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성지, 태룡사 중턱에 세워진 10층 높이의 현대식 빌딩.
층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금룡빌딩]
[강원도 태룡시 금룡로 12-2]
건물의 정면에는 도로명 주소와 함께 빌딩 명패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빌딩의 입구,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부터.
[77계 치킨]
[뉴욕 도넛츠]
[유니벅스]
[빙설(氷雪)]
.
.
식당과 카페 등 먹거리 가게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건물은 종합 식당을 운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건물이었다.
말 그대로 1층부터 10층, 전 층이 식당이었다.
“후…… 겨우 다 끝냈군.”
고된 일정을 마친 태민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식당 건물 앞에 섰다.
태룡사 하단에 세워진 도시를 임시 개방하는 일로 인해 정말 분주한 일주일을 보냈다.
임시 개방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여유가 생겨 이곳에 올 수 있을 정도로.
건물 안으로 들어선 태민의 발걸음이 멈춘 장소는 관계자 전용 엘리베이터.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 마법진 앞이었다.
태민이 마법진 옆에 있는 인증 센서에 헌터 라이센스를 가져대 대자.
-삐리릭! 환영합니다. 김태민 이사님.
인증되었다는 녹색 마크와 함께 기계음이 울려왔다.
그는 직책은 이제 과장이 아니었다.
이제 협회장의 최측근이자 이곳, 강원도 헌터 협회 지부를 책임지는 이사가 되었다.
태민이 마법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화아아.
옅은 빛이 퍼지며 태민이 사라졌다.
-화악!
그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종합 식당 건물, 금룡빌딩의 최상층인 10층이었다.
이곳 역시 식당이었지만, 1~9층과는 다르게 더 특별한 장소였다.
협회 관계자나 초대를 받은 손님이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는 곳.
태민이 마법진 밖으로 나가 복도를 쭉 걸어 나가자, 고급스러운 테이블들이 넓게 배치된 홀에 도달했다.
홀의 왼쪽에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 간판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간판의 바로 밑에는 마법진이 새겨진 배식대가 간격에 맞게 늘어서 있고 배식대 안쪽에는 요리를 준비하는 쉐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은 태민이 왼쪽으로 다가갔다.
쭉 나아가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레전더리 스시(Legendary Sushi) / 요시다 무라마사 쉐프]
‘전설급 초밥’이라는 간판이 달린 초밥집 앞이었다.
“많이 바빴나 보군?”
재료를 다듬던 쉐프가 태민을 알아본 듯 말을 건네자.
“하하, 요시다 님 요리가 생각나서 일찍 끝내고 왔습니다.”
태민이 쉐프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 나이 든 인상의 요리사.
그는 일본의 1세대 영웅이자 전직 시노비장, 요시다 무라마사였다.
난장판이 된 무라키 가의 수습 일을 돕던 그가, 처용의 성지에서 쉐프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식당의 주인이 될 생각이 없으십니까?
처용이 요시다에게 한 제안 때문이었다.
본래 요시다의 꿈은 맛으로 인정받는 식당의 주인이 되는 것.
야스라에게 그 말을 들은 처용이 요시다에게 넌지시 제한한 것이었다.
요시다는 처음에 처용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딱 3개월만 해 보시고 결정해 주십시오. 그 뒤로는 요시다 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처용은 성지에 세워질 식당에 대해 말해주며 한 번 더 설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식당’의 주인이 될 기회.
그런 처용의 제안에 요시다가 한번 해 볼까? 하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그리고…… 처용의 말대로 이곳이 정말 특별한 식당임을 깨달았다.
그 증거로 넓은 식탁에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한 손님 중에는.
[크-!]
성좌…… 신이 손님으로 자리해 있었다.
밝은 색상의 삼베옷을 입고 있는, 길지 않은 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
큼지막한 떡갈비가 썰려 얹어진 잔치국수 앞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아주 좋구나.]
무신전 출신의 성좌, 언문이었다.
이곳을 찾아온 손님, 아니 성좌는 언문만이 아니었다.
성좌가 본신으로 강림할 수 있는 성지인 태룡사.
이곳에 초대를 받은 신들도 한 번씩은 방문했었다.
그들 중에는.
-이자나기 성운에서 유명했던 병사로구나.
올림포스의 주신, 아테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테나가 요시다를 알아보며 말하자, 그 당시 요시다는 크게 당황했었다.
지금껏 살면서 처음으로 신을 손님으로 받은 상황.
그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던 요시다가 난생 처음으로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무려 신, 그것도 주신급 성좌를 손님으로 받을 수 있는 식당.
처용의 장담대로 이곳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식당이었다.
그렇게 요시다는 이 식당을 책임지는 주력 쉐프 중 하나가 되었다.
“항상 먹던 스페셜 세트, 맞나?”
요시다가 태민이 자주 주문하던 메뉴를 언급하며 말하자.
“네.”
태민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크크, 5분만 기다리게, 곧 나올 거야.”
-탁.
요시다가 태민에게 마법진이 새겨진 식판을 내밀며 말했다.
태민이 식판을 받아들고는.
-저벅.
홀의 빈 좌석 중 한 곳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안녕하세요. 언문 님.”
떡갈비 잔치국수를 맛보고 있는 언문의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허허, 식당에서 얼굴을 보는 건 간만이구나?]
언문이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식사는 꼭 챙겨 먹으라고 조언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태민이 언문의 조언을 떠올리며 답했다.
아무리 일이 좋아도 끼니는 챙기라는 언문의 조언.
태민은 그 조언을 잘 지키고 있었다.
일이 바빠도 끼니때가 되면 간단하게라도 해결했으니까.
“지난번에 도와주신 덕분에 오늘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허허, 내가 뭐 크게 도와줬나? 자네가 열심히 한 덕이지.]
