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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47화 (347/726)

#347화

“태초신…… 후보라…….”

미륵의 말에 처용이 곰곰이 생각하듯 읊조렸다.

예상과는 다른 침착한 모습에.

[……놀라지 않는구나?]

미륵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처용을 보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

“놀라긴 했습니다. 반…… 정도는요.”

처용이 미륵의 말에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며 말을 흐렸다.

솔직히 놀라기는 했다.

미륵은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태초신 후보’라고 언급했으니까.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크게 놀라고도 남았을 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태초신과 연관된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마음속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처용은 태초신과 연관된 사건들을 겪었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로 되돌아온 이후부터였다.

태초의 마수, 카투라·크루마와의 인연.

재앙의 나무, 에블린에 대한 진실과 그녀에게 기생했었던 태초의 조각.

마녀에게 이식되어있던 태초의 그릇.

그리고 순혈자.

-네가…… 자격이 있다고?

처용이 라가 보낸 순혈자의 가입 초대장을 받았을 때, 오시리스가 놀람을 표하며 중얼거렸던 말.

성좌들 중에서도 선택된 소수만이 받을 수 있는 순혈자의 초대장.

처용은 순혈자의 초대장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아니, 일반적인 순혈자의 가입 초대장이 아니었다.

[순혈 의회의 가입 권유를 받았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처용이 받은 초대장은 ‘순혈 의회’의 초대장.

평범한 순혈자가 아닌, 그중에서도 극소수, 순혈 의회의 멤버가 될 자격이 있었다.

대충 처용이 떠올리는 굵직한 사건들만 이 정도였다.

처용이 생각을 정리할 때.

[……계승자 스스로가 태초신의 후보가 될 수도 있었군요.]

여래가 작은 놀람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마치, 미륵이 알고 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듯한 분위기.

그의 옆에 있던 보살 역시 몰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스승님과 보살님은 모르셨던 겁니까?”

처용이 묻자.

[우주를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하는 자, 나는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여래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런 여래의 말에 보살 역시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협력을 대가로 일부만을 이야기했으니까.]

미륵이 여래의 말에 대답하듯 말하고는.

[본래, 둘의 목적은 차세대 선인, 즉 후계자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여래와 보살이 본래 어떤 목적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제게 종종 말씀하셨었죠.”

처용이 기억한다는 듯 말했다.

평범한 병사나 신관이 아닌, 대신들의 의지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교육하는 것.

여래가 종종 처용에게 했었던 말이었다.

특히, 계승자가 무엇이냐는 처용의 질문에.

-지금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구나.

항상 답변하던 말이기도 했었다.

[그런 둘의 계획에…… 내가 끼어든 것이지.]

미륵이 그동안 말하지 못한 사실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말을 마친 미륵이 오른손을 들어 보이고는 신력을 내뿜었다.

-화아아!

미륵의 손 위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배구공 크기의 구체가 나타났다.

아니, 완벽한 구체는 아니고 마치 깨진 구슬처럼 금이 가며 일부가 부서져 있었다.

“……태초의 조각!?”

처용이 미륵의 손 위에 나타난 깨진 구슬을 보며 놀란 듯 말했다.

미륵의 손 위에 나타난 구체에서 얼마 전 자신이 얻은 태초의 조각과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태초신이 소멸하며 퍼진 조각 중 가장 거대한 파편이지.]

미륵이 손에 든 태초의 파편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태초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구나.]

“심장…….”

처용이 미륵의 말을 들으며 읊조리고는.

-우우웅.

손을 들어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보았다.

태초의 심장과 공명하듯 밝은 빛을 내뿜는 태룡전의 열쇠.

[이 태초의 심장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 열쇠이니라.]

미륵이 태룡전의 열쇠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태초의 심장은 이곳, 태룡전을 지탱하는 중심이지.]

“혹시, 태룡전이 만들어진 목적이……?”

처용이 미륵의 말에 무언가를 짐작한 듯, 읊조렸다.

그러자.

[그래, 태룡전은 차세대 태초신의 성역이 될 장소이기도 하다.]

미륵은 처용이 짐작한 생각을 알아차린 듯, 진지하게 말했다.

대신들에게 선택받은 후계자.

미륵은 여래와 보살이 선택한 후계자를 단순한 후계자가 아닌, 계승자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대신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성장한 계승자가 우주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미륵의 목적이었다.

