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닥터가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가면이 씌워지더니, 조커로 변해 버렸다.
“아아, 네놈들 덕분에 이 Bro가 죽을 뻔했잖아?”
모습을 드러낸 조커가 오른손을 들어 뚫린 가슴께를 짚으며 말했다.
그러자.
-스르르.
꿰뚫린 가슴 쪽으로 어둠이 모이더니, 이내 상처가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동시에.
-화아아!
가슴 쪽으로 모여들던 어둠이 전신에 퍼졌다.
본래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닥터.
그런 그의 옷이 세련된 스타일의 검은 연미복으로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닥터였던 이가 완전히 조커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조커의 정체가 드러나자.
“…….”
“…….”
의회주들이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어내며 침묵하고 있었다.
변화의 대악마, 안드레알푸스의 신관이자 S급 마인.
마인들을 이끄는 의회주 중 하나인 닥터.
마인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가 정체를 숨기고 잠입한 조커로 드러난 상황.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 의회주들도, 근처에 있던 상급 마인들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잘 지냈나. Our Bro?”
조커는 마치 별일 있냐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안부 인사를 전했다.
“내가 전에 보내준 교단 본부 관광은 즐겁게 다녀왔는지 모르겠군.”
특히 집행자를 향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안부를 묻듯 말을 잇자.
“너 이 광대 새끼!”
그동안, 조커에게 당한 게 많은 집행자가 분노를 표했다.
“오, 기뻐해 주다니 정말 감동이야 Bro.”
조커가 격하게 반응하는 집행자를 보며 즐겁다는 듯 미소를 흘릴 때.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커맨더가 소환한 미스리움 벙커 안에 있던 헌터들이 의문을 표했다.
작금 일어나는 상황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용을 따라 마인들의 심처로 도달해 보니, 의회주들이 같은 의회주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쓰러진 의회주, 닥터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조커로 변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커맨더를 포함한 모두가 의문을 드러낼 때.
‘혹시나 했지만……!’
처용은 조커로 변한 닥터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내심, ‘혹시?’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다.
닥터 백병원, 하워드 백 르블랑의 진짜 정체가…… 조커가 아닐까? 하는.
이러한 생각을 들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악몽 때문이었다.
-Bro가 아니라, ‘Brother’였잖아? 하하하!
악몽 속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조커가 처용을 보며 했었던 말.
이는 처용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죄악의 파편을 가리키며 했었던 말이었다.
그런 조커의 부름에 처용에게 붙어 있는 죄악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 이후.
-우리는 크타니드의 파편이다.
조커가 스스로와 처용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죄악의 파편을 크타니드의 파편이라 소개했다.
태초의 마수들과 비슷하면서 다른 존재들.
그리고.
-이야~ 브라더. 만만치 않은 Bro를 숙주로 고른 것 같은데? 크크.
처용을 가리키며 ‘숙주’라는 표현을 썼었던 조커.
그는 처용의 내면에 깃든 죄악의 파편과 같은, ‘정신적인 존재’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커 역시 누군가에게 깃들어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처용이 품은 의심의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두 번째는.
[던전을 공략할 이들은 총 27명입니다.]
마인들과 악몽 속에 말려들었을 때 울렸던 시스템의 문구 때문이었다.
그 당시 시스템이 가리킨 ‘악몽의 참가자’는 총 27명.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스스로 악몽에 걸어들어온 조커는?
악몽의 참가자인 27명 중, 조커가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악몽 속에서 처용이 처음 마녀를 포함한 마인들을 마주했을 때.
‘그 당시 현장에 있던 놈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27명이었다.’
현장에 있던 인원은 정확히 27명이었다.
즉, 처용을 제외한 마인들 중 하나.
의회주인 닥터, 마녀를 포함한 상급 마인 다섯, B급 마인 스무 명.
이들 중 변장한 조커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중 닥터를 의심한 마지막 이유.
-……너, 넌!?
악몽으로 구현된 학살의 마녀가 찰나의 순간, 닥터를 향해 드러낸 반응 때문이었다.
마치 닥터를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
그런 닥터가 처용과 학살의 마녀가 펼치는 싸움에 휘말려 사라지고 이후 조커가 나타나자.
-그렇군, 지금은 그럴 때인가?
학살의 마녀는 조커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닥터가 사라지자마자, 조커가 다시 나타난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조커가 다시 사라지고 처용이 악몽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악몽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나를 포함해서 ‘다섯’이었다.’
