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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67화 (367/726)

#367화

아테나와 만나고 하루 뒤.

-마인 녀석들 동남아 지역으로 모여들고 있더라?

처용은 메리에게서 마인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천교가 무너지고 로스차일드 장악에 실패한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마인들.

그들이 비밀스럽게 동남아 쪽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지금 시기의 동남아 쪽은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일부 지역은 게이트 폭주를 막지 못해 몬스터 오지가 되어 버렸고.

동남아 지역을 관리하던 각 나라의 정부는 제 살길만 찾다가 자멸해 버린 상태였다.

이제는 몬스터들과 범죄자 집단이 되어 버린 구 정부군들, 그리고 마인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범죄 구역이라 칭해도 손색없을 정도.

그런 악취가 가득한 지역을, 각 길드들은 그저 방치 중이었다.

그들이 굳이 동남아 지역을 청소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굳이 해당 지역을 청소해 봤자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폭주한 게이트는 평균 C급 수준이라 자원의 질이 그리 좋지 않았다.

거기에 반쯤 몬스터 오지가 되어 버린 장소에서 활동하는 범죄자 집단도 성가신 이들이었다.

그들은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하며 자신들의 구역에 누군가 오는 것을 반대했다.

오죽하면 성자조차도 발걸음을 돌릴 정도였다.

범죄자 집단들과 협력하는 마인들, 그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는 섀도우 헌터들까지.

동남아 지역은 여러모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힘들게 인력을 들여서 해당 지역을 장악해도 관리비용이 더 들어갈 뿐, 뭐 하나 얻는 이득이 없었다.

심지어 장기적으로 작전을 펼쳐 넓은 동남아 지역 전체를 청소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거대 길드들도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과 그 주변을 관리하는 데만 해도 나름 바빴으니까.

WHU조차도 큰 문제가 없다면, 해당 지역을 그냥 방치하고 방관하는 상황이었다.

“동남아 지역, 정확히 어디지?”

처용이 메리와 연결된 라이센스에 대고 묻자.

-주로 파키스탄하고 인도에 모여들고 있어.

메리가 곧장 대답했다.

그 말에 처용이 잠시 생각하고는.

“다른 길드들은 어떻게 행동할 생각이지?”

이번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패잔병들이 한 지점에 모이고 있는 상황.

심지어 다른 길드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장소에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 마인들을 그냥 방치하고 방관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우선, 우리는 이번에 마인들의 뿌리를 완전히 뽑을 생각이야.

메리가 진심이라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올림포스의 의사를 전했다.

기왕 마인들을 거의 몰아붙인 상황.

올림포스는 이번 기회에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생각이었다.

이번에 한 지점에 모인 마인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면, 당분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다른 길드들은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길드들은 상황을 조금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인도라…….”

처용이 메리의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읊조렸다.

메리가 말한 동남아 지역 중 하나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과거, 검은 대지가 퍼져 국가급 디파일리스크가 나타났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인도였다.

처용은 회귀 전, 과거를 떠올리고는.

‘이번 기회에 싸그리 정리해 버리는 게 좋겠군.’

이후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했다.

“인도의 전 수도 뉴델리, 내가 가장 성가신 지역을 정리해주지.”

생각을 마친 처용이 메리에게 말했다.

인도의 수도였던 지역인 뉴델리.

현재 무법지대의 중심지이자 왕국.

미래에 국가급 디파일리스크가 나타날 장소이자 2차 대격변의 핵심이었던 지역.

처용은 회귀 전, 대재앙이 일어났던 지역으로 직접 가 볼 생각이었다.

마인들을 전부 쓸어 버리고 앞으로의 일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전부 정리할 계획이었다.

-……길드들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겠는데?

메리가 화색을 표하며 말했다.

역천군주가 직접 나서서 가장 성가신 지역을 손수 맡아 정리한다?

일이 절반 이상을 줄어드는 셈이었다.

이쯤 되면 길드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참여하는 게 이득이었다.

