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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66화 (366/726)

#366화

아드리아가 해방되고 난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는 별것 없었다.

“드문드문 모습을 보이며 활동하던 마인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장막이 되어 주던 천교가 완전히 망해 버렸으니까요.”

제시카가 최근 마인들의 행보를 읊자, 처용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 재판 이후 완전히 배신자로 드러난 거대 성운 천교.

그들이 지구에서 사라진 순간, 마인들 역시 땅으로 꺼진 듯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마인들이 벌이던 짓들을 보조하던 천교가 사라졌으니, 행동에 제약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아마 흩어진 세력을 한곳에 모은 후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처용이 마인들의 상황을 유추하며 놈들의 행동을 예상하듯 말하자.

“놈들의 흔적을 발견하며 바로 알려줄게.”

메리가 처용의 말에 동의하며 답했다.

처용이 메리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제시카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처용이 ‘준비’라는 말을 언급하자.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쉽지 않으실 겁니다.”

제시카가 처용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 속에는 호승심과 투지가 일렁이고 있었다.

월드 헌터 토너먼트.

각 성운의 신관들이 단체로 처용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처용은 이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기대하죠.”

처용이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듯,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진해졌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올림포스 성역에서의 용건은 끝난 듯 보였다.

[혹여나, 저승에서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즉각 알려주겠다.]

-샥.

하데스가 아테나를 향해 마지막 말을 전하고는 성역에서 사라졌다.

[저승의 문제라…… 운장과 의논 좀 해 봐야겠군.]

-스르륵.

미륵이 작게 읊조리고는 성역을 나갔다.

처용 역시 미륵을 따라 태룡사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어딘가를 응시했다.

처용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

몸을 둘둘 만 채 쭈그려 앉아 벽을 응시하고 있는 아드리아가 보였다.

“내가…… 위대한 여왕이자 아테나 님의 신관인 내가…… 고작 먹을 거에 화가 풀리다니…….”

무언가 불만이 많은 듯, 꿍한 목소리로 벽을 보며 중얼거리는 아드리아.

-탁. 탁.

꼬리 끝을 움직여 바닥을 탁탁 두들기는 모습이 삐친 고양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불과 조금 전, 아드리아는 처용의 호의로 내준 닭강정을 받아 입에 넣었었다.

마음 같아서는 처용이 내민 요리를 맛보고 혹독한 평가를 쏟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 이거 진짜 맛있어!

혹독한 평가를 떠올리는 생각과는 다르게 진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이후 무아지경에 빠진 듯, 들고 있던 닭강정을 순식간에 먹어 치워 버리고는.

-탁.

이윽고 빈 그릇에 손이 닿았다.

그 순간 아드리아가 무아지경에서 벗어났고.

-아…….

급격하게 밀려오는 자괴감과 창피함을 견디지 못하고 구석으로 향했다.

그 이후 현재 지금 상태가 유지되는 중이었다.

‘아테나와 제시카를 도와주는 전력이 되어 줄 테지.’

처용이 아드리아를 잠시 응시하며 생각했다.

“잘 챙겨 주십시오. 저분은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스륵.

그리고 제시카를 향해 닭강정 두 세트를 건네며 말하고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테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태룡사로 돌아갔다.

***

처용이 게이트를 열고 태룡사로 돌아오자.

‘으음?’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이의 모습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태룡사의 정상, 세계수가 자라난 곳 앞에 펼쳐진 드넓은 호수.

그 호수 앞에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보살의 모습이 보였다.

“보살 님.”

처용이 보살에게 다가가며 그녀를 부르자.

[돌아왔군요. 계승자.]

보살이 조금 전까지 지어 보이던 표정을 미소로 덮으며 말했다.

처용은 보살의 모습에 잠시 생각하고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걱정이 담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넘기기에는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

보살이 입을 열다 말고 잠시 멈추었다.

그냥 별일 아니다. 라고 말하려 했었지만.

[그냥…… 옛날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습니다.]

하려던 말을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푸념하듯 말을 이었다.

고민과 고뇌가 일렁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런 보살의 모습에.

“태양신에게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처용이 그녀가 지금 맡은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혹시 헬리오폴리스 성운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인지 했지만.

[아닙니다. 라는 저희와 잘 협력해주고 있습니다.]

보살은 태양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보살의 말에 처용이 안심했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보살 님.”

문득 든 생각에 보살을 향해 질문했다.

“과거…… 왜 성운의 대신들이 보살 님을 원했던 겁니까?”

처음 여래의 과거에 대해 듣고 종종 떠오르던 생각이었다.

왜 거대 성운, 특히 천교가 보살에게 집착한 것인가?

단순히 그녀가 대신이라서?

대신이 성운에 합류하면 성운의 힘이 강해지니까?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다시 마주한 과거, 트라우마 속에서.

-태초의 권능을 나에게 사용한다면, 저 아이만큼은 살려주마. 보현.

오만한 표정으로 보살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요구하던 옥황상제가 떠올랐다.

그 말에 보살이 무언가를 조용히 읊조리더니.

-살아남은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다오.

처용은 알지 못했던 처음 보는 권능으로 현장에 있던 저항군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 당시 대신급 성좌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던 처용조차도 거부할 수 없었던 권능.

보살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비밀을 옥황상제가 알고 있었다는 것.

마음 같아서는 보살의 비밀을 캐묻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태초의 권능이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제는 그녀가 간직한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미래가 반복되는 건 무조건 막아야 했으니까.