처용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것이 확인된 생존자는 총 네 명.
태초의 그릇을 지닌 마녀.
의회주 닥터.
상급 마인인 오거.
B급 마인인 지미.
이 네 명 중에 조커가 있었다.
그중 학살의 마녀가 이식된 마녀, 레나는 제외.
기갑 마인이 되어 버린 오거 역시 가능성이 없었다.
남은 용의자는 섀도우 헌터, 단장으로 확인된 B급 마인 지미.
그리고 니알라 크타니드의 신관이자 단장처럼 위장하고 있던 섀도우 헌터, 닥터만 남는다.
섀도우 헌터로 확인된 두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조커의 숙주였다.
처용의 감은 닥터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그저 심증이었을 뿐.
닥터와 조커가 동일 인물이라는 확신이 조금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서프라이즈? Bro. 하하하!”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조커 덕에 처용이 줄곧 품어오던 의심은 사실이 되었다.
“많이 놀랐나 봐?”
조커가 씨익 미소를 짓고는 의회주들을 바라보며 묻자.
“죽여 버리겠다!”
-화르륵!
집행자가 도끼를 움켜쥐고는 검은 화염을 피워 올렸다.
“다크 플레임 엑스!”
-슈-화아아!
검은 화염을 실은 도끼날이 조커를 쪼개 버릴 기세로 나아갔다.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 다가오는데도 조커는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샥!
조커보다도 덩치가 큰 누군가가 조커에게 향하는 도끼날을 가로막았다.
-콰쾅! 쿠구구!
양손에 낀 검은 건틀릿으로 도끼날을 잡아채며 버티는 이.
뒤로 조금 밀려나기는 했지만, 무려 집행자가 휘두른 도끼를 막아내었다.
검은 전신 슈트와 그 뒤로 흩날리는 검은 망토.
얼굴에 씌워진, 섀도우 헌터를 상징하는 가면.
그리고 가면의 옆으로는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검은 털이 휘날리고 있었다.
“바운스 패링.”
-쿵! 까가강!
집행자를 가로막은 섀도우 헌터가 스킬을 발동하며 집행자를 뒤로 밀어내었다.
“……그 스킬!”
집행자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의 스킬을 알아보며 경악했다.
그 뒤에 있던 의회주들 중에도.
“……리더?”
새로 난입한 섀도우 헌터를 알아본 이들이 있었다.
조커를 지키기 위해 나선 섀도우 헌터.
그는 ‘리더’라는 이명으로 불리던 상급 마인이자 전 커맨더의 파티원.
에블린의 부친인 라이언이었다.
“우리의 새로운 Bro를 소개하지.”
조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격을 막은 섀도우 헌터, 라이언의 옆으로 서며 말을 이었다.
“흑사자(黑獅子)야, 아주 무지막지한 친구라고?”
조커의 말이 끝난 순간.
-샥! 샤샥!
“죽어라!”
“다크니스 스피어 니들!”
상급 마인 여섯이 조커와 라이언을 포위하며 나타났다.
그들 모두가 위협적인 마기를 분출하며 공격을 개시할 때.
“결전기.”
-화악!
조커의 옆에 있던 라이언이 홀로 그들을 감당하려는 듯, 앞으로 나섰다.
“나이트메어 라이거.”
라이언이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결전기를 발동하자.
-슈르르! 크화아아!
질척이는 어둠이 퍼지며 지면에 깔렸고 그 속에서 시커먼 사자가 튀어나왔다.
섬뜩한 붉은 안광을 빛내는, 검은 갈기를 흩날리며 나타난 사자.
-화아악!
검은 사자가 조커와 흑사자를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 빠르게 회전하자.
-차카캉!
몰아쳐 오는 상급 마인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 모조리 튕겨냈다.
동시에.
-스르륵.
라이언이 펼친 결전기, 나이트메어 라이거와 함께 바닥에 깔렸던 어둠.
그 어둠의 늪이 꿈틀거리더니, 다른 누군가가 솟아오르며 나타났다.
검은 모자와 하얀 가면, 세련된 연미복인 조커와는 다른, 조금 더 화려한 느낌의 연미복.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와 같은 모습을 한 누군가가.
“시작해라. 단장.”
조커가 자신의 옆에 나타난 섀도우 헌터, ‘단장’을 향해 말하자.
