀를 잡으라는 명령.

본래라면, 로스톤 제국의 2인자이자 왕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인물, 재상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

“…….”

재상이 호명한 둘은 물론, 그 뒤에 선 다른 병사와 마법사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뭣들 하는 거냐! 감히 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냐!?”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의 태도에 재상이 인상을 거세게 구기며 소리쳤다.

재차 이어지는 재상의 말에도 움직이는 이들이 없자.

“큭, 그렇다는데? 저 명령에 따를 텐가?”

피식 웃음을 지은 처용이 고개를 돌려 뒤를 응시하며 말했다.

처용의 시선을 받은 두 인물.

수도 방어를 책임지는 데인스 장군과, 마법사들을 이끄는 마법 단장 하인겔.

“따르지 않겠습니다.”

“따르지 않겠습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기사와 6서클의 마법사가 고개를 저으며 동시에 말했다.

명백한 명령 거부 의사를 표한 것.

그러자.

“이 버러지들이 감히 내 말을-!”

재상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향해 이를 갈았다.

그때.

“시끄러우니까. 작작 짖어 이 새끼야.”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재상의 말을 자르고는.

-쿠구구구!

재상을 향해 강기를 내뿜었다.

-쿠궁!

“으어어억!?”

처용이 내뿜은 강기에 짓눌린 재상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괴성을 토했다.

“가, 감히 아스터 교단의 주교이자 이 나라의 재상인 나를-!”

재상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읊조렸다.

“위대하신 빛과 지혜께서 네놈을 저주하고 처단하실 것이다!”

“큭, 크크…….”

신을 언급하는 재상의 말에 처용이 실소를 흘리고는.

“하메라가 나한테 죽도록 처맞고 신계로 도망갔는데 말이야?”

참회의 여신, 하메라를 때려눕히고 도시를 초토화했던 일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아스터 그 쫄보 새끼가 제 발로 내려올 것 같나?”

살기를 스멀스멀 내뿜는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뱉은 신성모독.

무려 아스터 교단의 최고신 중의 최고신, 빛과 지혜의 신 아스터를 모욕하는 말이 울려 퍼졌다.

그 말에.

“마…… 마, 마신!?”

재상이 이제야 처용의 정체를 알아챈 듯, 사색이 된 얼굴로 경악을 표했다.

그런 재상의 말에 귀족들의 안색 역시 사색으로 변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어딜 감히 신을 내려다보고 있냐?”

-저벅.

처용이 왕이 있는 계단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는 살기를 담아 말하자.

“어…… 어.”

왕이 취기가 확 깨 버린 듯, 붉었던 안색이 파래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도 엎드려 이 돼지 새끼야.”

-스릉! 사각 사가각!

처용이 왕을 노려보며 읊조리고는 역천의 절을 뽑아 크게 다섯 번 휘둘렀다.

-촤아! 촤아! 촤아아!

칼날이 지나간 궤적에 따라 넓은 제전에 날카로운 선들이 그어졌다.

마지막으로.

-콰쾅!

처용이 땅을 강하게 밟자.

-쿠구! 쿠콰콰!

넓은 제전을 감싸는 둥근 아치형의 천장이 날아갔다.

동시에 벽들이 갈라지고 좌우로 무너지며 왕궁 외부가 드러났다.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왕궁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상황.

안 그래도 반으로 갈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왕궁이, 처용의 검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왕궁이 완전히 무너지자.

-으, 으어……!

-와, 왕궁이……!

외부에 있던 사람들이 무너지는 왕궁을 보며 공포 어린 목소리를 토했다.

동시에.

“으억! 컥! 크헥!”

-쿵! 쿵! 쿠궁!

지면의 흔들림을 버티지 못한 왕이 옥좌에서 떨어져 계단을 굴렀다.

육중하고 살이 들어찬 육체에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인지, 바닥에 엎어진 왕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처용은 그런 왕 앞에 다가가고는.

-스릉.

엎어진 왕의 목에 역천의 절을 가져다 대었다.

“어, 어어……!”

검은 칼날을 응시한 왕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떨렸고 입에서 공포 어린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 돼지를 살려야 할 이유는?”

처용이 고개를 돌려 아나샤를 바라보며 물었다.

조금 전, 제1 왕자와 같이 왕의 생살여탈권을 준 것이었다.

“아, 아, 아나샤! 아, 아비를, 네가 아비의 은혜를 안다면-!”

상황을 파악한 왕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왕의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없습니다.”

바닥에 엎어진 왕을 싸늘하게 노려본 아나샤의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나샤의 말이 끝난 순간.

-사각.

왕의 두툼한 목에 얇은 선이 그어졌고.

-촤아아!

목에서 분리된 왕의 머리가 볼살을 흔들며 하늘로 솟구쳤다.

-탁.

솟구친 왕의 머리, 정확히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처용이 왼손으로 붙잡았다.

“돼지머리는 관심 없고.”

-획.

처용은 왕의 머리에 씌워져 있던 왕관만을 잡은 채, 남은 머리를 휙 던져 버렸다.

-툭. 구르르…….

잘려 나간 왕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자.

-으, 으어어……!

-어어!

