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조커가 제단 위에 나타나며 나베리우스의 분신과 대치한 순간.
“감히! 대악마님에게-!”
“제단을 지켜라!”
마인들이 조커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방해할 수 없다.”
-스르륵.
바닥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흑사자, 라이언이 마인들을 가로막았다.
“리더……! 이 배신자가!”
조커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던 의회주 중 하나, 릴이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개 같은 쓰레기 새끼, 네놈만큼은 내가 반드시 찢어 죽여 버리겠다.”
-화아아. 쿠구구!
라이언이 릴을 향해 맹렬한 적의와 날카로운 살기를 드러내며 읊조렸다.
처용을 가로막으려다가 큰 부상을 입고 닥터에게 구해졌을 때.
-꾸며진 무대 뒤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에게서 에블린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한 ‘진실’을 알았다.
-애초에 에블린 양을 감염시키고 변이시킨 범인은…… 릴과 그녀가 따르는 대악마, 아스모데우스입니다.
미래가 밝았던 에블린에게 왜 불행이 닥쳤는지.
누가 그런 짓을 벌였는지.
지금까지 에블린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이 노력한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일의 진짜 원흉.
“아스모데우스! 이 개새끼가!”
라이언이 색욕악신과 그 신관인 릴에게 강렬한 살기와 적의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신성모독이 가득한 라이언의 말에.
“이 어리석은 놈이-!”
릴이 남자였던 육체를 여자로 바꾸며 소리쳤다.
“색욕의 형상.”
-까드득!
서로가 이성인 상태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발휘하는 릴의 특성.
릴이 길게 뻗어 나온 손톱을 앞으로 내지르며 라이언에게 돌진했다.
동시에.
“심연의 속박.”
“짙은 암흑의 칼날.”
-우우웅!
근처에 있던 상급 마인들과 휘하 마인들이 릴을 도와 스킬을 발동했다.
마기가 응축된 칼날과 탄환들이 라이언에게 쇄도하자.
-크허어어!
라이언의 결전기, 라이거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쏟아지는 공격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스틸 패링.”
-쿠궁!
손톱을 앞세운 릴의 공격을 라이언이 두 손을 중앙으로 모아 가드를 올리며 방어했다.
-까가각! 까각!
날카로운 릴의 손톱과 견고한 라이언의 건틀릿이 마찰음을 내며 충돌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가드를 올려 방어를 했지만.
-치이-!
릴의 특성 때문인지 라이언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때.
“갤럭시 샷.”
-위이잉!
라이언의 뒤로 빛나는 마나의 탄환이 곡선을 그리며 릴에게 쇄도했다.
“칫.”
공격을 감지한 릴이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지잉!
마나의 탄환이 유려하게 방향을 틀며 물러난 릴을 추적했다.
“색욕의 형상.”
-스르륵. 차캉!
육체를 다시 남자로 바꾼 릴이 손톱을 세우고는 크게 휘둘러 마나의 탄환을 쳐내었다.
그녀가 육체를 남자로 바꾼 이유.
-탓.
라이언의 옆에 나타난 섀도우 헌터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얀 가면의 왼쪽 눈 아래에 새겨진 푸른 별 문양.
가면 뒤로 흩날리는 검푸른 긴 머리.
전신을 가린 검은 로브를 두른 여성.
“스텔라.”
라이언이 옆에 나타난 섀도우 헌터를 향해 말하자.
“저 변태를 혼자서 상대하는 건 좋지 않다고. 흑사자.”
라이언을 도와준 섀도우 헌터, 스텔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섀도우 헌터들은 마인들과 대적하는 이들이니만큼, 의회주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중 이성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발휘하는 특성을 지닌 의회주, 릴.
그런 그녀를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남·녀가 팀을 이뤄 상대하는 것.
릴이 남자의 형상을 취하면 남자가 전방을 맡고 여자가 후방을 서포트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팀을 이룬 남녀가 빠르게 역할을 바꾼다.
물론 그에 맞춰서 릴 역시 빠르게 성별을 바꾸며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할 것이다.
싸움의 승부는 팀을 이룬 남녀의 호흡이 관건이었다.
“쥐새끼처럼 숨어 사는 것들이, 둘이 덤빈다고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스스스!
릴이 핑크빛이 옅게 일렁이는 검은 마기를 내뿜으며 읊조리자.
“성격 까칠한 건 여전하네, 이 비열한 새끼야.”
-쿠구구!
스텔라가 별무리처럼 하얀빛이 반짝이는 푸른 마나를 내뿜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치, 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
“여전? 난 너 같은 년을 모르는데?”
릴이 스텔라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소롭다는 듯, 말하자.
“그래…… 그 붕어만도 못한 기억력을 기대한 내가 멍청했네.”
스텔라가 가면 뒤로 싸늘한 눈빛을 지어 보이며 도발하듯 입을 열었다.
“이 건방진-!”
릴이 비틀린 미소를 짓고는 손아귀에 마기를 모은 순간.
-크허어어!
은밀하게 접근한 라이언의 결전기, 검은 사자가 밑에서 튀어나왔다.
“색욕의 형상.”
