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여기서 인원을 나눕니다.”
앞서 나가던 처용이 발걸음을 멈추며 타격대의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동시에 시야를 멀리 집중하며 정면을 바라봤다.
처용의 시야에 뉴델리 시청으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캬아아!
-크아아!
상당한 덩치의 마수들과 그들을 지배하는 마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충 마인들의 수만 백여 명이 넘어 보였다.
‘……시간을 벌겠다는 건가?’
처용이 속으로 읊조렸다.
시청의 정면 입구에 마수들을 배치한 채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마인들.
척 봐도 놈들은 수비적으로 싸우며 시간을 벌려는 목적인 듯 보였다.
“제가 가장 먼저 뛰어들면, 그 뒤로…….”
처용은 타격대의 헌터들을 향해 짧게 말하고는.
“풍운부 – 높새바람 뛰기.”
-후우욱!
다리에 풍운부를 두 장씩 붙여 바람을 휘감았다.
그리고.
-탓. 휘이!
바람 속성 마나의 힘과 풍신보의 힘을 더해 하늘 높이 점프했다.
다리를 강하게 박찼음에도, 그저 바람이 불어오는 옅은 소리만 울렸을 뿐, 소음은 크게 나지 않았다.
처용이 은밀하게 하늘로 뛰어 200미터 정도 날아올랐을 때.
“뢰신보 - 천둥질주!”
-콰르릉!
이번엔 다리에 번개를 휘감아 벼락처럼 빠르게 쇄도했다.
목표는 뉴델리 시청.
처용이 최대치로 발현한 뢰신보로 인해, 하늘 위에서 천둥소리가 울리자.
-무, 뭐야?
-아까부터 날씨가 좋지 않더만-.
시청 입구를 막고 있던 마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에 벼락을 타는 처용의 모습이 포착되었고.
-여, 역천-!
-번개에-!
마인들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그들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콰르릉!
처용이 한 줄기 벼락처럼 지면에 나타났다.
그리고 지면을 향해 쇄도하던 스피드를 그대로 실어.
‘천마군림보!’
-콰콰쾅!
지면을 거세게 밟았다.
-쿠구구! 쿠콰콰!!
강렬한 지진이 들이닥친 듯, 지면이 거세게 진동했다.
-콰직! 콰르르!
시청의 건물은 물론, 주변의 건축물까지 영향을 받은 듯,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 대열을 정비해!
-당황하지 마라!
입구를 지키던 마인들을 물론, 시청 안에 있던 마인들이 소리쳤다.
갑작스럽게 적진 한복판에 처용이 나타났음에도 몇몇 상급 마인들이 휘하 마인드을 지휘하며 나섰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검성류 – 검의 비명!’
-우우웅! 촤자자-!
역천의 절에 강기를 담아 주변에 마구 흩뿌렸다.
날카로운 절삭력을 가진 강기의 파편이 처용을 중심으로 암기처럼 퍼져 나갔고.
-으아!
-마, 막아-!
-커헉!
주변에 있던 마인들이 날카로운 강기 폭풍에 휘말리며 쓰러졌다.
처용은 주변을 마구잡이로 휩쓴 후.
-파지직!
곧장 시청 내부로 돌입했다.
-아, 안 돼!
-놈을 막아!
마인들이 처용을 저지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움직이려 했지만.
-전부 마인이다!
-모두 정리해!
뒤이어 들이닥친 타격대가 진영이 무너진 마인들을 급습했다.
***
‘10분 정도면 정리하고도 남겠지.’
가로막는 마인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며 나아가던 처용이 속으로 읊조렸다.
시청 밖에서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타격대와 마인들.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따져 봤을 때, 전력 차이는 타격대가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백호와 진호를 포함한, 전원 150레벨이 넘는 30여 명의 최정예 헌터들.
아무리 마수와 마인들이라 해도, 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서로 격돌하기 전, 처용이 마인들의 진영을 흔들어놓기까지 한 상황.
밖이 정리되는 데에는 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용이 큰 소란을 피우고 타격대가 정면 공격, 그 후 처용이 먼저 내부로 돌격해 상황을 살핀다.
이게 처용이 즉석으로 생각해 낸 대략적인 작전이었다.
‘이쪽이었나?’
-파지직!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리며 시청 내부를 돌진해 나가던 처용의 눈에.
“찾았다.”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여. 역천군주!”
“제길!”
그 문을 지키는 듯 보이는 마인들이 처용을 보며 질겁한 듯 소리쳤다.
그들이 미처 전투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파직! 스르릉!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처용이 발도를 준비하며 문 앞에 도달했다.
‘검성류 – 산악 베기.’
-스-사각!
역천의 절이 부드러운 쇳소리를 자아내며 칼날을 빛냈다.
마인들과 거대한 철문에 가로로 얇은 선이 그어졌고.
