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381화 (381/726)

#381화

격노하는 바알.

그런 그의 눈치를 보며 경악과 의문을 드러내는 대악마들.

그리고.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구나.’

그런 그들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분위기에 동조하는 알레인.

작금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한 사람의 작품이 맞았다.

바로 바알을 극도로 분노하게 만든 한 존재.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 레나라는 인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악몽으로 인해 구현된 미래의 인격, 학살의 마녀 엘리스의 작품이었다.

-제가 대악마들의 시선을 잡을 테니, 그 안에 한처용의 계획대로 탈출을 준비하십시오.

알레인의 신관, 하워드를 통해 엘리스가 전했던 말이었다.

바알을 분노하게 만들어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그동안 정체를 숨긴 알레인은 판데모니움을 탈출할 준비를 한다.

보험이었던 안드레알푸스가 들킨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조차도 이용한다.

안드레알푸스의 성역에 있던, 신계와 연결을 위해 구멍을 뚫었던 흔적.

그 흔적은 다름 아닌.

-제우스가 시도하려다 실패한 흔적도 이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우스가 처음 신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뚫으려다 실패한 흔적이었다.

엘리스는 그조차도 알고 있었는지, 이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 계획이 아주 훌륭하게 먹혀들었다.

대악마들 모두 안드레알푸스가 외부의 도움을 받아 판데모니움을 탈출했다 믿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안드레알푸스에게 도움을 준 인물.

작금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단 한 사람, 엘리스가 기획하고 유도한 것처럼 꾸몄다.

그 결과.

“중요한 일을 맡은 놈들을 제외하고 모두! 태초의 그릇을 품은 숙주를 잡는다.”

엘리스에게 눈이 돌아간 바알이 그녀를 집착하게 만든다.

주변이 보이지 않도록, 단 한 사람만이 보이도록 시야를 제한시킨다.

다른 대악마들 역시 바알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태초의 그릇을 품은 자를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뒤집어 엎어질 테니까.

그로 인해 가장 성가신 상대였던 나베리우스와 아스모데우스 등 상위 대악마들의 시선도 성공적으로 끌었다.

일명 대악마 어그로(Aggro) 작전.

어그로는 헌터들이 몬스터를 사냥할 때 쓰는 용어로 상대를 도발해 적개심을 갖게 한다는 의미였다.

도발을 당해 어그로에 끌린 몬스터는 적개심을 품은 헌터만을 공격한다.

지금 이 순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하계종을 잡아야 한다.”

엘리스는 바알을 포함한 모든 대악마들의 어그로를 성공적으로 끌었다.

이것이 대대적인 작전의 시작이자 첫 번째 작전.

중요한 첫 번째 단추가 성공적으로 끼워졌다.

이제 두 번째를 시작할 차례.

“저는 어떻게 할까요? 바알.”

알레인이 바알을 향해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듯, 알레인이 머리카락을 한 번 꼬아 보이고는.

“이제 막 준비를 갖추고 독 지대 협곡으로 갈 참에 이런 일이 발생해 버렸는데…….”

이전 자신이 맡은 일을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안드로말리우스 또한 바알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흐음.”

바알이 흥분을 가라앉힌 듯, 짧고 굵은 침음을 내었다.

생각을 하는 듯, 잠시 침묵한 바알은.

“맹독의 대악마와 안개의 대악마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무언가를 알아내면 바로 알리도록.”

안드로말리우스와 연결된 마법진을 조사하는 일을 계속하라 명령했다.

“그러죠.”

그 말에 알레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안드로말리우스가 작은 안도를 표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플랜 A구나.’

알레인이 자신의 신관, 하워드를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

미국 텍사스, 월드 헌터 토너먼트가 개최되는 초대형 콜로세움.

-5일 차 예선전을 시~작합니다!

어느덧, 월드 헌터 토너먼트 예선전이 5일 차에 접어들었다.

정훈을 포함한 한국의 헌터들 대부분은 모두 일정 점수를 달성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국의 참가자.

-41번 참가자 샬럿 로스.

커맨더의 파티원 중 하나이자, 힐러 클래스 헌터.

샬럿이 호명되었다.

-저벅.

금발을 깔끔하게 뒤로 묶어 내린 모습.

가벼움과 은밀성에 맞춘, 착 달라붙는 전신 슈트.

-철컥.

저격총 형태의 아티팩트를 오른손에 쥐고 어깨에 걸친 여성.

샬럿이 경기장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탁.

샬럿의 상대로 호명된 상대 역시 경기장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우웅.

[제 46차 예선전]

[샬럿 로스 / 시크릿 메딕 / 161 레벨]

[존 맥크리 / 가드 나이트 / 167 레벨]

전광판 위에 예선전을 치르는 두 헌터의 정보가 떠올랐다.

