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처용이 각 성운의 신관들이 내건 도전장에 답하고 성지로 돌아오자.
“방금 들었어, 길드장들이 너한테 단체로 도전한다며?”
커맨더가 처용을 향해 놀람과 흥미로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네, 설마 저번에 넌지시 말한 걸 정말로 실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에 처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답했다.
자신한테 도전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다.
토너먼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 연말정산에서 좋지 않으니까.
지금 199레벨을 달성한 처용을 상대하면 그 누구라 해도 제대로 된 활약을 할 수 없었다.
가진 힘의 격차는 물론, 정보와 지식의 차이도 컸다.
처용은 각 길드의 길드장들, S급 헌터들의 전투 방식이 어떤지 모두 알고 있었다.
반면에 S급 헌터들은 처용이 정확히 무슨 스킬을 사용하는지,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당연히 처용과 맞서면, 부진한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S급 헌터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음……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제시카라면 이해가 가.”
곰곰이 생각하던 커맨더가 제시카의 입장을 생각하며 말했다.
-역천군주와 비교하면 저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제시카가 넌지시 중얼거리듯 했었던 말.
“항상 궁금해하더라고 지금의 자신이 너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커맨더가 제시카의 고민 어린 말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마 대악마와 직접 마주친 이후, 나름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보여.”
몬스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압도적으로 강력한 존재, 대악마.
그들은 S급 헌터들이 단체로 달려들었는데도 힘겹게 쓰러뜨릴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심지어 약해진 상태로 소환된, 대악마 말석이자 최약체(?)인 안드로말리우스를 상대로도 고전했다.
그러나 처용은 온전한 상태로 소환된 대악마와 홀로 맞섰다.
“나 역시, 대악마와 직접 마주해 보니까. 나 자신의 부족함이 크게 느껴지더라.”
커맨더가 작은 한숨을 섞어 말했다.
중국에서 마주쳤던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디아블로.
처용이 준비한 특수 수련장에서 마주친 맹독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
아무리 커맨더라 해도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강력한 존재들이 호시탐탐 지구를 노리는 주적이었다.
게다가…… 그런 대악마들이 따르는 더 위대한 존재.
주신급 성좌보다도 위, 태초신에 가깝다 여겨지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맞서기 위해선, 지금의 자리에 안주할 수 없었다.
리스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야 했다.
“다른 길드장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일 거 같다.”
“흠…… 그렇군요.”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낀 S급 헌터들.
그런 헌터들이 가장 큰 목표로 잡은 이는 다름 아닌 처용이었다.
신력을 개화한 인간.
대악마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헌터.
다가오는 위기에 가장 앞장서서 맞서는 선봉장.
처용은 여러모로 헌터들이 목표로 잡기에 아주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S급 헌터들은 그런 처용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킬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마음가짐 하나는 훌륭하군.’
처용은 속으로 작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봐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에게 도전한 이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지금 하는 노력만으로는 자신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도전자들에 대한 생각을 끝낸 처용은.
“그러고 보니, 커맨더는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네요?”
문득 궁금한 듯 물었다.
처용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커맨더.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회귀 전에도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그는 성운결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보통 헌터라면 성운결산이 다가오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만 커맨더는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
그 이유가 문득 궁금했다.
“애초에 내 능력은 친선 경기를 하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아.”
커맨더가 하늘 위,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함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신님이 굳이 필요 없다면서, 더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 주셨거든.”
“업적을 말하는 거군요.”
처용이 커맨더가 말하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하자.
“역시, 알고 있었구나?”
커맨더가 크게 놀라지는 않은 듯 말했다.
헌터가 성장할 수 있는 아주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는 처용.
그라면 데우스 엑스 마카나가 알려준 성운결산을 대비하는 방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말이 좋아 더 효율적인 방법이지, 꾸준히 노력한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방법이죠.”
처용이 잘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헌터가 뛰어난 업적을 달성하면 생기는 칭호.
성운결산이 진행되는 해에 칭호를 얻은 이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칭호를 얻은 이종국 원장.
그는 최근 성좌들에게 인정받고 ‘선구자(先驅者)’라는 칭호를 받았다.
성좌들에게 진심 어린 인정을 받아야만 생기는 업적.
이종국은 이 칭호 덕분에 다른 헌터들보다 성운결산에서 높은 가산점을 얻을 것이다.
이번 연도에 이종국보다 더 큰 업적을 세운 헌터는 드물 테니까.
“그러고 보니 진호하고 백호 형, 스피릿 팀 모두 토너먼트에 참가한다더라.”
커맨더가 막 생각이 난 듯 말했다.
한국의 헌터들 중 정예 중에 최정예라고 할 수 있는 이들.
그들 모두가 이번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 참여한다.
“성운결산 때문이라기보다는, 세계 랭킹에서 본인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보이더라고.”
“하하하.”
커맨더의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짓고는.
“전원 100위 안, 그리고 탑 10 안으로는 절반 이상이 차지할 겁니다.”
확신 어린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신관을 제외한 일반 헌터들의 리그인 월드 헌터 토너먼트.
그 대회에서 100위 안에 든 이들은 WHU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른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헌터들은 그 직계 가족까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게다가 연말정산에서 레벨업과 스텟의 추가 상승 등, 시스템의 보상이 내려진다.
명예와 부, 레벨업과 스텟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
때문에,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서 100위 안에 드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순위 안에 들기가 정말 어려웠다.
전 세계에서 단 ‘백 명’만이 거머쥘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처용은 태룡사에서 수행하는 스피릿 팀이 모두 랭킹 100위 안에 들 것이라 확신했다.
“하하, 한국의 상위 헌터들 전부가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든다라…….”
