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처용이 도시에 발을 들이고 단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쿠구! 쿠구구…….
동부에서 나름 알아주는 거대한 도시 하나가 풍비박산이 나 버렸다.
신의 위엄을 과시하는 거대한 신의 동상이 무너졌고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 건축물들이 무너졌다.
-으으……!
-으어어…… 사, 살려……!
무너져 가는 도시 곳곳에는 재앙을 정면으로 맞이한 사람들이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심지어 도시에 발생한 재앙을 수습해야 하는 병사와 성기사, 사제들도.
-시, 신이시여……!
-회개…… 회개를……!
상황 수습은커녕,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힌 채 주저앉아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일으킨 존재는 단 한 명.
천사의 날개를 잡아 뜯고.
지상에 강림한 최고신에게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거기에 모자라 신을 폭행하고 도시를 반파시키기까지 한 존재.
마신(魔神).
에스라 대륙에서 최초로 마신이 강림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마신이라 불리는 처용은 지금.
“야 이 미친놈아!”
여동생인 연아에게 질책 어린 말을 듣고 있었다.
하메라를 처리한 처용은 동부 대수림 안쪽, 게이트를 가리기 위해 만든 동산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이들을 구한 뱀파이어와 연화, 연아도 처용을 따라 대수림 안쪽으로 돌아왔다.
처용이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으니까.
“사전 정찰이 우선이라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며!?”
연아가 아직도 황당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처용을 향해 소리쳤다.
처음 전음을 받고 중앙 도시로 달려갈 때만 해도 조금 걱정이 일었다.
이곳은 지구와는 다른 세계.
혹시 무슨 좋지 않은 문제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커녕.
“대화를 한다더니, 다짜고짜 성좌하고 맞짱을 뜨는 놈이 어디 있냐!?”
처용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격을 향해 신성모독과 폭력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가서 빌어 처먹을 아스터, 그 개새끼한테 전해라.
아예 성운 전체를 겨냥해 선전포고를 해 버렸다.
“어쩔 거야 이제?”
연아가 처용을 향해 따지듯 묻자.
“내가 이겼잖아? 그러면 문제없지.”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답했다.
“아니……! 어휴!”
연아가 답답한 감정을 토로할 때.
“……왜 그런 거야?”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며 침묵하던 연화가 처용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연화는 처용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른 계획이 있거나, 혹은 무언가를 발견했거나 등.
처용이 이런 일을 벌일 만한 계기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혹시…… 이 세계의 성좌들은 악신들이야?”
생각을 거듭하던 연화가 속으로 의심한 바를 이야기했다.
처용은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테러를 벌이는 막무가내가 아니었다.
명확한 이유와 상황을 따지고 그 대상이 응징당해 마땅하다 판단한 순간 행동을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자나기 성운의 성지를 초토화시켜 버린 일.
그들은 성자를 납치해 불법 실험을 저지르려 시도하는, 선을 한참이나 넘는 짓을 저질렀다.
거기에 모자라 배신자인 추기경과의 협력 등, 용납할 수 없는 짓을 감행했다.
처용이 일본에 저지른 테러에는 이러한 상황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상황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적어도 연화는 작금 일어난 일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역시, 통찰력이 좋은데?”
처용이 연화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정확히 설명하자면, 아스터 교의 성좌들, 에스라 성운은 모두 순혈자들이야.”
에스라 성운, 아스터 교에서 받들어 모시는 성좌들이 어떤 이들인지를 이야기했다.
“즉, 대악마들에게 열렬히 협력하는 머저리들이지, 성운 전체가.”
“천교와 같다고 보면 되는 건가?”
“정답이야.”
처용이 연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그 사실을 알아냈다고?”
연화가 추가로 의문을 드러냈다.
처용과 일행들은 막 에스라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제 겨우 이 세계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행동하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무언가를 알아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연화의 질문이 울리자.
“우리가 지상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만큼, 우리를 돕는 분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계시니까.”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정보의 출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스승님과 미륵 님께서 알려주셨어.”
방금 일행들에게 전달한, 에스라 대륙을 지배하는 성운은 순혈자라는 정보.
처용은 그 정보의 출처가 태룡전의 대신들이라고 설명했다.
본래는 회귀 전 일들로 인해 처용만이 알고 있는 확실한 정보였지만.
-혹여, 곤란한 일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나의 이름을 대거라.