샬럿의 상대로 지목된 헌터는 왼손에 작은 오각형 방패와 오른손에 검을 쥔 남자였다.

옷은 가죽과 철 보호구가 섞인 경량화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가드 나이트(Guard Night)라는 레어 등급 전사 클래스를 지닌, 존 맥크리라는 이름의 헌터.

그는 올림포스 소속 길드 중 하나인 그랜드 실더 소속 정예 헌터였다.

그랜드 실더 길드장이자 올림포스의 방패라 불리는 스티븐.

그와 함께 전선의 최전방에서 적들을 막아내는 나름 이름이 잘 알려진 헌터였다.

그가 지닌 클래스인 가드 나이트는 방어와 반격, 그리고 추적에 특화된 클래스.

전형적인 전사형 클래스 중 하나로 공방일체의 밸런스가 아주 좋은 클래스였다.

그런 그의 상대는 힐러 클래스인 샬럿.

샬럿은 아트팩트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 수단이 있었지만, 지금 이 장소는 제한된 경기장이었다.

즉, 거리를 크게 벌리기도 마땅치 않은 환경.

제한된 공간에서 공방이 자유로운 전사 클래스와 원거리 공격 수단을 가진 힐러의 대결.

누가 봐도 전사 클래스 헌터가 유리한 싸움이었다.

예선전을 관람하는 헌터들도, 2층에 자리한 소수의 성좌들도 모두 존의 승리를 예상했다.

샬럿의 상대 헌터인 존 역시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상대가 힐러이니만큼, 여유를 보이는 듯한 모습.

그러나 예선전이 시작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젠장! 무슨 힐러가 저리 빨라!?”

여유 넘치던 존의 표정이 다급하게 일그러졌다.

공방일체의 클래스인 가드 나이트는 추적에도 특화되어 있었다.

당연히 기동력 또한 타 클래스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그 비교 상대가 힐러라면 당연히 존의 기동력이 더 우월해야 했다.

“대지의 발판!”

존이 다리에 마나를 실으며 스킬을 발동하자.

-우드드.

존의 발이 닿은 땅이 살짝 들렸다.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존이 땅을 박차자.

-타-앗!

총알이 발사된 듯, 존이 멀리 떨어진 샬럿을 향해 쇄도했다.

대지의 발판은 발이 디딘 땅을 스프링처럼 만들어 주는 스킬.

즉, 상대를 땅을 박차고 돌진할 때, 스피드를 높여 주는 스킬이었다.

동시에.

“윈드 슬래시!”

-스르릉.

존의 검에 마나가 일렁이며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다.

빠른 스피드와 그에 걸맞은 신속한 공격.

평범한 힐러라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그러나.

“클로킹 점퍼.”

다가오는 존을 주시한 샬럿이 스킬을 발동하자.

-스르륵.

샬롯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릉! 샤아아.

존이 내지른 검격은 샬롯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젠장, 또 어디로 간 거야!? 발걸음 추적자!”

샬럿을 놓친 존이 주변에 마나를 퍼트리며 소리쳤다.

도망친 샬럿을 찾기 위해 발동한 스킬은 발걸음 추적자.

근처에 있던 적이 도망친 경우, 그 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스르륵.

존의 주변에 샬럿의 발자국이 떠올랐고 그 적을 따라 존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이윽고 샬럿을 찾아냈지만.

-철컥.

샬럿은 이미 존의 반대편, 경기장 끝자락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추적 철갑탄.”

-타타타-타탕!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은 한 발이 아니었다.

끝이 날카롭게 세워진 탄환이 총 열 발 연속으로 발사되었다.

그 모습을 본 존은.

“대지의 발판.”

-탓!

방패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샬럿을 향해 땅을 박차 돌진했다.

날아오는 총알을 향해 돌진해나가는 무모한 모습.

하지만.

“돌격 전차!”

존이 왼손에 부착된 작은 방패로 정면을 가리며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스스스!

마나가 존을 감싸며 반투명한 보호막을 형성했다.

반으로 꺾여 각이 진 거대한 방패가 존을 보호하는 듯한 모습.

돌격 전차 스킬은 상대에게 돌진해나감과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팅! 티티팅! 팅!

샬럿이 쏘아낸 철갑탄이 존의 마나를 뚫지 못하고 모두 튕겨 나갔다.

적에게 돌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인 돌격 전차는 다가오는 공격 대부분을 튕겨낼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방해를 뚫고 적에게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스킬.

-후욱!

총탄을 뚫어낸 존이 샬럿의 앞에 도달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스르릉!

이번에야말로 기회를 잡았다는 듯, 흉흉한 눈빛을 띠며 검을 치켜올린 존.

완전히 구석에 몰린 샬럿이기에 피할 곳은 없어 보였다.

샬럿은 위협적인 기세로 눈앞에 도달한 존을 보고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쐐에에! 샤악!