커맨더가 처용의 말을 듣고 마치, 상상하듯 중얼거렸다.
처용의 말대로 된다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이다.
이 작은 나라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릴 것이고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가 이러한 결과를 만든 이를 눈여겨볼 것이다.
“정말, 기대되네.”
커맨더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읊조리자.
“제가 직접 지도한 이상, 그 정도는 우습게 해야죠.”
처용이 다시 한번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곧 시간이 됩니다.”
“그 일정만큼은 빠질 수 없지.”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눈빛을 바꾸며 답했다.
처용이 말한, 곧 시간이 된다는 말.
그것은 다름 아닌, 대악마를 소환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대악마와의 전투 경험은 아주 중요했다.
특히, 이번에는 커맨더와 스피릿 팀이 합을 맞추는 시간이었다.
“이번만큼은, 내가 끝장을 내 주겠어.”
커맨더가 투지를 끌어올리며 강하게 말했다.
***
판데모니움 악의 제전.
바알의 부름에 의해 대악마의 이름을 거머쥔 이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이번 악의 제전에는 대악마가 아닌 이들도 자리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판데모니움에 투신한 성좌들이었다.
“그분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는 건가?”
순혈자들의 대표로 악의 제전에 모습을 드러낸 옥황상제가 바알을 향해 물었다.
“함부로 그분을 입에 올리지 마라, 천황.”
바알이 옥황상제의 말에 적대감과 경고를 담아 답했다.
그러자.
“악마 따위가 감히!”
“천황을 무시하는 것이냐!”
옥황상제와 함께 있는 천교의 성좌들이 바알을 향해 소리쳤다.
“굴러들어온 무능한 것들이 제 처지를 모르는구나.”
-쿠구구!
바알이 격렬한 어둠을 내뿜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에 맞서.
“허허…… 무능이라.”
-파지직! 쿠구!
옥황상제 역시 천둥이 울리듯 격렬한 기세로 신력을 내뿜었다.
“이곳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이 입만 살았구나.”
-쿠구! 쿠구구!
바알의 어둠과 옥황상제의 신력이 서로 충돌하며 격한 마찰을 빚어냈다.
“서로 서열을 정하는 이곳의 규칙을 따라야겠구나.”
옥황상제가 서열 교체 혈전을 언급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어디 한번 해 보거라.”
바알이 검은 이빨이 드러나도록 씨익 웃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쿠구! 쿠콰콰!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으며 악의 제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콰쾅!!
바알과 옥황상제 사이에 잿빛이 섞인 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닥에 대검을 꽂으며 나타난 이.
“적당히 해라. 옥황상제.”
삼천마 서열 2위, 끝없는 증오의 대악마.
“네놈도 마찬가지다. 바알.”
메피스토가 눈동자 속에 타오르는 검은 불길을 키우며 옥황상제와 바알을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고작 분란을 일으키자고 우리 모두를 이 자리에 모은 건가?”
-쿠구구!
바닥에 꽂은 대검을 두 손으로 움켜쥔 메피스토가 격렬한 마기를 내뿜자.
-츠즈즈! 츠즈! 파지직!
메피스토의 잿빛 섞인 검은 마기가 바알의 어둠과 옥황상제의 신력을 동시에 밀어내었다.
가까이 가면 베어질 듯, 싸늘하고 소름 돋는 메피스토의 마기가 퍼지자.
-샤네……!
-전대 삼천마를 베어 버린 검.
주변의 다른 대악마들이 침음을 흘리며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메피스토가 지면에 꽂으며 보인 그의 무구를 본 대악마들이 두려운 감정을 드러냈다.
판데모니움의 문자가 새겨진 두껍고 긴 검.
양손으로 넉넉하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손잡이.
칼날을 향해 곡선으로 길게 뻗어 있는 폼멜(Pommel).
싸늘한 빛을 빛내는 잿빛의 칼날까지.
전체적인 모습은 서양식 대검, 츠바이헨더(Zweihänder)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메피스토를 상징하는 무구, 증오의 검 샤네라 불리는 대검이었다.
대악마들이 메피스토의 검을 두려워하는 이유.
무려, 전대 삼천마이자 대악마 서열 2위였던 아가레스를 베어 버린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협력하는 이들끼리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키지 마라.”
메피스토가 지면에 꽂은 자신의 무구, 샤네를 오른손으로 뽑아 들며 말함과 동시에.
-파아아.
격렬하게 내뿜던 마기를 거둬들였다.
메피스토의 중재에 장내가 잠시 침묵에 일렁였고.
-스스스.
-파직.
바알과 옥황상제 역시 스스로의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때.
“재미있는 구경을 할 뻔했는데…… 아쉽군. 크크.”
턱을 괸 채 작금의 상황을 구경하던 디아블로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바알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옥황상제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둘이 싸움을 멈춘 이유는 메피스토의 중재도 있었지만.
“크크크.”
즐겁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미소를 짓고 있는 디아블로 때문도 있었다.
다시 악의 제전 내에 기묘한 신경전이 흐르기 시작했다.
대악마들의 정점, 삼천마에 이어, 이제는 위대한 존재에게 세례를 받고 악신이 된 천교의 주신까지.
이 네 명이 벌이는 기 싸움으로 인해 다른 대악마들이 서로를 눈짓하며 눈치를 보았다.
특히.
‘제기랄!’
대악마 말석에 자리한 존재.
맹독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조금 전 목격했었던, 삼천마들끼리의 기 싸움.
그저 서로의 기운을 내뿜어 마찰시키는 가벼운 싸움에 불과했지만.
-으드득.
그 기운에 압도된 안드로말리우스는 긴장감을 억누르는 듯, 이를 강하게 물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