이전, 태룡전에서 대신들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계획을 논할 당시, 여래가 처용에게 한 말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급해야 행동해야 하는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네 행동에 대한 명분이 필요하다면, 내가 명령했다 전하거라.
그 행동에 대한 명분을 미륵과 여래로 돌리는 것이었다.
처용은 회귀 전 있었던 ‘진실’을 알고 있는 자.
하지만, 이 정보만큼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미륵과 여래는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면, 자신들의 이름을 대라고 이야기했다.
즉,
“미륵 님과 스승님께서 직접 알아내신 정보였어. 내가 확인까지 해 봤고.”
회귀 전 정보들의 모든 출처는 미륵과 여래에게서 나온 정보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정보의 진짜 출처를 아무도 알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처용은 그저 명령대로 행동했을 뿐이고, 여래와 미륵은 ‘보안’이라며 입을 다물면 그만이니까.
“내가 잠깐 대화(?)를 해 보니까 이미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더라.”
“너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이 세계의 신들이?”
“그래.”
처용이 연화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혈선의 제자, 나타나서는 안 될 이단자,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하는 존재.”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을 지칭하는 정보를 이야기했다.
-우주의 질서를 망치는 하계종이 네놈이었구나!
처용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무력에 하메라가 당황하며 했었던 말.
에스라 성운의 성좌들이 처용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정리하자면.
에스라 대륙을 지배하는 성운은 모두 대악마들에게 협력하는 순혈자들이다.
당연히 에스라 성운을 받들어 모시는 아스터 교는 마인들과 협력하는 무리이다.
그리고 놈들의 최종 목적은.
“아스터 교 놈들은 악의 종주에게 이 세계를 팔아넘길 준비를 하고 있어.”
에스라 대륙을 악마들의 소굴로 만들고 지구로 침공할 발판을 마련한다.
이것이 에스라 성운의 최종 목적이었다.
“성운 전체가 배신자들이었다니…….”
“이거 진짜 확실한 거야?”
연화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고 연아는 확인차 다시 처용에게 물었다.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지.”
처용은 연아의 말에 우선 ‘의심’이라 말했다.
“……증거가 부족하구나.”
연화는 왜 처용이 확신이 아닌 ‘의심’이라는 말을 썼는지 눈치챈 듯 말했다.
“맞아, 우리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없지.”
미륵과 여래가 전해 준, 에스라 성운 전체가 순혈자라는 정보.
처용이 직접 과격하게 행동하여 확인한 결과, 그 정보가 사실이라는 확인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에스라 성운 전체가 천교와 같은 완전한 배신자라는 정보.
그들을 따르는 아스터 교 전체가 악의 무리라는 확실한 정보.
지구의 길드와 성운들에게 이 세계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전달할 만한 핵심이 부족했다.
하지만.
“내가 도시 하나를 박살 내면서, 재미있는 정보를 하나 찾았거든.”
처용은 대처 방안이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아스터 교라는 오만한 놈들이 이단자 처단을 명목으로 지랄 맞은 짓들을 하고 있더라고.”
“아스터 교 자체가 오만하고 이단자 처단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류마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스터 교를 따르지 않은 모든 이들은 이단 취급받습니다.”
아스터 교는 그들이 정한 신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이단의 낙인을 찍는다.
게다가.
“특히, 저희와 같은 이종족들은 선택권 자체가 없습니다.”
독자적인 문화와 생태를 가지고 있는 이종족들은 포교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단 취급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혐오하고 가축 취급하며 정화의 대상으로 여긴다.
추가로.
“특이한 힘을 지닌 인간들도 포함되고 말이야.”
처용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로 뭉쳐 쭈뼛대고 있는 아이들을 응시하며 말하자.
“그렇습니다. 신에게 허락받지 못한 다른 힘은 모두 이단 취급받습니다.”
류마가 처용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아스터 교 놈들을 적극적으로 캐서 증거를 좀 찾아보자고.”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이 넓은 세계에서?”
연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대충 류마에게 들은 바로, 에스라라 불리는 이 세계는 지구에 버금가는 넓이였다.
그런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아스터 교 전체를 어느 세월에 파헤치란 말인가?
고작 열 몇 명의 인원으로는 택도 없었다.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
처용은 이미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스터 교라는 놈들이 이단 처단을 명목으로 수상한 짓을 하고 있더라고?”
처용이 일행들을 향해 나름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이단자들을 잡아 심문하는 이단 심문소가 있어.”
아스터 교단이 이단자들을 잡아 심문하는 시설, 이단 심문소.
