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하늘에 펼쳐진 먹구름과 그 위에서 내려온 다섯 마리의 재앙룡(災殃龍).
그 용들에 의해 군대 전체가 짓밟히고 불태워지고 휩쓸리고 있었다.
-으아아!
-마, 막아! 저 괴물들을 처치-!
어떻게든 재앙 속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재앙룡에게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신성력을-!
자연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용들은 평범한 칼날로는 절대로 처치할 수 없었다.
그나마 신성력과 마법이 통하는 듯 보였지만.
-쿠라라!
-크롸라라!
자연의 속성으로 구성된 재앙룡들에게 평범한 속성을 쏘아대는 일반 마법은 거의 타격이 없는 수준.
그나마 이백 명이나 되는 회개의 사제들과 참회의 성기사들이 애를 쓰고는 있었다.
하지만.
“참회의 화염을 퍼트려라!”
“저 망할 괴물을 참회시켜라!”
참회의 성기사들과 회개의 사제들이 신성력을 모아 이단자를 불태우는 화염을 퍼트렸다.
그 화염이 물줄기로 만들어진 용에게 향하는 순간.
-크라라! 화르륵!
근처에서 날뛰던 화염으로 만들어진 용이 사제와 성기사들의 공격을 가로막았다.
참회의 화염이 화염룡의 육체에 닿았고.
-화륵! 치이이!
사제들이 쏘아낸 화염이 허무하게 흩어졌다.
서로가 같은 속성, 즉 서로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상쇄된 것이었다.
화염룡이 사제와 성기사들의 공격을 가로막은 순간.
-콰르릉! 콰릉!
그들의 머리 위로 여러 줄기의 벼락이 내리쳤다.
공격에 집중했던 탓인지.
-크아악!
-마, 막아-!
사제와 성기사들이 벼락을 막아내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져 갔다.
신을 모시는 교단의 군대가 다섯 마리의 재앙룡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스터 교단의 토벌대가 재앙 같은 비극을 당하고 있을 때.
“얼마나 버티려나?”
“10분 이상 못 간다에, 백만 원 건다.”
그 광경을 멀리서 희극처럼 바라보는 이들, 처용과 연아가 농담하듯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때.
-콰쾅!
다섯 마리의 재앙룡 중 하나, 바위로 만들어진 용의 머리에서 큰 마나의 폭발이 일어났다.
-크르르!
바위룡이 멈칫하며 뒤로 조금 물러난 순간.
-탁! 쐐에에엑!
누군가가 재앙룡의 머리를 밟고 다리를 굴러 뛰어올랐다.
온몸에 마나를 휘감은 채, 검을 앞으로 내지르며 돌진하는 화려한 갑옷의 성기사.
그가 돌진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죽어라! 마신!”
처용이 있는 방향이었다.
“호오?”
처용은 오제룡의 연회를 뚫고 나온 성기사를 보며 관심을 표하고는.
-차카! 캉!
역천의 절을 뽑아 앞으로 세우며 성기사가 내지른 검을 막아 내었다.
“오러 나이츠…… 아니, 오러 마스터인가?”
처용이 자신에게 돌진해 온 성기사의 실력을 가늠하며 읊조렸다.
지구의 헌터들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타 세계에서도 전사들의 강함을 매기는 등급이 있었다.
예를 들면 마법사들.
그들은 심장에 쌓아 올린 동력 기관, 마나 서클의 개수로 등급이 나누어진다.
2서클 이하는 C급 헌터, 4서클 이하는 B급 헌터라 볼 수 있었다.
5서클 이후는 100레벨에 들어선 A급 헌터들과 같았다.
그리고 기사들의 경우는 육체에 얼마만큼 정순하고 많은 마나를 쌓을 수 있는지로 판가름했다.
오러 유저는 C급 헌터, 오러 익스퍼드는 B급 이하의 헌터들과 같은 수준.
그리고 오러 마스터 경지의 시작이 바로 100레벨의 들어선 헌터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처용에게 달려든 성기사를 헌터로 비교하자면, 적어도 170레벨 수준.
이 세계에서는 나름 강자라 할 수 있는 전사였다.
“네놈을 처치한다면 저 괴물들도 모조리 사라질 터!”
-우우웅!
처용과 검을 맞댄 화려한 갑옷의 성기사가 마나를 크게 피워 올리며 소리쳤다.
“아스터 교단 제2 성기사단장! 이 파로크가 ‘성검’으로 마신을 처단하겠노라!”
처용을 향해 호기롭게 달려든 이는 아스터 교단의 성기사단장이었다.
그가 군대를 빠져나와 처용에게 단신으로 자신 있게 돌격한 이유는.
