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괴물 메두사(Medusa).
고르곤 세 자매 중 막내.
매우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그녀는 아테나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애정행각을 벌였고.
이에 분노한 아테나가 메두사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후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머리가 잘려 아테나에게 바쳐진다.
이것이 세상이 흔히 알려진 메두사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이기스에 메두사의 머리가 깃들었고 석화의 힘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시카가 메두사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이기스에 석화의 힘이 깃든 이유.
그것이 시선을 마주하면 돌로 만들어 버리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가 아이기스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시카의 말이 끝나자.
“제가 방금 말했죠. 지구에 알려진 역사와 진실은 다르다고.”
처용이 제시카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란 강자의 의해서 왜곡되고 편집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알 것 같습니다.”
제시카가 처용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자, 로스차일드 가문에 의해 희생된 다른 가문들.
그들은 모두 누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니까.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강자는 포세이돈, 희생된 약자는 메두사라고 할 수 있겠군요.”
아이기스에 대한 진실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처용이 말을 이었다.
항상 마찰을 빚었던 포세이돈과 아테나.
아이기스에 봉인된 메두사는 신들의 싸움에 희생된 희생양이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었다.]
처용의 말에 아테나가 과거를 떠올리는 듯, 인상을 작게 구기며 말했다.
[그저, 이기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기에, 주변을 살피지 못했지.]
“자책할 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이미 원인을 제공한 새끼는 뒤지고 없으니까.”
처용이 아테나의 말에 진지하게 답하고는.
“저분을 깨우지 않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이기스를 응시하며 물었다.
처용의 말에 아테나가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기스를 잠시 응시했다.
[저 아이의 일족이 네 성지에 머무는 것을 보고 깨우려 했었다.]
처용의 성지에 처음 강림했을 때, 마주했었던 이종족.
라미아 일족은 메두사의 후손들이자 백성들이었다.
애초에 처용이 성지에서 근무하는 라미아 일족에게 안내를 맡긴 이유가 메두사 때문이었다.
그녀를 잊지 않았다면, 봉인에서 깨우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깨우려고 시도했었다. 허나…… 내 말에 반응하지 않더구나.]
아테나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메두사를 깨우려 시도는 했었다.
그러나 아테나가 아이기스를 향해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었다.
“흐음…….”
처용이 아테나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생각하듯 침음을 흘렸다.
‘회귀 전에는 아테나가 위험에 처할 때, 아이기스에서 나타났었지.’
회귀 전, 아레스를 포함한 악신들에게 포위당한 아테나.
그녀가 위험에 처하기 직전, 아이기스에서 나타난 메두사 덕에 위기를 벗어났었다.
아테나는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메두사가 악신들에게 죽어 버렸다.
그 이후 처용은 아테나에게서 메두사에 대한 사정을 대략적으로 들었었다.
그것이 처용이 메두사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였다.
“단순한 봉인이 아니라면, 무언가 키워드가 있어야 할 겁니다.”
생각을 마친 처용이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흐음, 봉인을 풀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건가?]
처용의 말에 미륵이 아이기스를 살펴보며 말했다.
“네, 잠금장치에 맞는 열쇠가 필요하죠.”
[허나, 저것과 연결된 봉인의 매개체는 없어 보이느니라.]
아이기스를 응시한 미륵이 처용의 말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만물을 통찰하는 미륵의 눈.
미륵이 아이기스를 깊게 응시하자,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 잠든 무언가를 꺼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봉인이란, 닫혀 있는 문과 같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와 열쇠를 꽂는 열쇠 구멍이 있는 법.
그러나 아이기스의 봉인에는 ‘열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잠금장치 따윈 없는 두꺼운 벽 그 자체로 보였다.
“외부에 열쇠 구멍이 없다면, 내부에 있겠죠.”
처용이 미륵의 말에 작은 미소를 띠며 말하자.
[……그렇군, 스스로가 봉인된 것이니, 스스로 나와야 한다는 것인가?]
미륵이 바로 처용의 말을 이해했다.
[혹여, 방법이 있겠느냐?]
아테나가 처용을 향해 물었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르긴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처용이 아테나의 말에 답하자.
[나는 내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희생된 저 아이를 해방해 주고 싶다. 도와다오.]
아테나가 도움을 요청했다.
“흠…….”
처용이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을 정리하는 듯 침음을 흘리고는.
“트라이던트 좀 빌려주십시오.”
아테나에게 포세이돈의 신물, 트라이던트를 요청했다.
[트라이던트를?]
하데스가 뜬금없는 처용의 요구에 의문을 표할 때.
[여기 있다.]
-스르륵.
아테나는 별말 없이 트라이던트를 소환하여 처용에게 내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처용이 태연하게 트라이던트를 잡자.
[……정말로 그걸 잡을 수 있었구나.]
