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362화 (362/726)

#362화

-파아아…….

알레인에 이어 안드로말리우스까지 사라지자.

“후, 무사히 끝났네.”

“아까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고.”

전투를 마친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대악마 소환 마법진에는 안드로말리우스만이 나타났어야 했었다.

그러나 안드로말리우스와 같이 다른 대악마가 난입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심지어, 새로 모습을 드러낸 대악마는.

-본녀는 대악마 서열 8위, 안개의 대악마 알레인이라 한다.

말석인 안드로말리우스보다도 드높은 서열을 지닌 상위 대악마였다.

엄청난 위기였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네가 나서지 않았다면 정말 무슨 일이 생겼을지…….”

커맨더가 처용이 베어 버린 대악마를 떠올리며 처용을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현장에 난입한 처용이 상위 대악마를 홀로 감당한 덕분에 이번 일을 손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니, 처용은 무려 서열 8위의 대악마를 홀로 감당한 것을 넘어서 놈을 처치해 버렸다.

심지어 처용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말끔한 상태였다.

마치, 손쉽게 해치운 듯 보이는 모습.

하지만.

“쯧, 마음에 안 드는군요.”

처용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진에 사고가 일어나서?”

커맨더가 처용에게 묻자.

“아뇨. 두 번 다시는 다른 대악마가 여기에 나타날 일은 없을 겁니다.”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래, 안드로말리우스만이 나타나야 할 대악마 소환 마법진에 다른 대악마가 나타난 상황.

처용은 마법진에 일어난 문제점을 파악했으니, 이를 고치면 문제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방금 그 대악마는 진심으로 저와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 베어 버린 알레인을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의도적으로 네게 처치당했다고?”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드러내며 말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헌터들 역시 의문을 표했다.

무려 서열 8위, 대악마들 중 여덟 번째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처용에게 크게 저항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처치당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정보를 주기 싫었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겠지요.”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나름대로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호전적인 안드로말리우스와는 다르게 여유가 느껴졌던 대악마.

“상위 서열의 대악마답게 신중한 성격인 듯 보였습니다.”

처용은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이는 가설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네.”

연화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를 표하며 말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남아서 다른 문제가 없는지 진법을 살펴보죠.”

처용이 대악마 사냥 종료를 선언하자, 헌터들이 무구를 정리하며 모두 밖으로 나갔다.

모두 사라지고 처용 혼자만이 남았을 때.

-쏴아아.

처용 옆에 물줄기가 뭉치더니, 인간형의 카투라가 도마뱀 모습인 크루마를 안은 채 나타났다.

그리고.

-스르르.

카투라의 뒤로 여래와 미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기는 들었다.]

미륵이 그간의 사정을 들었다는 듯, 말했다.

마찬가지로.

[돌발 상황이었음에도 잘 대처했구나. 제자야.]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들은 여래가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저쪽에서의 신호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냐?]

“네, 계획대로 잘 되기만 한다면요.”

여래의 말에 처용이 조금 전, 알레인과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계획대로 잘 만 된다면…… 바알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습니다.”

자세를 낮춘 처용이 지면에 오른손을 대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판데모니움 악의 제전.

대악마 둘이 본의 아니게 탈주해버린 상황.

때문에, 향후 계획을 논의하던 중요한 회의가 끊겨 버렸다.

그럼에도 아직 대악마들은 악의 제전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잠시 기다려 보지.

바알이 지상으로 끌려간 안드로말리우스와 알레인을 기다려 보기로 한 것.

그 말에 다수의 대악마들이 동의했고 지금 사라진 두 대악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화아아!

사라졌던 안드로말리우스와 알레인이 악의 제전에 다시 나타났다.

“제길…… 이 비겁한 하계종 놈들이!”

안드로말리우스가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분노를 토했고.

“흐음…….”

알레인은 팔짱을 끼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돌아왔군.”

바알이 다시 악의 제전에 돌아온 두 대악마를 보며 말하자.

“흠? 저희를 기다려 줄 줄은 몰랐군요?”

알레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대악마들을 쭉 둘러보며 답했다.

“어찌 되었나?”

바알이 곧장 알레인과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본론을 물었다.

여러 의미가 함축된 물음에 알레인이 작은 인상을 써 보이고는.

“하아, 당신의 의도대로 내가 직접 한처용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한숨을 내쉬며 바알의 말에 답했다.

별다른 감정이 없는 듯 일정한 목소리.

