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신관들이 무모한 돌진을 감행해 만든 기회.
그 기회로 인해 처용의 앞에 당도한 제시카.
그녀가 지금껏 숨긴 비장의 패는 다름 아닌 결전기였다.
게다가 평범한 결전기가 아닌, 무려 신력을 내뿜는 여신의 형상으로 변할 수 있는 결전기.
결전기지만 스킬이 아닌, 거의 권능에 가까운 힘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
[저건!?]
싸움을 지켜보던 성좌들이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을 표했다.
그중 몇몇은 자리를 박차 일어나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저 모습은…….]
제시카의 성좌, 아테나 역시 놀라움을 드러냈다.
신관인 제시카가 사용한 결전기로 인해 나타난 형상은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게다가 더 큰 놀라움은 따로 있었다.
[신력을…… 개화했구나……!]
지금껏 지구에서 신력을 개화한 인간은 단 한 명, 처용이 유일했다.
그러나 지금.
-화아아!
여신의 형상으로 변한 제시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
금빛이 일렁이는 선명한 녹색의 에너지는 신성력이 아닌 신력이었다.
처용에 이어 두 번째 신력 개화자가 나타난 상황.
성좌들이 경악을 드러낼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놀란 이들은 관중석에 자리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처용 역시 두 눈이 점점 커지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제시카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제시카가 가진 신성력이 다른 신관들보다 짙은 것을 느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성좌, 아테나와의 상성도 최고였다.
추후 그녀가 다른 신관들보다 먼저 신력을 개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이건…… 예상 밖인데?’
그 시기가 처용이 생각한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빨랐다.
처용은 신력의 개화 조건 중 하나를 알고 있었으니까.
신화경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300레벨.
이것이 신력의 개화 조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200레벨도 채 되지 않은 헌터가 신력을 개화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시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은 분명한 신력이었다.
그리고.
-쐐에에엑-!
거친 기운을 뿜어대는 신력이 휘감긴 아스트라페의 창날이 눈앞에서 쇄도해오고 있었다.
“……좋다. 시험해 주마.”
처용은 놀라운 감정을 지우고는 작금의 전투에 다시금 집중했다.
“반탄신장.”
아스타라페의 창날을 막기 위해 처용이 오른손을 내밀자.
-쿠구구!
항마의 화신이 제시카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이윽고 아스트라페의 창날과 항마의 화신이 충돌했다.
-콰쾅! 파지-! 파지직!
신력과 신력이 서로 충돌하며 마찰을 일으켰고 사방에 거친 불꽃을 튀겼다.
항마의 화신이 발휘하는 공격에 다른 신관들은 버티지 못했다.
그러나.
“흐아아압!”
-까각! 까가각!
제시카는 밀려나지 않고 버터 내었다.
“호오?”
예상외의 결과에 처용이 다시금 놀라움을 드러냈다.
제시카가 아무리 신력을 개화했다 해도, 처용에 비해서는 아직 미숙한 상태였다.
그야 처용은 오랜 시간 신력을 수련했던 반면에, 제시카는 초짜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 숙련도의 차이가 컸음에도 방금의 충돌을 버텨 내었다.
신력에 신력으로 맞서는 제시카가 나름 잘 싸우는 듯 보였지만.
‘미네르바의 지속 시간은…… 단 7초!’
제시카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엿보였다.
일시적이라 해도, 무려 신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결전기인 미네르바.
그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단 7초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방금 충돌로 인해 이미 2초를 허비한 상황.
그리고.
-쐐에에에!
사방에서 처용의 결전기로 움직이는 무구들이 제시카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도끼와 대낫.
왼쪽에서는 세 개의 투창이 날아들었다.
그때.
“썬더…… 브레이커!”
-파지지직!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루이스가 제시카의 왼쪽에 나타나고는.
-콰쾅!
양손에 굳게 쥔 썬더 브레이커를 쥐고 두 개의 투창을 쳐내었다.
동시에.
“하아아압!!”
-쾅!
기합을 내지르며 마지막 하나의 투창에 몸통 박치기를 하듯, 몸을 던졌다.
옆면으로 들이받았기에 투창에 꿰뚫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커…….”
처용의 신력이 둘러진 무구를 맨몸으로 들이받았기에 상당한 충격을 받으며 쓰러졌다.
루이스가 투창을 저지하고 완전히 쓰러진 순간.
“결전기 - 오버클럭 파워!”
-후우욱!
제시카의 오른쪽에서 헤라클레스의 신관, 리차드가 대검을 쥔 채 나타났다.