하데스가 트라이던트를 쥔 처용을 보며 놀라움을 표했다.
올림포스에서 인정받은 바다의 대신만이 다룰 수 있는 신물을 고작 인간이 만질 수 있었으니까.
헤르메스가 보낸 보고로 듣긴 했지만, 직접 보니 더 믿기지가 않았다.
처용은 트라이던트를 잠시 살펴보고는.
“아이기스도 필요합니다.”
아이기스 쪽으로 다가가며 아테나에게 말했다.
[잡을 수 있겠느냐?]
아테나가 작은 걱정을 담아 말했다.
아이기스는 신물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가 손대면 저주를 받으니까.
그러나.
-탁.
처용은 아무렇지 않게 벽에 걸린 신물, 아이기스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하데스와 헤르메스, 메리와 제시카 또한 놀라움을 표했다.
그때.
[결계가 필요하겠느냐?]
미륵이 처용을 향해 말했다.
마치, 처용이 무엇을 할지 눈치챈 듯한 분위기.
“여기가 난장판이 될 수도 있겠군요.”
처용이 미륵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안정시켰다.]
-탁. 우웅.
아테나가 손가락을 튕기며 신력의 파동을 내뿜었다.
지금 있는 이 성역은 아테나가 머무는 개인적인 공간.
주변에 맴도는 아테나의 신력이 확 짙어진 것이 느껴졌다.
아테나가 자신의 신력을 주변에 퍼트려 성역을 강화시키자.
“그럼, 슬슬 준비하겠습니다.”
처용이 트라이던트를 오른손에 쥐고 아테나의 아이기스를 바닥에 두었다.
그리고.
-철컥.
트라이던트를 두 손으로 쥐고 바닥에 놓은 아이기스를 향해 겨누었다.
동시에.
-우우웅.
수 속성 마나와 신력을 동시에 내뿜었다.
정확히는 카투라에게 계승 받은 심해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처용의 신력이 짙은 청색으로 변해 트라이던트를 감싸기 시작했다.
겉으로 볼 때는 마치, 포세이돈의 힘을 다루는 듯 보였다.
“크흠.”
준비를 마친 처용이 헛기침을 내뱉고는.
“드디어 때가 왔구나.”
-우우웅.
목소리에 신력을 섞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처용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포세이돈의 목소리였다.
[……!]
[어떻게!?]
처용이 낸 목소리와 분위기에 아테나의 눈이 커졌고 헤르메스가 당황을 표했다.
비단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처용이 내뿜는 기운 자체가 짙은 바다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기운만 느꼈을 때, 포세이돈이라 착각할 정도로 흡사했다.
[……일단 지켜본다.]
냉정을 찾은 아테나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때.
“드디어 아테나 너를 죽이고 내가 올림포스를 차지하게 되었구나!”
처용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마치, 포세이돈에게 빙의된 듯, 욕망이 가득 담긴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콰쾅!!
처용이 두 손으로 굳게 쥔 트라이던트를 내질러 아이기스를 타격했다.
강렬한 마찰음이 울리며 아이기스의 기운과 트라이던트의 기운이 서로 충돌했다.
“이제 죽어라!”
처용이 소리침과 동시에 더 강하게 트라이던트를 내지른 순간.
-피이이!
아이기스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
빛은 순식간에 처용의 신력과 트라이던트를 밀어내었고.
“포-세에이-도오오온!!”
-파아아!
아이기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쳐나오며 소리쳤다.
증오와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포세이돈의 이름을 부르며 튀어나오는 이.
-촤아아!
가장 먼저 처용을 향해 솟구쳐 오는 것은 녹색 빛이 일렁이는 날카로운 손톱이었다.
“흡!”
처용은 내지르던 트라이던트를 오른쪽으로 비틀어 휘두르는 것으로 손톱을 쳐내었다.
그 순간.
-위이잉!
처용의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얼굴.
정확히는 여인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붉은색과 녹색이 반반 섞여 일렁이는 파충류의 눈동자.
그 눈동자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처용에게 닿은 순간.
-쩌저적!
처용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석화의 저주에 처용이 당하자.
-화르륵!
처용은 곧장 백염을 피워 올리며 몸에 퍼지는 저주를 걷어내었다.
동시에.
“뢰신보.”
-파지직!
곧장 그 자리를 벗어났다.
처용이 빠르게 있던 곳을 벗어나자.
-콰쾅!!
길고 유려한 몸체가 처용이 있던 장소를 채찍처럼 강타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당할 뻔한 상황.
게다가.
-화륵. 화르륵. 치이이!
크루마의 백염을 두르고 있음에도 석화의 저주가 풀리는 게 더뎠다.
그만큼 저주의 힘 자체가 아주 강력하다는 증거.
“크르르륵!”
아이기스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여인.