“자, 공연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단장이 오른손에 든 지휘봉을 크게 휘둘러 보였다.
마치, 음악회의 시작을 알리는 지휘자와 같은 모습.
-우우웅.
단장이 짙은 어둠을 내뿜으며 손에 든 지휘봉을 아래에서 위로 가볍게 튕기자.
-스르륵. 스륵. 스륵.
바닥에 깔린 어둠 속에서 섀도우 헌터들이 튀어나왔다.
섀도우 헌터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모조리 죽여라!”
“복수하라!”
처용 일행에게 폭격을 쏟고 있던 하위 마인들이었다.
“이 벌레 같은 것들이!”
“저지해라!”
릴과 집행자가 휘하 마인들에게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공격을 준비할 때.
“무장 변환.”
-철컥. 철크럭!
어느새 나타난 또 다른 섀도우 헌터, 블래스터라는 이명을 가진 데커드가 조커의 옆에 섰다.
그리고.
“다연발 네이팜 케논.”
데커드가 전차의 포와 비슷한 박격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의회주들을 향해 겨누었다.
-쾅! 쾅! 콰-쾅!
미리 장전되어 있던 네 발의 포탄이 의회주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감히, 이 ‘폭마’ 앞에서 폭탄을 다루다니!”
-샥!
의회주들 중 얼굴에 하얀 두건을 두른 이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손을 뻗자.
-슈우-탁!
의회주들에게 쇄도하던 포탄이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얼굴에 두건을 두른 의회주, 폭마가 손아귀를 움켜쥐자.
-우드드드! 콰쾅!
포탄들이 한 지점에 모여들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심지어 폭발이 주변에 퍼지지 않고.
-스르륵.
폭마의 손아귀에 흡수되었다.
“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이다! 이 빌어 처먹을 그림자 새끼들을 다 죽여 버려!”
데커드의 공격을 막아낸 폭마가 휘하 마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마인들의 수는 수백.
반면에 섀도우 헌터들은 백이 조금 넘는 수였다.
지금도 그림자 속에서 계속 인원이 충원되고 있지만, 애초에 섀도우 헌터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이 자리에 왔다고 해도 마인들보다는 확연히 적은 수.
폭마의 말대로 전력의 수는 마인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걸 잊은 거 같은데. Bro?”
조커가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나지막하게 묻듯 말했다.
“나보다 무시무시한 적이 이 자리에 있지 않나?”
“……젠장!”
릴이 조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로 크게 물러나며 소리쳤다.
동시에 다른 의회주들 역시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 순간.
“단절(斷切)!”
-샤-악!
처용의 목소리가 울렸고 의회주들이 있던 자리에 얇은 선이 그어졌다.
섬뜩한 살기를 감지한 의회주들은 그 자리를 가까스로 피했지만.
-슥. 촤아아!
의회주들과 가까이 있던 상급 마인 다섯이 허리가 잘려 나가며 즉사했다.
그리고.
-위이잉!
커맨더가 소환한 벙커의 앞부분이 열리더니.
“마인들을 섬멸한다!”
-샥! 샤삭!
벙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헌터들이 튀어나와 전장에 난입했다.
섀도우 헌터들로 인해 처용과 타격대에게 쏟아지던 폭격이 멈춘 결과였다.
“제길! 저 간나 새끼들을 저지해라!”
솔저가 휘하 마인들에게 달려 나가 그들과 합류하며 마인들을 지휘했다.
그런 그의 앞에.
“이제 끝장을 보자. 강철민.”
-파지지직!
백호가 맹렬한 전류를 내뿜으며 나타났다.
그런 백호의 뒤로 타격대의 헌터들 중 일부가 그를 보조하듯 옆에 서며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이 미친 호랭이 새끼가!”
-스르릉.
솔저가 침음을 흘리고는 두 자루의 단도를 꺼내 움켜쥐었다.
백호와 솔저가 맞붙고 거대한 동공 내부에서 백병전이 벌어질 때.
[이 벌레 같은 하계종들이 감히!]
-우우웅!
제단 위에 있던 나베리우스의 분신이 분노를 담아 읊조리며 마기를 내뿜었다.
그 순간.
“어이. 어이. 대악마나 된 양반이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되지. Bro.”
-스르륵.
조커가 제단 위, 나베리우스의 분신 앞에 나타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