[…….]

처용의 질문에 보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조금 전까지 보살이 고민하던 게 바로 처용이 건넨 질문.

태초의 권능 때문이었으니까.

‘옥황상제가 어떻게 그 비밀을 알았는가.’

보살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다.

태초신만이 알고 있었던, 우주로부터 받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

보살이 그 권능을 지녔다는 사실을 옥황상제가 어떻게 알아냈는가?

그 권능이 지닌 힘을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제약이라던가 있는 것이라면-.”

처용은 침묵을 보이는 보살에게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려는 듯 말했다.

그녀가 말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

[아닙니다. 제가 생각이 길었군요.]

보살이 생각을 마치고는 입을 열었다.

[태초의 권능은…… 제가 인간 중 최초로 대신에 오를 때, 우주로부터 받은 권능입니다.]

“우주로부터 권능을 받았다고요?”

처용이 보살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말했다.

[네, 자비의 대신으로서 깨우친 권능이 아닌, 우주로부터 선물을 받은 권능입니다.]

“우주가 내려주는 권능이라…… 이건 처음 들어 보는군요.”

보살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처용이 의문을 담아 읊조렸다.

보통 신의 권능이란, 자신의 신명을 깨우친 신이 그 신명에 걸맞은 힘을 각성하는 것이었다.

수호신이었던 처용이 보호와 방어에 특화된 권능을 지닌 것도 이런 이유였다.

파마(破魔)의 신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능력이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생각을 잇던 처용이 보살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겪은 미래…… 거기서 옥황상제가 보살님의 권능을 아는 듯 보였습니다.”

[…….]

처용의 말에 보살의 표정이 짐짓 어두워졌다.

이윽고.

[태초의 권능은…….]

짧은 고민을 이으며 침묵한 그녀의 입이 열렸다.

[우주로부터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는 권능입니다.]

그녀가 우주로부터 받은 선물인 태초의 권능.

그 능력은 다름 아닌 우주로부터 한 가지 소원을 빌어 기적(奇蹟)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었다.

[우주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뭐든지 가능할 겁니다.]

보살이 설명을 잇자.

“하나의 성운, 혹은 그 성운의 주신을 태초신에 버금가는 절대적인 신으로 만들어라.”

처용이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소원도 가능합니까?”

[아마…… 가능할 겁니다.]

보살이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성좌가 지닌 격, 그 대상이 대신이라 해도 보다 높은 위치로 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

보살의 대답이 울리자.

“이런 개…….”

처용이 이를 갈며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가까스로 씹어 삼켰다.

방금 보살을 향해 건넸던 질문.

성운의 주신을 절대적인 위치의 성좌로 격을 높이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옥황상제가 보살을 협박하며 내뱉었던 말이었다.

-스스스.

처용에게서 살심(殺心)과 증오가 스멀스멀 흘러나오자.

[…….]

보살이 참담한 마음을 감추며 눈을 감았다.

왜 처용이 그런 질문을 했는지.

왜 저리 강렬하고 날카로운 살심을 감추지 못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모든 건 안일하게 행동했었던 자신이 원인이었다.

보살이 스스로의 행동을 속으로 자책할 때.

“대가는 무엇입니까?”

살심을 억누른 처용이 보살을 향해 가장 중요한 질문을 건넸다.

무려 우주로부터 한 가지 소원을 빌어 절대적인 이적(異蹟)을 발휘할 수 있는 권능.

그 권능에 대한 대가가 없을까?

처용은 절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힘이든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는 법이었다.

마나를 소모하든 신력을 소모하든.

어떤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소모해야 했다.

그 힘이 강력할수록 그 대가 역시 커지는 법이었다.

특히, 본래 지닌 힘과 격에 맞지 않은,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일수록 그 대가는 더욱 커진다.

어찌 보면 우주의 균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으음…….]

보살이 처용의 말에 생각을 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가벼운 소원은 대가가 없습니다. 다만…….]

다행히 가벼운 소원의 경우는 큰 대가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다만?”

처용은 다음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소원의 크기가 크면 저 자신이 대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은 소원이 아닌, 말 그대로 기적을 원할 경우.

그 소원을 원한 자, 보살이 대가로 바쳐진다.

“우주가 보살님을 잡아먹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보살의 말에 처용의 눈동자가 붉게 일렁이며 하늘 위를 응시했다.

마치, 하늘을 보며 누군가를 향해 강렬한 경고를 보내는 듯 보였다.

하늘을 노려보던 처용이 고개를 돌려 보살을 마주하고는.

“쓰지 마십시오. 절대로.”

신신당부하듯 그녀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쓰지 마십시오. 보살님이 희생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껏 싸워 왔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가 희생된다?

그러면 지금껏 이어온 싸움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계승자.]

보살이 처용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처용이 저리 강하게 신신당부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이 권능을 쓸 생각이 절대로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보살이 진심이라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대로 보살은 이 권능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특히, 적을 이롭게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다행입니다.”

처용이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보살이 한 번 더 강조하는 듯, 권능을 쓰지 않을 것이라 당부했다.

그러나.

‘기적이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예외의 경우가 있었다.

말 그대로 기적의 힘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힘을 쓸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눈앞에 있는 계승자가 죽는다거나…….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혹은, 대가가 크지 않은 범위에서 소원을 쓰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었다.

정말로 불행에 불행이 겹쳐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요.’

보살은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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