-화아아!
그가 손에 쥔, 밝은 빛과 화염을 내뿜는 검.
신으로부터 하사받아 사용을 허락받은 ‘성검’ 때문이었다.
신에게 반항하는 모든 이들을 단번에 처치할 수 있는 신성한 성검.
신의 힘이 담긴 성검이 있다면, 마신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죽어라, 마신!”
성기사단장, 파로크가 성검에 마나를 부여하며 소리치자.
-화아아! 화르륵!
성검에서 밝은 빛과 화염이 타오르며 퍼져 나갔다.
그 빛이 처용을 감싸며 태워 버릴 기세로 휘몰아쳤다.
그 모습을 본 파로크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성검에 담긴 신의 힘에 직격당한 이상, 사악한 마신은 점점 약해지며 죽어가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아스터가 밤길 조심하라고 조명이라도 달아 준 건가?”
처용은 성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과 화염을 보며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을 휘감은 빛과 화염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어, 어떻게 신의 힘을……!?”
그 모습을 본 파로크가 환희를 내지르려던 미소가 깨지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토했다.
절대적이라 믿었던 성검의 힘이 통하지 않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파로크가 당황하고 처용이 태연한 모습을 보일 때.
“나보다도 약해 보이는 놈 상대로 언제까지 놀아 주게? 하암.”
연아가 지루하다는 듯, 작은 하품을 하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비단 연아만이 아닌, 연화, 뱀파이어들 모두가 비슷한 심정으로 작금의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리더인 처용이 공격받는데도 모두가 가만히 있었다.
마치 성검을 쥔 성기사단장 따위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어쩌냐.”
처용은 당황하는 파로크를 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이 성검 불량품인 것 같은데?”
-우우웅!
역천의 절에 강기를 크게 피워 올리며 말했다.
칼날을 타고 흐르는 강기가 마치 분쇄기 톱니처럼 변하며 거세게 회전하자.
-쩌저적! 파차창! 차창!
파로크가 쥔 성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수어졌다.
“서, 성검이-!?”
신이 하사한 절대적인 무기가 부서지자, 파로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파쇄격!”
-우우웅!
처용이 왼손 주먹에 강기를 끌어모으며 파쇄격을 사용했다.
강렬한 파괴의 기운을 응축한 주먹이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곡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이윽고.
-우드드! 콰쾅!
파로크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쾅! 쿠궁!
처용의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파로크가 뒤로 나자빠지며 지면에 처박혔다.
그리고 강렬한 충격에 의한 반동 때문인지, 파로크의 몸이 스프링처럼 다시 튀어 올랐다.
파로크가 다시 위로 튀어 오른 순간.
“파쇄격.”
-후우욱! 콰쾅!
처용이 다시 왼손 주먹에 파쇄격을 담아 파로크의 명치를 위에서 아래로 가격했다.
-우드드! 우드!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파로크를 감싼 화려한 갑옷들이 우그러지고 깨져 나갔다.
-콰쾅!
상체 갑옷이 완전히 박살 나 맨 가슴이 드러난 파로크가 지면에 처박혔고.
“크…… 으어……!”
핏방울 섞인 침음을 토해내며 고통을 호소했다.
완전히 부수어져 고물이 되어 버린 성검.
지면에 틀어박힌 파로크의 뭉개진 안면과 처용의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난 명치.
무려 성기사단장이라 불리는 이 세계의 강자가, 맨손으로 가한 처용의 공격 두 번을 버티지 못했다.
그러나 파로크는 처용에게 완전히 힘으로 압도당했음에도.
“이것으로 끝이라 생각 마라…… 사악한 마신이여!”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우리는 그저…… 선발대에 불과하니까!”
마신을 토벌하기 위해 아스터 교단에서 파견된 군대.
그들은 그저 선발대에 불과한 이들이었다.
선발대를 이끄는 대장으로 임명된 자신은 마신 토벌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자신보다도 더 강한 이들이 더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성전에 참여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 복수를 해줄 것이다!”
아스터 교단과 신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이상, 마신의 소멸은 운명이었다.
파로크는 진심으로 그리 믿고 있었다.
“그래?”
처용은 파로크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는.
“그럼 나도 메시지를 전해야겠군.”
-휘리릭. 우드드!
바람 속성 마나를 움직여 지면에 틀어박힌 파로크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철벽부, 화염부.”
-화르륵!
화염부와 철벽부를 소환해 얇고 긴 송곳이 만들어 내었다.
이윽고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로 보이는 송곳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치이! 치이이!
날카로운 끝부분이 파로크의 가슴에 닿았고 살갗을 태우기 시작했다.