처용은 그곳에서 증거를 찾을 생각이었다.
아니, 그곳에 아스터 교단이 악신을 신봉하는 집단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겉모습은 신성해 보이는 성당.
그러나 그 지하에는 이단자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이단 심문소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설의 진짜 목적은.
‘인체 실험장.’
아스터 교가 이단자들을 잡아 ‘인체 실험’을 저지르는 실험장이었다.
인체 실험은 인륜적으로 벌여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놈들은 아스터 교를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을 가축 이하로 취급한다.
당연히 ‘가축’으로 벌이는 실험이기에 놈들은 죄책감 따위는 없다.
아니, 오히려 가축으로서 신을 위해 희생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 말하는 놈들이었다.
이 역시 회귀 전 겪었던 일들로 인해 알고 있던 정보였다.
“그곳에 몰래 잠입해서 정보를 얻도록 하지.”
“그래, 한번 알아보자고.”
처용의 의견에 연화를 포함한 일행들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기존의 작전이 취소되고 새로운 작전이 세워졌을 때.
“그런데, 쟤들은 왜 구하라고 한 거야?”
연아가 멀리 떨어져 뭉쳐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처용에게 물었다.
“이단 처형을 당하던 아이들이군요.”
류마가 연아의 말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때.
-저벅.
아이들 중 한 명이 처용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는.
“도,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잔잔하고 여린 목소리를 내며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처용은 자신에게 다가온 푸른 머리카락의 꼬마를 잠시 바라봤다.
거지조차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볼품없는 모습.
처용이 자신에게 다가온 아이에게 손을 뻗자, 아이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움츠렸다.
지금껏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안심해라.”
-탁.
처용은 손이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안심하라는 듯 말하고는.
“이름이 뭐냐?”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이름은…… 없어요.”
질끈 감은 눈을 조심스럽게 뜬 아이가 처용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꾸르르.
아이의 배에서 굶주림을 의미하는 소리가 울렸다.
“죄, 죄송해요. 일주일 넘게 뭘 먹지 못해서…….”
-탁.
무언가 크게 잘못을 저지른 듯, 아이가 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보통 배고픔을 드러내는 순간.
-이단자 놈들이 감히! 먹을 것을 구걸하느냐!?
그들에게 날아든 것은 채찍과 발길질이었으니까.
“일어나, 넌 잘못한 게 없다.”
처용이 두려움 가득한 아이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할 때.
“애들을 일주일 동안 굶겼다고? 뭘 잘못했길래?”
연아가 아이의 말에 경악을 섞은 의문을 토했다.
“……이단자들의 취급은 가축 이하입니다. 식사를 줄 리가 만무하죠.”
그 말에 답한 것은 류마였다.
류마는 뱀파이어 군주의 명령을 받고 인간들의 도시로 종종 정찰을 나갔던 이.
그만큼, 아스터 교를 따르는 이들의 잔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휴, 너희들 다 이리로 와봐.”
보다 못한 연아가 한숨을 내쉬더니, 미소를 보이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연아에게로 모여들자.
“상처를 감싸는 시냇물.”
-쏴아아!
연아가 잔잔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만들어 내어 아이들 주변을 감쌌다.
-스르르.
아이들을 뒤덮고 있던 온갖 더러움이 씻겨나가고 피딱지와 흉터들이 조금씩 사그라졌다.
다쳤던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으어. 어.
-으읍.
아이들이 곧장 주변에 흐르는 물들을 허겁지겁 마시기 시작했다.
연아가 지저분해진 물들을 재빨리 거두고 새로 깨끗한 물을 다시 만들어 내었다.
동시에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다시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물을 마셔본 것도 얼마 만인지…….”
물을 크게 들이키고 진정한 푸른 머리카락의 아이가 말하자.
“물조차도 주지 않았다고?”
연아의 인상이 크게 일그러지며 아이에게 물었다.
도저히 이 세계를 지배하는 교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들의 정한 교리와 규칙이 있다곤 해도, 이건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한 상황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가끔 사제들이 저희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아이들의 입에서 끔찍한 경험담이 흘러나오려 하자.
“그만.”
처용이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
“우선 잠깐 쉬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지.”
-우우웅.
휴식을 선언한 처용이 아공간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스터…… 이들이 받은 고통의 수십, 수백 배로 되돌려줄 것이다!’
회귀 전,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저질렀던 배신자.
이 대륙을 지배하는 에스라 성운의 주신.
아스터를 향해 강렬한 증오를 내뿜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