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성지 태룡사에 세워진 ‘태룡시(Dragon City)’라는 이름의 새로운 도시.
협회는 이전 임시 개방을 통해 문제점과 개선점을 파악하고 보완했다.
더 단단히 준비를 갖추고 도시가 완전히 외부에 개방되자.
-드디어!
-너무나도 기다렸다고!
모두의 예상처럼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시 외곽을 정비해 규모를 더 크게 늘렸음에도 사람들이 빼곡하게 자리했다.
임시 개방 때에는 드워프들이 대장간과 한국 헌터 협회가 운영하는 경매장이 가장 인기가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달 치 일시불로!
-저 사전 예약 등록하고 왔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붐비는 장소는 다름 아닌 수련탑이었다.
수련탑이 다른 장소보다 압도적으로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는 다름 아닌 처용 때문이었다.
성운 결전 당시 처용이 무려 스무 명의 신관을 상대로 월등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 당시 처용이 보였던 여러 격투술과 보법들.
성운 결전 당시 관중석에서 전투를 지켜보는 이들 중,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저 움직임, 저 자세…… 어디서 봤는데.
처용이 보인 움직임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리고.
-맞다 수련탑! 그 골렘들!
태룡사를 임시 개방했을 당시, 수련탑을 이용했던 이들은, 그 익숙함의 정체를 곧장 파악했다.
수련탑에 배치된 다양한 무술을 선보이는 금강역사들.
처용이 보인 몇몇 움직임에는 금강역사들이 사용하는 무술이 배어 있었다.
일부 눈썰미 좋은 헌터들은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또 그들 중 소수는 성운 결산 이전에 단서를 얻은 이도 있었다.
[연파연격(連破聯格)의 초식을 완벽하게 재현하십시오.]
[남은 횟수 : 1 / 1000]
이전, 태룡사의 도시 임시 개방 당시, 수련탑을 이용하던 이들 중 극소수의 헌터들이 얻은 단서.
그들은 금강역사와 대련하면서 그 움직임을 아주 자세히, 면밀하게 관찰하고 따라 해 본 이들이었다.
그러나.
-한 번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30분이 걸렸다고?
-이걸 어느 세월에…….
그들이 얻은 단서는 단순한 단서가 아니었다.
눈앞을 가로막는 새로운 벽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흩어지거나 동작이 어긋나면,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는다.
심지어 하루라도 쉬면 카운트가 하나씩 줄어들기까지 했다.
단서를 얻은 이들도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수련탑은 강해질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길을 안내할 뿐.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다름 아닌 헌터 자신이었다.
그렇게 단서를 얻은 소수의 사람들도 반복 수련이라는 지루한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수의 헌터들 중에서도 유독 ‘끈질긴 근성’을 보이는 이는 있는 법.
먹을 때, 씻을 때, 심지어 잠들면서까지도 같은 동작을 꾸준히 반복한 이가 한 명 있었다.
그 노력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생각하지도 않고 몸이 외워 버리는 지경에 달한 순간.
[초급 연파연격(連破聯格)이 생성됩니다.]
그 헌터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해에-냈! 뜨-으아아아!!”
마지막까지 근성을 발휘한 이는 올림포스 소속 A급 헌터.
거대 성운 소속의 헌터이니만큼, 이 소식은 알음알음 빠르게 퍼져나갔다.
근성과 노력만 있다면 새롭고 강력한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심지어 역천군주가 사용하는 스킬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태룡사가 완전히 개방되고 수련탑에 유독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였다.
성지의 시설을 이용하는 헌터들의 수준은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헌터들이 성지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막대한 자본이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성지 내부에서 펼쳐지는 여러 거래를 통해 자본이 오가는 것으로, 이는 또 다른 발전으로 이어진다.
완전히 개방한 성지, 새로운 도시의 분위기는 딱 처용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좋아, 문제는 없네.”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확인한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우우웅.
태룡전의 열쇠로 게이트를 열어 걸어 나갔다.
처용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러시아.
바로 에스라 대륙과 이어지는 세계급 게이트 앞이었다.
***
러시아 북동쪽.
나무가 크게 자라나 있는 눈이 쌓인 숲속.
그곳에는.
-위이잉. 위잉.
숲의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거대한 게이트가 진동을 토해 내고 있었다.
높이만 대략 40미터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게이트.
무려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게이트였다.
-탁.
처용이 그 게이트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오셨군요.”
WHU 직원들과 함께 게이트를 살펴보고 있던 스미스가 인사를 건넸다.
