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408화 (408/726)

#408화

루비아가 만들어 낸 디멘션 필드가 무너지자.

-스르륵. 스륵.

강렬한 마법의 격돌로 인해 초토화되었던 새하얀 배경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디멘션 필드, 허상 공간 안에 갇혀 있던 두 사람.

-탁.

처용과 루비아가 본래 있던 자리, 라톤 영지 광장 앞에 나타났다.

-마탑의 대마법사가 졌어?

-마신은 이길 수 없었던 건가…….

광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루비아는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안색이 좋지 않았다.

반면에 처용은 조금도 다치지 않은 멀쩡한 모습.

게다가 디멘션 필드 속에서 펼친 루비아와 처용의 마법 전투는 누가 봐도 처용의 압승이었다.

그때.

“아, 아직이야…….”

-스르르.

루비아가 처용을 노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마나를 스멀스멀 뿜어대었다.

다시 한번 디멘션 필드를 사용하려는 것.

포기를 모르는 루비아의 태도에 처용이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쉴 때.

“그만!”

아나샤가 처용과 루비아 사이에 나타나며 루비아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처용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루비아와 처용이 충돌하기 전.

-내게 협력해라.

처용이 했었던 제안이 있었다.

아나샤는 처용이 했었던 제안을 수락하겠다 말했다.

“내게 협력하겠다고?”

처용이 아나샤를 향해 확인차 다시 묻자.

“네.”

아나샤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용은 그런 아나샤의 분위기를 잠시 살피고는.

“…….”

어느새 벙커 터틀 밖으로 나와 있던 카란디아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

-마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시면,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습니다.

카란디아가 아나샤에게 다가와 했었던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자들의 말만큼은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처용과 루비아의 싸움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아나샤.

그런 그녀의 분위기를 보고 작금의 상황을 파악한 카란디아가 한 행동이었다.

“이제, 그만해 주십시오.”

아나샤가 카란디아의 조언에 따라 처용의 제안을 수락하고 그만둘 것을 부탁하자.

“그러지.”

카란디아를 보며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어차피, 루비아의 실력과 작금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을 끝으로 여기서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때.

“무슨 소리야!”

루비아가 아나샤를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아직 안 끝났-!”

-우우웅!

결국, 루비아가 제 고집대로 다시 한번 디멘션 필드를 사용하려는 찰나.

“그만해!”

-쩌저저적!

강철의 힘을 개방한 아나샤가 거대한 골렘으로 변하고는.

-탁!

두 손으로 루비아를 감싸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그대로 루비아를 들어 올리더니.

“들으란 말이야!!”

-콰쾅!

마치 땅을 향해 기둥을 내리꽂듯, 아래로 패대기를 쳐 버렸다.

그 결과 루비아가 지면을 뚫고 가슴 아랫부분까지 땅에 틀어박혔다.

동시에.

-쩌저저적!

아나샤가 강철의 힘을 집중시켜 루비아가 심어진(?) 땅 주변을 단단한 강철로 바꾸었다.

“너-!”

루비아가 인상을 일그러뜨리고는 구속을 빠져나가기 위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파아아……!

루비아를 구속한 강철이 푸르게 빛나더니, 그녀에게 모여들던 마나가 일순간 흩어졌다.

“……이건, 설마?”

“블록 스톤이야.”

아나샤가 경악을 드러내는 루비아를 향해 마나를 흩어 버린 암석의 정체를 말했다.

봉마석(封魔石), 혹은 블록 스톤(Block Stone)이라 불리는 광석.

강철의 정령왕에게 선택받은 아나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광석이었다.

봉마석에 닿거나 가까이 접근하는 마나는 모조리 흩어지고 차단당한다.

그녀가 훗날 흑마법사 클래스 마인들에게 ‘마법사 킬러’라고도 불리게 만들어 줄 힘이었다.

아무리 루비아가 대마법사라 해도, 강철의 정령왕의 ‘권능’이 담긴 이 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당장 풀어! 이게 뭐 하는 짓-!”

루비아가 아나샤를 향해 소리치려 하자.

“죄송합니다.”

-탁!

강철의 힘을 해제하고 골렘에서 내린 아나샤가 루비아의 머리를 푹 누르며 처용을 향해 다시 한번 사과했다.

“얘가 좀 무식(?)해서 그렇지, 심성은 착한 녀석입니다.”

대마법사인 루비아를 향해 무식하다 말하며 거듭 사과하는 아나샤의 말에.

“너, 너 진짜로 변절자가 되기로 한 거야!?”

루비아가 아나샤를 향해 걱정과 충격을 내비치며 소리쳤다.

그 말에.

“오해라고 이 멍청아!”

결국, 참고 인내하던 성질이 폭발한 아냐사가 언성을 높이며 루비아를 향해 소리쳤다.

“라톤 영지를…… 나를 버림패로 쓰고 죽이려 한 건 아스터 교단이야.”