“대략…… 이해했습니다.”

미륵의 말을 들은 처용이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제가 하는 중요한 선택은 무엇입니까?”

조금 전, 여래의 말을 떠올리며 미륵에게 물었다.

계승자는 우주를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하는 자라고 했었으니까.

그런 처용의 의문 어린 질문에.

[계승자는 태초신의 후보임과 동시에…… 선택할 자격도 가지고 있지.]

미륵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선택할 자격…… 제가 태초신을 임명할 수도 있단 말입니까?”

처용이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는 듯 다시 묻자.

[이 이상 자세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렇다.]

미륵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초신 후보이면서, 태초신을 임명할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라…….’

처용이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어떻게 임명합니까?”

생각을 마친 처용이 다시 질문했다.

처용의 질문에.

[…….]

미륵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을 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이런.”

처용이 대답하지 못하는 미륵을 보며 상황을 눈치챘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제약으로 인해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할 때.

[어떻게 태초신이 되는지는 묻지 않는구나?]

미륵이 처용의 질문을 떠올리며 의외라는 듯 말했다.

계승자인 처용은 태초신의 자격과 임명권을 지니고 있다.

미륵이 예상한 질문은 어떻게 태초신이 될 수 있는지였다.

이것이 계승자 본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처용은 스스로가 태초신이 되는 방법이 아닌, 타인을 태초신에 임명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둘 다 대답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어째서 스스로가 태초신이 되는 방법은 묻지 않는지.

왜 임명하는 방법만을 물은 것인지를.

그런 미륵의 의문에.

“제가요? 전 태초신이 될 생각이 결코 없습니다.”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우주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질 존재가 되는 것임에도?]

미륵이 다시 한번 묻자.

“네. 전 극구 사양입니다.”

처용이 진심을 가득 담아 강하게 대답했다.

[……어째서냐?]

미륵이 처용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태초신의 자리.

성좌들의 정점에 설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리였다.

처용은 그런 태초신의 자리를 격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미륵의 의문 어린 물음에.

“책임지지도 못할 자리에 앉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처용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태초신이라는 자리는 성좌들의 정점,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가진 권력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그에 따르는 책임 또한 커진다.

태초신이 정확히 무슨 권한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 태초신의 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자신이 없습니다.”

권력(權力)이란 책임(責任)이자 책무(責務)이다.

이것이 처용이 생각하는 권력이었다.

처용은 태초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짊어질 자신이 없었다.

이게 태초신의 자리를 거부하는 나름대로의 이유였다.

다만, 예외의 경우가 있었다.

“제가 태초신이 되면 악의 종주를 단번에 쓸어 버릴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이 있다면…… 고민되는군요.”

처용이 태초신의 자리에 오른다면, 작금의 사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가정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제로겠지요.”

처용은 반쯤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태초신이 어느 정도 무력을 가졌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성좌들의 정점, 태초신이라 해도 전지전능한 절대자는 아니었다.

지금껏 태초신이 저지른 온갖 실수들을 마주해온 처용이기에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태초신이 될 바에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이를 선발하는 것이 현명했다.

“스승님.”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마친 처용이 여래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여래가 의문을 표하자.

“태초신이 될 생각이 있으십니까?”

처용이 여래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여래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처용은 여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보살 님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이번엔 보살을 향해 물었다.

[저, 저는…….]

보살 역시 당황했는지, 말을 흘리며 대답을 마치지 못했다.

“미륵 님은요?”

이번엔 미륵에게 묻자, 미륵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침묵했다.

“으음…… 두 분한테도 물어나 볼까?”

처용이 곰곰이 생각하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방금 말한 두 분은 다름 아닌 태초의 마수, 카투라와 크루마를 말한 것이었다.

태초신과 함께 우주를 관리했었던 태초의 마수들.

그들이라면 나름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들 외에도.

‘아테나는 어떨까?’

처용은 나름 여러 후보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그때.

[잠깐, 잠깐.]

미륵이 그런 처용을 만류하려는 듯, 황당한 표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라.]

“뭔가 복잡한 조건이 있는 겁니까?”

처용이 미륵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물었다.

[정확한 조건은…… 나도 알지 못하느니라.]

미륵이 처용의 질문에 잘 모른다고 답했다.