“마중은 나올 필요는 없었습니다만.”
“어떤 이변이 발생할지 모르니, 총책임자인 제가 와야겠지요.”
스미스가 처용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이제 곧 열리겠군요.”
-삐릭.
손목에 착용된 라이센스를 활성화시키며 시계를 불러내었다.
[남은 시간 : 0시간 3분 41초.]
-딸각. 딸각.
스미스가 불러낸 시계 타이머에는 3분가량 남은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 시간은 다름 아닌 에스라 대륙과 연결되는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처용은 스미스의 타이머와 거대한 게이트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른 세계로 갈 준비는 됐어?”
뒤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처용은 이번 에스라 대륙 탐사에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우리만으로 괜찮을까?”
이번 세계급 게이트 탐사에 처용과 함께 하는 사람 중 하나.
연화가 작은 걱정을 표하며 말하자.
“왜, 언니? 한처용하고 있으면 죽을 일은 없을 텐데.”
연아가 가볍게 몸을 풀며 대답했다.
긴장을 풀려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는 연아의 말에.
“사고 치면 즉시 태룡사로 보내 버릴 거다.”
처용이 연아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아,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라고.”
연아가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처용은, 이번 에스라 대륙 탐사에는 루나를 포함한 뱀파이어와 연화만을 동행하려 했었다.
하지만.
-나도 갈래, 카투라 님 허락은 미리 받아 왔어.
연아가 진지한 분위기로 동행을 요청했다.
게이트 너머가 다른 세계이니만큼, 이번 탐사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잠시 고민한 처용은.
-명심해, 이건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연아에게 경고 어린 말들을 여러 번 전하고는 동행을 수락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연아의 부탁을 받아준 건 아니었다.
연아의 클래스는 팬텀.
그녀 자체가 악령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형체가 없는 악령은 은밀한 탐사에 아주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물로 이루어진 육체를 매개체로 한 아공간 기술 역시 활용도가 높았다.
추가로 연아는 웬만한 공격을 받아서는 절대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이는 처용이 수련탑에서 연아를 여러 번 상대해 주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상황.
연화와 연아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비상 인력이었다.
동시에, 그녀들에게 있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연화와 연아에 이어, 처용과 동행하는 또 다른 이들.
“참…… 오래 걸렸어.”
루나가 거대한 게이트를 복잡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드디어 다시 마주하는 고향 세계를 보며 지금껏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는 듯 보였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루나의 모습에 옆에 있던 류마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루나와 류마를 포함한 열두 명의 뱀파이어가 이번 탐사에 동행했다.
세피아 자작을 포함한 남은 뱀파이어들은 태룡사에 대기하고 있었다.
참고로 스미스에게는 루나와 뱀파이어들이 가진 사정을 일부 이야기해 주었다.
이어서 뱀파이어들의 고향이 게이트 안의 세계라는 말도 전했었다.
뱀파이어들의 거주지가 있는 세계이니만큼, 그들은 탐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처용이 뱀파이어들을 동행시키는 이유를 이야기하자, 스미스 역시 납득해 보였다.
“이제…… 열립니다!”
타이머를 바라보던 스미스가 긴장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주변을 통제하던 WHU 직원들 역시 긴장감을 드러낼 때.
-우우웅!
거대한 게이트가 진동을 토해내며 큰 울음을 토했다.
동시에.
-스르르륵.
짙은 푸른색으로 가득하던 게이트 중앙이 옅은 색으로 변했다.
그 순간.
[안정화가 끝났습니다.]
게이트 앞에 선 처용에게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탁. 우우웅.
처용이 게이트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려보내며 다시 한번 점검했다.
다시 한번 안전한 것을 확인한 처용은.
“스미스 씨, 이쪽 일대를 철저하게 통제하십시오. 저쪽 통로는 제가 임시로 조치할 테니.”
스미스를 향해 당부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조치하겠습니다.”
스미스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그럼, 가지.”
처용이 이번 탐사에 동행하는 이들을 향해 말하고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스르륵. 탁.
게이트에 들어선 처용이 새로운 땅에 발을 딛자, 눈앞에 광활한 숲이 펼쳐졌다.
고개를 끝까지 올려도 겨우 끝이 보일까 말까 할 정도의 드높은 나무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을 알 수 없는 식물들도 보였다.
처용이 주변을 둘러볼 때.
-스르륵. 스륵.
이번 탐사에 동행한 이들이 뒤이어 나타났다.
“여기가 어딜까…….”
고개를 돌려 숲을 둘러본 처용이 읊조리자.
