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성지, 태룡사가 임시 개방하고 이틀의 시간이 더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룡사에는 사람이 빠지기는커녕.
-대충 다 둘러봤으니, 수련탑이라는 곳에 틀어박혀 있을까?
-난 공방에 가보려고. 드워프가 만든 아티팩트 좀 살펴보게.
-거래처 계약은 안 되려나? 인어들이 만든 정화수 그거 좋던데.
오히려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헌터가 더 빨리 성장할 방법이 있는 공간.
더 강하고 유용한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는 장소.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한 물품들을 구할 수 있는 곳.
처용의 성지, 태룡사를 두고 퍼져 있는 소문들.
그 소문이 모두 사실로 증명되자, 헌터들이 더 몰려들었다.
그리고 몰려든 헌터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아이언 웨펀 트리(Iron Weapon Tree)]
아이언 웨펀 트리라는 간판이 달린 드워프들의 대장간이었다.
성지의 보물전 하나를 양도받은 드워프들이 대장간으로 개조시킨 장소였다.
지금 태룡사에 머무는 드워프 종족은 대략 30여 명 정도.
본래 처음 태룡사에 드워프들이 왔을 때는 5명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루돌프가 태룡사에 남는 선택을 했고.
-우리는 우리가 인정한 최고 장인만을 따를 것이오!
루돌프를 지지하고 존경하던 소수의 드워프들이 태룡사로 이주해왔다.
처용으로서는 그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이주 신청을 수락했다.
이곳에 정착한 드워프들이 시작한 일은, 협회의 헌터들이 주로 쓸 물건의 제작이었다.
즉, 헌터들이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양산형 아티팩트들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양산형 아티팩트라 해도, 무기 제작의 장인들이라 불리는 드워프가 만든 물건들이었다.
세간에 널리 쓰이는 양산형 무구와는 질이 달랐다.
같은 등급의 아티팩트와 비교해도 50%는 더 뛰어났으니까.
그런 드워프들이 만든 아티팩트도 인기가 많았지만, 이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헤엑!? 이게 다 대기 줄이라고?
-아마 4~5시간은 기다려야 할걸?
대장간 외곽 쪽에는 헌터들이 긴 줄을 형성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무구를 든 채 줄을 서 있었다.
무기를 새로 구매하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
“다음! 이쪽으로 오시게.”
드워프 하나가 가장 앞줄에 서 있는 헌터 한 명을 지목하며 말하자.
“제가 주로 쓰는 애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목을 받은 헌터가 다가오며 들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흠…… 관리를 잘했군, 이건 강화할 수 있네.”
드워프가 헌터에게서 받은 검을 살펴보고는.
“바로, 시작하지.”
-치이이!
마치, 은을 녹인 듯 보이는 부글거리는 은빛 쇳물을 검에 붓기 시작했다.
-사가가-가각! 사각! 까강!
검에 쇳물을 붓고 숫돌로 간 다음, 망치질로 다듬는 작업을 반복했다.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다 되었네.”
작업을 마친 드워프가 헌터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자신의 애검을 받은 헌터가 칼날을 자세히 살펴보자.
-스릉.
칼날에 서늘한 은빛이 번쩍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동시에.
“지, 진짜로 등급이 올랐잖아!?”
검을 돌려받은 헌터가 자신의 검을 살펴보며 경악하듯 놀람을 표했다.
본래 자신이 쓰던 애검의 등급은 레어 등급.
그 검이 드워프에게 ‘미스리움 강화’를 받은 결과.
[맞춤 제작형 롱소드 / 아티팩트]
[등급 : 유니크]
아티팩트의 등급이 상승했다.
게다가 무구가 가진 공격력과 내구도도 대폭 증가했다.
“비싸긴 했지만…… 이 정도면 절대 돈이 아깝지는 않구나!”
강화된 무구를 확인한 헌터가 환호를 표할 때.
“저…… 혹시, 블랙 미스리움은 취급하지 않는 겁니까?”
바로 근처에서 미스리움 강화를 요청한 헌터 하나가 드워프에게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블랙 미스리움? 그건 최고 장인만이 다룰 수 있네, 나는 못 해.”
드워프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에도.
“그렇다면, 블랙 미스리움으로 만들어진 무구는 없습니까? 가격은 원하는 만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한 헌터는 포기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리고 블랙 미스리움에 대해 질문하는 헌터는 그 한 명만이 아니었다.
-혹시 블랙 미스리움…….
-블랙 미스리움으로 만들어진 칼날…….
무구를 강화하러 오거나, 양산형 아티팩트를 구입하러 온 헌터들 중 일부가 블랙 미스리움을 찾았다.
그들이 블랙 미스리움을 찾는 이유.