이번 일에 빠지면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을 테니까.

게다가 연말정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번 일을 잘 활용한다면, 연말정산에서 추가적인 이득을 볼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처용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뉴델리에서 깽판을 놓을 테니, 각자 맡은 곳에서 도망쳐 오는 놈들을 치는 게 좋을 거야.”

강력한 포식자인 처용이 마인들의 주 집결지인 뉴델리에 직접 나타난다?

그렇다면, 처용을 피하기 위해 마인들은 차기 집결지를 향해 흩어지며 도주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차기 집결지를 각 길드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놈들은 집 잃은 개미 신세가 되고 이리저리 도망만 치다가 전멸당할 것이다.

“움직일 거면 신속하게 움직여, 난 바로 갈 테니까.”

-아, 알았어. 최대한 빨리 움직일게.

처용의 말에 메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통신을 종료했다.

메리와의 통신이 끝나고.

“자, 그럼…… 마무리를 하러 가 볼까?”

처용은 지구에 바글거리는 바퀴벌레들을 청소할 생각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위이잉.

병실의 자동문이 열리는 듯한 기계음이 울리고.

-저벅.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닥터가 어두운 통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을 향해 다섯 걸음 정도 나아가자.

-화륵. 화르륵.

좌·우로 나열된 벽화로에 보라색 불꽃이 피어나며 주변이 밝아졌다.

지금 닥터가 나아가는 길은, 자신의 성좌가 거주하는 신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윽고 닥터의 발이 복도 끝에 도달해 문 앞에서 멈추자.

-끼이이이-.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넓은 홀이 나타났다.

“무슨 일입니까?”

홀에 들어선 닥터가 고개를 들어 알레인을 향해 말했다.

이번엔 닥터가 성좌인 알레인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알레인이 닥터를 불렀고 그에 응답한 닥터가 급히 성역에 온 것이었다.

성좌인 알레인이 닥터를 먼저 찾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

닥터는 계획에 어긋나는 돌발 상황이 생겼음을 짐작했다.

그 짐작이 맞다는 듯.

[문제가 생겼구나.]

알레인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닥터가 이마를 짚으며 답답한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해 주십시오.”

알레인을 향해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을 요구했다.

[우선 그 전에 네게 알려야 할 진실이 있다.]

닥터가 알레인의 다음 말을 기다리겠다는 듯 침묵하자.

[대악마들이 수색하고 있는 태초의 마수, 그게 내 정체이니라.]

알레인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판데모니움에 자리 잡아 대악마로 살아온 태초의 마수.

그녀가 자신의 신관에게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자.

“……그렇군요.”

닥터가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놀라지 않는구나?]

알레인의 의외라는 듯 말했다.

자신의 신관이 지닌 성격대로라면, 자신을 향해 따지는 듯한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당신이 평범한 대악마가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닥터는 이전부터 의심해 왔다는 듯한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제 클래스…… 아니, 제가 다른 각성자들과는 좀 많이 달랐으니까요.”

[내가 평범한 성좌가 아니니까.]

알레인이 닥터의 의심 어린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이제 이해가 되는군요. 당신이 왜 판데모니움을 나가고 싶었는지…….”

닥터가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6년 전, 알레인과 맺었던 거래.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판데모니움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왜 대악마인 그녀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나가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나가지 않으면 그 존재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그녀의 정체를 명확히 확인하자 이해할 수 있었다.

조크-크타니드.

대악마들이 ‘그분’, 혹은 ‘가장 위대한 자’라 칭하는 존재.

새로 태어난 태초신이라 불리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가 가장 우선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태초의 마수라는 존재들을 죽여 흡수하는 것이었다.

“제우스는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겠군요.”

닥터가 이 성역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제우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지금 다른 이들 모르게 신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뚫고 있었다.

그 이유가 알레인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제우스가 왜 굳이 직접 판데모니움까지 와서 도와주는지는 아직 의문이었지만…….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가 또 있습니까? 아니, 혹시 누군가에게…….”