“대륙 남동쪽의 대수림인 것 같습니다. 용님.”
숲을 잠시 둘러본 류마가 처용을 향해 말했다.
그는 밤의 성채에 있을 때, 인간들의 도시를 살피러 종종 나갔었던 이.
지금 있는 장소는 류마가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장소였다.
에스라 대륙 남동쪽, 광활하게 펼쳐진 숲, 대수림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문제는.
“밤의 성채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곳입니다.”
지금 있는 장소는 밤의 성채와 너무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는 것이었다.
“흠…….”
처용은 잠시 고민했다.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밤의 성채와 가까웠다면, 뱀파이어 일부터 신속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당장 밤의 성채로 가기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우선, 이 세계의 상황과 분위기부터 파악해야겠다.”
생각을 마친 처용이 일행들을 향해 이야기하고는.
“근처에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있나?”
류마를 향해 물었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 여러 도시들이 있습니다.”
처용의 물음에 류마가 이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답했다.
“우선, 주변 도시 상황부터 살핀다. 그 전에-.”
처용은 일행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고는 뒤에 있는 거대한 게이트를 바라봤다.
“이대로 두는 건 좋지 않겠지.”
아무리 인적이 드문 우거진 숲이라 해도, 게이트가 다른 이들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상황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토류부, 목림부, 명환부. 수류부.”
처용은 각각 두 장씩, 네 종류의 자연부를 만들어 내고는 게이트를 향해 쏘아 보냈다.
-우드드! 쩌저적!
게이트를 중심으로 땅에서 흙이 솟아나고 그 위에 나무가 자라났다.
동시에 수증기가 일어나며 주변에 안개를 형성했고 옅은 빛이 내려앉았다.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 물줄기가 졸졸 흐르며 안개를 형성하는 작은 동산이 나타났다.
처용이 동산을 만들어 게이트를 가리고 결계까지 씌운 것.
사람들이 우연히 이곳을 지나간다 해도, 그냥 지나칠 가능성이 컸다.
“두 명은 이곳에 남아 게이트를 감시한다.”
“알겠습니다. 용님.”
처용의 말에 두 명의 뱀파이어가 고개를 숙이며 답하고는.
-샥.
처용이 만들어 낸 동산 위로 향했다.
그들을 제외한 남은 사람들은 숲의 바깥을 향해 나아갔다.
동시에.
“에스라에는 여러 국가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이곳 동부와 남부는…….”
류마가 사람들을 향해 에스라 대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여러 국가들이 땅을 나눠 해당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에스라 성운을 따르며 그들의 종교인 ‘아스터 교’를 신성시 여깁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하나의 종교, 즉 하나의 성운을 신성시하며 그들을 모시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대충 중세시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류마의 말을 들은 연아가 말하자.
“비슷할 거야.”
처용이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3년 뒤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는 것인가?’
속으로 회귀 전 일들을 생각하며 읊조렸다.
“신교의 힘이 강한 만큼, 왕권보다 교리의 힘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류마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고.
“흠, 그런가?”
처용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류마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렇게 류마의 말이 이어지며 일행들이 숲 밖을 향해 쭉 나아갔다.
이윽고 우거진 숲이 끝나며 평야가 드러났다.
“역시, 제가 짐작한 장소가 맞았군요.”
류마가 평야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는 도시가 세 개 있을 겁니다.”
“흠…… 인원을 나누어서 정찰하지.”
처용이 류마의 말에 인원을 나눠 정찰할 것을 이야기했다.
류마와 연아가 포함된 이들은 왼쪽 도시로.
연화와 남은 뱀파이어들은 오른쪽 도시로.
마지막으로 처용 혼자 중앙 도시를 정찰하기로 했다.
-샥!
역할을 나눈 이들이 신속하게 흩어지며 사라졌고.
-파지직!
처용 역시 가장 중앙에 보이는 도시를 향해 빠르게 질주해 나갔다.
거대한 성벽과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성문이 보였지만.
-샥!
동화경을 사용 중인 처용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흠, 분위기는 회귀 전과 비슷한데…….’
성벽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처용이 속으로 읊조렸다.
말이 이끄는 마차와 마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거만한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화려한 옷의 사람들과 거적때기에 가까울 정도로 허름한 옷의 사람들.
거리 여기저기를 감시하듯 살벌한 표정으로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
연아의 말대로 중세 유럽과 흡사한 분위기의 도시였다.
처용이 성벽 위를 뛰어다니며 도시의 상황을 살피던 중.
“……흠?”