그러나 그 속에는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이에 대한 시린 감정이 일렁였다.

“곤경에 빠뜨릴 의도는 없었다. 이는 분명하게 말해 두지.”

바알이 그런 알레인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그렇군요.”

알레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바알의 말에 답하고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한처용, 그 인간은…… 아주 괴물이더군요.”

안드로말리우스와 연결된 대악마 소환진을 살피던 도중 휘말린 사고.

그 덕분에 알레인은 처용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정말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처용을 직접 마주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자.

-안개의 대악마가 저리 말할 정도라…….

-무한한 공포를 극복한 것이, 그저 우연은 아니었다는 것이로군.

다른 대악마들이 여러 반응을 보이며 수군거렸다.

특히,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디아블로가 종종 언급되었다.

아직도 대악마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건.

일개 인간이 삼천마,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를 격퇴했다.

같은 대악마들조차 ‘공포’를 느끼는 강력한 존재를 인간이 이겨 내었다?

아무리 디아블로의 화신체가 약화되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악마들은 그저 디아블로가 흥이 떨어져 스스로 돌아왔다거나, 강림 시간이 다 되었다고만 생각했었다.

같은 대악마들조차 이길 수 없는 디아블로를 처용이 격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안드로말리우스에게 벌어진 일과 알레인의 말로 인해, 그 생각이 바뀌었다.

“놈과 직접 맞붙어 본 건가?”

바알이 낮은 목소리로 알레인을 향해 묻자, 잔잔히 소란스러웠던 악의 제전이 조용해졌다.

“가볍게 몇 가지 권능을 써 봤는데, 간단하게 파훼해 버리더군요.”

“……전력을 다하지 않았나?”

알레인의 말에 바알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왕 처용을 마주쳤으면, 놈이 정확히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확실하게 파악해 와야 했으니까.

적어도 상위 대악마, 연구자의 기질이 있는 알레인이라면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알레인의 말과 분위기로 봐서, 그녀는 처용을 대충 상대하다가 돌아온 듯 보였다.

“제아무리 저라 해도 화신체의 능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놈을 이길 순 없었거든요.”

알레인이 바알의 의도를 알아챈 듯,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 처용과 마주쳤을 때는, 그의 전력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권능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처용은 마치 익숙하다는 듯, 알레인의 권능을 모두 파훼해 버렸다.

아무리 개조된 대악마 소환진으로 인해 화신체가 약화되어 있다고 해도, 놀라운 결과였다.

무려 서열 8위의 대악마가 발휘하는 권능을 손쉽게 막아 내었으니까.

때문에.

“어차피 녀석에게 질 거, 제 정보를 숨기고 깔끔하게 퇴장하기로 했죠.”

처용에게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보이지 않고 돌아가기로 판단했다.

즉,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기기로 한 것.

“녀석은 내가 대악마 소환 마법진의 창시자라는 사실을 모르니까요.”

특히, 알레인이 대악마 소환 마법진을 만들어낸 이라는 사실을 들켜서 좋을 게 없었다.

“그렇군.”

바알이 알레인의 말에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 말하고는.

“안드로말리우스와 연결된 소환 마법진을 이용할 수 있겠나?”

가장 중요한 본론을 물었다.

안드로말리우스는 처용이 개조한 대악마 소환 마법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대악마 소환 마법진을 만들어낸 그대라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 터.

대악마 소환 마법진의 창시자인 알레인이라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애초에 안드로말리우스가 자존심을 굽히고 스스로가 당한 치욕을 드러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으니까.

본론을 이야기하는 바알의 물음에.

“흠…….”

알레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며 침음을 흘렸다.

짧은 침묵이 흐른 끝에.

“가능하죠.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뿐.”

일단은 ‘가능하다’라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바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는 건가?”

“한처용이 대악마 소환진을 어떻게, 무슨 수로 개조했는지 당장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알레인이 바알의 물음에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인간이 대악마 소환 마법진을 개조하여 악용하고 있는 상황.

고작 인간이 대악마 소환진을 개조하여 악용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상의 인간이 내가 만든 마법진을 개조하여 악용할 줄은…….”

알레인이 기가 막힌 듯, 놀라움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흠.”

바알이 알레인의 반응이 이해 가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악마 소환 마법진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치였다.

무려, 악마가 차원의 벽을 뚫고 지상에 나가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

바알조차도 함부로 개조하기가 힘든 것이 바로 대악마 소환 마법진이었다.