릴이 빠르게 육체를 여자로 바꾸고는.
-쿠궁!
일부러 검은 사자의 앞발에 맞았다.
온몸에 마기를 두르고 양팔에 가드를 올려 방어했기에,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그리고.
“피학의 형상.”
곧장 반격 스킬을 사용했다.
피학의 형상은 공격을 받았을 때, 공격한 대상에게 반대되는 속성으로 반격하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라이언의 결전기인 검은 사자는 딱히 속성이랄 게 없었다.
특징을 꼽자면 물리력을 가진 ‘그림자’에 가깝다는 것.
이렇게 공격 대상의 속성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릴이 가진 속성 중 가장 강한 속성이 발현된다.
-화르르륵!
릴에게서 샛노란 화염이 피어나 검은 사자를 감싸며 불태우기 시작했다.
-파사삭. 파삭.
릴의 반격 스킬로 만들어진 화염으로 인해, 검은 사자의 일부가 불태워지며 흩날렸다.
결국.
-크르르! 스르륵.
릴을 공격하던 검은 사자가 뒤로 물러났다.
“어딜! 전부 태워 주마!”
-화르륵!
릴이 피어난 화염을 앞으로 내뻗으며 검은 사자와 스텔라, 라이언을 동시에 공격하려 했다.
샛노란 화염이 당장이라도 덮쳐들 듯, 해일처럼 일어난 순간.
“파도의 검 – 세 번째 장.”
-샥! 스르릉.
환도를 쥔 연화가 릴이 만들어낸 화염의 파도 앞을 가로막았다.
“솟구치는 파도!”
연화가 환도 끝을 내리고 바닥을 부드럽게 내리긋자.
-쏴아아!
바닥에서 물줄기가 넓게 솟구치며 파도의 벽을 형성했다.
-쿠구! 치이-!
샛노란 화염의 해일과 푸른 파도의 벽이 서로 충돌하며 상쇄되었고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해전군주?”
스텔라가 연화를 알아보며 그녀의 이명을 불렀다.
연화가 군주급 헌터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는 역천군주, 처용의 누이였기에 나름 유명했다.
“돕죠.”
연화가 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할 때.
“저지해라.”
“방해를-!”
-샥.
세 명의 상급 마인이 연화의 위에 나타나며 그녀를 기습해 왔다.
그 순간.
“안녕?”
-쏴아아!
상급 마인들의 위로 물줄기가 뭉치더니 연아가 나타났다.
“심해의 영역.”
-쿠구구!
연아가 일으킨 파도가 주변을 에워싸더니, 연화를 기습해오던 상급 마인 셋을 가두었다.
이윽고 연아와 상급 마인 셋이 물줄기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라이언과 스텔라, 연화와 릴, 상급 마인들이 서로 대치하고 공동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
“더는 방해할 수 없다!”
얼굴에 두건을 두른 의회주가 처용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위이잉!
무언가를 움켜쥐듯,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검붉은색으로 일렁이는 구슬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진동을 퍼트리는 에너지.
“스트라이크 봄버!”
-후우욱!
얼굴에 두건을 두른 의회주가 처용을 향해 검붉은 구슬 수십 개를 내던졌다.
-스르릉!
처용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붉은 구슬들을 향해 역천의 절을 휘둘렀다.
-스가가-각!
검붉은 구슬들이 단 일격에 모조리 베어지며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의회주의 공격이 실패한 듯 보였지만.
“멍청하긴.”
구슬을 내던진 의회주가 조소를 흘렸다.
그러자.
-쿠콰콰콰!
처용이 베어 버린 검붉은 구슬들이 일제히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가 만들어낸 구슬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위력을 지닌 폭발물과 같았다.
화 속성의 폭발력을 극한으로 압축시켜 놓은 폭탄.
그 에너지 폭탄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베어지는 순간, 두 배의 위력으로 폭발하는 특성이었다.
-화륵! 화르륵! 쿠구!
강렬한 화마가 처용을 집어삼키며 주변에 열기를 퍼트렸다.
처용이 당한 듯 보이는 순간.
-화르륵! 쿠콰콰!
폭발의 중심에서 새하얀 화염이 피어나더니, 주변에 퍼지던 열기를 모조리 집어삼켜 버렸다.
그리고.
“위력이 생각보다 약한데? 폭마.”
-저벅.
상처 하나 없는 처용이 새하얀 불길 속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이런 미친 괴물 새끼가……!”
얼굴에 두건을 두른 의회주, 폭마가 침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폭마가 잠시 멈칫하더니.
“……네놈은 나의 신, 진짜 ‘폭마(爆魔)’께서 상대해 주실 것이다.”
-화아아! 쿠구구!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짙은 마기를 뿜어대며 말했다.
이윽고.
[이 건방진 하계종 놈이.]
폭마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의회주에게 강림한 성좌.
그와 마찬가지로 ‘폭마’라 불리는 존재가 목소리를 내었다.
[네놈의 육체를 터트리고 네놈의 성지를 불바다로 만들어 주겠다.]
-위이잉!
신관을 통해 지상에 강림한 폭마가 손아귀에 강렬한 에너지를 모으며 말하자.