마치 익숙하다는 듯, 언문을 향해 감사 어린 말을 전하는 태민과 미소를 섞어 대답하는 언문.
보통 신을 앞에 둔 대부분의 인간들은 긴장감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언문과 태민은 신과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것임에도 분위기가 딱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렇게 태민과 언문이 서로 소소한 근황을 묻던 중.
-삑. 화아아!
태민의 식판 위, 마법진에서 옅은 빛이 발광했다.
이윽고.
-스르르.
조금 전, 태민이 주문했던 요시다의 요리, 스페셜 세트가 나타났다.
식판 위 마법진은 완성된 요리가 원격으로 전송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A급 보스 몬스터, 골든 그루퍼의 기름기 좔좔 흐르는 선홍빛 대뱃살이 얹어진 초밥.
마찬가지로 A급 보스 몬스터, 팔성 무태장어의 살점에 간장양념을 발라 만든 장어구이.
그 외 맛이 아주 뛰어나다고 알려진 몬스터로 만든 각양각색의 초밥들이 보였다.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모두 극찬한 요리.
이 모든 초밥들은 요시다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궁극의 요리들이었다.
“크……! 이게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태민이 골든 그루퍼의 대뱃살 초밥을 맛보며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언문이 그 모습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는.
[일이 힘들진 않은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작은 미소 속에 무언가 복잡한 감정을 실은 듯, 눈빛만큼은 진지해 보였다.
그런 언문의 질문에.
“힘들긴 합니다만, 재밌습니다. 보람도 있고.”
태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무수히 많은 글자를 보는 게 지겹지는 않고?]
재차 이어지는 언문의 질문에도.
“아주 훌륭하신 분이 만든 글자라 그런지, 전혀 지겹지 않습니다. 하하.”
태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가벼운 분위기로 대답했음에도 그 말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허허…… 좋다니 다행이구나.]
태민의 대답에 언문이 작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동시에.
-정녕 다음 생이 있다면…….
연옥에서 헤어졌던 ‘친구’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하의…… 아니, 친구가 만든 문자를 많이 보는 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독 손재주와 상상력, 행동력이 뛰어났던 사람.
환생의 문 앞에서 다음 생에도 일하겠다 말하는 신하, 아니 친구.
언문은 태민을 보며 그런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연의 힘이란 참으로 기묘하구려…… 언문.
태민을 스치듯 지나가며 본 천문이 언문을 향해 넌지시 했었던 말이었다.
천문은 무신전의 몇몇 성좌들에게 과거, 생전의 인연을 찾아준 적이 있었다.
특히, 적무신의 인연을 찾아준 것이 대표적이었다.
우연이었지만, 언문 역시 천문 덕분에 과거의 인연을 찾았다.
잠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 언문은.
[내 열심히 사는 후인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구나.]
-스르르.
태민을 향해 신력을 흘려보내며 말했다.
언문의 신력이 태민의 오른손에 휘감기고는 서서히 스며들며 사라졌다.
준비한 선물을 전한 언문은.
[아주 오랜만에…… 자네와 식사할 수 있어서 즐거웠네.]
-스르르.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
오랜만에 친구와 식사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말을 전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어…… 가, 감사합니다.”
무언가 순식간에 훅 지나간 상황에, 태민이 뒤늦게 감사를 말했다.
그리고.
-띠링.
태민의 눈앞에 시스템이 떠올랐다.
난데없이 울린 시스템을 본 태민은.
“……어?”
초밥으로 향하던 젓가락질을 멈춘 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의문을 내뱉었다.
***
성지 태룡사의 임시 개방이 끝나고 이틀이 지났을 때.
“혹시나 했는데…… 그거 진심이랍니까?”
신들의 부름을 받고 태룡전에 들어선 처용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처용의 반응에.
[각 성운의 신관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고 하더구나.]
여래가 황당함이 일렁이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성운결산을 준비하는 주신들 역시 모두가 동의했다고 조금 전 아테나가 연락을 전했다.]
연말에 진행되는 성운결산과 월드 헌터 토너먼트.
이는 각 성운의 주신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벤트였다.
성운의 병사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눈에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성운 결산 시기에, 신관들이 단체로 뜻을 모아 성운에 의견을 전했다.
-역천군주와의 단체전을 제안합니다.
명실상부 최강의 헌터라 불리는 역천군주 처용.
그런 역천군주에게 각 길드의 길드장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심지어 그들 개개인이 각자 처용에게 도전한 것이 아니었다.
-길드장 여러분 전원이 힘을 합치면 모를까…….
성지, 태룡사의 임시 개방 마지막 날, 처용이 우려를 표하며 했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S급 헌터들은 처용의 말을 도발이자 기회로 받아들였다.
처용의 자신감(?)을 인정하며 그 말대로 다수가 동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즉, 일 대 다수의 결투를 제안한 것.
그런 신관들의 제안이 흥미로웠던 주신급 성좌들이 서로 의견을 나눈 결과.
-흥미롭군.
긍정적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그런 이들의 의견을 아테나가 여래에게 전달한 상황.
[신관들의 단체 도전을 감당할 수 있냐고 아테나가 네 의사를 묻더구나.]
여래가 처용에게 아테나의 말을 전하자.
“감당이요? 하하…….”
처용이 실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반대죠. 신관들에게 저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를 물어야 할 겁니다.”
자신감과 투지가 일렁이는 처용의 진지한 말이 울리자.
[좋다. 네 의견을 전해 주마.]
여래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각 성운의 S급 헌터들이 단체로 처용에게 던진 도전장.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최강의 헌터, 역천군주 처용.
이로 인해 이번 성운 결산, 월드 헌터 토너먼트에 전례가 없던 새로운 이벤트가 탄생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