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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76화 (376/726)

#376화

바알이 완전히 역소환되자.

-쩌저적! 쿠구! 쿠르-르릉!

제단 전체 실금이 번지듯 균열이 일어나더니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단 제단만이 아닌, 공동 전체가 흔들리며 무너지고 있었다.

“모두 물러나! 탈출을 시작한다!”

커맨더가 타격대의 헌터들을 향해 소리치고는.

“돔 벙커!”

-철컥! 철컥!

공동이 무너지는 것을 잠시 저지하기 위해, 벽을 넓게 펼쳤다.

커맨더의 벙커가 무너지는 동공을 잠시 받쳐줄 때.

“자, 여러분. 공연이 끝났으니, 퇴근할 시간입니다.”

-슈르르!

단장이 자신의 주변으로 어둠을 길게 펼치며 말했다.

그러자.

-샤삭! 샥!

주변에 퍼져 있던 섀도우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단장에게로 모여들었다.

-스르륵. 스륵.

단장이 펼친 그림자 속으로 모여든 섀도우 헌터들이 늪 속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들을 시작으로 데커드, 스텔라 등, 이명을 가진 섀도우 헌터들도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

“라이언!”

-샥!

백호가 커맨더의 벙커 속에서 튀어나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려는 한 섀도우 헌터 뒤에 나타났다.

그러자.

“…….”

백호의 시선에 닿은, 흑사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섀도우 헌터.

라이언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이 복수가 끝나면.”

라이언의 입에서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스스로가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 죗값을 받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자신은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미 죄인이 되어 버린 자신이 속죄할 방법은 없었다.

이제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자신과 딸을 죄인으로 만든 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해야 했다.

지금 라이언이 해야 할 일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미안하다…….”

더 말을 잇지 못한 라이언이 마지막 말을 겨우 전하고는.

-스르르.

단장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조커와 단장을 제외한 모든 섀도우 헌터들이 사라지자.

“공연은 끝났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단장이 왼손으로 검은 망토를 잡아 펄럭이고는 자신을 감쌌다.

검은 망토가 단장을 가리고는.

-스르르.

지면의 그림자로 빨려 들어가며 사라졌다.

“……제길.”

백호가 라이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라이언을 마주하니, 뭐라 말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쿠구구! 콰쾅!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는 제단과 공동.

대화를 하기엔 지금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백호 형! 이쪽으로!”

커맨더가 벙커 안에서 게이트를 열고는 백호를 향해 외쳤다.

백호는 한 번 더 라이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는.

-파직.

곧장 커맨더의 벙커로 돌아갔다.

커맨더가 활성화시킨 게이트가 거의 완성 직전.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는 아직 볼 일이 남았습니다.”

-파지직!

처용이 커맨더의 벙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커맨더는 처용에게 뭐라 말하려 하다가.

“……다들 이쪽으로 모이십시오! 돌아갑니다!”

처용의 시선이 무너지는 제단 위, 조커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지이잉.

커맨더가 자신의 함선과 연결되는 게이트를 만들자, 타격대의 헌터들이 모두 대피했다.

***

마인들의 심처였던, 지하 공동 제단이 거의 다 무너져 내릴 때.

-스르륵.

조커는 제단과 연결되어 있던 비밀 통로를 통해 조금 떨어진 장소에 도달했다.

마찬가지로 지하에 구비된 듯 보이는 시설.

-저벅.

조커가 가장 안쪽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우웅.

주변에 검은 파동을 흩뿌리는 검은 구슬이 나타났다.

보안 마법진이 새겨진 투명한 보관함 안에 있음에도 그 기운이 외부로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걸 회수할 시간은 차마 없었나? 크흐흐.”

조커가 검은 구슬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고는 보관함에 손을 대었다.

상급 마인조차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보관함 케이스.

본래라면 시설의 보안이 외부인인 조커를 가로막아야 했지만.

-끼이이.

케이스는 조커의 손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이내 뚜껑이 열렸다.

조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의회주.

마인들 중 가장 위에 자리한 이였기에 시설의 보안이 반응하지 않았다.

-스륵.

강렬한 기운이 응축된 듯, 검은 파동을 흩뿌리는 검은 구슬이 조커의 손에 잡혔다.

그 순간.

-스스스.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 안정된 듯, 떨림을 멈추었다.

조커가 구슬을 집어 든 순간.

-스르르.

조커의 뒤로 검은 안개가 일렁이며 반투명한 악령이 나타났다.