마나가 일렁이는 검이 샬럿을 크게 베어냈고 존이 이긴 듯 보였다.

그러나.

-지직. 지지직.

존이 베어낸 것은 살짝 웃고 있는 샬럿의 홀로그램이었다.

즉, 더미를 베어 버린 것.

“……언제?”

존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분명 눈앞에 샬럿은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했었다.

그 총탄들은 하나하나 물리력을 가지고 있었고 방어 스킬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었다.

자신이 쭉 노려보고 있었던 살렷은 분명 ‘진짜’였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샬럿을 잡아내 베어 내니, 홀로그램이었다?

이 믿기 힘든 상황에 존이 찰나의 순간 방심을 드러냈고.

-철컥.

이내 존의 뒤를 점거한 살럿이 그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었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싸늘하고 차가운 쇳덩이의 느낌에 존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Bye Bye.”

-타앙!

싱긋 미소를 지은 샬럿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 결과.

-삐이이이!

전광판 시스템에 붉은빛이 점멸하며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뒤통수 파열]

[목뼈 파손]

[전투불능으로 판단.]

[존 맥크리가 패배했습니다.]

예선전 결과는 샬럿의 승리.

힐러가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전사 클래스 헌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힐러라며?

-어쌔신 클래스 아니야?

-저 전광판에 메딕(Medic)이라고 쓰여 있는 거 안 보이냐?

믿기 힘든 예선전 결과가 나타나자, 관중석에서 놀람 가득한 분위기가 흘렀다.

보통 힐러 클래스는 기초 스텟이 낮아 타 클래스보다 전투력이 약했다.

당연히 동 레벨 대의 1:1 전투에서 힐러가 이길 수 있는 클래스는 없었다.

그 상대가 노말 클래스라고 해도 레벨이 열 단계 이상 차이 난다 해도, 이기기가 힘들었다.

비전투 클래스보다도 약한 것이 힐러 클래스였으니까.

그러나 샬럿은 자신보다 높은 레벨, 우월한 스펙을 가진 전사 클래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심지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모든 공격과 추적을 피해 내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존이 졌다고? 힐러를 상대로? 아무리 커맨더의 파티원이라지만…….”

관중석에 앉아 예선전을 지켜보던 사람 중 하나.

메리가 예선전 결과를 보며 경악을 드러냈다.

존은 그랜드 실더 소속 헌터이자 길드장 스티븐과 함께 전장의 최전선에 자리하는 정예 헌터였다.

올림포스의 정보를 담당하는 메리이니만큼, 같은 올림포스 소속인 존의 전투력을 잘 알고 있었다.

존은 A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혼자서 탱킹과 어그로 관리까지 가능한 강자였다.

그런 존이 힐러를 상대로 패배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놀람을 드러내는 메리의 반응에.

“내가 승리를 장담하지 말라고 말한 게 이번이 다섯 번째다.”

마찬가지로 옆에서 예선전을 관람하던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동시에 조금 전 샬럿이 보인 움직임을 다시금 떠올렸다.

존이 샬럿의 공격을 정면으로 뚫어내며 돌진해올 때.

-스르륵.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홀로그램을 만듬과 동시에.

-샤라락.

클로킹 점퍼로 자신을 은폐시켜 그 자리를 미리 벗어났다.

더미를 둠과 동시에 그 자리를 이탈하는 모습.

심지어 A급 헌터가 두 눈을 부릅뜨며 주시하고 있음에도 들키지 않았다.

그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스킬 운용이었다.

결국, 샬럿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존이 홀로그램을 베어 내며 방심했고.

-철컥.

존의 뒤를 은밀하게 점거한 샬럿이 그의 뒤통수를 쏴 버렸다.

당연히 치명타 판정이 났고 샬럿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샬럿을 마지막으로 한국의 헌터들은 전원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예선전에서 통과한 100명만이 진출할 수 있는 결승전.

즉, 한국에서 참여하는 헌터들 전원 세계에서 가장 강한 헌터 100위 안에 들었다.

-전원 100위 안에 들 겁니다.

이전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장담한 말이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틀 뒤인가?”

처용이 곧 있을 세계적인 이벤트를 생각하며 읊조렸다.

이번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월드 헌터 토너먼트 결승전이 열리기 전에 특별히 기획된 이벤트.

다수의 S급 헌터들과 단 한 명의 대결.

각 길드의 길드장들이 단체로 던진 도전장을 처용이 한꺼번에 받아들인 결과 열린 빅 이벤트였다.

처음에 이 제안을 받아들일 때는 각 길드장들의 수준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 처용이 노리는 이득도 있었다.

길드장들의 도전을 받아들인 것은 나름대로 손익의 계산을 둔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름 기대되는군.’

처용은 길드장들이 보여줄 투쟁을 기대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자신과 길드장들의 수준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도전장을 내민 길드장들을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