[네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정도로만 알고 있다.]

“……단순한 ‘성장’은 아니겠군요.”

처용이 미륵의 말에 나름 확신을 가지며 답했다.

다른 이들은 꿈도 꿔 보지 못한 드높은 경지까지 성장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

레벨 498.

다른 헌터들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압도적인 레벨.

레벨뿐만이 아닌, 지닌 무력 또한 웬만한 성좌들은 가볍게 상대할 정도로 성장했었다.

가히 독보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

그런 강력하고 드높은 경지에 도달했었던 처용이기에.

“강함과 비례하는 성장이 아닌 다른 무언가…….”

처용은 미륵이 말한 ‘성장’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없군요. 알아볼 방법도 없고.”

[일단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곰곰이 생각하던 여래가 나름 결론을 내리며 말하자.

“맞습니다. 스승님.”

처용이 여래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계속 네 일에 집중하거라, 이 일은…… 내가 나름대로 알아보겠느니라.]

미륵 역시 여래의 말에 동의하며 말하고는.

‘정녕, 순환이 다가오는 것이 사살인지부터 알아봐야겠군.’

조금 전, 특히 마녀가 전해 준 정보들을 다시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

판데모니움의 중심에 자리한 악의 제전.

그 지하에 위치한, 판데모니움에서 가장 깊숙한 곳.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화로만이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

“계획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옥황상제가 보랏빛 화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화르륵.

화로가 한 번 크게 타오르더니, 누군가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어서 고하지 못할까.”

옥황상제가 빨리 대답하라는 듯, 다그치며 물었다.

그러자.

-의장이 혈선과 그 하계종을 주신의 성역으로 불러들였소.

화로에 나타난 검은 실루엣이 옥황상제의 말에 대답했다.

그 말에.

“이 간악한 년, 감히 배신을……?”

옥황상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자비의 대신을 끌어들여 태초의 마수를 사냥한다.

옥황상제가 악의 종주에게 말했었던 계략이었다.

악의 종주는 옥황상제의 의견이 나쁘지 않았는지, 실행해 보라 명령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순혈 의회의 의장은 다름 아닌 헬리오폴리스의 주신, 태양신 라.

그녀는 자비의 대신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일부 순혈자들은 그녀가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보이는 행동이라 했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

옥황상제는 순혈 의장인 라를 믿지 않았다.

라는 천교가 신법재판소라는 권리를 강탈당하는 것을 방관하고 심지어 돕기까지 했었으니까.

때문에, 옥황상제는 헬리오폴리스 성운에 잠입해 있는 순혈자를 통해 라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었다.

“당장, 그 배신자 년을 척살할-!”

옥황상제가 분노를 담아 말하려는 때.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소만?

화로 속 실루엣에게서 옥황상제를 만류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후 자비의 대신이 헬리오폴리스 성역에 들렀었소.

“뭐라?”

옥황상제가 화로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문을 표하고는.

“왜 바로 잡아들이지 않은 것이냐? 그년만 잡는다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질책을 담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멍청하긴, 자비의 대신이 바보인 줄 아는 것인가?

화로 속 실루엣에서 옥황상제의 말을 끊으며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섣불리 행동했다가 일을 그르칠 가능성은 왜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인가?

역으로 화로 속 실루엣에게서 옥황상제를 향해 질책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가장 위대한 자의 명령을 거스르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망신을 당한 옥황상제.

-이번 일만큼은 반드시 신중히 행동할 필요가 있소. 옥황상제.

화로 속에 비친 누군가는 그런 옥황상제를 비난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번 계획을 세웠다 해서, 우리에게 명령할 권한은 없소.

옥황상제를 향해 경고 어린 말을 마지막으로.

-화르르.

불길이 조금 작아지며 화로 속 실루엣이 사라졌다.

그러자.

“감…… 히……!”

-쿠구구!

옥황상제가 분노를 드러내는 듯, 거친 신력을 내뿜으며 이를 갈았다.

본래 그의 신력은 맑은 하늘과 같은, 옅은 푸른색이 일렁이는 백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파지직! 파직!

거칠게 튀는 백색 신력에 검은 스파크가 일렁이고 있었다.

“짐이…… 당하고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옥황상제가 표정을 거칠게 일그러뜨리며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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