그의 결전기는 근력을 한계치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
과도하게 근력을 끌어올린 듯, 온몸의 핏줄이 불거진 모습이었다.
-콰콰쾅!
그래도 한계에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근력 덕에 처용의 무구들을 모두 쳐낼 수 있었지만.
“크헉.”
곧장 찾아오는 반동 때문인지, 두 손을 떨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쐐에에!
제시카의 위에서 덮쳐오는 다섯 개의 무구가 남아있는 상황.
그때.
“창룡진출!”
“적귀살 – 무!”
-차카카캉! 차캉!
금빛 용을 언월도에 휘감은 하오찬과, 붉은 신성력을 방천극에 두른 초하가 제시카의 위를 방어했다.
그러나.
“뇌격신장(雷擊神掌) - 뇌격육장(雷擊六掌)!”
-파지지직!
곧장 번개가 휘몰아치는 거대한 손바닥 여섯 개가 하오찬과 초하에게 쇄도했다.
“크하-!”
“으윽!”
각각 세 개의 신장에 타격당한 하오찬과 초하가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신관들이 몸을 던져 기회를 만들어 준 덕분에.
-샥!
기회를 잡은 제시카가 처용의 오른쪽으로 살짝 빠지며 다시금 창을 겨누었다.
이제 미네르바의 남은 지속 시간은 단 3초.
-탁!
제시카의 발걸음이 앞으로 한발 다가갈 때.
-후우욱!
항마의 화신이 제시카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내리쳐라! 천상의 기둥!”
라리네가 오랜 시간 읊은 성서의 마지막 구절을 읊었고.
-……슈우우!
처용을 향해 새하얀 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후욱! 콰쾅!
항마의 화신이 오른팔을 위로 들어 올리며 떨어지는 기둥을 잡아챘다.
라리네의 공격이 막히자.
“하늘을 구속하는 빛의 사슬.”
-촤라라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신성력을 모으던 성자가 처용을 향해 두껍고 하얀 사슬을 쏘아 보냈다.
-후욱! 촤라락!
성자의 사슬을 막기 위해 항마의 화신이 왼손을 뻗었고.
-촤라라락! 쿠궁! 쿠구!
빛의 사슬은 항마의 화신 왼팔을 둘둘 감듯이 묶으며 땅으로 틀어박혔다.
항마의 화신이 잠시 구속된 찰나.
-탁!
제시카가 또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미네르바의 남은 지속 시간은 2초.
그때.
-쐐에에!
두 개의 투창이 제시카를 저지하려는 듯, 좌·우에서 날아들었다.
“흐읍!”
제시카가 자세를 낮추고 뒤로 조금 빠지며 왼손의 방패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렸다.
-까강! 캉!
두 개의 투창이 교차하며 제시카의 방패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착!
제시카가 뒤로 뺀 오른쪽 다리에 힘을 싣고 앞으로 돌진함과 동시에.
-까강! 차캉!
왼손의 방패를 위로 내던졌다.
그 결과 방패를 스치며 교차하던 두 자루의 투창이 방패에 밀려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제시카는 방패를 버림과 동시에 양손으로 아스트라페를 굳게 쥐고는.
“하아아압!”
기합을 내지르며 처용을 향해 아스트라페를 내질렀다.
미네르바의 지속 시간이 단 1초 남은 순간.
-콰콰쾅! 푸화-!
신력이 휘감긴 아스트라페의 창날이 항마의 화신을 거세게 타격했다.
동시에 강렬한 에너지의 폭발이 일어나 경기장 위를 휘감았다.
시야가 잠시 가려지고 흙먼지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스.
점점 경기장 위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륵. 스르륵.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창을 내지른 자세로 멈춰 있는 제시카였다.
그녀의 결전기, 미네르바가 풀린 듯, 길어졌던 머리카락과 갑옷들이 스르륵 풀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제시카의 모습이 드러나고.
“아깝게 되었어.”
곧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의 처용이 드러났다.
정확히는.
-까각! 깍!
신력을 담아 내질렀던 아스트라페의 창날이 항마의 화신을 뚫어내고 처용의 왼쪽 가슴에 닿아 있었다.
강하게 내질렀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
‘신력을 두른 성물이라 해도, 이건 뚫어내지 못했군.’
처용이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닿은 아스트라페의 창날을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살짝 찢어진 처용의 옷자락 사이로 붉은색이 옅게 일렁이는 검은 쇠판이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초의 주괴.
이전에 보험으로 넣어두었던 카투라의 허물을 빼고 대신 넣어 두었던 비상용 방어 수단이었다.