그리고.

“조커.”

-파아아.

마치 커튼이 걷어지듯, 악령이 반으로 스르륵 갈라지며 엘리스가 나타났다.

조커가 엘리스를 잠시 바라보며 침묵하고는.

“하…… 혹시나 했는데.”

기가 막힌 듯한 헛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설마, 이런 변수를 만들어 버릴 줄이야.”

“내 정체를 파악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조커의 반응에 엘리스가 무표정으로 답하고는.

“하워드를 불러라. 조커.”

낮은 목소리로 조커에게 본론을 물었다.

그런 엘리스의 말에.

“이건 ‘계약’ 위반인데? Bro.”

조커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지며 엘리스의 말에 답하듯 되물었다.

그러자.

“아니, 나라는 변수가 생겨 버렸을 뿐, 그들이 네 계약을 위반한 건 아니다.”

엘리스가 그런 조커의 말에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반박했다.

“너만의 ‘즐거움’은 여기까지야. 조커.”

“누구 마음대로 내 ‘즐거움’을 끝내겠다는 거냐?”

조커가 엘리스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는.

-스스스.

위협적인 기세로 어둠을 내뿜었다.

그에 맞서.

-스르르.

엘리스 역시 짙은 마기를 내뿜었다.

-쿠구!

두 어두운 기운이 충돌하며, 공동 내부가 흔들릴 때.

“……흐음!?”

-쿵!

조커가 몸을 한 번 들썩이더니, 침음을 내뱉었다.

그 영향인지.

-쩌적.

얼굴을 덮은 흑백의 하회탈 가면 끝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 모습을 본 엘리스가 잠시 침묵하고는.

“앞으로 있을 더 큰 즐거움을 위해서 아니겠나?”

싸늘한 표정을 지우고 이내 작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진지하게 묻지, 이 상황이 정말로 달갑지 않은 건가?”

엘리스의 말에 조커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하하하!”

미묘한 표정이 미소로 바뀌며 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럴 수가……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이런 의외성이 발생할 줄이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반기는 듯, 반기지 않는 듯.

두 감정이 반반 섞인 듯 보였다.

조커가 큰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이런 엄청난 변수를 만들어 버릴 줄이야…… 정말 대단한데 Bro?”

엘리스의 뒤, 아무도 없는 장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스르륵.

아무도 없는 장소, 짙게 내려앉아 있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저벅.

처용이 걸어 나왔다.

“도대체 악몽 속에서 무슨 수로 데이터를 가지고 나왔나? 궁금해 미치겠군. Bro.”

조커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광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처용에게 묻자.

“내가 가지고 나온 게 아니다. 멋대로 나한테 달라붙어 나온 거지.”

처용이 엘리스를 눈짓하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다시 만났군.”

“나는 이 삼자대면(三者對面)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조커가 처용의 말에 답하고는.

“아니…… 육자대면(六者對面)이라는 말이 어울리겠군. 아니 그런가. Bro?”

미소를 짓던 입꼬리를 더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세 명이 아닌 여섯 명이라 칭하는 조커.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워드와 조커.

레나와 엘리스.

처용과 그 내면에 깃든 죄악의 파편.

조커의 말대로 지금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정확히 여섯 명이 맞았다.

“잘 지냈나. 브라더? 크크.”

조커가 처용을 바라보며 반갑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처용을 보며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내면에 깃든 존재에게 안부를 전한 것이었다.

그런 조커의 안부에.

-스르르.

처용에게서 붉은 신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깨우지 말라고 지랄하더니, 조커의 부름에 재깍재깍 쳐 일어나는 거 봐라.”

조금씩 흘러나오는 붉은 신력을 보며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닥쳐.

중성적인 목소리가 처용을 향해 울렸다.

“크크크. 잘 지내는 것 같군. 브라더?”

조커가 처용을 향해, 정확히는 처용 내부에 자리한 존재를 향해 말했다.

“태초의 신수는 크타니드의 파편, 그리고 그 태초의 신수에게 선택을 받은 신관, 그 신관에게 깃든 태초의 파편…….”

처용이 그간 알아낸 사실을 짧게 읊조렸다.

“제대로 풀리는 거 하나 없이, 쌓인 의문이 너무나도 많아.”

“하하하, 남의 복잡한 가정사를 잘도 요약했군. Bro?”

조커가 처용이 읊조린 말에 재밌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조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태초의 마수들과는 다른 성질을 지닌 크타니드의 파편.”