귀족들이 기겁하며 뒤로 더 물러섰다.

-구르르…… 탁.

데굴데굴 구르던 왕의 머리가 멈춘 곳은 바닥에 쓰러진 재상의 바로 눈앞.

잘려 나간 왕의 머리를 본 재상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시, 신벌을 받을 것이다! 이 사악한 마신이여! 네놈은 천사와 신들에게 신벌을-!”

미친 듯이 신을 부르짖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처, 천사들이여! 그, 그대들을 모시는 종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저에게 구원을-!”

천사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재상의 목소리가 울리자.

“큭, 신벌을 내릴 천사들이라면 저 버러지들을 말하는 건가?”

처용이 실소를 내지르며 엄지로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곳은 다름 아닌, 무너진 왕궁으로 인해 드러난 장소.

거대한 아스터 동상이 자리한 왕궁 내부 중앙 광장이었다.

왕궁의 중심부를 차지한 아스터 동상은 머리가 잘려 나간 상태.

그리고 그 앞에는.

“자자, 가진 거 다 내놔라, 이 비둘기 새끼들아.”

-슈르르르르!!

연아가 원형으로 휘몰아치는 물줄기 파도를 허공 위로 띄운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드럼 세탁기처럼 둥근 고리를 만들어 내며 거세게 휘몰아치는 물줄기.

그 거칠게 흐르는 물줄기 속에는.

[으아아-!]

[크아악!]

날개와 팔다리가 잘려 나간 천사들이 소용돌이를 따라 회전하며 고문을 받고 있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세탁기 속에서 고통을 토해내는 천사들.

그런 그들의 아래에는.

-휘릭. 휘리릭.

천사들의 화신체가 점점 흩어지며 떨어지는 결과물, 새하얀 날개 깃털이 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조금 전, 처용을 저지하기 위해 아스터 동상에서 강림했던 천사들.

처용은 천사들이 강림한 순간 백귀야행을 쏘아 보내며 그들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연아는 그나마 살아남은 천사들을 제압해 효율적으로 깃털을 털어내는 중이었다.

천사들이 인간에게 고문을 당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자.

“…….”

“으…….”

왕궁을 지키는 장군과 마법 단장, 데인스와 하인겔이 눈동자를 떨며 침음을 흘렸다.

그들이 처용과 아나샤에게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

처용이 소환한 백귀야행에 천사들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을 직접 마주하자, 충성심으로 인해 약간 남아 있던 반발심마저 완전히 사그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아…… 아아.”

천사들이 고문당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본 아스터 교단의 주교.

로스톤 왕국의 재상이 입술을 달달 떨며 공포와 경악을 흘렸다.

그때.

“이놈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처용이 왕과 마찬가지로 재상을 향해 칼을 겨누며 아나샤에게 물었다.

그러자.

“저 쓰레기만큼은 제 손으로 죽여 버리겠습니다!”

-으드드!

아나샤가 오른손에 강철을 모아 검을 형성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왕을 죽일 때보다도 더 격한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 있었다.

로스톤 왕족과 귀족들의 부정부패를 가속 시킨 비열한 남자.

아나샤와 아스터 교단의 고위 사제의 정략혼을 추진했던 놈.

그녀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악랄하게 괴롭혔던 악마.

아나샤에게 있어 재상은 왕보다도 더 증오스러운 자였다.

-샤가각!

그런 증오로 가득 찬 아나샤의 검격이 재상을 향해 여러 번 그어졌고.

-촤아! 촤아아!

재상의 나약한 육체가 조각 조각나며 바닥에 흩뿌려졌다.

“후, 후우-.”

증오의 대상을 죽여 버린 아나샤가 복잡한 눈빛을 지으며 거친 숨을 쉬었다.

처용은 그런 아나샤의 모습을 잠시 보고는.

“자, 그럼-.”

뒤로 물러선 채 주저앉아 있는 귀족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사, 살려주십시오! 왕녀님!”

“추, 충성을 맹세하겠-!”

몇몇 귀족들이 아나샤와 처용을 향해 바짝 엎드리며 소리쳤다.

그 순간.

-스릉! 스르릉! 촤아아-!

아나샤가 눈을 번뜩이며 즉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을 향해 부복하며 충성을 언급하는 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린 것.

그리고.

“…….”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는 귀족들을 쭉 둘러보며 침묵했다.

얼굴에 피가 튄 아나샤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귀족들을 한 번 훑었을 때.

“분리수거는 다 했느냐?”

처용이 아나샤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장 쓸모없는 자들은 걸러냈습니다.”

아나샤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처용은 망설임 없이 단호한 모습을 보였던 아나샤의 행동이 마음에 든 듯, 미소를 짓고는.

“오늘부터-.”

왕을 죽이고 강탈한 왕관을 들어 보이며 아나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네가 이 나라의 국왕이다.”

-스륵.

고개를 숙인 아나샤의 머리에 손에 든 왕관을 씌워 주었다.

단 하루 만에 마신의 손에 점령된 왕국.

하지만, 왕국은 멸망이 아닌, 부정부패를 털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런 새 왕국에서 마신에게 선택을 받은 새로운 왕.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왕 아나샤가 겸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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