신력을 두른 성물이라 해도, 태초의 주괴를 뚫을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항마의 화신을 뚫어 내며 상당한 힘을 소모한 상황.
태초의 주괴가 없다 해도, 호신강기와 금강불괴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공격이었다.
“놀랍긴 하지만, 애초부터 이 싸움은 너희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처용이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
제시카가 신력을 개화한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전투는 처음부터 신관들이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제시카를 믿고 무모하게 몸을 날린 신관들이 사뭇 대견했지만, 그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아니…….”
제시카는 처용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싸움은 당신이 이겼을지언정…….”
제시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전쟁은…… 우리가 이겼습니다.”
“음?”
처용이 제시카의 말에 의문을 표한 순간.
-삐이이!
전광판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격렬했던 싸움이 잠시 일단락되고 분위기가 가라앉은 덕에 더 크게 들린 듯한 경고음.
처용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고 제시카의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이윽고.
[심장 관통]
[치명상으로 판단.]
[성운 결전의 승리자가 결정되었습니다.]
시스템 전광판에 믿을 수 없는 결과가 출력되었다.
처용이 잠시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고는.
“……하!”
헛웃음을 토해 내며 다시 왼쪽 가슴 언저리를 바라봤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시선을 조금 내리자.
-파직. 파직.
아스트라페의 창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전류음을 내는 작은 장치가 보였다.
성운 결산이 시작되기 전에 착용했었던, 특수 보호구 아티팩트.
정확히 말하자면, 치명상을 방지함과 동시에, 치명상 판정 시, 패배 판정을 내리는 아티팩트였다.
문제는.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역천군주는 멀쩡한데?
-왜 치명상 판정이 난 거야?
관중들이 의문을 자아냈다.
아무리 심장 부근에 창날이 닿았다 해도, 처용의 겉모습은 멀쩡한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처용의 심장 부근에 부착된 아티팩트는 거대한 충격을 받았고 그 결과 치명상 판정이 내려졌다.
처용이 전광판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자.
[전신 골절]
[티엘로 전투 불가로 판정]
[출혈 과다]
[루이스 전투 불가로 판정]
.
.
아티팩트 판정으로 인해, 실격당한 신관들의 명단이 보였다.
그들 모두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하하.”
처용의 입에서 다시금 헛웃음이 흘러나올 때.
“비겁…… 하다…… 하셔도…….”
힘이 다한 제시카가 몸을 비틀거리며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말에.
“아니, 비겁은 무슨.”
-탁.
처용이 쓰러지려는 제시카의 어깨를 잡아주며 지탱해 주고는.
“나의 패배를 인정한다.”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꼼수를 부렸다는 것에 대한 분노나 언짢은 기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원하게 패배를 인정한 모습이었다.
그런 처용의 패배 인정에.
[성운 결전의 승리자는 도전자들, 신관들의 승리입니다.]
별들의 주시로 인해 적용되었던 시스템 창이 모두의 앞에 떠올랐다.
동시에.
-화아아!
경기장 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스르르.
“으……!”
“으어…….”
심한 상처들이 조금씩 회복되며 정신을 잃었던 이들도 조금 정신을 차렸고.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이들에게 보상이 적용됩니다.]
그들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번 성운 결전을 통해 활약을 보인 이들이 보상을 받는 듯 보였다.
그리고.
[성운 결산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보였습니다.]
[보상이 적용됩니다.]
처용의 눈앞에도 시스템이 떠올랐다.
-스르륵! 화아아!
밝은 빛무리가 처용에게 스며들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두 번째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누적되었던 경험치가 한 번에 적용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최초로 200레벨에 달성했습니다.]
[칭호 ‘파이오니어(Pioneer)’가 생성되었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50 증가합니다.]
드디어 199레벨을 넘어 200레벨을 돌파해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최초로 200레벨을 돌파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시스템의 ‘평가’가 전체적으로 완화됩니다.]
[기존에 한계를 돌파한 이들은 추가 보상을 지급받습니다.]
[시스템의 보호 단계가 1단계 낮아집니다.]
뒤이어 나타난 시스템은 처용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최초로 200레벨?
-평가? 이게 무슨 소리야?
헌터들, 시스템이 적용된 각성자 모두에게 나타났다.
특히 그중 몇몇은 경기장 위의 신관들처럼 밝은 빛을 내뿜는 이들도 있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결과였지만…… 그래도 계획대로 된 것 같군.’
처용은 관중들을 쭉 둘러보며 반응을 살피고는 속으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