-푸화악! 까강! 쿠구구!
처용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이 가로로 반토막 나며 무너져 내렸다.
끈적한 핏물이 이어진 길을 지나 무너진 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하아, 습격 보고를 받은 게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올 줄이야.”
닥터가 이마를 짚고는 처용을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런 그의 옆에는.
“역천군주!”
“제길……!”
그와 같은 의회주들, S급 마인 여섯이 자리해 있었다.
‘릴, 솔저, 집행자 그리고…… 나머지는 모르는 녀석들이군.’
닥터를 포함한 총 7명의 의회주들.
그 중 닥터를 포함한 4명은 처용이 잘 아는 마인들이었다.
회귀 전 자주 마주쳤던 이들이기에 그 기운이 익숙했으니까.
그 외 나머지, 악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셋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지.’
-스르릉.
처용은 개의치 않다는 듯, 역천의 절을 고쳐 쥐었다.
그때.
“하아, 일을 마저 진행하십시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닥터가 한숨을 쉬고는 앞으로 나서며 다른 의회주들을 향해 말했다.
“부탁하지. 의사 양반.”
릴이 닥터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몽환의 통로.”
-스르르.
곧장, 다른 의회주들과 함께 사라졌다.
“어딜-!”
처용이 강기를 내뿜으며 도망치는 의회주들을 추적하려 할 때.
“결전기 – 화이트 룸(White Room).”
-화아아!
닥터가 안경을 고쳐 쓰며 새하얀 마기를 내뿜고는 결전기를 발동했다.
순식간에 처용과 닥터를 중심으로 먼지 한 점 없는 백색이 물감처럼 퍼져 나갔고.
-스스스.
하얀색 타일이 빼곡하게 자리한 40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공동으로 변했다.
“제 수술실에 온 걸 환영합니다.”
닥터가 가운을 가볍게 털어 젖히며 말하자.
-스르르릉.
스무 개의 메스들이 닥터 주변에 나타났다.
하지만 닥터가 결전기까지 발동하며 전투를 준비했음에도.
“…….”
처용은 닥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듯, 침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닥터의 얼굴을 뚫어질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 백병원, 아니-.”
진지한 목소리로 닥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워드 백 르블랑.”
처용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
살짝 웃는 인상이었던 닥터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닥터가 동요하자.
-끼긱. 끼기긱.
날카로움을 빛내던 메스들이 삐걱거리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 닥터의 모습을 잠시 지켜본 처용은.
“섀도우 헌터, 하워드 백 르블랑.”
닥터를 향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왜 나를 방해하는 거냐고 물었다.”
“하…… 하하, 하…….”
처용의 질문에 닥터가 얼굴을 쓸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수로 알아낸…… 아니, 어떻게 눈치챈 겁니까?”
-스르릉.
허공에 띄운 메스들을 뒤로 물리며 의문을 담아 물었다.
“의회주 중 하나가 섀도우 헌터였다라…….”
처용이 헛웃음을 지으며 읊조렸다.
사실…… 처용의 방금 말은 반쯤 떠본 말이었다.
얼마 전, 로스차일드 가주에게서 얻은 섀도우 헌터들에 대한 정보.
그 정보 속에 있던 한 인물에 대한 자료를 보고 곧장 닥터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하워드 백 르블랑.
르블랑 가의 가주, 악몽 속에서 마주했던 에드워드의 아들.
데미갓 프로젝트로 인해 희생된 아이들 중 하나.
그러나.
-하워드가……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희생된 줄 알았던, 가문의 아이들 중 하나, 잭키가 살아 있었다.
심지어 그 당시 과거 악몽 속에서 마주쳤던 잭키는 현실의 섀도우 헌터, 그것도 단장이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처용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접근한 것.
데미갓 프로젝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이 사실은 살아 있고 그들 모두가 섀도우 헌터였다.
그렇다면 잭키가 언급한 하워드 역시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처용은 이러한 의심이 일렁이던 중, 하워드의 정보가 적힌 프로필을 보자.
-……닥터?
왜인지 모르지만 닥터가 떠올랐다.
서로 생김새가 달랐지만, 무언가 둘이 가진 느낌이 비슷했다.
잭키 찬처럼 하워드 역시 살아서 활동하는 섀도우 헌터라면?
지미라는 마인으로 위장한 잭키 찬처럼 하워드 역시 마인으로 위장했다면?
하워드 백 르블랑은 닥터라는 의회주로 위장하고 있다.
처용의 감이 이러한 가정을 내렸었다.
그리고 그런 처용의 감은 닥터와 다시 마주한 순간 정답이 되었다.
[이름 : 백병원]
[레벨 : 186]
[칭호 : 몽환(夢幻)의 대리자]
[클래스 : 임포스터(Imposter)]
[특징 :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 변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메디컬 디렉터’ 클래스를 적용 중입니다.]