조금 전, 흥분한 루비아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

아나샤가 진지한 목소리로 왜 세간에 그런 소문이 퍼졌는지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들은 라톤 영지를 향해 참회와 회개의 심판까지 내렸었어, 마신께서는…… 그걸 막아주었고.”

마신은 아나샤를 타락시키고 그녀를 꼬드긴 것이 아니었다.

아나샤와 라톤 영지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아스터 교단이었다.

마신, 처용은 궁지에 몰린 라톤 영지와 아나샤를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런…….”

이제야 제대로 된 사정을 들은 루비아가 멍한 표정을 짓고는.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 줬으면-!”

어째서 자신에게 이러한 사정을 말하지 않았는지, 따지듯 말했다.

그러자.

“그러니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듣는 시늉이라도 하란 말이야! 이 답답한-!”

결국, 아나샤가 다시 한번 답답한 감정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불과 오늘 일어난 일인데다가, 내 정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나한테는 알렸어야지!”

“아까 말하려 했는데, 네가 제멋대로 굴었잖아!”

봉마석에 붙잡힌 대마법사를 향해 핀잔을 내뱉는 왕녀와 그런 그녀에게 따지듯 반박하는 대마법사.

‘오랜만이네.’

작금의 상황을 지켜본 처용이 속으로 작은 웃음을 터트리며 읊조렸다.

처용에게는 지금 둘의 모습이 익숙한 광경이었으니까.

-아 또 왜 그러는데!?

-말을 하면 좀 쳐 들으란 말이야!

제멋대로 구는 대마도사와 그런 그녀의 튀는 행동을 통제하는 강철의 여제.

회귀 전, 친구이자 전우였던 둘이 자주 보여주었던 모습이었다.

“어휴.”

한바탕 언성을 쏟아낸 아나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죄송합니다.”

처용을 향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했다.

“나야 오랜만에 재밌었는데.”

아나샤의 말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세계에서는 나와 제대로 마법 대결을 펼칠 인간이 없었거든.”

조금 전, 지금 시기의 루비아가 가진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했었던 싸움.

그 시간이 나름 재밌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분명히 검을 쓰셨는데, 마법까지…….”

아나샤가 처용의 말을 듣고 다시금 놀람을 삼켰다.

자신을 상대할 때에는 자신과 같은 강철의 힘을 사용했었다.

라톤 영지를 향한 신들의 심판을 받아칠 때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했었다.

아스터 교단에서 파견된 토벌대를 쓸어 버릴 때는 다섯 마리의 괴수를 불러냈었다.

성검을 든 교단의 성기사단장을 제압할 때에는 검과 주먹을 사용했었다.

마지막으로 마탑의 대마법사인 루비아를 상대하기 위해 펼친 마법까지.

이제는 눈앞의 마신이 또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나샤가 눈앞의 마신이 가진 능력을 다시 생각해 보며 긴장할 때.

“……오랜만이군, 제2 마탑주.”

-스르륵.

잿빛의 안개가 루비아의 앞에 뭉쳐 들더니 네이션이 나타났다.

루비아를 잘 아는 듯한 네이션의 말에.

“검은 기사!? 네가 어떻게 여기에?”

루비아 역시 네이션을 알아보며 경악하듯 말했다.

다만, 둘의 분위기는 아나샤와 루비아가 보이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서로에게서 적대감 어린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으니까.

처용 역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처용이 에스라 성운의 거래를 받아들이고 네이션을 처치할 때.

-내가 놈이 있는 위치를 알아.

마탑에 속해 있던 루비아가 처용을 도와주었었으니까.

아스터 교단과 마탑은 서로 협력 관계.

마탑은 아스터 교단의 의뢰를 받고 반란군의 수장이었던 네이션을 추적하고 있었었다.

물론, 그 당시 루비아도 마탑과 아스터 교단에 이용당하던 시절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신들에게 이용당할 줄만 아는 멍청한 대마법사여.”

-으드드.

루비아를 마주한 네이션이 주먹을 강하게 쥐며 짧은 분노를 드러냈다.

룬테라 왕국이 아스터 교단에게 침공당할 때, 마탑은 아스터 교단을 도왔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대마법사는 그런 마탑의 우두머리 중 하나.

네이션의 입장에서는 증오의 대상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지만.

-휙. 스르르.

네이션은 구속된 대마법사를 향해 짧은 적의와 핀잔 어린 말만 내뱉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루비아가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사라진 네이션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본래라면, 구속된 자신을 향해 검을 내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네이션은 적의를 드러냈을지언정, 검을 뽑지는 않았다.

그리고 뒤에 있는 처용의 눈치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루비아가 의문을 품으며 침묵할 때.

“이 정도 재능을 가진 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아스터에게 이용당하는 꼬라지가 보기 싫군.”

-저벅.

처용이 루비아의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자신들의 뜻에 거스르는 모든 이들을 이단 취급하는 아스터 교단이 정말 정의롭다고 생각하나?”

마탑과 협력 관계인 아스터 교단.

처용은 그들을 향한 비난의 말을 쏟아내고는.

