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대악마 소환 마법진의 보수를 끝낸 처용이 밖으로 나오자.
“아 마침 나오시는군요.”
커맨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태민이 처용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과장, 아니 이젠 이사님이시죠. 무슨 일인가요?”
처용이 태민의 말에 답하며 물었다.
보통 용건이 있으면 메시지를 남기거나, 라이센스 통신 기능을 통해 연락하던 태민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처용을 찾은 듯한 분위기.
“그게…….”
처용이 짐작이 맞다는 듯, 태민이 고민이 있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상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쪽 분야는 처용 님이 잘 아실 것 같아서…….”
태민이 말함과 동시에.
-화아아!
오른손을 들어 무언가를 소환해 내었다.
“……흠?”
처용이 태민의 손에 나타난 무언가를 보며 의문과 놀라움을 표했다.
***
성지, 태룡사 내부에 자리한 헌터 협회 내부.
협회 이사인 태민이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주로 머무는 사무실.
이사라는 높은 직위를 지닌 태민의 전용 사무실이었지만, 최고급 가구나 사치품은 보이지 않았다.
난잡하지 않고 쾌적한 분위기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런 태민의 전용 사무실에 커맨더와 처용, 태민이 자리했다.
“……신의 권능이라고?”
커맨더가 처용을 향해 놀란 듯한 목소리로 묻자.
“네, 정확히 딱 집어 신의 권능이라기보다는, 신의 권능이 담긴 아티팩트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저 ‘만년필’이?”
커맨더가 태민의 오른손에 쥐어진 ‘만년필’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끝이 검은 새하얀 펜촉.
금색의 얇은 문양이 은은하게 빛나는 검은 펜대.
손잡이 끝부분에는 ‘자(字)’라는 문자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고급스러운 붓펜처럼 보이는 만년필이었다.
“신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라…….”
태민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만년필을 보며 읊조렸다.
그리고.
“사라져라.”
태민이 만년필을 바라보며 의지를 전달하자.
-파아아.
만년필이 연기처럼 흩어지고는 태민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나와라.”
이번엔 사라진 만년필을 생각하며 다시 나타나라는 의지를 전달했다.
그러자.
-피이이.
태민의 오른손에 빛무리가 모여들며 만년필이 다시 나타났다.
다시 손에 쥐어진 만년필을 바라본 태민이 신기한 듯 쳐다볼 때.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처용이 태민의 손에 들린 만년필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태민이 처용의 말에 손에 들린 만년필을 흔쾌히 넘겨주었다.
“흠.”
만년필을 받은 처용이 통찰의 눈을 발동하자.
[창시자의 만년필 / 신물(神物)]
[등급 : 신화(神話)]
[문자를 쓰는 것으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외 확인 불가.]
[신물에게 인정받은 단 한 명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자 : 김태민
만년필에 대한 정보가 눈앞에 나타났다.
처용이 확신한 대로 태민의 만년필은 단순한 성물이 아니었다.
해전무신이 연화에게 직접 준 무구와 같은 신의 물건, 즉 신물(神物)이었다.
“흐음…….”
처용이 만년필의 자세히 살펴보며 침음을 흘리자.
“처용 님은 이걸 다룰 수 있습니까?”
태민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뇨. 이사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이걸 쓰는 건 불가능합니다.”
처용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 태민의 말대로 사용해보려는 시도는 해 보았었다.
자신의 클래스, 계승자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계승자의 권한으로 신물 사용을 시도합니다.]
[신물의 인정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용이 불가합니다.]
계승자의 권한으로도 타인에게 귀속된 신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었다.
해전무신이 연화에게 직접 건네준 쌍수도 중 한 자루.
일휘소탕 혈염산하를 처용이 다룰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오직 한 사람, 이사님만이 이걸 다룰 수 있습니다. 떨어지지도 않을 거고요.”
“떨어지지 않는다고요?”
태민이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하자.
“이런 거죠.”
-휙.
처용이 대답함과 동시에 만년필을 뒤로 내던졌다.
커맨더와 태민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샥.
뒤로 내던져졌던 만년필이 태민의 손에 돌아왔다.