그런 정교한 장치를 고작 인간이 개조하여 악용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동시에.

“확실히, 성가시군.”

한처용이라는 인간에 대한 위험성이 더 올라갔다.

이제는 처용을 단순히 인간이라 치부하며 깔볼 수만은 없었다.

놈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자신의 계획을 망칠 능력이 있었다.

비단, 알레인의 평가나, 대악마 소환 마법진 개조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나의 성운조차 감당하기 힘든 인간이라…….”

지구에서의 임무를 실패하고 패퇴한 거대 성운인 천교.

바알이 그동안 천교가 당해 온 일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읊조렸다.

그 중얼거림에 천교의 성좌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보면, 천교가 계획하던 대부분의 일들을 망친 주범이 바로 처용이었으니까.

“우리도 이런 말을 하긴 자존심이 상하지만, 놈은 혈선의 제자요. 만만히 봐서는 아니 될 거요.”

천교의 성좌 중 하나, 나타가 경고 섞인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선…… 역천을 잃었다기에 약해진 줄 알았소만, 그게 아니었소.”

검은 별 중 하나, 조제군이 얼마 전, 여래와의 전투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홀로 검은 별 다수와 태상노군을 동시에 상대했었던 여래.

본래는 다수인 천교 측이 우위를 점해야 했지만.

-내가 선술의 창시자라는 사실을 잊었구나.

여래는 홀로 다수의 성좌를 압도하는 무위를 보였다.

최초로 신격을 살해한 인간, 최초의 이단자라 불릴 만한 존재였다.

조제군의 말이 울리자.

“크크크, 신계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천교의 권리를 강탈한 인간 말이지?”

디아블로가 호승심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성좌들에게 있어 불편한 진실, 특히 천교의 치부를 드러내는 디아블로의 말에.

“…….”

천교의 성좌들, 특히 옥황상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다시금 악의 제전에 불편한 분위기가 일렁일 때.

“그래서,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것인가?”

바알이 알레인을 향해 다시 본론을 물었다.

“그렇지요. 아, 안드로말리우스와 연결된 마법진을 다른 대악마에게 연결시킬 순 있겠군요.”

알레인이 바알의 말에 답하다가 막 생각이 난 듯, 말을 이었다.

대악마 소환 마법진과 연결된 주체를 안드로말리우스에 다른 대악마로 옮길 수 있다는 것.

“다른 지원자를 받아볼까요? 안드로말리우스 대신 인간들과 싸워보실 분?”

알레인이 대악마들을 쭉 둘러보고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묻자.

“크흠.”

“흠…….”

대부분의 대악마들의 알레인의 시선을 피하며 침음을 흘렸다.

선뜻 나서는 대악마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안드로말리우스처럼 인간들에게 두들겨 맞고 오는 치욕을 경험하고 싶은 대악마는 없었다.

“우리 대단하신 천교의 성좌들 중에도 없는 것인지요?”

대악마들의 반응을 확인한 알레인이 이번엔 천교 측을 바라보며 묻자.

“…….”

“제길.”

천교의 성좌들도 다른 대악마들과 같은 반응을 드러냈다.

안드로말리우스를 대신하겠다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그때.

“나는 불가능하겠지?”

디아블로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알레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말에.

“당신의 힘을 감당할 순 없을 겁니다.”

알레인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쉽군.”

디아블로가 알레인의 말에 진심 어린 아쉬움을 표했다.

결국, 안드로말리우스를 대신할 이는 아무도 없는 셈.

“당분간, 맹독의 대악마가 고생 좀 해야겠군.”

메피스토가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작은 측은함을 담아 말했다.

비록 말석이라지만, 주기적으로 인간들에게 맞고 와야 하는 모욕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요.”

안드로말리우스가 체념한 듯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도움을 청한 것은 나이니, 이 일은 내가 감당하겠소.”

안드로말리우스의 말에.

“둘에게 맡기겠다.”

바알이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처용이 개조한 대악마 소환 마법진을 조사하고 역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는 것.

이 일은 온전히 안드로말리우스와 알레인에게 맡겨졌다.

“하아, 이 나이를 먹고 내가 공부를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알레인이 스스로가 맡은 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숨을 내쉰 것과는 다르게 알레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연구 소재를 찾은 과학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동시에.

‘일단은…… 첫 번째 계획은 성공이구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감추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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