중앙의 광장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샥.
처용이 중앙 광장 근처 가장 높은 건물 위로 이동해 아래를 내려다봤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두 팔을 벌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대한 신의 동상.
그 앞에 세워진, 마른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나무 단상.
그리고 그 단상 위에는 십자가 형구에 묶여 있는 어린아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사형 집행인가?”
처용이 중앙 광장의 분위기를 살피며 읊조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단 처단이라는 명목으로 집행하는 사형인 듯 보였다.
아니, 평범한 사형이 아닌, 화형(火刑)식이었다.
아이들이 묶인 십자 형구 아래에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쌓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
형구에 묶인 아이들을 살펴보던 처용이 다시 의문을 드러냈다.
거의 옷이 없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불타다 만 듯 보이는 거적때기.
몸 여기저기에 보이는 화상 자국과 타다 만 듯한 그을린 머리카락.
마치, 여러 번 불에 태워진 듯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처용에게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처용이 통찰의 눈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러자.
“……!”
처용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고는 거침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아스터 교 주교의 이름으로! 이 이단자들을 심판하노라!”
사형 집행대 위에 선 화려한 사제복의 남자, 주교라 불리는 이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사특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이 마귀들의 정화 의식을 시작하겠다!”
주교가 두 팔을 벌리며 크게 소리치자.
“참회의 여신, 하메라의 이름으로!”
“회개의 여신 로메라의 이름으로!”
주변에 있던 성기사와 사제들이 두 손을 모으며 소리쳤다.
“위대하신 빛과 지혜의 신! 아스터의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주교가 사람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치고는.
“이 이단자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려라!”
-화르륵!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어 화염을 내뿜었다.
동시에.
-화르륵! 화륵!
주변에 있던 사제들이 주교를 따라 아이들을 향해 화염을 쏘아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화염에 불타 잿더미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타닥. 타닥.
아이들을 젖은 나무처럼, 잘 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악!
-으아악!
불에 타오르는 고통은 느끼는 것인지 비명을 질러 대었다.
“이 이단 놈들이! 이번에도 신의 자비를 거부하는 것인가!”
그 모습을 본 주교가 혐오스럽다는 듯, 인상을 크게 찌푸리고는.
“위대하신 아스터의 주교인 내가 직접! 신의 자비를 네놈들에게 새겨 주마!”
-쿵!
옆구리에 채워진 철퇴를 꺼내 들었다.
-후욱!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 박힌 철구가 가장 앞에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아이에게 도달하기 직전.
-샥! 콰쾅!
누군가가 아이 앞에 나타나 주교가 휘두른 철퇴를 오른손으로 잡아챘다.
-우드득! 쿠콰-쾅!
사형 집행장에 난입한 처용이 손에 쥐어진 철구를 거세게 쥐며 산산 조각냄과 동시에.
“흡기장.”
-슈화아아아!
주변에 타오르는 불길들을 왼손으로 모아 모조리 흡수해 버렸다.
“감히 신성한 재판을 망치다니! 신벌을 받으려 작정했구나!”
주교가 뒤로 물러나며 눈앞에 나타난 처용을 향해 소리친 순간.
-우웅! 화르륵!
주변에 있던 사제들이 일제히 손을 앞으로 뻗으며 화염을 내뿜었다.
조금 전, 아이들을 태워 버리기 위해 쏘아 냈던 불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화염.
그 화염의 기운이 사형 집행장 중앙에 모이며 거대한 불기둥을 형성했다.
“하하하! 멍청한 반란군 녀석! 이단자들과 함께 타 버려라!”
주교가 솟구치는 불기둥을 바라보며 광소를 내뿜었다.
그때.
-푸화아아!
불기둥이 반으로 쩍 갈라지더니.
“너무 미지근한데?”
-탁!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의 처용이 손가락을 튕기며 걸어 나왔다.
그러자.
-치이이……!
하늘 높이 솟구쳤던 불기둥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뭐, 뭐냐!? 네, 네놈은 뭐냐!?”
광소를 내뿜던 주교가 미소를 싹 지우고는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소리쳤다.
처용은 당황하는 주교와 주변의 사제들, 그리고 사람들을 한 번 쭉 들러보았다.
“나는…….”
짧게 읊조린 처용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세워진 거대한 동상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
반쯤 죽은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보는, 형구에 묶인 아이들을 바라봤다.
특히, 가장 앞에 묶여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처용은 그 아이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는 ‘신’이다. 이 개새끼들아.”
고개를 돌려 주교와 사제들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