“어?”
갑작스럽게 만년필이 나타나 손에 쥐어지자 태민이 당황을 표했다.
태민이 도대체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그 답을 물어보듯 처용을 바라보자.
“이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화아아.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보여주며 신물에 대해 설명했다.
“신물에게 선택받은 단 한 사람만이 다룰 수 있는 아티팩트인거죠.”
태룡전의 열쇠는 ‘계승자’인 처용만이 다룰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선택받은 자가 다루는 신물은, 그저 신이 내린다고 하여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물을 다룰 자격, 능력, 인정 등 많은 요소가 적합해야만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신의 신물을 온전히 다루지 못하는 신관들을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신물의 복제품, 성물(聖物)입니다.”
신관이라 해도 신이 다루는 신물을 온전히 다루기에는 불가능했다.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을 다룬 대가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해서 제작된 것이, 신력을 가공하여 만든 신성력이 담긴 복제품, 성물이었다.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커맨더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민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리하자면, 언문 님께서 제가 이걸 다룰 자격이 있다는 걸 알아보고 제게 신물을 주셨다는 것이로군요.”
만년필을 바라보며 정리하듯 말했다.
“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신물은 강력한 힘을 지닌 아티팩트…… 잘못 다루면 사용자가 다칩니다.”
처용이 태민을 향해 경고하듯 말하자.
“안 그래도…… 그 이유로 처용 님을 찾은 겁니다.”
태민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잠깐 이걸 다뤄 보니, 신기한 능력을 지녔더군요.”
-휘리릭. 탁.
만년필을 돌려 고쳐 쥔 태민이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종이 위로 만년필의 펜촉이 지나가자.
-스르륵.
마치, 정교하게 잘 갈린 먹(墨)이 스며 나오듯, 촉촉한 느낌의 잉크가 종이 위에 그려졌다.
이윽고 하얀 종이 위에 태민이 그린 검은 문자가 나타났다.
-붙어라.
종이 위에 ‘붙어라’라고 쓴 태민이 종이를 들고 자신의 팔에 대자.
-탁.
종이에 풀을 발라 팔에 붙인 듯, 종이가 태민의 팔에 딱 달라붙었다.
한 번 시범을 보인 태민이 이번엔 종이의 글자를 향해 만년필을 가볍게 휘두르자.
-사라락. 탁.
종이 위에 쓰인 글자가 사라지며 팔에 붙었던 종이가 저절로 떨어졌다.
“하나 더 보여드리죠.”
-날아가서 붙어라.
이번에 태민이 쓴 글자는 ‘날아가서 붙어라’.
종이에 글자를 쓴 태민이 종이를 허공에 날리자.
-휘리릭. 탁.
종이가 벽을 향해 자동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딱 붙었다.
“흠, 신기하네요?”
처용이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로 종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쓰인 문자를 구현하는 힘이라…….”
종이와 만년필을 번갈아 바라본 처용이 읊조릴 때.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방금 본 만년필의 능력을 관찰한 커맨더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신물은 강력한 힘을 가진 물건이라고 처용이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본 태민의 만년필은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시험해 보진 않았습니다만, ‘위험한 단어’들도 있지 않습니까?”
태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문자란 방금 태민이 쓴 ‘붙어라’, ‘날아가라’ 등 평범한 단어들도 있었다.
그러나 위험하고 잔혹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죽어라’ 같은…….”
처용이 태민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태민의 만년필이 지닌 권능을 처음 본 순간, 이러한 위험성을 생각했다.
만년필로 사람에게 ‘죽어라’ 같은 단어를 쓰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처용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설마, 그런 터무니없은 능력이…….”
커맨더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근데, 다른 물건도 아니고 신물이니, 예측이 안 되는군.”
“신물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더 큰 문제는 ‘리스크’입니다.”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더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
“방금 쓴 능력은 제 마나를 소모하긴 했습니다만…….”
태민이 처용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생각하듯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만약…… ‘죽어라’를 쓰면 마나가 아닌…….”
태민은 만약을 가정하고 사람에게 ‘죽어라’를 사용했을 때를 생각해보며 읊조렸다.
