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로스차일드 가주의 방문 이후 일주일이 지났을 시점.
본래 성지 태룡사는 넓어진 땅과는 다르게 소수의 사람들만 체류하고 있어 조용한 편이었다.
다만 이제는, 성지의 상단 부분만 그러했다.
지금 태룡산의 하단 부분, 도시의 윤곽이 잡힌 지역에는.
-양산형 검이…… 성능이 엄청난데?
-이거 드워프 종족이 만든 거잖아!
-황금 올리브나무 추출 포션!? 이건 반드시 산다!
다수의 사람들로 인해 떠들썩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헌터들이었다.
성지, 태룡사의 외부 개방.
다만, 모여든 사람들은 헌터들 뿐이었다.
지금의 개방은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 일주일만 오픈하는 임시 개방이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으로 따지면 가오픈을 한 것.
도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지.
돌발상황이 일어난다면 대처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지 등.
임시 개방을 통해,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찾고 보수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임시 오픈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많은 수의 헌터들이 몰려든 상황.
다른 성지도 아닌, 무려 역천군주가 거주하는 성지였기 때문이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비밀에 휩싸인 성지.
그 성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헌터들만 찾아왔음에도 금세 북적일 정도였다.
세계 각지에서 많은 헌터들이 갑자기 모여든 만큼, 여러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지만.
-역천군주의 성지에서 사고 치면 내 손에 죽는다.
각 헌터들이 소속된 길드의 길드장들이 엄포를 놓았기에 서로 조심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성지에 헌터들이 방문하기 전 작성하는 서약서도 하나 있었다.
[태룡사 방문 규칙 서약서]
성지 내부를 배회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이종족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차별 발언 시 즉각 퇴출…….
성지 내부 시설 이용 시…….
.
.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태룡사 내부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적힌 서약서였다.
이를 어길 시, 막대한 벌금을 물고 두 번 다시 성지를 방문할 수 없게 된다.
다소 과격한 느낌의 서약서였음에도.
-여기 전부 서명했습니다!
-저희 길드는 모두 사전 등록을-!
방문한 모든 이들이 서약서에 동의하고 입장했다.
헌터들에게는 비밀투성이였던 성지가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역천군주의 성지에 헌터가 성장할 수 있는 비밀이 있다.
고레벨 헌터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
성지 태룡사에 헌터가 더 성장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헌터들은.
-입장료? 사흘 치 일시불로-!
-라이센스 계좌이체도 가능하죠!?
수련탑 앞에 모여들어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고 있었다.
일반인 기준에서는 비싼 이용료였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헌터들은 애초에 자금이 많은 이들.
그들에게는 딱히 부담되는 돈이 아니었다.
굳이 수련탑 앞에만 헌터들이 북적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종족들이 만든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점 거리 역시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가장 많은 헌터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든 장소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한국 헌터 협회가 주관하는 특별 경매장이었다.
“이번 경매품은 이것입니다.”
-화악!
경매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단상 위를 덮은 검은 천을 거두자.
[정제된 심해의 공청석유]
[등급 : 유니크]
옅은 푸른 빛의 액체가 담긴 포션이 나타났다.
“유니크 등급의 영약으로 복용 즉시 레벨이 하나 오릅니다. 또…….”
사회자가 고레벨 감정사 클래스 헌터의 감정 서류를 들어 보이며 경매 물품을 설명하자.
-뭐? 레벨이 오른다고!?
-저건 산다! 반드시 산다!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경매에 참석한 헌터들이 난리가 났다.
“경매 시작가는 원 밀리언(One Milion) 달러입니다.”
사회자가 경매 시작가로 백만 달러, 한화로 약 10억 원을 언급한 순간.
-두 배! 아니 세 배로!
-열 배로 올려!
다수의 헌터들이 경매 피켓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렇게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헌터들이 새로운 도시를 체험할 때.
“……딱히, 사고가 일어날 조짐은 없어 보이는데요. 과장님?”
협회 지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현아가 옆에 있는 태민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한처용 헌터의 성지에서 누가 미쳤다고 난동을 부리겠냐.”
태민이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면 말이지…….”
안경을 고쳐 쓴 태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말을 잇자.
“저도 알죠. 그래서 저희들이 이렇게 감시하고 있잖아요.”
현아 역시 도시를 바라보며 답했다.
임시 개방한 태룡사의 하단, 도시가 자리한 장소 주변에는.
-현재 특이사항 없음.
-이쪽도 마찬가지야.
-경매장 주변도 특이사항 없습니다.
한국 헌터 협회의 정예들, ‘스피릿’ 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원 100레벨 중반대를 넘어선 정예 중에 최정예 헌터들.
처용의 지시에 따라 혹독한 훈련을 받아 성장한 이들이었다.
같은 레벨을 지닌 헌터와의 싸움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전사들.
“저 역시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피릿’ 팀에 소속된 현아가 다시 도시 전경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근데, 이렇게 중요할 때 한처용 헌터는 어디로 간 거예요?”
현아가 문득 궁금증이 들어 태민을 향해 물었다.