-이진호 헌터의 검! 분명 블랙 미스리움이다!
대악마의 머리를 날려 버린, 칼날이 검게 도색된 이진호의 쌍검.
그 위력을 목격한 헌터들이 이진호의 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진호의 검이 탄생한 곳이 여기, 드워프 대장간이라 추측했다.
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 부하 헌터들이 이곳에 방문해 물어본 것.
그러나.
“블랙 미스리움으로 만들어진 무구는 이곳에 없네.”
드워프들은 진지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답했다.
결국, 길드의 명령을 받고 알아보러 온 헌터들은 아무것도 알아가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이진호의 검은 블랙 미스리움으로 제작된 검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곳에 있는 드워프들도 모른 척이 아닌, 정말 모르고 있었다.
정보를 얻으러 온 헌터들이 모두 허탕을 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성지, 태룡사 상단에 있는 보물전.
이곳은 성지 하단 쪽 도시와 가까운 보물전과는 다른 장소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돌프가 관리하는 대장간이었다.
“저번에 한 말을 듣고 조금 더 손을 보았네.”
-철컥.
루돌프가 이진호에게 쌍검을 건네며 말하자.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릉.
진호가 쌍검을 쥐고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커터칼처럼 끝날이 세워진 각진 형태의 쌍검.
그리고 검게 도색된 칼날을 자세히 보면, 아주 짙은 검붉은 색의 물결무늬가 보였다.
진호가 자신의 쌍검을 쥐고 조금씩 휘둘러 보며 살필 때.
“역시, 최고 장인이십니다. 정말로 그걸 다루는 데 성공하셨군요.”
처용이 루돌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자.
“이거 정말 엄청난 물건이야! 장난이 아니라고!”
자신의 쌍검을 살피던 진호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자랑하듯 말했다.
“제가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처용이 진호의 쌍검을 보며 말하자.
“얼마든지.”
진호가 흔쾌히 처용에게 검을 건네주었다.
[폭풍 분쇄자 / 아티팩트]
[등급 : 레전더리+]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
[알 수 없는 매우 단단한 무언가가 칼날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확인 불가]
-칼날의 절삭력 극대화
-연속 공격을 가할수록 공격력이 점차 증가
-그 외 확인 불가
처용의 눈에 진호의 쌍검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과연 그랜드 스미스 마스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구답게, 통찰의 눈으로도 전부 파악할 수 없었다.
쌍검의 외형을 자세히 살핀 처용은.
“이 칼날…… 접쇠 단조로 만든 것이로군요?”
검은 칼날 속에서 일렁이는 검붉은 물결무늬를 보며 말했다.
“허허…… 가만 보면, 자네가 저 밖에 있는 드워프들보다 전문가 같단 말이야?”
루돌프가 처용의 말에 놀람 섞인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둔한 놈들도 알아보지 못한 걸, 단번에 알아볼 줄이야.”
“저는 여기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처용이 루돌프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자네 예상대로 이 검은 칼날은 두 재료를 합쳐서 만들었다네.”
루돌프가 진호의 쌍검, 검은 날 부분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가 말한 두 재료, 진호의 쌍검을 제작한 핵심 재료는 카투라의 허물과 크루마의 뿔이었다.
루돌프는 특히 크루마의 뿔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모든 수단을 다 써 봤지만, 그 뿔만큼은 정말…… 다루기 버겁더군.”
크루마의 뿔은 카투라의 허물처럼,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했었다.
그래서 루돌프는 다른 재료와 섞어 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해서 찾아낸 방법이 바로 이 허물 조각과 뿔 조각을 접쇠해 단조하는 것이었네.”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루돌프가 찾아낸 방법은 다름 아닌 접쇠 단조.
지구의 대장장이들이 흔히 다마스쿠스(Damascus)라고도 부르는 단조법이었다.
성질이 다른 두 강철을 번갈아 겹쳐 만들어낸 강편으로 무구를 단조하는 것을 의미했다.
탄성의 힘이 뛰어난 카투라의 허물 조각.
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한 크루마의 뿔 조각.
루돌프는 그 두 가지 재료를 번갈아 겹치는 것으로 작은 강편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블랙 미스리움보다…… 더 뛰어난 새로운 강편이다.”
-탁.
루돌프가 처용에게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네모난 무언가를 건네며 말했다.
처용이 루돌프가 건넨 물건을 받아 살펴보았다.
[태초의 주괴 / 재료]
[등급 : ?]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만이 온전히 다룰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검은색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검붉은색의 물결무늬가 보였다.
마치, 검은 바닷속에서 붉은 파도가 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거 루돌프 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아예 못 다루겠는데요?”
처용이 루돌프가 건넨 태초의 주괴를 살펴보며 말하자.