그런 태민의 중얼거림에.
“이사님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처용이 날카로운 눈빛을 뜨며 태민을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실험해보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만약, 정말로 사람에게 ‘죽어라’를 쓰면 그 대상이 죽는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고작 마나로 발현이 가능한가?
처용이 진지하게 생각해 봤을 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강력한 권능이나 스킬은 그에 따른 반동이나 추가적인 대가를 지불하니까.
“대가 없는 능력은 없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이건 신물입니다. 일개 아티팩트가 아니라.”
“왜 언문 님은 제게 이런 힘을…….”
태민이 손에 쥐어진 만년필을 보며 고뇌하듯 말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위험하고도 복잡한 힘이 주어졌을까?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자격이 있으니까 그 신물이 주어진 겁니다.”
처용이 태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는.
“사람에게 ‘죽어라’ 같은 단어를 쓰실 겁니까?”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럴 리가요!”
태민이 거칠게 반응하며 부정했다.
생각을 통해 나온 답변이 아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진심이었다.
“이사님은 이걸 다룰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조심하십시오.”
처용이 태민의 반응에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당부하듯 말했다.
“아니면, 신물을 내려준 언문 님께 직접 상담해 보십시오. 도움을 주실 겁니다.”
“하아, 언문 님을 한 번 찾아뵈어야겠군요.”
태민이 처용의 말에 한숨을 섞어 대답하고는.
“아, 한 가지 말씀드린다는 걸 잊을 뻔했군요.”
처용을 찾은 또 다른 용건이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올림포스 정보 길드장이 워싱턴에 한 번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처용이 알레인과 마주하느라 연락을 받지 못할 때.
헤르메스의 신관, 메리가 태민을 통해 처용에게 전달한 메시지였다.
“……바로 찾아가지요.”
잠시 의문을 표한 처용이 태민의 말에 대답했다.
지금 시기에 자신을 찾을 만한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의문을 품은 처용은 곧장 협회를 나와, 세계수가 자라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올림포스 성지와 직통으로 연결된 게이트가 있었으니까.
-우우웅.
처용이 게이트를 타고 올림포스의 성지, 지하 보안시설에 당도하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버로드. 나이키 윙 길드의 부길드장 피오나라고 합니다.”
마법사 클래스로 보이는 올림포스 소속 헌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은 금발에 안경을 쓴 차분한 이미지를 보이는 여성.
피오나가 스스로를 메리의 길드, 나이키 윙 길드의 부길드장이라 소개하자.
“로스차일드 사람인가?”
처용이 피오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있는 곳은 올림포스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장소.
제아무리 신관이라 해도 허가받지 못하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눈앞의 여성은 100레벨 중반대의 A급 헌터.
메리의 부관, 올림포스 정보 길드의 부길드장이라 해도, 이곳의 출입 허가를 받기엔 부족했다.
해서 처용은 피오나가 로스차일드 소속이라 추측한 것이었다.
“……단번에 간파하실 줄은 몰랐군요.”
피오나가 짐짓 당황하며 처용의 말을 긍정하고는.
“메리 님께 소식을 전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우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피오나의 말대로 조금 기다리자.
“바쁜 줄 알았는데, 바로 와 줬네?”
-샥.
메리가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채 허공을 부유하며 나타났다.
“고생했어 피오나, 뒷정리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메리 님.”
피오나가 메리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 성물의 권능으로 바로 갈 거야, 괜찮지?”
메리가 날개 달린 자신의 신발, 헤르메스의 성물을 눈짓하며 말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가지.”
처용이 짧게 답하고는 메리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신속한 전령!”
메리가 신발에 담긴 권능을 발동시키며 시동어를 읊자.
-샤샥!
처용과 메리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저벅.
임무를 마친 피오나가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극비 구역을 나갔다.
그 순간.
-스르르.
찰나의 순간, 피오나에게서 옅은 핑크빛 안개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찾았다.”
눈을 감고 고혹한 미소를 띠고 있는 금발의 여성.
제시카의 사촌이자, 아프로디테의 신관.
헬레나 로스차일드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