겉모습은 라미아 종족과 비슷했지만, 그녀들과는 명확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했다.
평범한 머리카락을 지닌 라미아들과는 달리.
-스르륵. 스륵. 슈르릅.
머리를 기웃거리며 주변을 탐색하는 독사들이 머리카락 대신 자라나 있었다.
-스르륵!
주변을 탐색하던 머리카락, 독사들이 일제히 처용을 응시하자.
“크르르.”
처용을 등지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돌려 처용을 응시했다.
그러자 독사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분노한 듯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지만, 미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아이기스에서 튀어나온, 메두사로 짐작되는 존재.
“포오세-이 돈!!”
메두사가 처용의 손에 들린 트라이던트를 알아보며 소리치고는 달려들었다.
그때.
-콰르릉!
아스트라페를 쥔 아테나가 처용과 여인 사이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드리아!]
아이기스에서 나타난 여인, 메두사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아…… 아테나 님?”
-스르륵.
아테나를 알아본 메두사, 아드리아가 기세를 확 가라앉히며 행동을 멈추었다.
[……오랜만이구나. 아드리아.]
아테나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드리아를 향해 말하자.
“아테나 님, 이게…….”
아드리아가 멍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그때.
-스르릉. 탁.
아테나의 뒤에 있던 처용이 트라이던트와 아이기스를 챙겨 들고 아테나에게 다가왔다.
“으르르!”
그 모습을 본 아드리아가 처용을 경계하는 듯, 기세를 피워올렸다.
하지만, 곧장 아테나가 아드리아를 만류하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아드리아가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의문을 표할 때.
“빌려주신 덕분에 목표를 잘 낚아(?) 올렸습니다.”
처용이 아테나에게 아이기스와 트라이던트를 내밀며 말했다.
[고맙구나.]
아테나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트라이던트와 아이기스를 받았다.
“……?”
그 모습을 본, 처용에게 낚인(?) 목표물.
아드리아가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라미아 족의 여왕이자, 아테나를 모시는 신관이었던 여인.
아이기스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 메두사로 알려진 존재.
아드리아가 해방되자 아테나가 그녀에게 작금의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제가 저 인간의 계략에 속아 넘어가서 봉인이 풀렸다고요?”
아드리아가 자신이 들은 말을 다시 확인하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그렇다.]
아테나가 아드리아의 말에 긍정하며 답했다.
그 말에 잠시 침묵한 아드리아는.
“아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어떻게 인간이 무슨 수로 트라이던트를 다룬 겁니까? 게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분명 트라이던트에 신력을 둘렀는데! 아니, 신력은 어떻게 다룬 거지? 게다가 아이기스는 어떻게!?”
빠르게 말을 쏟던 아드리아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에 빠진 듯, 말이 점점 빨라졌다.
[그간 있었던 이들을 모두 알려 주마, 그보다도-.]
아테나가 혼란스러워하는 아드리아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다시 너를 마주할 수 있어 기쁘구나. 아드리아.]
진심 어린 반가움을 표하는 아테나의 말에.
“아테나 님…….”
혼란을 표하던 아드리아가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아드리아를 향해 미소를 보인 아테나는.
[이 일은 꼭 보답하마.]
그녀를 해방시켜 준 처용을 향해 보답을 약속했다.
“기대하겠습니다. 아테나 님.”
처용이 너스레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
아드리아가 처용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심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음…… 이걸로 화 푸시죠.”
아드리아의 반응을 잠시 살핀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짓고는.
-우우웅.
아공간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꿀맛 닭강정 – 크림 치즈맛]
넓은 종이 그릇에 담겨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닭튀김.
매콤달콤한 소스가 발린 붉은 닭강정 위에 얹어진 새하얀 치즈.
처용이 닭강정을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라미아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음식이니까.’
성지에 거주하는 이종족인 라미아들.
치즈가 뿌려진 닭강정은 라미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요리 중 하나였다.
눈앞에 있는 메두사, 아드리아 역시 라미아 종족이었기에 닭강정을 선택한 것이었다.
“신물에 봉인되었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거 아닙니까?”
처용이 호의를 보이며 닭강정을 내밀자.
“하? 겨우 이런 걸로 내 마음이 회유될 거 같아!?”
차마 아테나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집어치울 수 없었던 아드리아가 꼬리를 휘둘러 닭강정을 낚아챘다.
동시에.
“일류 요리사들이 바친 공물을 내가 얼마나 까다롭게 평가했는지 알아? 이까짓-!”
-파삭.
처용을 향해 날 선 목소리를 쏟아내며 닭강정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이제 신관 시절이었을 때처럼 혹독한 평가를 내뱉으면 되었지만.
“……!”
닭강정이 입에 들어간 순간, 아드리아가 속으로 준비한 말과 생각이 모두 멈추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