“당연한 사실을! 나조차도 저 쌍검에 조립된 칼날을 만드는 것만 삼 일이 걸렸다고!”
루돌프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진호의 쌍검이 조립식 커터칼처럼 각진 형태인 이유.
“저 칼의 몸통도 만만치 않은 재료들이 들어갔다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정말로 조립식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블랙 미스리움과 일반 미스리움, 거기에 이전 츠쿠요미에게서 얻어 온 월영석까지.
루돌프는 재료를 아끼지 않고 칼의 몸통을 정교한 구조로 제작한 다음.
“그저 만들어진 검에 저 작은 칼날들을 끼워 맞춘 거지.”
태초의 주괴로 만들어진 칼날을 조립한 것이었다.
그렇게 드워프 장인의 고뇌와 노력이 깃든 결과, 괴물 같은 무구가 탄생했다.
무려, 대악마의 화신체를 베어 버릴 수 있는 무구였다.
“자네가 주로 사용하는 무구도 이런 방법으로 하나둘 강화될 거야.”
루돌프가 말을 마치고는.
-철컹.
근처에 세워 두었던 투창 하나를 집어 들어 처용에게 보여주었다.
처용은 진호에게 쌍검을 돌려주고는 루돌프가 내민 투창을 받았다.
그 투창은 처용이 주로 사용하는 투박한 형태의 투창 중 하나였다.
다만, 이전과는 달라진 부분이 하나 있었다.
-스르릉.
투창의 날 부분 위로 검은 날이 덧씌워져 있었다.
그것은 진호의 쌍검 날과 같은, 태초의 주괴로 만들어진 칼날이었다.
“……어지간한 놈들은 막지도 못하겠군요.”
처용이 투창의 날 부분을 살펴보며 놀람을 표하고는.
“정말 감사합니다.”
루돌프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
그날 오후, 처용에게 초대를 받은 일부 헌터들이 다시 극비 수련장에 모였다.
그리고.
-화아아!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또다시 강제로 소환된 안드로말리우스가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
[감히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푸화아아!
눈에 핏발이 선 안드로말리우스가 사방에 독기 가득한 브레스를 내뿜었다.
일대 전체에 독기가 번지며 퍼져 나갈 때.
“천상의 성서(聖書).”
-촤르르르륵.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가 푸른색의 책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전염병이 사라지고 이는 천사의 축복으로 바뀌니…….”
라리네가 신성력을 끌어 올리며 성서(聖書)를 외기 시작하자.
-스르르르.
안드로말리우스가 뱉어낸 독기가 점차 새하얀 구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아아!
하얀 구름들이 밝은 빛을 내며 근처 다른 헌터들에게 스며들었다.
에덴의 주신이자 하늘의 서기관인 메타트론.
천상의 성서는 메타트론이 자신의 신관인 라리네에게 내린 성물이었다.
라리네가 성물의 힘을 빌려 발현한 스킬.
안드로말리우스의 독을 정화함과 동시에 축복으로 바꿔 아군을 강화하는 스킬이었다.
“이제 공기 중에 퍼진 독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독을 정화한 라리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자.
[정화? 어디 한 번 이것도 해 보거라!]
안드로말리우스가 분노와 비웃음을 섞어 소리쳤다.
[베놈 스톰!]
-슈후루르르! 쿠궁! 쿠릉!
두 팔을 위로 뻗은 안드로말리우스가 검은 번개가 튀어 오르는 마기를 위로 쏘아 보냈다.
마치 거꾸로 흐르는 폭포처럼, 허공 위로 쏟아진 마기가 점차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솨아아-아악!
허공 위에서 보랏빛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독기 가득한 마기를 머금은 소나기가 쏟아지자.
-스르륵. 스륵!
라리네가 발현한 스킬이 점차 약해져 갔다.
그때.
“죽음의 칙령.”
저승의 신 아누비스의 신관인 아일라가, 라리네의 옆에 서며 검은 책을 펼쳐 보였다.
-화아아!
검은 책, 죽음의 서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뭉치더니, 아누비스의 분신을 만들어 내었다.
[죽음의 칙령에 따라라!]
아누비스의 분신이 오른손을 들고 안드로말리우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슈화아아아!
안드로말리우스가 만들어낸 맹독의 구름과 비가 모두 죽음의 서로 빨려 들어갔다.
“위험해 보이는 권능을 봉인했습니다.”
아일라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 순간.
“좋아, 모두 작전대로!”
“우선 계획대로 움직인다!”
커맨더를 포함한 다수의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소리쳤다.
[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가! 네놈들에게 두 번 당할 것 같으냐?!]
-캬아아!
안드로말리우스의 분노 가득한 포효와 동시에 두 번째 대악마 사냥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