도시가 개방되었음에도 처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초대받은 각 길드의 S급 헌터들과 ‘극비 수련장’으로 갔다.”
처용의 일정을 알고 있는 태민이 현아에게 말해주었다.
처용은 태룡사의 개방 소식을 각 길드에 미리 알렸었다.
그리고 태룡사가 개방되기 며칠 전, 처용은 각 길드의 주요 신관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초대를 받은 S급 헌터들 역시 태룡사에 방문했었다.
“엄청난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하던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
태민이 몇 시간 전, S급 헌터들과 어디론가 향하던 처용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
1미터 크기의 검은색 타일과 백색 타일이 번갈아 깔린 넓은 공동.
지하에 만들어진 공간인 듯, 천장이 막혀 있었고.
-우우웅.
바닥의 타일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는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콰아아아아!
돌연, 강렬한 기세로 검은 마기가 솟구치며 뭉쳐 들었다.
-슈르르.
압축된 마기가 다시 스멀스멀 퍼지더니.
[크아아아아!]
뱀과 도마뱀의 형태가 적절히 섞인 10미터 크기의 괴수가 포효를 내지르며 나타났다.
강렬한 마기를 내뿜으며 나타난 괴수.
그는 판데모니움 서열 72위, 맹독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였다.
[나를 다시 소환하는 데 성공했구나! 잘했느니라!]
다시 지상에 강림한 안드로말리우스가 환한 웃음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이전보다는 완벽하지 못한 소환진이었지만, 나름 화신체가 안정적이었다.
안드로말리우스가 자신을 소환한 마인들을 향해 칭찬하듯 말하고는.
[……뭐냐.]
곧장 의문을 표했다.
본래라면 대악마를 마주한 인간들이 자신의 앞에 부복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마인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주변에는 기척이 느껴지는 상황.
[감히! 대악마를 마주하고도 내 앞에-!]
안드로말리우스가 소리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전쟁군주의 영역!”
가장 앞에 있던 인간, 전신 무장을 단단히 갖춘 제시카가 아스트라페를 움켜쥐며 스킬을 발동했다.
-우우웅!
제시카를 중심으로 연녹색의 신성력이 주변에 퍼져나갔고.
-스르르.
근처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스며들었다.
제시카의 클래스는 전쟁군주(War lord).
주변의 아군을 강화시키고 최전선에 서서 적과 맞서는 버퍼와 탱커가 합쳐진 클래스였다.
전쟁군주의 영역은 그녀가 가진 버프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이었다.
제시카의 스킬을 시작으로.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신중히 움직여!
-놈이 사용하는 독을 조심해!
강렬한 기세를 내뿜는 헌터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며 안드로말리우스와 조금 떨어진 주변에 자리했다.
[하하하! 하찮은 먹잇감 놈들이-!]
안드로말리우스가 주변에 나타난 헌터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대악마를 마주하고도 기세를 잃지 않고 싸우려 드는 먹잇감들.
심지어 그들 대부분이 아주 강한 잠재력이 느껴지는 인간들이었다.
격을 높이기에는 최상의 먹이들이었다.
어째서 마인들이 아닌, 인간들이 주변에 나타났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모조리 집어 삼켜 주마!]
-푸화아아!
안드로말리우스는 의문 따위는 더 생각하지 않고 입에 독을 모아 주변에 흩뿌렸다.
그 순간.
“디바인 생츄어리!”
-화아아!
후방에 있던 성자가 안드로말리우스 주변에 신성력을 퍼트리며 신성한 영역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치이! 치이이!
성자가 만들어낸 신성한 영역이 독에 침식당하며 타들어 갔다.
“정화의 비.”
표정을 굳힌 성자가 독을 중화시키기 위해 정화의 힘이 담긴 비를 내리고는.
-우우웅!
두 손을 모으며 새하얀 신성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하하! 네놈이 가진 빛의 기운! 네놈은 야훼의 신관이로구나!]
안드로말리우스가 성자를 알아보고는.
-쿵! 슈웅!
다리를 박차며 성자를 향해 돌진했다.
성자를 향해 돌진한 안드로말리우스가 날카로운 손톱을 앞세울 때.
“최전선의 성벽!”
제시카가 왼손에 움켜쥔 방패를 앞세우며 안드로말리우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윽고 안드로말리우스가 앞세운 손톱과 제시카의 방패가 충돌했고.
-쿠구궁! 쿠궁!
격렬한 충돌음과 동시에 제시카가 지면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크으으윽-!”
제시카가 방패에 몸을 밀착하고는 침음을 흘리며 힘겹게 버티자.
[그 방패, 그 창! 네년은 올림포스 주신의 신관이구나!]
안드로말리우스가 제시카가 오른손에 쥔 아스트라페를 알아보며 소리치고는.
[내 먹이로 손색이 없구나!]
-샤아악!
왼손의 손톱을 세우며 제시카를 향해 휘둘렀다.
그때.
-쿠르릉!
안드로말리우스의 오른쪽에 벼락이 치더니.
“결전기 - 뇌호!”
-크워어어!
백호가 결전기를 발동하며 나타났다.