조커가 순순히 처용의 말에 답해주었다.

“다른 성질의 파편?”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의문을 표하자.

“어디 한번 맞춰보라고. Bro.”

조커가 재밌다는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처용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침묵하고는.

“……‘감정’이군.”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조커의 입가에 드러난 미소가 사라지고는.

“그 감정 중에…… 나는 뭘까?”

처용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 말에 이번엔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크타니드의 속성을 상징하는 파편, 카투라와 크루마.

그런 그들과는 다른 성질을 지닌 크타니드의 파편인 조커.

다른 속성이란, ‘감정’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조커를 상징하는 감정이란 무엇인가?

처용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즐거움.”

크타니드의 감정을 상징하는 파편인 조커.

그를 상징하는 감정은 다름 아닌 ‘즐거움’이었다.

조커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은 ‘Bro’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Bro’만큼이나 그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참으로 즐겁지 않은가? 하하하!

그는 곤란한 상황이든, 위험한 상황이든.

-재미있군. Bro.

-이거 정말 재미있잖아?

-참으로 즐겁군!

회귀 전부터 언제나 ‘재미있다’라는 말을 언급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만의 ‘즐거움’은 여기까지야. 조커.

-누구 마음대로 내 ‘즐거움’을 끝내겠다는 거냐?

조금 전, 엘리스와 조커가 했었던 말.

엘리스, 학살의 마녀 역시 자신처럼 미래의 지식이 있는 존재.

심지어 그녀는 처용보다도 조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뱉은 말이, 처용에게는 생각하던 가정에 확신을 내릴 수 있었던 단서였다.

“내 대답이 즐거웠는지 모르겠군?”

처용이 조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묻자.

“…….”

조커가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자.

“하…… 하하하!!”

큰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잖아. Bro! 고작 주어진 몇 개의 단서만 가지고 나를 맞출 줄이야!”

조커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광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 성질 더러운 브라더가 괜히 조심하는 게 아니었잖아!”

점차 웃음소리를 낮춘 조커가 나지막하게 말하자.

“‘분노’를 말하는 거냐?”

처용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의 말은 그저 짐작했던 생각이 맞는지 떠볼 의도로 던진 말이었지만.

“……하!”

조커가 표정 관리에 실패한 듯,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크타니드의 파편, 징벌자의 신력.

-무엇에 그토록 ‘분노’하는가?

-그렇다면, 그 분노의 원인을 ‘징벌’해라.

내면에 깃들어 있던 크타니드의 파편이 처용에게 속삭이듯 전했던 목소리.

녀석은 처용의 감정 중, 격한 감정에 반응을 보였다.

특히, ‘복수’하겠다는 마음과 배신자들에 대한 ‘분노’에 반응했다.

거기에 징벌자의 신력은, 그 감정이 더욱 격해질 때 더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처용이 내면에 깃든, 크타니드의 파편에 대해 생각할 때.

“잘못하면 네가 잡아먹히겠어. 브라더.”

조커가 처용을 바라보며 도발하듯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처용의 내면에 깃든, 자신과 같은 존재를 향해 던진 말.

그런 조커의 목소리에.

-쿠구구!

처용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붉은 신력이 진동을 퍼트렸다.

마치, 분노하는 듯, 조커를 탓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숙주가 똑똑한 건 내 탓이 아니라고? 브라더. 하하하.”

조커는 자신과 같은 형제가 보이는 반응에 재밌다는 듯한 미소를 흘렸다.

“너는 숙주를, 하워드를 지배하고 있는 건가?”

처용이 조커를 바라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자.

“아니.”

조커가 처용의 말을 부정하고는.

“이 Bro와 나는 서로 ‘계약’을 했거든.”

자신과 하워드가 어떤 관계인지를 이야기했다.

“계약?”

“그래, 이 Bro와 내가 서로 맺은 약속. 그래서 협력하는 거지.”

조커가 처용의 물음에 답하고는.

“이봐 Bro? 그 브라더를 버리고 나와 계약하지 않겠나?”

처용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미소가 가득한 조커의 말에.

“……그 계약이라는 걸 하면, 이 기생충을 떨어뜨릴 수 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물었다.

“그래, 대신 내가 Bro와 함께하게 되겠지. 그 브라더는 버려지고.”

조커가 처용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순간.

-쿠구구!

처용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붉은 신력이 조커를 향해 강렬한 파동을 퍼트렸다.

동시에.

-개수작 부리지 마라!

분노가 가득 일렁이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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