[그 외 확인 불가]
[스킬 : 확인 불가]
처용의 눈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닥터의 정보가 보였다.
태무신, 운장에게서 계승 받은 ‘관철안’ 덕분이었다.
그 덕에 새로운 사실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몽환(夢幻)의 대리자.
이는 분명 태초의 마수, ‘니알라-크타니드’를 의미했다.
그녀가 섀도우 헌터들의 성좌, 악몽 지배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심지어 닥터는 평범한 섀도우 헌터가 아닌, 니알라-크타니드의 신관이었다.
그 증거로 닥터와 같은 태초의 마수에게 선택된 신관인 연아.
그녀는 신관이라는 명칭 대신에 ‘수주(水主)의 대리자’라는 칭호가 붙어있었으니까.
아마 평범한 성좌가 아닌, 태초의 마수가 성좌이기에 조금 다른 듯 보였다.
이로써 닥터의 정체가 섀도우 헌터였다는 사실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가 왜 유독 마녀, 태초의 그릇을 지닌 숙주에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는지.
마인, 의회주라기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수상한 행동을 했는지.
이 모든 의문이 단번에 해소가 되었다.
물론, 아직 한 가지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마인이라기엔 이해할 수 없었던 네 행동, 학살의 마녀가 보여준 과거, 그리고…… 네 죽음.”
생각을 마친 처용은 닥터의 질문에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들로 대답했다.
그러자.
“제가…… 죽는군요.”
-우드드.
닥터가 처용의 말에 주먹을 쥐며 읊조리고는 말을 이었다.
“단장에게서 우리가 실패했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직접 다시 들으니 뼈아프군요.”
분노와 착잡함이 일렁이는 목소리가 닥터에게서 흘러나오자.
“같은 미래를 반복할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 나를 방해하지 마라.”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닥터가 섀도우 헌터로 확인된 이상, 녀석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섀도우 헌터들은 모두 마인들과 적대하는 이들.
처용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하…… 당신이 계획을 세우고 움직인 것처럼, 우리 역시 계획이 있었습니다.”
처용의 말에 닥터가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박박 긁으며 답답한 듯 말했다.
그리고.
“…….”
고개를 들고 눈을 감으며 잠시 침묵했다.
마치, 누군가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듯 보였다.
닥터가 5초 정도 침묵하고는.
“……가장 깊은 곳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열어 드리죠.”
눈을 뜨고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오십시오. 이번 기회에 놈들을 박멸시켜야 하니까.”
-위이잉.
말을 마친 닥터가 자신의 뒤에 병실 문을 소환함과 동시에.
-휙.
처용을 향해 납작한 무언가를 던졌다.
마치, 병원의 카드키처럼 생긴 물건.
처용이 받은 것은, 닥터가 사용하는 게이트를 한 번 소환할 수 있는 일회용 아티팩트였다.
“제 판단이 옳았기를 바랍니다. 역천군주.”
닥터가 처용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는.
-위이잉.
등 뒤의 게이트를 타고 사라졌다.
동시에.
-스르르.
처용을 가둔 닥터의 결전기, 새하얀 방이 사라졌다.
그러자.
“어? 뭐, 뭐야? 안에 들어간 거 아니었어?”
“갑자기 나타났는데?”
처용의 귓가에 타격대 헌터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방이 사라지고 나타난 장소는 시청 밖이었다.
마인들과 격돌했던 타격대 헌터들은 크게 다친 이 없이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WHU와 다른 길드에서도 지원이 올 거야.”
-쉬이잉!
전신 슈트를 갖춰 입은 커맨더가 공중에서 날아오며 말했다.
그는 본인이 맡은 일, 군단을 넓게 배치하여 퇴로를 막은 후, 타격대에 합류한 것이었다.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헌터들의 상태를 잠시 살피고는.
“마인들의 근거지로 바로 갈 방법이 생겼습니다.”
커맨더와 타격대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이 일대 정리는 다 끝났어.”
“바로 가지.”
커맨더와 진호를 포함한 헌터들이 자신감을 드러내며 답했다.
처용이 어떻게 방법을 찾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헌터들의 의견을 들은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러면 열겠습니다.”
-지잉.
닥터에게서 받은 카드키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스르륵. 위이잉!
넓은 크기의 병실 문이 나타났다.
처용이 망설임 없이 안으로 진입하자, 헌터들이 따라나섰다.
-우우웅.
닥터의 게이트를 타고 이동한 처용이 새로운 장소에 도달한 순간.
“커허헉!?”
처용의 눈앞에 가슴이 뻥 뚫린 닥터가 피를 토해 내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닥터를 공격한 듯 보이는 의회주들이 눈에 들어왔고.
“꼴 좋구나. 배신자.”
릴이 피가 잔뜩 묻은 오른손을 털어내며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