“벽력권!”
-파지지직!
강렬한 뇌전을 오른손에 휘감은 백호가 안드로말리우스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크허엉!
뇌전으로 만들어진 호랑이, 뇌호 역시 백호를 따라 앞발을 빠르게 내질렀다.
[이 하찮은 것이-!]
안드로말리우스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제시카에게 내질렀던 오른손을 뒤로 빼며 옆으로 휘둘렀다.
-쿠궁! 파지지직!
백호와 뇌호가 동시에 내지른 공격이 안드로말리우스의 팔과 충돌했다.
가볍게 휘두른 듯 보인 방어였음에도.
-파지직! 파직!
백호의 공격은 안드로말리우스의 비늘에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안드로말리우스가 백호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순간.
“뇌신의 형상!”
이번엔 안드로말리우스의 왼쪽에서 토르의 신관, 루이스가 묠니르를 움쳐쥔 채 나타났다.
-파직! 파지직!
루이스에게서 뿜어져 나온 뇌전이 위로 뭉쳐 들더니, 묠니르를 움켜쥔 토르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적을 박살 내라! 묠니르!”
루이스가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묠니르를 휘두르자.
-쿠구구!
토르의 형상이 루이스를 따라 안드로말리우를 향해 망치를 내리쳤다.
[이 날파리 같은 것들이!]
안드로말리우스가 제시카에게 내지르려던 왼손을 그대로 들자.
-콰쾅! 파지지직!
토르의 형상이 내리치는 거대한 망치를 가볍게 막아내었다.
“이 무슨 힘이-!”
루이스가 자신의 공격이 가볍게 막힌 것을 보며 경악했다.
뇌신의 형상은 루이스가 가진 스킬 중 나름 공격력이 강한 스킬.
눈앞의 대악마는 그런 루이스의 스킬을 한 손으로 가볍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아아압!”
-파지지직!
루이스가 대악마를 밀어내기 위해 뇌전의 힘을 더 끌어올리며 기합을 내질렀다.
[감히! 그런 나약해 빠진 번개의 힘으로 나를 공격하다니!]
-우우웅!
번개 속성을 본 안드로말리우스가 분노를 담아 소리치고는 강렬한 마기를 내뿜었다.
본래 번개는 독에 있어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는 속성이었지만.
-파직! 치이! 치이이!
안드로말리우스가 내뿜는 독기 일렁이는 마기로 인해 번개의 기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두! 물러나십시오!”
-화아아!
성자가 두 손에 환한 빛을 내뿜는 신성력을 가득 모으며 소리쳤다.
-샥! 파직! 파직!
제시카와 백호, 루이스가 동시에 물러난 순간.
“저지먼트 헤븐!”
-콰아아아아!
최대치로 힘을 모은 성자의 저지먼트 헤븐이 안드로말리우스를 위에서 아래로 덮쳐들었다.
마(魔)에 속한 존재라면, 소멸되는 것이 마땅한 빛의 심판.
그러나.
[이까짓 빛으로 나를 처치할 생각이었더냐!?]
-쿠구! 쿠구구!
안드로말리우스는 성자가 폭포처럼 쏟아붓는 빛을 견디며 말했다.
아무리 힘을 최대치로 모은 저지먼트 헤븐이라 해도.
-치이. 치이이.
그저 피부를 덮은 검은 비늘의 일부를 아주 조금씩 태울 뿐이었다.
그나마도 대악마가 지닌 재생력에 의해 조금씩 복구되는 상황.
그때.
-화르륵!
-화륵!
안드로말리우스의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나타난 두 명의 헌터가 강렬한 화염을 피워내었다.
그들은.
“성화의 축복.”
-화르르륵!
손 위로 작은 화로 형태의 성물을 띄워 올린 붉은 머리의 여성.
화톳불의 신인 헤스티아의 신관 도로시와.
-우우웅!
두 손을 모아 태양의 힘을 응축시키고 있는 태양신 라의 신관, 라진이었다.
모으던 힘이 최대치에 달한 순간.
“플레임 스톰!”
-콰아아-!
도로시가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강렬한 화염의 폭풍을 쏘아 보냈다.
동시에.
“솔라 캐논!”
-위이이이-!
라진이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극한으로 응축된 태양 광선을 안드로말리우스에게 발사했다.
-콰광! 콰콰쾅! 화륵! 화르륵!
강렬한 화염의 힘과 태양의 힘이 안드로말리우스에게 들이닥치며 연속 폭발을 일으켰고.
-치이! 치이이!
안드로말리우스의 주변을 떠돌던 독기 어린 마기가 증발하며 사그라졌다.
-파사삭! 파삭!
굳건하게 버티던 안드로말리우스의 검은 비늘이 점차 손상을 입으며 타들어 갔다.
[이-! 먹잇감 놈들이!]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 안드로말리우스가 마기를 내뿜으며 저항했다.
대악마가 빛과 화염, 태양의 힘에 저항하고 있을 때.
“흠, 생각보다 잘 싸우네?”
멀리 떨어져 싸움을 지켜보던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