“크크크. 세상 참 불공평해.”
처용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크타니드한테 꼬랑지 흔들면 이런 ‘잡범’ 새끼들도 성좌가 된다는 게 말이야.”
마치, 눈앞에 있는 폭마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처용의 말.
그 말대로 처용은 눈앞의 의회주에게 강림한 폭마를 잘 알고 있었다.
놈은 대악마가 아니었다.
폭마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검은 별.
지옥에서 탈주하여 크타니드에게 세례를 받고 검은 성좌가 된 존재였다.
그리고 처용은 폭마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라 불리던 악인 중 하나.
특히 미국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와 슬픔을 안겨 준 인물이었다.
그는 생전 집요하게 자신을 추적해 오던 미군 특수 부대원들에게 거주지를 들켜 사살당했다.
심지어 평범하게 총을 맞고 사살당한 게 아니었다.
“악의 종주가 네놈 대가리에 뚫린 고속도로도 고쳐 줬는지 모르겠군. 크크.”
원한을 품고 있던 미군들이 죽은 그의 시체에 ‘분노의 훈장’을 새겨버린 것.
간단하게 말하자면 머리에 총을 여러 발 사격하여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렸었다.
그 당시 최악의 테러범이었던 그의 시체가 외부에 공개되지 못한 이유였다.
이는 회귀 전, 처용이 저항군의 대장이었던 시절.
-하필이면 저 개 같은 새끼가 검은 별이 되어 버리다니!
미군 특수 부대 출신이었던 동료 헌터에게서 자세히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안 그래? 이 듣도 보도 못한 잡범 새끼야.”
처용이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를 ‘잡범’ 취급하며 도발하자.
[네…… 이! 놈!]
폭마에게서 격렬한 분노가 일렁이는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용이 도발하듯 내뱉은 말은 그에게 있어 트라우마이자 수치였으니까.
[감히, 신이 된 나에게……!]
-위이잉!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폭마가 수십 개의 검붉은 구슬을 생성하고는.
[가루로 만들어 주마!]
-후우욱! 쿠콰콰콰! 콰콰-!
처용에게 모조리 쏟아부으며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 내었다.
-쿠구궁! 쿠구!
지진이 들이닥친 듯, 견고하게 지어진 공동 내부가 거칠게 흔들리며 굉음을 자아냈다.
-위이잉!
폭마는 한 번의 폭격에 그치지 않고 계속 폭탄을 만들어 내며 처용에게 폭격을 퍼부었다.
그때.
“눈깔이 돌아가면 뒤가 안 보이나 봐?”
폭마의 뒤에서 처용의 목소리가 들렸고.
-스르릉. 콰지직!
날카로운 칼날이 폭마의 가슴을 뒤에서 꿰뚫으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커…… 무슨?]
폭마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 부적을 왼손에 쥐고 있는 처용이 보였다.
“허수아비는 신나게 때리셨나?”
-콰지지직!
처용이 오른손에 쥔 역천의 절을 비틀며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폭마가 폭격을 쏟아부은 자리에 있던 처용.
그것은 처용이 암영부로 만들어낸 ‘그림자 꼭두각시’였다.
정확히는 폭마가 자신의 신관에게 강림하기 전, 백염으로 폭격을 한 번 막아냈을 때.
-암영부 – 그림자 통로.
백염으로 잠시 자신을 가린 순간, 꼭두각시를 만들어 놓고 사라진 것이었다.
그 이후 벌어진 처용의 도발.
눈이 돌아간 폭마가 눈앞에 있는 처용이 꼭두각시인 줄도 모른 채 폭격을 퍼부었고.
-스르륵.
그 틈에 처용이 폭마의 뒤를 점거한 것이었다.
[크윽! 내 신관을 죽이면 가만두지 않겠-!]
폭마가 경고를 가득 담아 읊조리듯 말하자.
“지랄한다. 잡범 새끼야.”
처용은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짓고는.
-촤아아!
역천의 절을 빠르게 위·아래로 여러 번 휘둘렀다.
이미 폭마의 신관은 가슴이 꿰뚫려 있던 상황.
-촤자자! 촤작!
나약한 육체는 역천의 절을 저지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찢겨 나갔다.
폭마가 강림하던 신관의 육체가 분쇄기에 갈린 고깃덩이처럼 여러 갈래로 뜯겨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스르르.
신관에게 강림 중이던 폭마의 화신체가 잠시 떨어져 나왔다.
[네놈을 반드시 죽여 없애 버릴 것이다!]
폭마가 자신의 신관을 죽인 처용에게 원한 가득한 목소리로 읊조리고는 사라지려 하는 순간.
“그 전에, 저승의 감찰관들부터 상대해야 할 거야.”
처용이 아공간에서 검은 보패를 꺼내고는 사라지려는 폭마의 화신체를 향해 내질렀다.
폭마의 화신체에 검은 보패가 닿은 순간.
-피이이!
검은 보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폭마의 화신체를 휘감았다.
[이! 이럴-!]
폭마의 화신체가 저항하려 했지만, 이내 하던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흡수되어 버렸다.
“일단, 한 놈 잡았고.”
처용이 손에 쥔 검은 보패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