“그 오만한 아스터가 드래곤 로드와 맺은 약조를 지키리라 생각하나?”

또다시 루비아가 가진 비밀과 관련된 말을 언급하며 물었다.

“……무엇을 알고 있든, 함부로 말하지 마.”

루비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읊조리듯 말했다.

처용은 루비아의 태도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에스라 성운이 에인션트급 드래곤 하나를 살해하고 그 피와 살, 심장을 취했다.”

천교 길드를 무너뜨릴 당시 찾았던 증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온갖 신수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사냥했었던 천교.

그들이 사냥한 신수들 중에는 드래곤도 있었다.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에스라 대륙에서 레어 발견.

-성역 침입 및······.

천교 길드 성지에 자리한 비밀 시설 속에서 찾은 증거.

태블릿 속에는 어떻게 에인션트급 드래곤을 사냥했는지, 누가 사냥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흑면장군, 호법신.

드래곤을 사냥한 범인은 다름 아닌 천교의 성좌들이었다.

문제는, 드래곤의 레어를 발견한 위치가 ‘에스라 대륙’이었다는 점.

천교가 에스라 대륙에서 드래곤을 사냥했다?

이는 에스라 대륙을 지배하는 성운, 에스라 성운이 돕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 굳이 에스라 성운이 직접 나서서 드래곤을 사냥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함이겠지.’

드래곤을 사냥한 범인은 에스라 성운의 성좌가 아니다.

다른 알 수 없는 신격을 가진 존재가 레어에 침입해 드래곤을 사냥했다.

드래곤을 사냥했다는 흔적을 들킬 시, 혐의에서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

루비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정적인 목소리를 토했다.

드래곤은 세계의 균형을 수호하며 중립을 지키는 존재들.

제아무리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이라 해도, 드래곤은 함부로 죽일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스터가 우리 세계에 있던 악신들에게 드래곤 사냥을 의뢰했었다. 그리고…….”

처용은 루비아의 말에 하나하나 답해줌과 동시에.

-탁. 우우웅!

관자놀이에 검지를 대고 마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마나를 집중한 후.

-스르르.

처용이 관자놀이에서 검지를 때자, 긴 마나의 실이 뽑혀 나왔다.

자신이 겪은 기억을 저장하는 마법인 기억의 고리였다.

“백 번 설명하는 것 보다, 직접 보는 게 좋겠지.”

완성된 기억의 고리를 집어 든 처용이 루비아의 머리에 고리를 씌웠다.

그러자.

-스르륵.

푸른 빛을 내던 고리가 연기처럼 사라졌고.

“……이, 무슨?”

루비아가 선명하게 흘러들어오는 기억에 침음을 흘리며 읊조렸다.

지금 그녀는 처용이 겪었던 일들을 환상의 형태로 보고 있었다.

처용이 루비아에게 전달한 기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것들을 어떻게 구한 거지?

천교 길드 내부에서 찾은 살해된 신수들과 드래곤의 흔적.

두 번째는.

-이 이단 심문소에서는 혼종 실험을-!

-이, 이것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시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얼마 전, 이단 심문소에서 사제들을 고문하며 얻었던 증언과 증거물들이었다.

“나한테 환상 따위를-!”

기억의 고리가 끝나자, 루비아가 처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은 믿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두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처용은 그런 루비아의 반응에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난 아스터 교단 놈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혼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탁.

루비아의 앞에 논문 서류처럼 보이는 연구 일지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에스라 대륙의 언어로 작성되어있는 연구 논문.

[프로젝트 : L]

그 가장 앞면에는 제목을 보이는 문자가 쓰여져 있었다.

“내가 날려버린, 이단 심문소 안에 있었던 연구 자료다.”

“…….”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루비아의 말이 끊기며 침묵이 이어졌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처용이 던져 놓은 서류의 제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외골수적인 성향을 가진 루비아라 해도 그녀는 대마법사였다.

주어진 증거가 나열된 상태에서 상황 파악을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방금 처용이 말한 ‘혼종’이라는 의미.

서류 제목에 쓰인 ‘L’이 의미하는 말.

루비아는 그 두 가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굴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전해 준 기억에는 아스터 교단의 또 다른 ‘혼종’ 실험실 위치도 있었을 거다.”

처용은 루비아의 반응을 살펴보며 말하고는.

-우우웅! 쩌저적! 쩌적!

압제의 파동을 쏘아 보내며 루비아를 구속한 봉마석을 부숴 버렸다.

루비아는 자신을 구속한 봉마석이 무너졌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가서 네 눈으로 직접 ‘진실’을 확인해.”

“…….”

“대화는 그 이후에 하도록 하지.”

“…….”

계속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침묵으로 답하던 루비아는.

“……그레이트 텔레포테이션.”

-우우웅!

마나를 모아 공간 이동 마법진을 만들어 내며 입을 열었다.

이윽고 공간 이동 마법진이 완성되었고.

-화아악!

환한 빛이 루비아를 뒤덮으며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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