“크, 크아악! 크아! 크아악!!”
인두로 살을 지지는 고문과 같은 행위에 파로크가 격통 가득한 비명을 내질렀다.
처용은 단순히 파로크를 고문하기 위해 그의 살갗을 태우는 것이 아니었다.
-치이! 치이이!
송곳의 끝이 파로크의 가슴을 후비며 문자를 그리고 있었다.
고문과 다름없는 행위가 이윽고 끝이 나자.
“가서 무능한 아스터 그 개새끼에게 내 말 똑똑히 전하거라 애송아.”
-우드득!
처용이 파로크의 목을 틀어쥐며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마지막 말을 마친 순간.
‘천마신공 – 투귀맹진.’
-후욱! 투, 콰앙!
쥐어 올린 파로크를 강기로 휘감음과 동시에 투창을 던지듯, 멀리 던져 버렸다.
-휘이이잉……!
처용에 의해 날려진 파로크가 빛 꼬리를 그리며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운이 정말로 좋다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 크크.”
-탁. 탁.
사라져가는 파로크와 그가 날아간 방향을 응시한 처용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로크가 살던, 죽던 딱히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파로크의 몸에 새긴 자신의 ‘메시지’였으니까.
처용이 파로크를 멀리 날려 버리자.
“음, 역시 예상대로 10분은 버티지 못했네.”
연아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군대의 진영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토벌대는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파로크의 지휘와 그의 무력 덕분에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처용을 처치하기 위해 홀로 대열을 빠져나왔고 역으로 처용에게 당해 멀리 날아갔다.
지휘관을 잃은 군대는 다섯 마리의 재앙룡을 감당하지 못하고 빠르게 죽어 나갔다.
이윽고.
-화르륵! 콰쾅! 파직! 쿠구구!
오제룡의 연회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듯.
다섯 마리의 재앙룡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다섯 가지의 속성이 서로의 개성을 뽐내며 일으키는 격렬한 폭발을 마지막으로.
-쿠구! 쿠르르!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린 대지 위에 남아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이천이 넘어가는 토벌대 중, 생존자는 단 한 명.
처용이 날려 버린 군대의 지휘관, 성기사단장 한 명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살아남은 것이 아닌, 처용이 일부러 살려 주었기에 살아남은 것이었다.
“자, 깔끔하게 해결되었군.”
-탁. 탁.
난잡한 상황을 모두 정리한 처용이 가볍게 손을 털며 말하자.
“…….”
아나샤를 포함한 작금의 상황을 영지민들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침묵했다.
그때.
“아나샤 님.”
처용을 따라온 시민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아나샤에게 다가갔다.
이곳 영지에 도달하기 전, 영주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 처용에게 요청했었던 노인이었다.
“벤 아저씨? 어떻게?”
아나샤가 자신에게 다가온 노인을 알아보자.
-행정관 님?
-왜 저분이 마신과 같이 있는 거야?
성벽 근처에 있던 영지의 병사들도 노인을 알아보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이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아나샤를 돕는 관리관들을 이끄는 자.
총괄 행정관 벤.
이것이 노인의 정체였다.
“영지민들 누명 일로 이단 심문소에 가셨었는데…… 왜?”
아나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분위기로 물었다.
총괄 행정관인 벤은 이곳 영지에서 억울하게 이단 혐의를 받고 잡혀간 이들을 위해 이단 심문소로 갔었다.
벌써 일주일 넘게 그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소식이 없던 상황.
그때 마신이 나타나는 일이 발생했고 지금 상황에 직면한 것이었다.
“해야 할 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영주님.”
벤이 아나샤의 말에 분노를 참는 듯, 이를 악물며 억울하고 원통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신께서 우리를 돕지 않으셨다면, 저도…… 영지민들도 모두 죽었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나샤가 벤의 말에 표정을 굳히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모르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때.
“성문을 열어라.”
처용이 아나샤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스터 동상을 저대로 방치하면 대천사들이 다시 강림해 심판을 내릴 거다.”
이어지는 처용의 말에 아나샤가 짧은 시간 침묵하며 세찬 고민을 이었다.
결국.
“관문을 개방해라!”
아나샤가 병사들을 향해 성문을 열 것을 명령했다.
-끼이이!
병사들은 영주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곧장 성문을 열었다.
처용이 당당한 걸음으로 성문 안으로 향했고.
“자, 다들 가시죠.”
연아가 처용을 따라온 사람들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처용을 뒤따랐다.
그 뒤를 연화와 루나, 뱀파이어들이 뒤따랐고 우물쭈물대던 사람들 역시 뒤따랐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주님.”
벤이 아나샤와 함께 관문 안으로 들어서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