닥터는 제우스에 대한 생각을 접고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스스로의 정체를 이야기한 이유.

혹시 다른 이에게 정체를 들킨 것인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한처용이 내 정체를 파악했다.]

닥터의 불길한 생각이 적중했다.

아니, 불길한 생각 정도가 아니라.

“역천군주에게 당신의 정체를 들켰다고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닥터의 목소리에 심각성이 일렁이며 높아지자.

[우선…… 어찌 된 일인지부터 설명해 주마.]

알레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악의 제전에서 안드로말리우스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한 것부터 시작해서.

[안드로말리우스와 연결된 마법진을 살펴보던 중, 사고에 휘말렸다.]

처용을 만나고 하필이면 그 옆에 있던 신수에게 빙의한 카투라에게 정체를 들킨 일까지.

불과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했다.

그리고.

[다행히, 한처용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더구나.]

알레인의 도움 요청을 수락한 처용이 제시한 작전까지 이야기했다.

“의외군요. 왜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야기를 쭉 들은 닥터가 곰곰이 생각하듯 말했다.

아직 처용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를 바로 신용하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입니다.”

생각을 잇던 닥터가 알레인을 향해 말했다.

지금처럼 사방이 적일 때, 누군가를 함부로 믿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심지어 미래를 아는 자, 성좌들조차도 무력 진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존재.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인 역천군주라면 더더욱 함부로 믿어서는 아니 되었다.

그런 닥터의 걱정 어린 말에.

[그래? 나는 그 아이가 믿음이 간다만?]

알레인은 오히려 처용을 믿는다는 생각을 표했다.

그러자.

“……내가 섀도우 헌터들의 뒤를 받쳐 주는 성좌라고 광고까지 하지 그랬습니까?”

닥터가 알레인을 향해 질책하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닥터의 비아냥에 보통의 알레인이라면 인상을 찌푸려야 했지만.

[그, 그게…… 말이다…….]

알레인은 닥터와의 시선을 피하고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읊조렸다.

마치,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을 들킨 듯, 당황스러워하는 모습.

“설…… 마…….”

그 모습을 본 닥터가 불길한 생각에 휩싸인 듯 눈이 점점 커졌다.

닥터는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애써 거부했지만.

[그…… 어떻게 알았는지, 한처용이 눈치챈 것 같더구나.]

알레인의 입에서 곤란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될 비밀 중 하나.

섀도우 헌터들에게 새로운 가호를 내려주고 그들을 연결시켜 준 성좌가 알레인이라는 사실.

그 비밀이 처용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탁.

닥터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탁 치고는 눈을 감았다.

급격히 밀려오는 두통을 몰아내듯,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하아…… 알레인 니-임!?”

닥터의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고 제우스도 죽고 내가 지키려는 이들도 죽고 태초의 그릇도 바알의 손에 넘어갈 겁니다.”

속사포처럼 빨라지는 닥터의 핀잔 어린 말에도 알레인은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을 들킨 건 사실이었으니까.

“최악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각은 하고 있는 겁니까?”

[나, 나도 그 아이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계속되는 닥터의 질책에 결국, 알레인이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억울한 면도 있었다.

처용이 도대체 무슨 수로 알레인이 섀도우 헌터들의 성좌인지 알아챘단 말인가?

[후, 되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 아이가 나의 형제들을 ‘존중’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숨을 내쉰 알레인이 왜 처용을 믿는지 이야기했다.

[마수라 지명된 우리들을 향해 ‘신수’라고 불러줬단 말이지.]

“흐음.”

닥터 역시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이제는 두 갈래로 갈라진 방향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처용을 믿고 그와 협력하여 작전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를 경계하고 기존의 계획대로 나아갈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닥터는.

“당신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눈을 감으며 누군가를 향해 말하듯 입을 열었다.

“조커.”

닥터의 입에서 ‘조커’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리자.

-우우우.

주변에 깔려 있던 어둠이 확 짙어지며 꿈틀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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